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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 마차(Pumpkin carriage) - 2 Project dress(*삽화데이터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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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6-26, 2017 20:46에 작성됨.

“one, two, three, four...one, two, three, four...”

트레이너의 박수 소리와 맞춰서 몸을 움직였다.

“그만!”

그러나 그것도 잠시, 베테랑 트레이너는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눈썹을 사납게 구부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죠가사키.”

“하아, 하아...”

베테랑 트레이너가 성을 불렀으나 숨이 차서 제대로 답할 수가 없었다. 무릎을 붙잡은 채 허리를 숙인다.

머리를 기분 나쁘게 적시는 땀방울이 떨어지면서 레슨실의 바닥을 적신다.

“내가 무슨 말을 할지 알겠지?”

베테랑 트레이너가 다가와 물었다.

“...응, 나도 알고 있어. 엉망, 이지?”

전신 거울을 보고 춤을 추니 단번에 알아챘다.

“알면 됐다. 좀 쉬도록 해.”

베테랑 트레이너가 수건을 목에 둘러줬다.

“...하아아!”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런 모습을 보이려고 아이돌 부서에 온 게 아니잖아?’

레슨실 바닥을 내려 보면서 생각에 잠긴다.

이러고 싶지 않아.

자기 자신이 얼마나 한심한 건지 알고 있어.

알고 있기에 더더욱 화를 참을 수가 없네.

그렇지만, 그만큼 머릿속에 감도는 얼마 전의 일 때문에 정말로 어찌할 수가 없다. 복잡한 심경이 마음은 물론이고 신체에까지 영향이 가서 곤란하다.

“괜찮으세요?”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고막을 두들기곤 잡념을 해치웠다.

“...카에데 씨.”

그 주인공은 지금의 심경을 유일하게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다만 워낙 페이스를 읽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카에데 씨는 평소처럼 신비감이 묻어나는 웃음을 입가에 머금은 채로 다가왔다.

“레슨, 수고했어요.”

“아, 고마워요.”

스포츠 음료를 건네받곤 어색하게 웃었다.

‘카에데 씨의 배려가 고맙지만 아무래도 솔직히 밝게 웃을 수만은...없지.’

벽에 몸을 기대고 앉아 음료를 마신다. 마침 땀을 흘려서 수분이 부족했는데, 차디찬 음료가 식도를 너머로 온 몸 구석구석까지 퍼져가면서 수분을 보충했다.

사하라 사막을 횡단하다가 오아시스의 물을 마신 것처럼 ‘살 것 같다.’ 라는 생각이 떠돈다.

“많이 복잡해 보이네.”

“복잡할 수밖에 없는걸요.”

쓴웃음이 절로 나왔다.

“프로듀서가 맡겨달라고 했지만, 솔직히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할지가 의문이에요. 카에데 씨는 아무렇지 않으신가요?”

“후훗, 설마. 나도 불안하고 그런 걸?”

“...정말요?”

여유가 넘치는 목소리를 들어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모델 부서에 있었을 적에도 몇 번 마주친 적 있고 짧은 대화도 나눠봤지만, 여전히 속내를 알 수가 없었다.

“네에, 그리고 물 안에도 있답니다. 후훗.”

“...하아.”

내가 정말 이 사람과 잘 해낼 수 있을까?

부모님도 하지 않는 썰렁한 농담을 뻔뻔하게 해놓고, 또 스스로 웃는 걸 보면 뭐라 할 말이 나오지 않는다.

괜한 우울감에 무릎을 끌어안고 고개를 아래로 떨어뜨렸다.

“정말이야. 그래서 나름대로 알아보기도 한 걸?”

“알아봐요?”

“프로듀서 씨. 그날 이후로 우리의 활동 경력 등을 강조하면서 상부를 설득하고 다니는 모양이야.”

“...에?”

얼마 전에 충격적인 말을 듣고 정신이 팔려 몰랐었지만, 지금 미시로 프로덕션은 나름 시끄럽다고 한다.

듣자 하니 아무래도 그 프로듀서가 산을 이룰 정도로의 자료를 준비하고 회의에 참석하는 모양. 매번 압도적인 양의 브리핑을 보여주면서 질리지도 않고 주변을 설득하고 있다던데, 그 끈질김이 상상 이상인지라 다들 질려한다는 반응이었다.

“노력하는 건 알겠지만...”

설득한다고 무조건 되는 게 아니니까.

벽에 머리를 기댄 채, 고개를 위로 치켜들었다.

“어쩌면, 전 어리광을 부리고 있는 게 아닐까요?”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니?”

“데뷔가 늦춰졌을 뿐이지, 하지 않는다는 건 아닌걸요.”

고개를 다시 내려뜨리고 무릎을 감싸 안았다.

“그리고...얼마 전에 프로듀서에게 언성을 높인 것도 마음에 걸려요. 프로듀서의 탓도 아닌고.”

나 자신이 정말로 싫어져.

“...”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나의 불투명한 미래일까, 아니면 단순히 눈을 감아서일까. 잘 모르겠어.

“미카.”

“네, 카에...푸훕—!”

머리를 들었다가 무심코 뿜어버렸다.

검은 장막이 걷히면서 제일 먼저 보인 건, 도대체 어디에서 꺼냈는지 모를 코주부 안경을 쓴 카에데 씨였다.

“후훗. 미카가 조금 심각해 보이기에 한 번 해봤어. 어때, 괜찮니?”

카에데 씨가 양 손바닥을 활짝 펴면서 웃었다.

“있잖아, 미카.”

카에데 씨는 나를 쳐다보던 시선을 거두고, 잠시 정면을 주시했다.

“미카도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해. 다만, 여기가 수긍이 가지 않는 게 아닐까?”

카에데 씨는 가슴에 손을 얹으면서 물었다.

“그만큼 노력했으니까.”

모델 일을 포기하는 결정을 하는 건 쉬운 것도 아니었고, 결코 가볍게 생각한 것도 아니었다.

주변에서는 만류했지만 상관없었다. 하고 싶었다. 되고 싶었다. 무대 위에 올라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노력하고, 또 노력하고, 진지하게 응했어.

이제 곧 데뷔한다는 소식에 잠을 이루지 못했는걸.

나도 모르게 마음껏 고양되어서, 집에 가서 리카나 부모님에게 무심코 자랑을 했다. 응원을 받았다. 기뻤다.

하지만, 얼마 뒤에 듣게 된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

데뷔가 늦춰졌을 뿐만 아니라, 드레스 프로젝트 자체가 애매해질지도 모른다. 그것도 자의가 아니라 타의.

누군가의 결원으로 인해서 노력까지 부정당한 것 같고, 무의미해진 것 같아 무심코 화가 났다.

그 불안감과 분노가 머리를 뜨겁게 만들었다. 열의로 가득했던, 무언가를 쫓았던 가슴을 차갑게 식혔다.

기분이 상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갑자기 그만두겠다고 선언한 사람이 밉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어떻게, 알고 계시는가요?”

“나도, 마찬가지인걸.”

카에데 씨가 코주부 안경을 벗으면서 웃었다.

“미카도, 나도 이 일을 결코 가볍게 생각하고 있지 않아. 그만큼 노력해왔으니까. 그게 타인에 의하여 망가져 버린다면, 화나고 분한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

“카에데 씨...”

“그리고—우리가 노력하는 모습을 제일 가까이에서 보고, 이해하는 건 프로듀서 씨라고 생각해. 그렇기에, 어떻게든 해보려고 지금 열심히 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 말에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괜스레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바보.’

나중에 가서 사과해야 해.

“에잇!”

짝!

뺨을 손바닥으로 치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미카...?”

카에데 씨가 의아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마음을 다시 잡았어요. 저희를 위해 노력해주는 프로듀서를 위해서라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걸요.”

역시, 괜히 우울해져서 가만히 있는 건 맞지 않아.

그야 나는 카리스마 갸루, 죠가사키 미카니까.

“그리고 절 걱정해주신 카에데 씨에게도요.”

울적함을 내버려 두고 생긋 웃었다.

“후훗. 미카, 뺨이 빨개졌어요.”

카에데 씨가 입가를 가리면서 쿡쿡 웃었다.

“아, 앗...정말이네.”

전신거울에 들어온 뺨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아파.”

정신이 돌아오니 이제야 그 고통도 따라왔다. 아까 소리가 범상치 않더니, 세기가 상당했던 모양이다.

“후후.”

그래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

 

“살려줘.”

끝이 나지 않은 회의 지옥. 게다가 상사에게서 ‘네 동기니까 어떻게 좀 해봐.’ 라는 눈치가 들어온다.

요즘마다 위약을 챙겨 먹는 횟수가 늘었다.

“어머나. 프로듀서 씨. 안 본 사이에 핼쑥해지셨네요. 괜찮다면 이거라도 드시겠어요?”

책상 위에 낯익은 병이 올라온다.

딱 봐도 수상 쩍인 음료지만, 이상하게 이것만 먹으면 힘이 넘쳤다.

반사적으로 손이 음료로 향하나 이윽고 멈췄다.

미시로의 사무원은 그걸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러신가요, 프로듀서 씨?”

“그, 글쎄요. 잘 모르겠지만, 등골이 오싹해지네요. 왠지 마시면 큰일 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저런...음료도 제대로 마시지 못할 정도라니, 마음고생이 정말로 심하신 모양이네요. 무슨 일인가요?”

“무슨 일인가? 말해보게나.”

이마니시 부장도 차를 마시면서 묻는다.

“두 분 다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능구렁이가 두 명이나 있었다.

“말하지 않는다면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 건지 알지 못한다네. 아, 혹시 자네의 담당 아이돌인 사쿠마 마유와 무슨 문제라도 있었나? 그렇다면 확실히 문제로군. 자네와 사쿠마 양은 그동안 잘 지냈으니까 말일세.”

이마니시 부장이 푸근하게 웃는다. 속에 능구렁이를 백 마리 정도 키우는 것이 분명하다.

“사쿠마...랑은 잘 지내고 있습니다.”

“프로듀서 씨에게 좀 더 묻고 싶은 게 있지만, 눈빛이 흐릿한 걸 보니 왠지 물어보면 안 될 것 같네요.”

센카와 치히로가 언제나처럼 생긋 웃는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리 고민인가?”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 녀석입니다, 그 녀석. 제 입사 동기. 경찰에 잡혀갈 것 같은 얼굴을 한.”

인생보다 무거운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요 며칠의 일로 십 년은 폭삭 늙은 기분이었다.

“며칠째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드레스를 이대로 무산시킬 수도, 지연할 수도 없다면서 매일매일 상부에 보고와 회의를 반복하고 있어요. 덕분에 입사 동기인 저도 휘말려서 눈총을 받고 있습니다.”

우울하다.

“어디 넋두리할 것도 없고...”

“담당 아이돌에게 하시는 건 어떤가요? 서로 힘들 때 돕는 것이, 프로듀서와 아이돌이랍니다.”

“농담하지 말아 주세요, 센카와 씨. 아무리 제 동기가 모 성배 전쟁에 나오는 암살자같이 생겼다 할지라도, 정말로 그렇게까지 강한 건 아니니까요.”

처음으로 정색했다.

“담당 아이돌을 뭐라 생각하시는 건가요, 프로듀서 씨. 아무리 농담이라도 질이 나쁘다고요?”

사무원이 볼을 부풀리면서 혼낸다.

“윽, 죄송해요. 뭐어, 별일은 없겠죠. 사쿠마는 연약한 소녀니까요. 그래도 저에 관련되면 분위기가 조금 험악해지는지라, 제 동기와 싸울지도 모르거든요. 그런 건 보고 싶지 않아요.”

쓰게 웃으면서 차를 한 모금 마셨다.

“팔불출 이는구먼.”

야마나시 부장이 특유의 푸근한 웃음을 지었다.

“본론으로 돌아가서...어쨌거나 죽을 맛입니다.”

“그러면 말리면 되지 않는가?”

“말려도 들을 녀석이 아닙니다. 저렇게 보여도 자기 일에 책임 있고, 또 그에 관련해서 고집 있는 건 부장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제 곧 이 고통에서 해방될 것 같기도 하고요.”

“고통에서 해방이요?”

이마니시 부장 대신에 치히로가 대신 물었다.

“네.”

고개를 끄덕이곤 설명을 요구하는 시선에 답했다.

“회의 결과가 곧 나올 겁니다. 그 친구가 원하는 방향으로요.”

“원하는 방향이란 건...”

“타카가키 카에데와 죠가사키 미카의 데뷔입니다.”

확신에 가득 찬 그 목소리에 사무원이 놀란다.

“호오.”

이마니시 부장도 흥미롭다는 듯이 쳐다보면서 다음 말을 기다렸다.

“미시로는 기본적으로 능력제입니다. 능력만 된다면 뭐든지 허용되는 분위기지요.”

아이돌 부서를 총 책임지고 있는 상무의 방침 역시 맞다. 그건 극단적이라 말할 정도다.

효율과 능력과 결과. 그것만 있다면 도덕적으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한은 대체적으로 허용되는 분위기다.

“타 부서에서 스카우트까지 받아, 미시로에서 나름 심혈을 기울인 프로젝트를 맡는다는 건 어떤 의미인지 두말할 필요도 없죠? 동기들 사이에서도 화제였습니다.”

차를 다시 한 모금 마셔 목을 축였다.

“그 친구는 남과의 커뮤니케이션은 몰라도 일에 관련에선 정말로 탁월해요. 실적도 있고, 또한 앞으로의 일에 대한 성과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논리적으로 사람들을 설득시킬 수 있죠.”

“아, 그건 확실히...”

치히로가 입술을 검지로 툭툭 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사무원으로서 몇 번 보조했으나, 실은 그렇게까지 도움이 필요한 적은 없었다. 그만큼 유능하다는 의미다.

“너무 정직하기만 하고, 곧은 게 흠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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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는 엣플(트위터:@Hdheplay)님이 맡아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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