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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도 없는

댓글: 2 / 조회: 856 / 추천: 4



본문 - 06-17, 2017 03:42에 작성됨.

"유키호 쨩."
 
아즈사 씨가 나를 부를 때는 조금 낮은 목소리다. 가끔은 귀에 속삭이듯이 부르기도 했다. 아즈사 씨와 만날 때는 으레 사무실 소파에서 책을 읽고 있거나 아니면 케이크를 먹고 있을 때였는데 그럴 때마다 아즈사 씨는 "어머나, 기분 좋은 우연이네."라 하면서 옆자리나 앞자리에 앉는다. 그리고 읽고 있는 책에 관해서 묻거나 이 케이크를 사 온 경로에 대해서 말한다. 오늘은 레몬 캐러멜 시럽을 얹은 치즈케이크에 대한 이야기였다. 새콤한 맛이 치즈의 은근한 느끼함을 잡아 줘서 맛있다고 한다. 홍차와 같이 마시면 좋을 것 같다고. 담소를 나누며 들이켠 홍차는 조금 신 맛이 났다. 아무래도 로스팅을 오래 한 커피와 더 어울릴 것 같은데.
 
"어디서 사셨나요?"
"어딘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케이크가 엄청 맛있는 카페였어."
"그건 마치 어디에도 없는 카페 같은 느낌이네요."
"어디에도 없는?"
"헤매야만 도달할 수 있는 장소라던가?"
"후훗, 재미있는 말이네."
"그런가요..."
"유키호 쨩."
"네?"
 
다시 그 낮은 목소리. 타이르는 것 같기도 하고 조르는 것 같기도 하고, 무언가 원하는 것 같기도 했다. 소리를 쪼개어 생각하는 건 치하야의 영역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아즈사 씨에 대한 심상들은 그러했다. 아무 데도 없는 카페에서 사 온 치즈케이크에서는 샛노란 단맛이 났다.
 
"어디에도 없는 카페는 어떤 카페일까나?"
"글쎄요. 저한테 물어보셔도..."
"유키호 쨩이랑 같이 헤매면 다른 곳에 도달할까?"
"아즈사 씨의 방향감각이랑 제 방향감각이 다를 테니, 그럴 지도요?"
"길이란 건 어렵네."
"그렇네요."
 
아즈사 씨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턱을 괴고 몸을 내 쪽으로 기울였다. 레몬 시럽과 비슷한 향기가 풍겼다.
 
"어디에도 없는 카페에 가고 싶네. 유키호 쨩이랑."
"그건 같이 헤매고 싶다는 말로 받아들여도 될까요?"
"응."
 
생긋 웃는 아즈사 씨의 표정 뒤로 어느 남자의 모습도 같이 잡힌다. 고개를 들어서 보니 프로듀서다.
 
"내가 두 사람 사이를 방해했으려나?"
"아뇨. 프로듀서님. 어서 오세요."
"여기 앉으시겠어요, 프로듀서?"
 
내 옆자리를 톡톡 두드린다. 프로듀서가 옆에 앉자 소파가 따뜻하게 출렁였다. 프로듀서는 앉아서 포크를 집어 들더니 치즈케이크를 잘라서 입에 넣었다. 프로듀서가 나한테 말할 때는 언제나처럼 조금 상냥한 목소리다. 다른 아이돌을 대할 때도 똑같은 목소리인 걸 보면 업무용 톤일지도 몰랐다.
 
"맛있네. 어디서 사 온 거야?"
"아즈사 씨가 어디에도 없는 카페에서 사 오신 거예요."
"어디에도 없는 카페?"
"제가 헤매다가 발견한 곳이거든요.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고, 다시 가려고 해도 못 갈 것 같아서..."
"재밌는 표현을 쓰시네요. 어디에도 없는 카페라. 저도 가고 싶은데요?"
"프로듀서님도 같이 가신다면 환영이에요♪"
"프로듀서. 차 드시겠어요?"
"커피로 할게. 있어?"
"네. 있어요. 금방 내려서 올게요."
 
일어나서 탕비실로 총총 간다. 찬장에서 노란색 원두 봉지를 꺼내서 그라인더에 두 숟가락을 퍼넣은 다음, 이십 초 정도 갈고 나서 커피 메이커에 필터와 간 원두를 넣는다. 이윽고 커피메이커에서 냄새가 퍼지기 시작한다.
 
"냄새 좋은데?"
"그렇죠? 아버지 친구분이 주신 거래요."
"유키호가 커피까지 잘 타다니 점점 완벽해지는데?"
"완벽까진 아니에요. 아직 지식도 부족하고..."
"그런데 아즈사 씨, 오늘은 헤맨 거치고는 일찍 출근하셨네요?"
 
아즈사 씨와 프로듀서가 마주보고 있다. 프로듀서는 아즈사 씨에게 말할 때는 목에 울림을 가득 주고 말씀하신다. 아즈사 씨가 프로듀서를 부를 때는 조금은 높고 좀 더 공기가 많이 들어가 있다. 마치 팬에게 노래해 주듯이 프로듀서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케이크를 사 들고 있어서 그런 걸까나요? 빨리 유키호 쨩한테 보여 주고 싶어서..."
"유키호를 참 좋아하시나 보네요."
"그렇게 보이나요?"
"언제나 케이크나 간식을 사면 차랑 잘 어울릴 것 같다면서 유키호를 언급하시니까요."
"후훗, 유키호 쨩이랑 있으면 언제나 맛있는 차를 마실 수 있으니까요."
 
커피 메이커의 물줄기가 약해지더니 이내 커피가 방울져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물통에 커피 한 잔 분량만 넣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커피가 빨리 내렸다. 커피잔을 들고 프로듀서한테로 갔다.
 
"제가 알기론 오늘 일이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예의상 물어보시는 거죠 프로듀서님? 전 언제나 여기가 편하답니다."
"그건 제가 있어서 그런가요, 아니면 유키호가 있어서 그런가요?"
"짓궂으시긴. 둘 다예요."
 
커피잔을 내려놓는 손이 조금 떨렸지만 아즈사 씨는 언제나처럼 애매하게 답했다. 나는 다시 프로듀서 옆에 앉았다.
 
"고마워."
"네, 프로듀서."
"오늘 케이크를 먹었으니까 내일은 유키호 쨩이랑 프로듀서님이랑, 같이 헤매 볼까?"
"제가 아즈사 씨랑 프로듀서랑요?"
"응. 어쩌면 유키호 쨩이 말한 어디에도 없는 카페를 또 찾을 수 있을지도."
"괜찮으신가요 프로듀서?"
"나? 별일 없으면 아마 오후 일정 비어 있을 거 같은데..."
"저도 오후에는 일정 없는데 가요. 프로듀서를 따라가 보죠."
"그럼 난 아즈사 씨를 따라가고."
"전 유키호 쨩을 따라가는 걸까나요?"
 
치즈케이크는 어느 새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난 한 조각을 잘라서 입에 넣었다. 레몬 시럽이 없는 치즈케이크에선 살짝 느끼한 단맛이 났다.
 
 
 
아즈사 씨의 집은 걸어서 회사에 출근할 수 있을 만큼 회사에서 가까웠다. 점심시간이 지난 도심은 햇볕만이 가득 차 있었고 사람들의 옷들도 부쩍 얇아져 있었다. 나도 오늘은 조금 기분을 내서 하얀 반소매 원피스를 골랐다.
 
"슬슬 더워지고 있네요."
"그러네. 영업 다니는 회사들도 슬슬 쿨비즈를 하는 것 같고 말야."
 
프로듀서는 매일 입는 양복이 아닌 하늘색 반소매 와이셔츠에 베이지색 바지를 입고 오셨다. 
 
"에어컨을 틀 때가 됐나 봐요."
"안 그래도 슬슬 대청소를 할까 싶었는데, 에어컨도 한 번 손을 봐야겠네."
"에어컨도 손볼 줄 아시나요?"
"아하하... 아주 조금은. 작년에 입사하자마자 에어컨이 고장 나서 그때 수리법을 살짝 익혔어."
"대단하시네요."
"뭘. 별로 어려운 건 아니었어."
"저는 그런 기계를 만지는 건 못 해서..."
"아즈사 씨는 아직이려나?"
"그러게요. 혹시 모르니까 집 앞에서 모이기로 했는데..."
"유키호 쨩!"
 
뒤를 돌아보니 아즈사 씨는 아파트 담을 돌아서 종종걸음으로 오고 있었다.
 
"...어디로 나오신 거예요?"
"집 밖으로 나왔더니 갑자기 다른 출구로 가 버렸어."
"우와..."
"밀짚모자랑 블라우스 잘 어울려요. 아즈사 씨."
"감사합니다 프로듀서님. 유키호 쨩, 원피스 잘 어울리는걸?"
"그런가요? 헤헤, 감사합니다."
"그럼 어떻게 헤맬까요?"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실 어디에도 헤맬 곳은 없었다. 아즈사 씨는 말도 없이 걸어나갔다. 그리고 골목길 사이로 빠져나가기 직전인 걸 프로듀서가 붙잡았다.
 
"조금만 눈을 떼면 이러신다니깐요."
"어머나. 죄송합니다."
"아즈사 씨가 앞서가면 제가 따라가고..."
"제가 프로듀서를 따라갈게요."
"그럼 출발할게~"
 
느닷없이 아즈사 씨는 또 걸어나갔고 프로듀서가 그 뒤를 따랐다. 이어 아즈사 씨는 횡단보도를 가기 직전에 건물 사이에 있는 조그마한 골목으로 들어갔다. 으레 골목에는 더운 바람을 뿜어내는 실외기들이 늘어서 있기 마련인데 실외기는 보이지 않고 시원한 바람이 건물 사이로 휭휭 불고 있었다.
 
 
 
나조차 방향감각을 가끔 잃을 만큼 알 수 없는 방향전환의 연속이었다. 아즈사 씨는 걸음이 빠른 편이 아니었던지라 프로듀서는 아즈사 씨의 뒤에서 발을 맞춰 걷고 있었다. 아즈사 씨는 가끔 나를 불렀다. 콘크리트 색 풍경들에 갇혀 있던 나는 문득 정신을 차린다. 여전히 낮고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였다. 
 
"유키호 쨩."
"네?"
"여기, 고양이 한 마리가 있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도심 어딘가의 공원이었다. 프로듀서는 쭈그려 앉은 아즈사 씨한테 뛰어갔다.
 
"정말이네요."
"어쩌다 보니 공원에 와 있네. 여긴 어딜까?"
 
지도 앱을 켜고 싶다가도 그러고 싶지 않았다. 한창 업무 시간이어서 그런지 공원에는 회색 줄무늬 고양이 한 마리를 제외하면 아무도 없었다. 마치 프로듀서와 아즈사 씨만 있는 어딘가로 헤매어 도착한 기분이었다.
 
"꼭 유키호랑 프로듀서님만 있는 세계 같네."
"재미있는 말이네요."
"후훗, 아즈사 씨도 시에 재능이 있으신 건가요?"
"그럴까나? 나도 작사를 한번 해 봐야 할까?"
"다음에 곡을 받을 때 고려해 보겠습니다. 하하."
"난 유키호 쨩이 쓴 가사가 보고 싶은걸."
"아직 안 돼요..."
 
아직 그런 건 무리다. 조금 더 관찰해야 하고 조금 더 심상에 젖어야 한다. 예컨대 프로듀서의 목소리를 좀 더 자세히 뜯어본다든지, 헤맴을 구성하는 것들을 샅샅이 뒤져 본다던가. 아니면 어디에도 없는 카페에서 사 온 치즈케이크를 프로듀서와 함께 먹으면서 헤매다가 찾아낸 맛에 대해 생각을 할 수도 있었다. 사실 시를 핑계로 프로듀서를 생각하려는 것에 가까웠다. 마음은 시가 되고 시는 마음이 되니까.
 
주변에는 여전히 빌딩들이 서 있었다. 프로듀서는 조심스럽게 고양이의 머리에 손을 뻗었다. 고양이는 다행히 프로듀서의 손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노래하는 듯한 목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프로듀서님. 저 고양이 간식 사러 갈게요."
"아즈사 씨. 혼자 가시면..."
 
프로듀서는 황급히 아즈사 씨의 뒤를 쫓았지만 이내 다시 공원으로 돌아왔다. 아즈사 씨는 이미 건물을 돌아 사라진 뒤였다. 둘은 한숨을 크게 쉬었다.
 
"결국 쫓아가지 못했네요."
"그러네. 아즈사 씨가 있어야 제대로 헤매는 건데."
"뭔가 평범한 사람은 갈 수 없는 데가 있는 느낌이죠."
"이게 아니지! 어서 아즈사 씨를 찾아야 하는데!"
 
딱히 아즈사 씨를 뒤쫓고 싶지 않았다. 햇볕이 무척 따뜻했고 그 아래엔 프로듀서와 나뿐이었다. 이대로 같이 헤매어서 아즈사 씨도 프로듀서도 찾을 수 없는 곳으로 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럼 같이 찾으러 가 볼까요?"
"그래그래."
 
프로듀서는 유난히 마음이 급해 보였다. 프로듀서가 왜 그러시는지 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분명 사무실의 칠판엔 오늘 오후에 프로듀서의 일정이 있었을 텐데 굳이 빼먹고 아즈사 씨와 같이 나온 이유라던가, 어제 사무실이나 오늘 나와서나 프로듀서가 했던 말들의 방향성이라던가. 심상 속에 그 이유에 대한 고민을 더 숨길 필요가 있었다. 벌써 일상어들이 나오기 시작하지만 머리를 짜내어야 한다.
 
"일단 아즈사 씨에게 전화를..."
 
프로듀서의 팔을 잡았다. 내 팔을 뿌리칠 리는 없었으니 프로듀서는 그곳에서 팔을 멈추었다. 난 말 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알았어."
 
프로듀서는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고 아무 방향으로나 걷기 시작했다. 조금만 거리에 나가도 차들이 가득하니 소리쳐서 아즈사 씨를 불러도 들을 리가 없었다. 아즈사 씨라면 지금쯤 사이타마까지 가시지 않았을까. 프로듀서가 인도 바깥쪽, 내가 안쪽. 자연스러운 구도였지만 괜스레 가슴이 뛰었다.
 
"아즈사 씨는 어떻게 되신 걸까요?"
"글쎄. 또 어딘가를 헤매다가 정말 알 수 없는 곳에서 나한테 연락하겠지. 어디인지 모르겠다면서 말야."
"아즈사 씨는 어쩌면 저희만 모르는 곳을 몰래 여행하시다 오는 건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겠네. 케이크도 그런 데서 사 오는 게 아닐까?"
"하지만 도쿄는 그러기엔 아즈사 씨한테 너무 작을지도 모르겠네요."
"유키호한테는 다른 이론이 있는 거야?"
 
아즈사 씨가 그러하듯이 프로듀서는 느긋한 걸음으로 이따금 대담하게 방향을 꺾었다. 하지만 아즈사 씨에게 필적하기엔 멀었다. 빌딩 사이사이에 있는 골목은 실외기가 뿜어내는 더운 공기로 가득했다.
 
"어제 사무실에서 얘기한 그대로예요. 헤매야만 도달하는 장소 같은 거요."
"좀 더 들을 수 있을까?"
"헤맨다는 건 어떤 목적지가 있는데 그곳으로 제대로 찾아가지 못한다는 뜻이잖아요."
"유키호다운데."
"하지만 어디에도 없는 곳이 목적지라면... 그거까진 생각을 못 해봤네요."
"시간 많아. 고민해 봐."
"음... 그러니까..."
 
자동차들이 지나가며 둔탁한 바람을 일으켰다. 여전히 거리에 사람은 없었다. 아마 도심 쪽으로 더 들어가면 사람이 나올지도 몰랐지만 아주 사람이 없는 세상으로 와 버린 듯한 느낌은 지울 수가 없었다. 물론 사무실 안을 들여다보면 종이컵을 들고 거리를 내려다보는 사람들이 보일 터이지만, 그리고 바로 옆에 있는 옷가게에서 계산대를 보고 있는 또래 여자아이를 볼 수 있을 터이지만, 중요한 건 프로듀서와 나뿐이라는 그 감각이었다.
 
"다른 공간을 걷는다고 생각해요. 목적지가 분명히 존재하지만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정해지지 않은 길만 가다 보면, 정해진 길들이 존재하는 공간과는 다른 특성이 되는 거죠."
"어렵네."
"으으... 뭔가... 어려운 말만 하는 저는 구멍을..."
"아냐아냐. 같이 고민해 보자. 무슨 말일까?"
 
이야기와 프로듀서에 집중하기에도 바빴다. 빌딩과 자동차들은 계속해서 같은 패턴으로 지나갔고 정해진 길들의 존재는 희미해졌다. 그저 오후이고, 그저 사람이 좀 적을 뿐인 거리였지만. 케이크를 먹고 싶다고 생각할까. 아즈사 씨를 찾고 싶다고 생각할까. 프로듀서랑 같이 걷고 싶다고 생각할까. 프로듀서는 방향을 다시 크게 틀었다. 나도, 프로듀서도, 아즈사 씨도 방향이 달랐다.
 
"같은 공간이 계속 말려들어서... 어디라고 특정할 수 없는 거라고 해야 할까요. 마치 빙글빙글 돌고 있는 지금의 저희처럼 어디인지도 모르고 어디인지 알고 싶지도 않은... 그러면서도 무언가를 찾고 있는 거요. 그런 저희가 걷는 공간이 평범한 공간은 아닌 거 같아요. 아즈사 씨를 찾으려면 그렇게 찾아야 할지도 몰라요."
"잘 정돈된 농담이네."
 
프로듀서는 나를 보았다. 그제야 나는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다. 똑같아 보이는 풍경이었지만 그곳엔 프로듀서가 있었고...
 
"프로듀서! 저기! 저기!"
 
...아즈사 씨가 있었다. 빌딩 틈에 무슨 수로 제과점을 냈는지는 모르겠지만 작은 제과점 간판 하나가 걸려 있었고 그 아래에서 아즈사 씨가 진열장 안을 들여다보고 계셨다. 프로듀서는 한달음에 뛰어갔다. 역시 그랬다.
 
"아즈사 씨!"
"어머, 유키호 쨩. 프로듀서님."
"찾았잖아요."
"굳이 찾지 않으셔도 여기서 만날 거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아즈사 씨도 비슷한 생각을 걸으면서 한 걸까?
 
"여긴 어딘가요?"
 
내가 묻자 우린 그제야 휴대전화를 꺼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모두 거짓말처럼 전원이 꺼져 있었다. 꺼진 화면을 보자마자 아즈사 씨가 웃음을 터뜨렸다.
 
"우후후, 어디인지 알 수 없다는 걸까나."
"그러네요.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지 우리도 알 수 없고요."
"그럼 들어갈까? 여기 케이크 엄청 맛있어 보여."
 
 
 
"프로듀서."
 
내가 프로듀서를 부를 때는 좀 더 목에 힘을 주고 부른다. 작은 목소리도 들어주시지만 조금 더 나에게 집중했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그런 일상적이고 직설적인 의미도 있지만 조금 더 깨끗한 목소리를 프로듀서한테 들려주고 싶어서이기도 했다. 프로듀서는 초콜릿 케이크를 잘라서 입에 넣었다. 진한 커피 냄새가 가게 안에 가득했다.
 
제과점답게 한쪽에는 빵들이 놓여 있는 나무 진열장들이 있었지만 다른 한쪽에는 커피와 빵을 먹을 수 있는 탁자들이 몇 개 놓여 있었다. 남색으로 칠한 나무 탁자 주변을 같은 색의 나무 의자가 둘러싸고 있었다.
 
"응?"
"헤매야만 도착하는 곳도 있네요."
"그러네."
 
분명 가게 앞에는 주소가 쓰인 명패가 있었지만, 거리로 조금만 나가면 어느 길인지 알려 주는 이정표도 있었지만, 얼핏 전철역의 입구를 본 듯도 하지만. 아즈사 씨는 커피를 홀짝였다.
 
"어디에도 없는 곳을 찾아가는 건 성공한 거네 유키호 쨩?"
"그러네요."
"나도 오늘은 뭔가, 마음대로 산책한다는 생각에 더해서 어딘가를 찾아간다고 생각하니 뭔가 다른 곳에 있는 느낌이었어."
"그 얘기 유키호랑 걸으면서 했었어요."
"어머, 정말요?"
"네. 방향이라던가, 공간이라던가. 여전히 알 수 없는 얘기지만요."
"설명은 못 해도 느낌이라는 게 있으니까요. 유키호 쨩은 시를 쓰니까 뭔가 말하고 싶어진 걸까나?"
"부끄러워요..."
 
또 다시 레몬 시럽을 뿌린 치즈케이크. 사실 레몬 시럽은 다른 케이크에 뿌리는 거였지만 내가 뿌려 달라고 부탁한 거였다.
 
"같은 곳을 걷더라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의 차이인 걸까요?"
"유키호 쨩은 어떻게 생각해?"
"그렇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뭔가 그렇게 말하니까 더 부끄럽지만... 으으..."
 
기분 좋은 우연이다. 샛노란 단맛이 났다. 프로듀서의 초코케이크에서는 쌉싸름한 단맛이, 아즈사 씨의 생크림 케이크에서는 가벼운 단맛이 났다. 아즈사 씨는 또다시 속삭이듯이 나를 불렀다. 이번엔 검지로 내가 있는 쪽을 두 번 두드리기도 했다.
 
"유키호 쨩. 고마워."
"고맙다고 말을 들을 정도는 절대 아닌데..."
"유키호 쨩이 아니었으면 여기에 못 왔을지도 모르는걸?"
"헤매는 건 그런 걸까요?"
"응. 모든 상황이 맞아떨어져야 우리가 여기서 만날 수 있지 않았을까?"
"운명 같은 거네요."
"후후, 그러네. 운명 같은 걸까나."
 
아즈사 씨는 그렇게 말하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정말 아름다운 미소였다.
 
"프로듀서도 오늘 따라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 뭘. 뭔가 새로운 기분이었어."
"그런가요?"
"유키호랑 단 둘뿐이라는 감각은 오랜만이었다고 해야 하나..."
 
삽시간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이내 웃음이 터져나왔다.
 
"후훗, 저도 그 기분 느꼈어요."
"그렇구나. 가끔은 아이돌이랑 이런 기분도 괜찮은걸."
"아이돌 프로듀서로서는 못 할 말이네요."
"오늘은 뭔가 프로듀서가 아닌 느낌이었으니까."
 
프로듀서는 마지막 케이크 조각을 삼켰다.
 
"다음부터 아즈사 씨를 찾을 때는 이렇게 찾아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어머나, 전화랑 지도가 있는데도요?"
"휴대전화기가 지금처럼 꺼질 수도 있으니까요."
"유키호 쨩이 가르쳐 준 대로, 어딘가에서 만나겠다는 마음으로 헤매면 될까나요?"
"어떤 방법으로든 아즈사 씨를 찾으러 가야겠죠."
"그건 기쁘네요."
 
창밖에는 그제야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마치 우리가 헤매는 동안에는 해가 멈춰 있었던 듯이 시간은 제멋대로 갔다. 충전을 꽂아 놓았던 휴대전화를 돌려받아 전원을 켰다. 지도를 보니 우리는 사무실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사람의 걸음은 그다지 빠른 편이 아니니 당연히 그러했다. 가면서 빌딩밖에 없었던 이유는 워낙에 사무실이 도심에 있기 때문이었고 말이다.
 
나는 치즈케익 하나를 포장해서 샀다. 그리고 밖에서 기다리는 프로듀서와 아즈사 씨에게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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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해야지 공개해야지 하고 미루다가 선입금 예약 다 끝나갈 때 공개하네요. 어나더 스테이지 H10부스에 출품하는 단편집 <LINK>에 수록되는 단편의 마지막 공개입니다. 선입금 예약도 일요일까지 받고 있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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