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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동인 아라키양

댓글: 2 / 조회: 944 / 추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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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6-17, 2017 13:34에 작성됨.

히어로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는 다양한 대답이 존재한다. 히어로는 두리뭉술한 개념이니까. 이상적인 영웅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대답이 달라지는것이다. 당연히 히어로를 자청하는 난죠 히카루에 대한 아이돌들의 반응도 제각각일 수밖에 없었다.(물론, 그 제각각인 반응중에는 '여성은 히로인 아냐?'라는 어찌보면 상식적인 반응 또한 포함 되어 있다.)
하지만 당장 다크서클이 생길랑 말랑 한 상태인 아라키 히나의 경우에는 좌우지간 눈 앞의 자그마한 히어로가 고마웠다.

"저, 정말임까?!"

"그럼! 곤란한 사람을 도와주는게 히어로잖아!"

"좋은 일임다. 안 그래도 난처하던 차였음다."

"자 그럼! 먹칠이건 스크린톤이건 전부 말만 해!"

"아, 그런 문제가 아님다."

"응? 손이 모자란거 아냐?"

"아, 쬐끔 다름다."

"어떻길래?"

좌우지간 잘 모르면서 일단 의욕에 넘쳐서 도와주겠다고 하고 있는 히카루를 보고 히나는 미소를 지었다. 귀엽슴다. 저도 저럴때가 있었을까요.

"그게... 소재의 문제임다. 리얼ㅊ... 학교의 인기인의 첫사랑 이야기를 소재로 삼으려고 하는데..."

"하는데?"

"부끄럽지만 제 경험이랑 동떨어져 있슴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안옴다."

"...그렇구나!"

...아, 이해 못했음다. 히카루한테 별로 기대는 안 해 보는게 낫겠음다.

"그럼... 하여간 그런 사람에게 물어 보는게 좋겠지? 혹시 주변 사람들에게는 물어 봤어?"

"그게... 생생한 정보를 위해 고등학교 후배들한테 물어 봤더니 학교에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고는 함다. 막 벚꽃 아래의 첫사랑 어쩌구. 그런데 증명되지 않은걸 참고 자료로 쓰긴 힘들거 같고."

"흐음... 그럼 말야, 그런 사람한테 찾아가서 물어 볼까?"

"그런 사람... 임까?"

히카루는 당당하게 미소를 지었다.

"응!"

 

"이야- 그렇게 말하면 쑥쓰러운데 말야. 학교의 인기인 미오쨩이라니-"

...아. 확실히 리얼충임다. 이렇게 써놓은듯한 리얼충도 드물검다. 뭐라고 해야하나. 좋고 나쁘고 이전에 그냥 저랑 다른 인생임다. 혼다 미오라는 인물에 대한 히나의 솔직한 평이었다.

"그러니까, 미오의 사랑 이야기를 들려줘!"

"사...랑?"

이렇듯 성향으로 치면 미오랑 정 반대 쪽인 히나였기에, 미오가 사랑이란 단어를 듣고 보이는 반응도 히나로서는 의미를 알기가 힘들었다. 누군가 만화를 그리려면 인간을 관찰해야 한다고 했지만 히나에게는 아직 좀 어려운 주문같다.

"응! 첫사랑 같은거!"

"아, 아하하..."

하지만 저 미소는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었다. 응. 이건 확실하지. 뻔하고말고.

"그만 두는게 좋을거 같슴다, 히카루."

"으...응? 왜 그래 히나?"

"아무래도 미오양도 잘 모르는거 같슴다..."

"에헤헤. 들켜버렸나. 그게, 미오쨩은 잘 모르겠네. 사랑이란거어..."

멋적은듯이 웃으며 뺨을 긁적이는 미오의 표정이 뜻하는건 명백했다. 만화로 옮겨놔도 괜찮을것 같은 알기쉬운 웃음이다.

"어... 어떡하지? 미오도 모른다는데?"

"별수 없지 않슴까. 취재는 고독한법. 그저 계속 해 나갈뿐..."

"아, 잠깐."

실망하고 떠나려는 두 사람을 미오가 불러세웠다.

"나는 잘 모르지만, 히나쌤 고등학교에 전설같은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고 했잖아?듣고 보니 마침 최근에 라디오로 온 사연에 그 이야기가 있는게 생각 나더라구."

"사연...임까?"

"응. 여기다 뒀는데... 아, 찾았다. 라디오 네임 '캡틴 브라보'님이 보내주신 사연입니다."

"...뭔가 말투가 라디오 방송 진행 말투임다?"

"'안녕하세요. 저는 모 대학에 다니는 대학생입니다. 이번 주제가 봄이잖아요? 저에게는 봄 하면 떠오르는 첫사랑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봄만 되면 벛꽃아래에서 말없이 하늘을 바라보던 여학생이 있었습니다. 이름도 몰랐지만, 저는 그 모습을 보고 한눈에 사랑에 빠져 버렸었지요. 학교를 졸업하고, 그 아이를 더 볼수는 없었지만 봄만 되면...' 이라는걸. 이런것도 꽤 소재가 될거 같지 않아, 히나쌤?"

"확실히... 구미는 좀 당김다. 그치만 그런 두리뭉술한 사연만으로는 뭔가 부족..."

"거기서말야, 이 편지에 재밌는게 적혀 있더라구."

미오는 장난스럽게 윙크를 해 보였다.

"이 편지를 보낸 사람이 그 학교에 소녀의 초상화를 그려놨대. 어때, 한번 찾아보는것도 재미있지 않겠어?"

 

"안녕하세요-! 찾아가는 데레파! 진행자인 타다 리이나입니다! 그리고 이쪽은 오늘의 게스트!"

"데렛파- 아라키 히나임다- 잘부탁드림다-"

"데렛파! 난죠 히카루입니다!"

"오늘의 사연은 벚꽃 나무 아래에서의 첫사랑 이야기였는데요, 히나씨, 어떠세요? 이 학교 졸업생으로서 뭔가 짚히는데가 있으세요?"

"아하하... 글쎄 말임다."

어쩌다 이렇게 된건지 모르겠지 말임다. 히나는 좀 얼떨한 기분으로 대답했다.
미오의 장난스러운 윙크에 재밌을거 같다고 대답하긴 했지만, 그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프로듀서가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나타나서는 일정을 이걸로 잡겠다고 했다.
뭔가 속은 기분이다. 아마 마침 게스트가 필요했던거겠지.

"자, 이 곳이 이야기 속의 벚나무입니다!"

벚꽃은 봄의 눈물이었다.
따사로운 태양 아래. 사람 한명을 적당히 가릴 정도의 크기의 벚나무는 마치 방울방울 눈물을 흘리듯이 벚꽃을 흩날린다. 그야 이런 꽃 아래에서는 그 무엇이라도 봄의 전령으로 느껴지지 않을까. 새싹의, 가능성의 전령이 되지 않을까. 마감에 쫓기고, 일에 쫓겨 피폐해진 히나의 감성으로도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로맨틱한 광경이었다.
제가 저기 아래서 마감할때는 저렇게 이쁜지 몰랐는데 말임다.

"오오오! 나무 예쁘다!!"

"저기 아래에서 제보자의 첫사랑은! 교복을 입고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고 합니다! 어때요, 낭만적이지 않나요?"

"크으으... 정말 아름다운 광경이었을거야! 지켜주고 싶은 히어로의 피가 끓어오르는걸!"

하지만 생각하고 있어봐야 필름은 돌아가는 법. 뜬금없이 이루어진 히나의 모교 방문은 눈 깜짝할 새에 벛꽃 나무에 멋대로 환상을 부여하고 있었다. 히나는 그게 마음에 안 들었다.

"...실례지만 그렇게 로맨틱한 장소가 아님다. 저만 해도 재학 중에는 귀찮은 애들 피해서 그림 그리려고 여기까지 오기 일쑤였고."

"응? 그냥 교실에서 그림 그리면 안되는거야?"

"네... 안됨다. 귀찮게 뭐 그려달라, 저거 그려달라 하는 애들이 있어서. 기껏 그려주면 그림 맘에 안든다고 투덜...후...후후..."

"네-! 얼른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 볼까요?"

능숙한 진행. 역시 데레파의 진행자 답다. 하마터면 다크사이드로 빠질 뻔했던 토크를 아슬아슬하게 본궤도로 돌려놓은 리이나는 이번 사연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번 사연의 제보자는, 이럴수가! 첫사랑의 초상화를 이 곳에 두고 졸업 했었다고 해요! 오늘 저희는 그걸 찾기 위해 왔습니다!"

"에, 그랬어? 난 금시 초문인데??"

히카루가 당황하는 사이에 카메라가 회전. 리이나가 자연스럽게 손짓하면서 카메라를 이끌고 학교 방향으로 향한다. 그러면서도 카메라를 향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분량을 확보. 역시 리이나는 락 빼고 다 잘하는걸지도 모른다.

"그치만 사연에는 구체적으로 어디에 가져다 뒀는지 밝히질 않았네요. 저희는 지금부터 그걸 찾아 볼거에요! 자, 히나씨. 졸업자로서, 초상화가 있을만한 곳이 어디 있을까요?"

"아... 그게... 그림 동아리가 있긴 함다만..."

"함다만?"

"그게... 부실이 없음다. 그래서 미술실 빌려서 활동했었고... 아마 미술실에 없으면 없을거라고 생각함다."

"그럼-! 2층에 있는 미술실에 가 보도록 하죠!"

...2층? 바로 2층이라고 말했지? 히나는 리이나를 흘겨보았다.

"...어디 있는지도 알고 있었으면서 구태여 물어보는게 질이 나쁨다."

"뭐어, 뭐어. 진행해야 하니까요."

"근데 헤매는 시늉을 해야 분량이 나오지 않슴까?"

"괜...찮지 않을까요? 어차피 헤매는건 죄다 커트 당할거고."

잡담을 하는동안 어느샌가 미술실. 리이나는 짐짓 과장되게 손을 펼쳐보인다.

"자, 여기가 히나씨의 추억의 미술실! 어때요? 미술실에 돌아온 기분은?"

"음... 뭐랄까. 저는 여기서 죽어라 만화만 그렸던지라... 여기서 연애같은 리얼충 전개가 있었을거라고 생각하면 배가 아픔다..."

"아하하... 훌륭하게 아이돌 하고 있는 사람이 할 말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여튼! 갑작스레 돌입해 보겠습니다!"

리이나의 말과 함께 미술실의 문이 열린다. 말은 그렇게 해도 미술실 안에는 미리 준비하고 있는 사람이 있겠지. 묘하게 히나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 생각이 틀린건 아니었다.

"아하하하하! 왔군요!"

문을 열자마자 들리는 우렁찬 목소리. 뭔가 친숙한 목소리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일단 그게 중요한게 아니었다. 노란 문양의 가면을 쓴 세사람이 미술실 한가운데 우뚝 서서는 당당히 한 손에 돌돌말린 종이를 들고 있었으니까.
히카루의 직감이 좋지 않은 예감을 느낀 모양이다.

"그거 설마??"

"우리는 썸타는걸 방해하는 주거주거단! 과거의 썸이라곤 해도 예외가 될수 없다! 그러니, 이 사연속의 그림은 우리가 가져가마! 아하하하하!"

세명중 가장 큰 키의 갈색 단발의 소녀가 짐짓 과장되게 그렇게 외친다. 히나는 저절로 한숨이 튀어나오는걸 느껴야 했다. 물론 가면뒤의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세사람의 목소리는 충분히 친숙했다.
...애초에 알아 보기 힘들게 하고 싶었으면 최소한 헤어스타일은 고쳤어야 했다.

"...미오양임까?"

움찔. 아, 명백하게 움찔했음다.

"그, 그러니까! 에...그... 이 그, 그림, 아니 보물은 우리들이 훔쳐가겠어요!"

움찔하는 사이, 옆에 있던 느리둥실한 인상의...아니, 그냥 아이코가 안 어울리는 악당을 연기하면서 그런 말을 한다. 그리고 (아마도)아카네가 재빨리 나와서는 히카루와 히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오오옷! 갑니다아! 파이어어!"

"으아아아아?!"

애초에 숨길 생각도 없던 모양이다. 하여간 현역 럭비부(매니저)의 보디체크는 매서웠고, 히카루가 할 수 있는건 히나를 재빨리 밀쳐서 공격을 피하는것 뿐이었다. 갑작스러운 일이기도 해서 거하게 데굴데굴 구른다. 쿠당탕 소리를 내며 방의 한구석에 쳐박혀 버린다.

"끄으..."

히나가 신음소리를 내며 고개를 들어 보니 남는건 순식간에 비어있는 미술실. 휑하니 열려있는 뒷문. 그리고 소란스럽게 도망치는 소리.

"하..."

히카루의 허탈한 목소리를 들으며 히나는 반쯤 힐난을, 반쯤은 설명을 요구하는 시선을 리이나에게 향했다. 하지만 리이나는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을 뿐이었다.

"ㅈ, 잠깐?! PD님! 이런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

...아무래도 도움이 안될것 같다. 리이나는 잠시동안 PD와 이야기를 하더니만 무진장 난처하단 표정으로 돌아와서 쩔쩔매며 두사람에게 말했다.

"저... PD님이 그러시는데... 얼른 쫓아가서 그림 되찾지 않으면 방송 분량 없대요. 그, 그럼! 이 코너의 진짜 제목을 소개 하죠! '깜짝 카메라! 사연을 되찾아라!'"

히카루와 히나는 아주 잠깐 시선을 교환했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PD를 노려보며 외쳤다.

"빨리도 말하심다/시네요!"

 

PD 가라사대, 세개의 시련을 넘어야지 그림을 돌려 받을수 있고, 그 세 단계는 아이돌들이 엄중하게 지키고 있다고 한다.

"쩐다! 마치 악당 본거지 쳐들어가는거 같아!"

"저기 PD님! 저한테는 이런거 이야기 해 주셨어야죠!"

"하아... 대체 어쩌다..."

다른 둘은 모르겠지만 히나는 그저 한숨만 나왔다. 머리를 긁적이며 시큰둥한 표정으로 설명을 듣고 있을 뿐이었다.

"응? 히나 언니? 왜 그래?"

"아... 저, 히카루. 저희가 애초에 이걸 왜 조사 하기 시작했는가 하는 고민이 들기 시작해서..."

"응? 그 첫사랑 이야기 들으려고 지금 이러고 있는거잖아?"

"그랬슴다만, 이 시련이라는거 꼭 해야하나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해서..."

"그래도 말야, 나름 재밌을거 같지 않아? 겸사겸사 즐기자구!"

히카루의 눈이 반짝반짝거린다. 굉장히 파워풀한걸. 좀 과하게 파워풀해.

"으음... 저는 에너지 절약이 모토임다. 쓸데없이 중간 과정을 늘린건 반갑지 않슴다."

"에... 그치만 히나언니는 만화 그리잖아?이런거 직접 해 보면 좀 더 재밌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그래도 전 안 어울려서... 화려한 세계의 주민이 아니라구요. 저는 역시 그런걸 구경하는 쪽이 어울림다."

"...아이돌이 할 이야기는 아니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 어느샌가 시련이라는 곳에 도착 한 모양이었다. 제작진이 간단히 준비해놓은 무대에 쬐끄마한 가면의 소녀, 즉 아카네가 당당하게 서 있었다.

"잘 오셨습니다!!!"

예상은 했지만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린다.

"이곳으로 말할것 같으면 현재의 시련! 저에게서 열쇠를 빼앗으셔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자, 누가 나서시겠습니까?"

"...좀도둑 컨셉 아니었슴까?"

시련의 내용을 고민하기에 앞서, 히나의 태클. 아카네는 한점 스스럼 없이 대꾸했다.

"아닙니다! 저희는 원래 이런 컨셉이었습니다! 미오쨩이 대사 까먹어서 그랬을 뿐입니다!"

...당당하게 문제 소지가 있는 말을 하는건 그러려니 해 주기로 하자.

"자, 누가 나서시겠습니까, 모험가여! 악의 사천왕중 다섯번째인 제가 상대해 드리겠습니다!"

"엉망진창임다..."

히나는 더 이상 태클거는것을 포기하기로 했다. 태클 걸기에는 너무 멀리 왔다. 그런고로, 히카루가 호기롭게 나서는것도 신경 끄기로 했다.

"좋았어! 정의의 히어로 난죠 히카루가 상대해 주겠다!!"

"오옷! 오십쇼!!!"

"으우우. 이게 무슨 촌극임까..."

무대에서 쬐끄마한 애와 쬐끄마한 애가 한판 대결 하는걸 보면서 히나는 멍하니 생각했다. 참 기운 넘침다. 어디서 저런 기운이 나오는걸까요.
반면 아카네와 히카루는 어느샌가 이미 방송이라는것도 잊고 치고 받는 중이었다. 히나에게는 그 결투는 조금... 지나치게 열정적이었다. 히나는 스스로를 딱히 쿨하지고 귀엽지도 않다고 생각했지만-그렇기에 자신에게는 만화같은 이야기가 일어나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다- 저 둘에 비하면 200% 이상 쿨하다고 자신 할 수 있었다.

"하아... 하아... 제법이군요! 히카루!"

"하아... 하아... 악당에게 질 순 없지!"

"그렇다면, 히카루!"

"왜?"

"저에게 도전하는건 즐겁습니까?"

히카루는 달려드려던 태세를 취하다 말고 눈을 깜빡였다. 무슨 말을 하려는거지?

"응? 즐겁...긴 한데?왜?"

"그럼, 그걸로 됐음다! 자, 갑니다!"

"으, 응!"

아카네가 먼저 달려들고, 히카루가 맞받아친다. 손이 교차하고, 서로의 몸 균형을 따라 치열한 공방을 벌인다. 단련된 육체에서 오는 일체의 빈틈을 허용하지 않는 치열한 접전. 힘은 호각. 하지만 체격의 차이가 히카루의 열세를 만든다. 이번에도 허리춤에 달려 있는 열쇠를 강탈하긴 힘들 터였다.
아카네가 과하게 힘을 줘서 균형이 무너지지만 않았어도.
히카루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아카네의 몸의 균형을 틀어 버리고, 무방비인 아카네의 열쇠 꾸러미를 냅다 낚아채 버렸다.

"해냈다아!"

히카루가 기쁨을 온 몸으로 표현하며 열쇠를 휘휘 돌린다.

"오오오! 저의 공세를 세번만에 뚫어내다니! 히카루는 굉장합니다!"

"칭찬 고마워!"

"이 순간만은 히카루가 주인공이었습니다! 정말 뜨거웠습니다!"

"저- 다 끝났으면 가 봐도 됨까-?"

뜨거웠던건 뜨거웠던거고, 진행은 진행이다. 히나는 다소 시니컬한 느낌으로 중간에 딴지를 걸었다. 하지만 아카네는 무슨 생각인지 그런 야박한 태도를 보이는 히나에게 씨익 웃어 보였다.

"히나씨도 같이 빠이팅 넘치게 땀흘리는 청춘을 보내 보시는건 어떻슴까!! 뛰어들지 않으면 기회는 오지 않는 법입니다!!"

"됐음다. 저는 그런 화려한 세계의 주민도 아니고..."

"과연 그럴까요!"

"...에?"

의외의 말에 히나는 고개를 들어 아카네를 본다. 하지만 아카네의 표정은 여전히 티 없는 환한 웃음일 뿐이었다.

"자, 다음으로 가시죠!"

미소의 이유를 물어볼 틈따윈 없었다. 그 직후에 아카네가 일행을 웃으면서 떠밀었기에.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거냐고 질문하고 싶다가도, 저 환한 미소에 다은 의미가 있겠나 하는 생각이 드는 수준인 것이다.
관두자. 히나의 결론이었다.

"그럼, 저희는 가보겠슴다..."

"네! 만화 소재 잘 얻었으면 좋겠네요! 혹시 압니까! 히나양의 일상이 만화 소재가 될지!!"

...소재 얻는걸 방해하고 계셨음다만. 태클을 안 걸기로 했는데 태클이 목젖까지 기어오르는걸 느껴야 했다.
히나에게 돌아온 히카루는 반짝반짝하게 만면의 미소를 지으며 득의양양하게 열쇠를 들고 자신만만하게 떠들어대고 있었다.

"해냈어! 헤헤헤."

"흠... 그럼 가는동안 좀 자세히 말해주지 않겠음까?"

히나는 어디서났는지 메모장을 꺼내더니 히카루를 바라보았다.

"응? 계속 보고 있었잖아?"

"그게 말임다, 창작 하는데 참고 자료로 쓰려면 본인의 관점이나 감상 같은것도 꽤 중요해서 말임다..."

"알았어! 그럼! 잔뜩 이야기 해 줄게!"

히카루는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겠다는 히나가 꽤 반가운지 눈을 빛내며 말했다.

 

"...해서, 거기서 말야, 열쇠밖에 안 보이는거 있지!"

"흠흠. 그랬음까. 집중력의 차이..."

길을 걸어가는 중. 히나는 유심히 히카루의 말을 경청하며 일부를 메모하고 있었다. 아까의 시큰둥함과는 영 딴판인 모습이다. 리이나는 자기는 더 이상 진행자도 아니라는듯 설명같은건 요만큼도 안 하고 있다가 그런 히나에게 관심이 생겼다는듯 가볍게 말했다.

"근데, 히나는 특이하네?"

"네? 뭐가 말임까?"

"아니, 직접 나서는건 귀찮아하면서 조사하는건 굉장히 좋아한다 싶어서."

"그렇슴까?"

히나는 연필로 머리를 긁적이려다가 이래뵈도 메이크업 받은 모습이라는걸 자각하고 입맛만 다셨다. 대신 멋적게 입술을 삐죽거렸다.

"뭐, 직업병 같은검다. 만화의 주인공 같은 경험을 매번 할 수는 없는 거잖슴까. 그런 경험을 모으는건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런가?"

"이 일이 시작된것도 벚꽃 아래의 로맨틱한 첫사랑 이야기에 끌려서기도 하고... 저는 그런거랑은 인연이 먼 인생을 살았으니까요."

"그래도 벛꽃나무 아래에서 그림 그리는 히나는 꽤 록하지 않을까?"

"제가 친절하게 지금 리이나양의 말에 대한 직관적인 표현법은 안 붙이겠슴다만, 그거 어떻게 생각해도 록 아님다... 아, 도착했음다."

이번에도 잡담 하다 보니 무대에 도착했다.(슬슬 히나는 방송분량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역시나 도착한 곳에는 가면 쓴 의문의 소녀-라고 해봐야 뻔한-가 팔짱을 끼며 의기양양하게 서 있었다.

"아하하하하! 이곳으로 말할거 같으면 과거의 시련! 이 몸으로 말할것 같으면, 과거의 여신!, 울ㄷ..."

"울드 그거 어제 미쿠가 가르쳐준거잖아! 벌써 써먹냐!"

"읏, 리-나! 치사하게!"

"내 앞에서 폼 잡고 무사할줄 알았어?"

"...두고보자, 나중에 락밴드 얼마나 알고 있는지 시험 칠거야!"

"앗, 미오! 너도 치사하게!"

"메롱. 시작한건 리-나지롱."

"저기- 슬슬 시작하시면 안됨까?"

친구 싸움으로 번지려던걸 히나가 막았다. 두사람은 히나의 얼굴을 잠깐 보더니 부끄러운지 서로 외면하고 헛기침을 했다. 그 모습을 보고 히나는 확신할수 있었다. 이건 제 때 막은거다.

"...흠흠! 하여간! 이 곳은 과거의 시련! 사람은 과거와 마주하지 않으면 안돼! 한 명이 나와서 과거에 있던 자신의 부끄러웠던 일을 말하거라! 그것이 이 곳의 시련!"

"""...하?"""

하지만 미오의 말에는 다같이 고개를 갸웃 할수밖에 없었다. 스스로도 어처구니 없는 소릴 했단건 아는지, 미오가 씨익 웃으면서 첨언을 한다.

"당연히, 채점은 내가!"

남한테 이런거 시켜놓고 본인이 당당하단 점이 참으로 얄밉기 그지 없다.

"현재, 과거... 다음은 미래도 있을검다. 예상은 했지만 참 일 귀찮게 만듬다."

히나는 살짝 찡그리며 목 뒤를 긁적거렸다. 명백한 투덜거림. 하지만 리이나도 당황스러운건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힐끔. 힐끔. 눈알 돌아가는 소리가 들릴것 같다. 열심히 두사람은 눈치를 보더니만 슬쩍 입을 열었다.

"그, 근데... 누가 할거야? 부끄러운 기억 말해야 하는데..."

"저... 암만 그래도 그건 좀..."

"대체 무슨 의도인지 모르겠음다..."

"으으..."

서로 눈치보기를 수차례. 마치 조별과제라도 되는듯 서로에게 미루고 싶어하는 마음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던 세사람은 급기야 옆구리를 맹렬하게 찔러대기 시작했다.

"앗, 아야! 그만 찌르십쇼! 히카루! 그건 치사함다!"

"그, 그치만 나도 말하기 싫은건 있거든! 리이나! 밀지 마!"

"히, 히어로면 자기 흑역사에도 당당해져야..."

아웅스다웅스. 중요한 것을 서로에게 양보하는 훈훈한 현장이 아닐수 없다. 그 모습을 훈훈하게도 지켜보던 미오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잠시 고민 하더니 짐짓 큰 소리로 외쳤다.

"그렇다면! 내가 시련을 할 자를 지정해 주겠다!! 자... 거기! 락을 잘 모를거 같은 소녀여! 무대로 나와 시련에 맞서거라!"

"누가 락 모를거 같다는거야!"

리이나의 반발에 미오는 한 3초간 빤히 리이나의 얼굴을 보고 있더니만, 나지막하게 리이나에게 질문했다.

"...Tears in heaven을 부른 밴드는?"

"어... 레드 제플린?"

"...그렇잖아? 그러니까 희생좀 해 줘. 리-나."

"왜 하필 나? 아니, 그 이전에 그렇잖아는 무슨 뜻이야?"

"음... 그런 경험이 두사람에 비해 많을거 같아서? 그리고, 레드 제플린은 Stairway to heaven. Tears in heaven은 에릭 크랩튼이래. 미쿠가 리-나가 이것도 모른다고 투덜거리는거 분명히 들었거든."

"으, 으윽... 미오 너 나중에 두고 보자..."

"네, 네. 얼른 끝내자구."

리이나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체념한건지 무대에 올랐다.

"그럼... 아아. 이건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인데 말야..."

리이나는 잠깐 힐끔 히나와 히카루를 쳐다보더니 입을 삐죽였다. 막상 말을 시작하자니 어지간히 억울했던 모양이다. 그래도 별수 없다는듯 눈을 꾹 감았다 뜨더니, 주저없이 말을 이어 나갔다.

"그... 내가 나츠키치랑 약속했던적이 있거든. 일주일 내에 자작곡 만들어 가서 기타 치며 불러보기로."

"응? 대체 왜?"

"어, 어쩌다 보니까 나도 그정도는 할 수 있다고 말해 버려서... 근데... 솔직히 할 줄 모르거든. 나."

"그야 그렇지."

"...으윽. 너 진짜 두고 봐."

"하여간?"

"그래도 말 해놓고 무를수는 없으니까 한참동안 고민하다가 은근슬쩍 남 이야기인양 안즈한테 물어 봤어. 그러니까 안즈가 이렇게 말하더라고. '혹시 모르지. 아무리 아는게 적어도 일주일 내내 락 음악을 끼고 살다 보면 좋은게 나올지도.'"

"헤에. 의외로 그 안즈가 성실한 답변을..."

"하여간 발등에 불이 떨어졌으니까 일주일동안 인터넷 엄청 찾아가고 해서 좋은 멜로디를 찾고, 이것저것 따오고, 가사를 붙이고... 그랬어. 내가 봐도 썩 괜찮더라구. 아 이정도면 나츠키치한테 보여줘도 되겠다 싶어서 당당히 나츠키치한테 가서 연주했지. 그런데..."

"그런데?"

말하면서도 추임새 넣는 미오가 미운지 리이나는 잠깐 눈을 흘겼다. 그리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나츠키치가 웃더라."

"웃...어? 그거 좋은거 아냐?"

"아냐... 전혀 좋지 않았어... 나츠키치가 갑자기 기타를 줘 보라 하더니 이러더라고. '자, 봐. 다리. 내가 지금부터 네가 따온 노래들을 하나 하나 불러줄게.'
그리고 연속으로 내가 하루종일 들었던 곡을 하나 하나 연주 하면서 부르는거야! 민망하게 시리!"

"에."

"그리고는 친절하게도 따올때는 변주를 줘야 하는 법이라고... 으아아악! 그만 말할래!"

어지간히 부끄러웠는지 리이나는 얼굴을 가리고 손사래를 쳤다.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 자, 합격이야, 불합격이야?"

"으, 으음... 합격. 아, 아니! 소녀여! 합격이다! 이 열쇠를 받거라!"

리이나는 미오가 내민 열쇠를 냅다 낚아채고는 좀 토라진듯한 표정을 한채 서둘러 히카루와 히나가 있는 곳까지 돌아왔다. 그리고 뺨 한쪽을 부풀린채 열쇠를 들어 여보란듯이 보여줬다.

"...자, 얼른 가자."

"으, 으응."/"그, 그러는게 좋겠음다."

"자, 자, 세 사람 얼른 가시라. 미오쨩은 이거만 하면 그 뒤로 촬영 끝이지롱."

"부러운 소릴 하네..."

"아, 그런데 말야 리-나."

"응? 왜 그래 미오."

"나츠키치에게 지적만 당했어? 그건 아닐거 같은데."

리이나가 순간 움찔했다.

"그... 저, 그러니까. 칭찬도... 해 줬어. 그래도 코드 진행 같은건 이해하고 있다고. 그리고 같이 곡 하나 만들어 보자고..."

"그치?나츠키치가 그렇게 야박한 타입은 아니고."

"그니까, 해서 좋았지?"

"해서 조...좋..."

미오는 더듬거리는 리이나를 보고 가면으로도 다 가리지 못하는 만면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누가 봐도 친구사이다. 응.

"ㅂ, 별로 상관 없는 일이잖아. 자, 가자."

"잘가아- 나는 이제 잘거야아-"

미오의 배웅을 받으며 세사람은 마지막 장소로 향했다.
따뜻한 봄 햇살은 그들에게도 나른함을 선사해주고 있다. 히나는 진작에 제작진에게서 받았던 지도를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가볍게 하품을 하더니 투덜거린다.

"하암... 뭐 이렇게 학교 안을 죄다 누비도록 만든건지 모르겠음다. 보물을 되찾기 위한 모험의 플롯을 차용해 왔다는건 알겠지만..."

"뭐... 학교 내부를 카메라에 좀 더 많이 담아야 하기도 하고..."

"그리고, 이러는 편이 분위기가 살잖아?"

분위기?히나는 순간적으로 입을 삐죽거렸다.

"그러기엔 좀 너무 허술하지 않슴까? 대사는 앞뒤가 안 맞고, 왜 갑자기 그림이 보물 취급 받는건지도 모르겠고, 세명이 같이 쓰고있는 포지패 가면은 대체 뭠까?그 그림이 그렇게 대단한 보물로서 연출하기에 어울리는 물건인지는..."

"워, 워우. 진정해 히나."

"그치만 그 시련이라는것도 대체 무슨 목적인건지 모르겠음다. 그게 그 그림하고 뭔 상관임까. 사람의 부끄러운 이야기를 하게 강요하는건 무슨 수치플레이도 아니고... 리이나씨도 불만일거 아님까."

"저, 그... 너무 나쁘게 생각하는거 같은데. 나는 정말 괜찮아.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름 재밌었고..."

"흠... 그렇슴까? 근데 저는 그게 재밌다는게 별로 이해가 안감다."

"그게 말야... 그래. 히나는 만화 그리니까 만화에 비유해서 이야기 해 볼게. 신나게 망신당했지만서도, 나츠키치랑 그러고 있을때는 즐거웠거든. 배운것도 많고. 마치 만화속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어. 그래서 말해도 괜찮았고..."

"응! 응! 리이나 말 처럼 직접 해보면 의외로 즐거운것도 많아! 나도 아까 열쇠 낚아 챌때 막 시련을 넘는 주인공같은 기분이었어!"

"헤에. 그렇슴까..."

"응? 히나는 주인공 되어보고 싶지 않아? 잠깐이라도!"

"그... 마음이 없는건 아닌데, 주인공이라는게 그리 쉽게 되는게 아니잖슴까. 저는 이정도가 딱 좋슴다."

"그럴래나?"

히나의 말에 리이나는 애매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히카루는 고개를 갸웃하는 대신 초롱초롱한 눈으로 히나를 보면서 말했다.

"그치만 그치만! 주인공이 되면 기쁘겠지? 상상은 해 봐도 되지 않을까?"

"음... 그래도 전 에너지를 절약하고 싶슴다만... 아, 도착했으니 빨리 끝내죠."

"모험가들이여, 잘 오셨습니다."

마지막은 역시나 아이코였다. 운동장 한복판에 세워진 무대. 거기에 있는 커다란 문. 그리고 그 옆에서 앉아서는 정체 불명의 막대기를 든 채 나름 폼을 잡고 있는 아이코. 그러니까.. 트럼프 카드의 여왕님?

"저기... 진짜 많은거 안 바라고 컨셉은 통일해 주면 안됨까... 왜 사람마다 컨셉이 다 다른검까..."

슬슬 태클 걸기도 지친다. 히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모험가들의 시련은 전부 지켜 보았습니다. 이곳은 미래의 시련. 미래에 대한 각오가 되어 있는자가 이 곳을 넘어설수 있습니다."

"미래... 그럴줄 알았슴다."

"그럼... 아라키 히나. 열쇠를 들고 앞으로 나오세요."

"하아... 어, 아?! 뭐, 뭠까?!"

그냥 적당히 넘기려던 히나에게 넘겨들을수 없는 말이 들려왔다. 나오...라고?

"제가 지켜 봤다고 하지 않았나요? 지켜본 결과, 히나씨가 가장 방송분...아니, 각오가 부족해 보였습니다. 그것이 이 시련에 제가 히나씨를 선택한 이유에요."

"하아... 알겠슴다."

뭔가 반박을 하고 싶었지만 방송분량은 중대문제다. 어쨌거나 히나는 아이돌이고, 아이돌은 프로. 1초라도 방송 분량을 챙겨야 하는 입장이다. 성실하게 하자.
그런데 왜 이렇게 의욕이 안 날까. 역시 소재 조사에서 여기까지 진행되어버렸다는 그 사실 자체 때문일까. 아니면 별로 활동적이지 않은 히나 본인의 성격 때문일까.
잘은 모르겠지만 히나는 히카루와 리이나에게서 열쇠를 받고 무대에 올랐다.

"자, 그 열쇠로 문을 여시면 됩니다. 그것이, 미래의 시련."

"에... 그게 끝임까?"

"네. 하지만 그 안에는 당신을 깜짝 놀라게 할 물건이 들어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문을 열수 있을까요?"

"..."

히나는 문을 돌아봤다. 새삼 그 말을 듣고 보니 문의 육중함이 다르게 보였다. 어차피 무대긴 하지만 육중하게 잠겨 있는, 히나의 키보다 훨씬 큰 문이 어딘가 무서워 보인다. 침을 꼴깍 삼키고 문에 손을 가져다 댔다.

"저, 이, 이 안에는 뭐가 있는검까?"

"비.이.밀."

"그럼... 이 문만 열면 그림을 돌려 주시는검까?"

"그럼요. 후훗. 아, 다만."

"다만?"

"감독님이 히나씨가 직접 사연의 주인공에게 그림을 가져다 주시길 바라시더군요."

"그렇슴까? 음... 알겠음다. 그 정도야."

히나는 열쇠를 든 채 빤히 바라보았다. 깜놀같은건 싫다. 하지만 방송이란게 다 그런것 아니겠나. 눈 딱 감고, 소재 수집의 일환이라고 생각하면서 한번 놀라고 마는게 좋지 싶다.
빠르게 두개의 자물쇠를 따고, 문고리에 손을 올려 둔다. 숨을 고르고, 눈을 딱 감는다.
하나, 둘.
눈을 감은채 홱 하고 단숨에 연다. 온 몸의 촉각을 곤두세우고, 닥쳐올 미래를 기다린다.
...
...
...어라?

"아무일... 없음까?"

히나는 실눈을 뜨고 힐끔 문 안을 보았다. 아무것도 없다. 그냥 둘둘 말린 도화지 한장만 있을 뿐. 그리고 아마 그 도화지는...

"어... 저거 우리가 찾던 그림 아님까?"

얼떨떨한 기분에 고개를 돌려 보자 아이코는 말 없이 미소를 지어 보이고 있을 뿐이었다. 히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뭠까. 괜히 겁준검까. 이야기나 빨리 끝내자는 느낌으로 히나는 도화지를 집어 조심스럽게 폈다. 이 이야기의 히로인이 누군지 보자 이검다.
과연. 그 안에는 사연 속의 첫사랑이 그려져 있었다.
살짝 곱슬 느낌 나는 갈색의 세미 롱 헤어는 얼핏 수수한듯 하지만 귀엽다. 맵시있게 입은 학교 교복은 대단히 몸매를 도드라지게 보이게 하진 않았지만 그녀의 소녀심을 주장하고 있는듯 했고, 하늘을 보고 있는 고등학생이라고는 믿기지 않게 귀여운 소녀의 얼굴에는 안경이 살포시 올라가 있다. 그리고 손에는 그림 그리는 중인 연습장이.
영락없는 히나 였다.

"에..."

"자, 다시 소개 하겠습니다. 오늘의 주인공! 아라키 히나입니다!"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리이나의 힘찬 목소리가 들렸다. 시끄러운 음악소리가 울려퍼지더니, 무대 뒤의 전광판에 대문짝만하게 도화지의 그림이 띄워진다. 여태까지 어딨다가 이제야 나온건지 갑자기 학생들이 무대 주위에 우르르 몰려들고, 가면을 벗은 포지패 세사람이 음악에 맞춰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자, 잠깐...?"

"그럼, 사연의 주인공! 여기로 올라와 주세요!"

말쑥하게 양복 차려입은 남자가 무대로 올라온다. 훤칠한 키의 남자는 히카루가 들고 있던 꽃다발을 받고는 만면의 미소를 지은 채 히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이, 이게 뭠까!!"

아직도 상황을 덜 파악한 히나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신데렐라 파티 특집 깜짝 카메라, 아라키 히나편 대성공!"

 

"...해서, 그 사연을 보고는 자신에게 냉소적인 히나를 좀 바꿔보자고 깜짝 카메라를 하는것이 프로듀서의 기획이었어."

"흐응... 그렇구나..."

다음날. 미오와 히카루는 어제의 일을 이야기 나누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말야, 히카룽이 사람 속이는 일에 동참할 줄은 몰랐어. 솔직히 조금 놀랐네."

"그게... 저번에 프로듀서 덕에 특촬물 촬영 현장을 가 본적 있었거든? 거기 분들이 가짜 이야기긴 해도 나같은 애의 꿈을 위해 최선을 다해 연기하고 있더라구. 그 정신을 배우기로 했어. 히나가 꿈을 꿀수 있다면... 해서."

"오, 히카룽 장하네-"

"장하다니... 나 미오랑 한살 차이라구."

"그런가... 그런데 히카루,"

"응?"

미오는 잠깐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다. 뒤에서는 히나가 열심히 두 사람을 쫓아오고 있었다. 두사람에 대한 분노와 체력 부족이 겹쳐서 거의 울것 같다.

"하아, 거기, 하아, 잡히면, 하아, 하아, 가만..."

"...그 의도를 히나쌤이 기뻐했다고 말하긴 힘들것 같지?"

"...그러게."

"일단 히나쌤이 진정할때까진 따로 도망치고, 나중에 볼까?"

"...그럴까?"

"두 분 다 가만히 안둠다-! 날 속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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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그럴싸한 소재를 가지고 있죠. 첫머리를 쓰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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