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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했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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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6-10, 2017 04:20에 작성됨.

이별은 만남보다 참 쉬운 건가봐

차갑기만 한 사랑

내 맘 다 가져간걸 왜 알지 못하나

보고싶은 그 사람

 

겨울의 아침은 해가 뜨는 것만큼 느릿느릿하고 차갑다.

오늘도 온종일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아는 나는, 천천히 이불 속에서 빠져나와 최대한 느린 속도로 손발을 오그렸다 핀다.

나의 직업은 프로듀서, 작은 회사의 프로듀서.

소속된 아이돌 하나 없는, 생긴지 얼마 안 된 프로덕션의 프로듀서.

 

겨울의 아침에, 사람이 몰리는 전철을 타는 것만큼 기분나쁜 일도 없다.

열화한 철의 느낌과, 원하지 않은 사람의 온기가 내 몸을 타고 전류같이 흐른다.

이런 느낌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정말로 혐오해 마지않는다.

그렇지, 이럴 때에는 조금 따스한 생각을 하면서 시선을 돌리자.

그래, 이렇게 시시한 겨울에 만났던 그녀의 생각이라도-

...아니, 그것은 생각하지 않았던 것으로 하자.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한 전철은 푸쉬-하는 소리를 내며 사람을 내뱉는다.

그 소리에 쫓기듯이 내뱉어진 나는 늘 가던 대로 역의 계단을 올라가, 개찰구에서 카드를 찍고 늘 가던 곳으로 발을 옮긴다.

최대한 천천히, 최대한 천천히, 아무도 내가 가는 곳을 알지 못하도록.

쓸데없이 조심하면서 걷는 거리의 끝엔, 허름한 건물과 테이프로 이름이 아무렇게나 붙어있는 회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삐그덕거리는 계단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같은 건물 안으로 들어가며, 이제는 슬슬 다른 대형 프로덕션에서 아웃소싱하는 것 말고 다른 일을 찾아봐야 하는게 아닌지에 대한 고찰을 한다.

사무소의 문을 열자 그 곳에는 언제나 그렇듯이 자기 자신의 자리에서 영업용 미소를 띄고 있는 사무원씨가 있다.

사무원씨라고는 해도 그녀와 그다지 가깝지는 않은 나는 간단히 인사만 하고 메일을 확인해 오늘 할 일을 확인한다.

일이라고는 해도 거의 사무원씨가 해결해주기 때문에, 나는 밖으로 나가 아이돌을 스카우트하는 것이 주된 일.

대충 오늘 할 서류작업을 컴퓨터에 다운로드받아 놓고는, 사람이 꽤나 모이는 점심시간 때까지는 작업에 열중한다.

타닥타닥, 타닥타닥. 장작이 타오르는 것같은 소리가 작은 사무소 안에 울려퍼진다.

열심히 일하던 사무원 씨가 아, 하고 작은 소리를 내며 나에게 말을 물어오기 전까지는.

 

「그러고보니 프로듀서 씨, 하나 묻고 싶은게 있는데요.」

 

「네, 무슨 일이죠?」

 

「프로듀서 씨는 연애같은 거 해보신 적 있나요?」

 

「노코멘트하기로 하죠.」

 

나 참, 뭘 물어오나 했더니.

나는 별 시덥잖은 질문을 말 그대로 던졌다는 듯한 어이가 없는 표정을 얼굴에 씌우며 다시 작업하고 있던 서류에 신경을 집중한다.

나의 대답에 사무원씨는 별다른 추가 질문은 하지 않고 이내 잔뜩 밀려있는 듯한 작업으로 시선을 돌려 일하기 시작한다.

뜻밖이군, 평소에는 그다지 집중력있게 일을 하진 않는데.

꽤 아슬아슬할 정도로 난방이 되어있는 낡은 사무소에 또다시 타자치는 소리만이 요란하게 울려퍼진다.

마치 그것이 시간의 초침이 울리는 소리였다는 듯이,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온 사무원씨가 내 어깨를 살짝 건드리듯이 치고는 입을 연다.

 

「프로듀서 씨, 이제 스카우트하러 갈 시간이예요.」

 

「아,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되었나요.」

 

「네. 슬슬 번화가로 나가셔서 꽤나 괜찮은 아이 하나만 스카우트해 주세요♬」

 

「...저는 헌팅남이 아닙니다만.」

 

뭐, 하는 일은 비슷하다고 생각하지만.

나의 대답에 사무원씨는 빙긋 미소를 짓더니 작게 손을 흔들어 나를 배웅한다.

몇 시간 전에 올라왔던 삐걱거리는 계단을 밟아 내려가며, 오늘은 아이돌이 될 만한 아이를 스카우트해 올 수 있을까라고 약간의 불안이 담긴 중얼거림을 입 밖으로 작게 내뱉는다.

마치 푸쉬-하는 소리를 내며 사람을 내뱉어버리는 전철같네라고 생각하게 된다.

작고 허름한데다가, 속도마저 신칸센에 비하면 턱없이 느린 궤도열차.

나라는 프로듀서는 나만의 승객을 어느 역에서 내려주게 될까.

...나라는 볼품없는 남자는, 이미 한 번 내뱉어버린 승객을 다시 마주할 수 있을까.

 

점심시간이 막 시작되려는 즈음에 도시의 번화가로 들어선다.

작은 골목에서 사람을 마주하는 것도 좋지만, 확률상 번화가에서 이런저런 사람을 찾아보는 것이 더 빠르다.

개인적으로는 작은 골목이 괜찮지만 말이야,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간단히 점심을 먹을 겸해서 근처의 카페로 들어간다.

카페에서 작은 샌드위치 하나와 카페오레 하나를 들고 야외 테이블에 앉은 나는 포장지를 천천히 벗기고는 한 입 베어문다.

카페에서 샀기 때문일까, 바스라지는 듯한 맛없는 샌드위치의 맛이 입 안에 감돈다.

마치 나 자신같다는 생각을 지우지 못하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둘러본다.

사람이 많은 번화가임에도 아이돌로서의 재능이 보이는 사람은 전혀 눈에 띄지 않는다. 

왜일까, 이 곳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평범함에 익숙해져버린 회사원이기 때문일까.

...그녀를 만나고 싶다. 평범함과는 전혀 거리가 멀었던 그녀를.

 

점심시간이 다 끝나갈 즈음까지도 번화가를 열심히 찾아보았지만 허탕이다.

큰일이다, 이렇게 되면 근 한 달 째인데.

방황하던 나를 거두어주신 사장님을 뵐 면목이 없다. 

최소한 한 명이라도-

 

「저, 죄송합니다만-」

 

「아, 네. 무슨 일이신지.」

 

가냘픈 듯한, 하지만 꽤나 아름다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누구일까, 이런 운명적인 만남이라면-

 

「저, 지갑을 떨어뜨리셨는데요.」

 

「아, 네.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생각에 빠져 그저 거리를 헤매고 있었나보다.

정신을 놓으면 안 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목소리의 주인이 내민 내 지갑으로 시선을 옮긴다.

하얗고 가냘픈 손가락.

떠올리고 싶지 않은, 하지만 떠올릴 수밖에 없는 그녀의 손을 생각하며 나는 그녀의 얼굴로 시선을 옮긴다.

그 곳에는,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교복 차림의 소녀가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띄우고 있다.

 

「혹시 아이돌하실 생각 없으십니까?」

 

「아이돌이요?」

 

생판 모르는 남의 지갑을 그 주인에게 내민 채로, 소녀는 이해가 잘 안된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그 모습에서 오래 전에 헤어졌던 그녀가 비춰지는 것같아 나는 쿡쿡하고 작게 웃는다.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과, 눈 앞에 있는 남자의 갑작스런 웃음소리에 소녀는 어쩔 줄을 몰라하며 나만을 쳐다본다.

어떻게 보면 꽤 로맨틱한 광경이군,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사과를 건넨 뒤 다시 한 번 입을 연다.

 

「아, 죄송합니다. 상황설명이 제대로 되지 않았군요.」

 

「아, 아니예요. 조금 당황하긴 했지만...」

 

「떨어뜨린 지갑을 주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례는 따로 해 드리겠습니다.」

 

「그런, 사례를 바라고 한 게-」

 

「그리고, 이건 제 명함입니다.」

 

「명함...?」

 

「네, 저는 한 아이돌 프로덕션에서 아이돌을 관리하는 프로듀서란 직책에 있습니다.」

 

「프로듀서, 씨였던 거네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저같은 평범한 게...」

 

평범하다라....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 소녀가 그렇게 말하니 조금은 어이가 없으면서도 예전의 그녀 생각이 나 웃음이 절로 배어나온다.

어쩌면 그렇기에 내 앞에 어떻게 대답해야 될 줄 모른다는 듯이 서 있는 소녀를 만난 것일지도 모르지.

소녀의 말에 나는 일단 그녀의 손을 살짝 만지며 내 지갑을 받아들고는 그 안에 있는 명함 중 하나를 그녀에게 건네준다.

내가 내미는 명함을 잠시 쳐다보다 떨리는 손으로 받아든 소녀는 그 다음에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내 얼굴로 시선을 옮긴다.

왠지 모르게 예전의 그녀를 만났을 때가 떠오른다. 

그 때도 이런 느낌의...

 

「저, 그럼 자기소개를 할께요.」

 

「아, 그건 나중에 오실때 하셔도...」

 

「아니예요, 명함을 주셨으니까 지금 여기서 할께요.」

 

「...그렇군요. 그럼 부디.」

 

「아, 네. 그렇네요. 저는-」

「시마무라 우즈키예요!」

 

「...좋은 이름입니다.」

 

나의 대답에 그녀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방긋 웃는다.

그 미소는 너무나도 아름다워, 나는 어느새 마음을 놓아버린다.

왠지 시마무라 씨라면 무엇이든지 잊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예전의 나도, 예전의 그녀도, 그리고 그리워했던 나날들도.

 

 

언젠가 다른 사람 만나게 되겠지

널 닮은 미소짓는

하지만 그 사람은 네가 아니라서

조금 슬플 것 같아

잊을 수 없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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