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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는 녹아내린 눈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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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6-19, 2017 19:34에 작성됨.

하기와라 유키호가 아이돌을 그만둔다. 그런 소문이 자그마한 765 프로덕션의 사무실에서 며칠 간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물론 적어도 소속 아이돌 중에서 그 소문을 믿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이런 악질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소문을 퍼트린 장본인이 누구인지 밝혀내려는 하루카, 마코토, 가나하 씨의 모습과 너무 순수하기에 사실인지 아닌지도 확실하지 않으면서도 안절부절 못하는 타카츠키 씨의 모습, 비교적 신경을 잘 안 쓰는 일부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그 소문의 주인공인 하기와라 씨는 그 어떤 말을 하기는커녕 사무실에 오는 횟수와 시간을 크게 줄여,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들썩이게 하고 있었다.
 
물론 안에서 새는 물이 바깥에서 새지 않을 리가 없어, 방송가에서도 그 소문이 흘러 들어가 일부 가십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765 프로의 아이돌들을 볼 때마다 하기와라 씨에 대한 질문을 끝없이 날려, 프로듀서와 아이돌 겸 프로듀서인 리츠코가 상당히 골머리를 쌓으며 그들의 입과 호기심을 틀어막고 있었다. 그런 두 사람과 사무원인 오토나시 씨가 노력하는 모습은 옆에서 지켜보는 나 또한 잘 보였고, 그 마음 또한 이해가 됐었다... 고 생각했다.
 
여튼 그런 거북한 소란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하기와라 씨는 아무래도 일 또한 크게 줄인 것 같아, 나와 동료들이 프로듀서에게 하기와라 씨에 대해 물어봐도 아마 지금쯤이면 자택에 있을 것 같다는 말을 잘 듣기도 했다. 점점 커지는 소문과 더욱 짙어지는 증거는 소문이 사실이지 않을까, 오히려 소문은 수면 위에 보이는 빙하 수준이 아닐까 하는 소리조차 들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좀처럼 사실은 밝혀지지 않고 있었다. 이유는 단순하다. 소문의 진의를 밝힐 당사자가 입을 열기는커녕 모습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으니까. 그렇기에 어느 날 우연히 사무실에서 하기와라 씨와 얼굴을 마주쳤을 때는 나답지 않게도 상당히 강제로 하기와라 씨를 사무실 구석에 존재하는 소파에 앉히고 있었다.
 
강제로 소파에 앉혀져 무릎 사이에 손을 넣은 채 내 눈치를 보는 하기와라 씨의 얼굴을 정면으로 보면서 나는 입을 열었다. 하기와라 씨가 아이돌을 그만둔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진실은 어때?
 
내 그런 질문에 잠시 눈을 크게 뜨며 놀라던 하기와라 씨는 이윽고 옅은 미소를 터트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거기에 즐거운 감정은 없다. 있다고 한다면 씁쓸한 감정일까. 하기와라 씨의 감정이 영 알기 힘들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말하고 싶었는데, 그런가아... 벌써 이야기가 돌고 있었구나.”
 
뭐 어쩐지 지나갈 때마다 일부 방송국 관계자 분들이 여러 가지로 물어보고 있었으니 대강은 알고 있었다고 말을 덧붙이는 하기와라 씨는 익숙하게 아무것도 없는 탁자 위에 손을 뻗어 몇 번 허공에서 흔들다가 무언가를 깨달은 듯 어색한 움직임으로 손을 거두며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아마 찻잔을 들고서 차를 마시려고 했겠지.
 
“그렇다는 건 소문은 진짜라는 거구나.”
“응, 맞아. 나 말이지, 아이돌을 그만두려고 해.”
 
표정은 어두운 주제에 목소리에서 들리는 감정도 내뱉는 말도 모두 담담하기 그지없었다. 그렇지만 대체 어째서? 자신이 말하기에도 쑥스럽지만 나를 포함한 765 프로 아이돌은 현재 인기 가도를 달리고 있었고, 거기에는 하기와라 씨도 들어가 있었다. 최근에는 자신의 마음... 분함도 약함도 그대로 데리고 가자는 생각을 담은 강한 하드 록 넘버를 발표하기도 했기에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하기와라 씨의 의도를 전혀 읽을 수 없었다.
 
“노래 부르는 건 즐거워.”
 
그런 내 생각을 당연하게 예상한 것처럼 하기와라 씨는 감정이 잘 담기지 않은 목소리로 말을 했다. 나는 어깨를 떨며 놀라면서도 하기와라 씨의 말을 경청하기 위해 자세를 고쳐 잡고 있었다. 그런 내 모습을 몇 초간 지켜보던 하기와라 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간다.
 
“춤추는 것도 어렵지만 잘 출 수 있게 되면 너무 좋아, 관객 분들, 팬 분들이 보내주시는 모든 것이 감사해. 동료들과 있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기쁘고, 되도록 모두와 계속 있고 싶어.”
 
“그럼 어째서...”
“글쎄, 어째서일까... 몇 달 전부터 갑자기 들기 시작한 생각이 있어서일까?”
 
뺨을 검지로 긁으며 작게 웃던 하기와라 씨는 그렇게 말했다. 갑자기 들기 시작한 생각?
 
“이곳이 진정으로 내가 있을 수 있는 곳일까. 나는 여기에 있어야 하는 걸까. 어쩌면 여기는 내가 있어서는 안 될 곳이지 않을까...하고 말이야.”
 
하기와라 씨가 그렇게 말을 하고서 잠시 내 얼굴을 보며 조금 겁먹은 표정을 담으며 고개를 까딱 움직인다. 아무래도 내 표정이 상당히 굳어진 모양이었다. 그렇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어째서 지금 드는 거고, 결과가 은퇴인 걸까.
 
“고민하고, 생각하고, 상담도 부탁드려봤지만 결과는 똑같았어. 역시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니구나...하고.”
“아니 어째서...”
“거리를 느꼈으니까. 아무리 노래를 불러도, 춤을 필사적으로 춰도, 연기나 사진집 촬영에 몰두해도 이것을 하고 있는 것이 내가 아니지 않느냐는 생각이 들었어. 그것뿐만이 아니라 촬영장, 스태프 분들, 연기자 분들... 아니, 모든 것과 나는 거리가 상당히 떨어져 있는 게 아니냐는 느낌이 오고 있었어.”
 
“그러니까 어쩌면 나는 녹아야할 때일 지도 모르겠어. 그런 생각이 들었어.”
 
그 말은 마지막으로 하기와라 씨의 말은 뚝 끊기고 말았다. 그렇지만 나는 쉽사리 납득할 수 없었다. 하기와라 씨가 느끼고 있는 것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누구라도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겠지. 그렇지만 세간에선 그걸 ‘슬럼프’라고 정의하고 있었고, 슬럼프라면 은퇴가 아닌 휴식기간을 받았어도 됐을 것이다. 그렇지만 하기와라 씨는 자신이 얻은 모든 것을 놓으려고 하고 있었다. 나는 아무리 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어지러운 머리를 오른손으로 잡으며 간절한 마음이 담긴 목소리로 하기와라 씨에게 말을 걸었다. “하기와라 씨는 프로듀서가 될 생각이야?“라고. 아이돌을 그만둔다고 해도 떨어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무심코 말에 담긴 거겠지. 그렇지만 나는 말을 되돌리지 않았다. 오히려 노래를 대할 때처럼 진지하고 굳은 눈으로 하기와라 씨를 보고 있었다.
 
“프로듀서도 사무원도 되지 않을 거야. 나는 이 연예계에서 완전히 사라질 생각이야.”
 
그렇게 말을 잇는 하기와라 씨는 어느새 무릎 사이에서 꼼지락하며 뒤척이던 손을 자신의 무릎 위에 올려두고 있었다. 불안함이 사라진 걸까. 나로선 지금의 하기와라 씨의 모든 것을 예상할 수 없다. 전혀 모르겠어.
 
“나중에 리츠코 씨와 프로듀서랑 함께 모두에게도 전할 생각이야.”
“그 두 사람은 알고 있었구나.”
“응, 사실 이런 걸 그 두 분이 모르고 있으면 큰일 난다구?”
“그건 그러네.”
 
오토나시 씨도 말이라고 잠시 말을 덧붙이며 입을 가리고 웃던 하기와라 씨는 무언가 용무라도 있는 듯 몸을 일으켰다. 내가 질문을 하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는 것처럼 남아 있는 스케줄은 모두 해놓고 싶다며 말하고서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내게 인사를 한 하기와라 씨는 건드리면 사라질 것 같은 그런 덧없고 처연한 모습으로 내게서, 그리고 사무실에서 떠나고 있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사장에 의해 모이게 된 모든 사무실 사람들 앞에서 리츠코와 프로듀서, 오토나시 씨의 보조 아래 하기와라 씨 자신의 말에 의한 은퇴 소식이 전해지게 됐다. 물론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었고 특히 가나하 씨와 마코토, 타카츠키 씨의 반응이 매우 커, 하기와라 씨가 그것에 대응하느냐고 상당히 진땀을 뺐었지.
 
그 후 요시자와 씨의 취재를 받고서 완성된 기사가 전국에 뿌려지게 됐고 하기와라 씨는 때가 되었다는 것처럼 그 전과는 달리 적극적으로 취재에 응하면서 자신의 생각과 은퇴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다만 그 내용이 내가 언젠가 들었던 이유하고는 같았어도 자신은 녹아야할 때가 아닐까라는 말은 결코 입 밖으로 내지 않고 있었다.
 
하기와라 씨의 정식적인 은퇴 선언은 하기와라 씨의 아이돌로서의 마지막 라이브에서 하기로 이야기가 정리 되고, 그렇게 하기와라 씨와 우리들의 스케줄과 시간은 끝없이 어긋나고 있었다. 하기와라 씨의 모습은 소문이 돌던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모습이 보이지 않고 있었고, 그저 오토나시 씨와 프로듀서가 전하는 소식만이 나와 동료들이 알 수 있는 하기와라 씨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2월, 아직 겨울이라 부를 수 있는 그런 하얀 공기 속, 단독 라이브에서의 은퇴 선언 이후에도 크게 바쁜 상태로 뛰어다니던 하기와라 씨는 3월, 봄이라 부를 수 있을 그런 포근한 공기 속에서 모두의 앞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연락은 완전히 끊기고, 그 누구도 하기와라 씨를 보지 못했다는 말과 어떠어떠한 곳에서 무슨 일을 하는 게 아니냐는 소문만이 내 귀에 다가오고 있었다.
 
마치 언젠가 하기와라 씨가 말했던 것처럼 겨울에 내리며 온 세상을 새하얀 마법으로 물들인 눈이 봄이 오면서 자신이 언제 마법을 부렸냐는 듯, 혹은 자신은 원래부터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처럼 덧없이 녹아버려, 그대로 사라진 것 같다.
 
그런 이상한 것을... 아니 슬픈 것을, 귀에서 들려오는 하기와라 씨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하기와라 씨는 어째서 녹아버린 걸까. 어째서 녹지 않으려고 발버둥치지 않았을까. 어째서 녹아버리는 것을 선택하고 만 것일까. 그런 하기와라 씨만이 아는 답을 찾으려고 창문을 바라보던 나는 바깥에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몸을 일으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런 내 눈에 창문에 붙어 있던 하나의 물방울이 근처에 뒀던 악보 위에 떨어져 스며들어가는 것이 보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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