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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이야기 - 이오리 「우사를 다시 되살리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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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6-20, 2017 20:02에 작성됨.

지난 편에 이어집니다..

 

1.

어제까지만 해도 마치 온 몸이 녹아내릴 듯한 뜨거운 날씨였건만,

여름을 맞이한 하늘은 조울증에 걸린 환자마냥 또 순식간에 그 날씨를 바꿔버렸다.

이오리가 갑작스레 쏟아진 소나기에 흠뻑 젖은 야요이에게 수건을 건낸다.

 

야요이 「헤헷. 고마워 이오리짱.」

 

이오리 「아냐. 급한 일이라지만 이렇게 바로 와준 야요이가 더 고맙지.」

 

수건을 받아든 야요이는 문득 이오리의 손이 왠지 모르게 더 말라보이고,

창백해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건으로 물에 흠뻑 젖은 머리와 얼굴을 닦는다.

뽀숑뽀숑한 감촉과, 병원에서 날 법한 냄새에 잠깐, 머리가 핑 하고 돌아가는 것 같다.

 

지금 이오리의 집에는 이오리와 야요이 단 둘 만이 남아 있었다.

집사도 오래간만에 휴가 중이라고 했으므로,

 

이오리 「니히힛. 야요이가 찾아올 줄은 몰랐는데. 우사짱이랑 놀고 있었거든.」

 

야요이는 요즘따라 묘하게 텐션이 올라간 이오리와,

보이지 않는 이오리의 토끼 인형에 문득 기묘함을 느꼈다.

우사랑 놀고 있었다는데, 우사짱은 그러면 어디 있을까?

비에 너무 많이 맞아서일까? 

야요이는 몸이 살짝 싸늘한 것을 느꼈다.

 

이오리의 방은 왠일인지 어두웠다.

야요이는 안쪽으로 눈을 돌렸다.

어두운 쇼파 위로, 누군가가 누워 있었다.

야요이가 다가가려 하자, 이오리가 말렸다.

 

이오리 「아, 그건 치하야야. 마찬가지로 나를 좀 돕고 있었거든.

그런데 많이 피곤했나 봐. 잠깐 잔다고 그러더라고?

어차피, 이따가 깨울 테니까, 그냥 냅둬도 돼.」

 

야요이 「어? 치하야씨도 와 계셨을줄은 몰랐어!

헤헷. 치하야씨도 계시다니까 더 좋다.

그나저나 이오리짱, 도와줄 일이라는게 뭐야? 급한 일이라고는 들었는데..우웅」

 

야요이는 그대로 다시 쇼파에 앉았다.

야요이가 쇼파에 앉자, 이오리가 슬며시 다가와서 앉았다.

 

이오리「야요이. 무서운 이야기 들려줄까?」

 

이오리가 히죽거리며 물었다.

 

야요이 「우응..왠지 듣고 싶지 않을런지도..그것보다도 일이라는게 뭔지ㅡ」

 

이오리 「아냐. 재미있을꺼야. 한 번 들어봐.

해야 되는 일도 이거랑 관련되어 있으니까.」

 

야요이는 무서운 이야기는 별로 좋아하는 편이 아니였다.

아니, 오히려 타카네 만큼이나 싫어하는 편에 가까웠다.

허나 그녀의 절친 이오리가 들려주는 이야기이기도 했거니와,

일면으로는 적막한 사무소가 꽤나 심심하기도 했으므로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이오리 「내 인형 알지? 우사 말이야.」

 

야요이 「응. 요즘엔 안보이지만.. 혹시 이야기가 우사랑 관련된거야?」

 

이오리 「니히힛. 맞아. 우사에 관련된 이야기야.」

 

이오리 「다 듣고 나면, 알게 될 거야」

 

의미 모를 묘한 미소와 함께,

이오리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2.

이오리 「난 어렸을 때 작은 토끼를 길렀었다.」

 

이오리 「그 아이의 이름은 우사였다.」

 

이오리 「바깥에서는 회사에만 신경 쓰고, 안에서는 개인 서재에 틀어박혀 기이한 연구에만 몰두하는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에게 질려서 가정에는 손 놓아버린 엄마.

그저 금전 관계로 맺어진 가정부들의 가식적인 관심과 거짓 사랑 속에서 길러진 덕에,

그 당시의 작은 아이 이오리는 언제나 외로웠었다.」

 

이오리 「그런 외로운 삶 속에서, 토끼 우사는 거의 유일한 친구였었다.」

 

이오리 「미나세 기업에 일방적으로 해고당하여, 불만을 품은 직원이..

산책을 나온 우리 둘에게 염산이 담긴 병을 던지지만 않았더라면,

 

이오리 「우린, 더 오래 친구가 될 수 있었겠지.」

 

이오리 「나는 경호원들 덕에 무사할 수 있었지만,

우사는 내 눈 앞에서 고통스럽게 죽어야만 했다. 온 몸이 녹아내리는 끔찍한 방식으로.」

 

이오리 「그 이후로 난 토끼에게 집착하기 시작했다. 병적으로.

밤마다 우사의 고통스러운 비명 소리가 가득한 악몽에 시달려야만 했고,

낮에는 이미 죽어버린 우사만을 찾고 또 찾아 헤멨다.

 

결국 보다 못한 집사가 어느날 내게 인형 '우사'를 건네주었다.

 

집사 「아가씨. 아가씨가 찾던 '우사'입니다.」

 

이오리 「..우, 우사가 아닌걸? 훌쩍..」

 

집사 「아닙니다. 우사랍니다?

똑같지 않나요? 사실은, 우사는 다만 인형으로 변했을 뿐이랍니다?」

 

이오리 「우사? 지 진짜야? 」(울먹)

 

집사 「진짜랍니다. 진짜요.」

 

아마, 나의 어리광과 욕설을 견디다 못한 집사의 임시방편책이였겠지.

허나 어린 시절의 나는, 너무나도 순진무구하였으므로

그의 말을 철썩같이 믿었다.

 

처음 그 인형을 안았던 때가 생각났다.

인형 우사와 만난 어린 시절의 그날은, 너무나도 기뻤더랬지.

인형은 죽지 않으므로,

드디어, 헤어지지 않을 수 있는 그런 우사와 만날 수 있다는 기쁨에..」

 

이오리 「허나 인형조차도, 세월을 이길 수는 없었다.

항상 가지고 다녔으므로, 인형은 계속해서 낡아졌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자라면서 깨달았다.

인형은, 인형일 뿐이였다.」

 

이오리 「우사를 향한 내 집착은 점점 심해졌다.

살아있는 우사는 앞으로도 영영 볼 수 없다는 슬픔은 곧 광기와 공포로 변질되며,

나중에는 인형 없이는 악몽 때문에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날들이 한동안 이어졌다.」

 

이오리 「아버지의 지인인 타카기 사장을 만나 765 프로에 들어오고,

하루카, 야요이, 히비키 등등 착한 아이들과 만나면서 내 광기는 잠시나마 어둠 속에 숨었지만,

그것은 숨었을지언정, 사라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어둠 속에서 나를 계속해서 지켜보며

다시 내 정신으로 도래할 기회를 기다리고 있지는 않았을까?」

 

이오리 「그러던 어느날.」

 

이오리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싸늘하게 식은 채로.

사인은 심장 마비.」

 

...

야요이 「에..에엑? 이오리짱! 그거..그거 거, 거짓말이지?」(당황)

 

당황해서 우물쭈물하는 야요이가 꽤나 귀여웠는지,

이오리가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오리 「괜찮아. 이미 오래전 이야기니까. 한참 전에 있었던 일이라고?

그 때에는 야요이도 아직 없었고..

그냥 하루카, 치하야나 리츠코 정도만 있었을 때니까.

무엇보다도 난 아버지랑 별로 친하지 않았어.」

 

이오리 「이야기 계속 해도 될까?」

 

야요이 「우..우우..꼭 안 들어도 될까나ㅡ하는데..」

 

야요이가 곤란한 듯 자는 치하야 쪽을 살펴보았다.

허나 무심하게도 치하야는 죽은 듯이 자고 있을 뿐이였다.

 

이오리 「다 이유가 있으니까. 들어줘.」

 

야요이의 곤란한 표정에도, 이오이는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다.

 

 

3. 

아버지가 급작스레 돌아가시고, 미나세 기업의 권력 위치가 요동쳤지만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이였다.

나는 이제 막 시작한 아이돌 생활에 바빴으므로,

무정하고 냉혈한 아버지의 죽음 따위는, 금새 잊어버렸다.

다만 나는 아버지의 서재를 물려받았고,

그건, 충분히 흥미로웠다.

 

765 프로덕션에서의 하루가 끝나면,

나는 어둠에 잠긴 서재에서 매일 밤을 지세웠다.

그 곳은, 아버지가 일생 일대에 걸쳐 모은 거대한 지식의 창고였으니,

보통의 지식이 아닌 기이한 것들이 가득했다.

 

아버님은 항상 그런 것들에 골몰하셨다.

엄마가 결국 질려서 가정을 포기하고 퇴폐적인 향락의 나날에 빠질 때까지도,

아버님은 그러한 기이한 것들에 집착하셨다.

어느날 밤중에 끝없는 무언의 공포에 질려, 심장마비로 싸늘하게 식어 쓰러진 그 날 까지도..

돌이켜보면, 나의 어린 시절 아버지의 모습은 기이한 것들에 병적으로 집착하시는 그런 모습 밖에는 없으셨다.

허나 그분께선 살아계실 적에도, 그것들에 대해 나나 다른 사람들에게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으셨다.

 

이오리 「어쩌면 내 피 속에도, 아버지의 광기로 오염된 피가 똑같이 흘렀기 때문이였는지도 몰라. 

그날 그 책을 발견했던 건」

.....

 

야요이 「..이오리..」

 

야요이 「이..이제 그만하자. 무섭다고 이오리짱?」

 

이오리 「니히힛. 이제 시작인걸?」

 

장난스런 미소와 함께 이오리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오리  「서재를 탐구하던 나는 어느날 발견했다.」

 

이오리  「'Necronomicon' 직역하자면, 죽음의 서」

 

...

이오리 「아버지가 책 장마다 빼곡히 붙여놓은,

광기 속에서 폭풍 같은 글씨체로 도배된 해석 메모들에 따르자면

그 책은 인간의 가죽을 겨워서 만든, 443 페이지로 구성된 책으로써,

14세기 중동의 학자 'Abdul Alhazard'가 광기 속에서 쓴 책이였다.

 

본인 스스로를 직접 인신공양하여, 뼈를 태워 만든 잉크로 작성한, 말 그대로 손수 집필한 연구서.

그것은 죽음에 대한 방대한 철학이 집대성된 하나의 철학서이자 연구서였다.

책은 학자가 죽은 다음에 쓰여졌으나,

오직 그 학자의 이름만이 적혀져 있었으므로

누가 옮겨 적었는지도 알 수 없었지만,

거기에 담긴 내용은 분명 정의롭고 선한 이들이라면 반드시 피해야 될 내용들이 분명했다.

허나 모든 구절에는 친절하게도 아버님이 쓰셨던 상세한 해석이 메모로 붙어 있었고, 

나는 선하지도, 정의롭지도 못했다.」

 

이오리 「거기에 있는 내용들 중, 하나의 내용이 내 관심을 사로잡았다.

부정한 제물로, 죽은 이를 부활시키는 방법에 대한 내용이..」

.....

 

이오리 「지금 생각해보면, 난 분명히 무엇인가에 씌였던 걸꺼야.

니히힛. 어쩌면 나도 아버지랑 똑같은 광기의 피가 흐르기 때문이 아니였을까?」

 

야요이 「..다 농담이지?」

 

야요이의 얼굴은 이미 충분히 공포에 질려 있었다만,

이오리는 개의치 않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

이오리 「당시에는 힘들었을 법한 약품들과 재료들이 상당수 있었지만,

21세기의 굴지의 기업의 일인자의 딸인 내가 구하지 못할 재료는 없었다.

준비물을 모으는 데에는 단 2주면 충분했다.

우사의 시체도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한 밤중에 마당에 마련된 우사의 무덤을 삽으로 파헤치고 들쳐내어,

다 말라 비틀어진, 우사의 시체를 내 손으로 직접 거두었다.」

 

이오리 「그런데, 마지막 재료는 정말 구하기 어려웠어.」

 

 

ps. 사실 마지막 재료는 꿈과 사랑이 담긴 재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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