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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 판타지] 편광렌즈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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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6-06, 2017 02:46에 작성됨.

"별의 이름으로 죽여라아아악!!!!!"

 

"피, 피해!!!"

 

대규모의 병력과 소수의 정예 병력. 둘이 싸워서 누가 이길지는 군사학자들 사이에선 영원히 식지 않을 논쟁거리일 것이다. 하지만, 이 둘이 손을 잡고 집구석에 쳐박힌 광신도들을 척결하기 시작할 때 누가 이길지는 논쟁할 필요도 없다. 비록 그 광신도들이 카미죠령에서 한 자리 차지하고, 왕국 내에서도 손꼽히는 귀족과 부자들이라고 해도 말이다. 돈과 권력을 무력으로 제 때 전환하지 못해서 찾아온 유동성의 위기라는 표현은, 조금 과도한 힐난일까.

 

"죽이긴 무슨, 쏴."

 

이 귀족들은, 신앙보단 자신의 저택을 믿어왔던 모양이다. 신심이 깊은 자들은 신앙을 방패삼아 돌격하다 전부 산화해버렸으니, 신심이 깊지 않은 자들이 자기들 저택 안에 박혀있는 것도 필연이었다. 별의 계시는 그들에게 내려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들이 별을 진심으로 신앙하지 않았던 것 처럼, 별 또한 그들을 진정 자신의 신도로 보지 않았던 걸 지도 모른다.

 

"3차 사격 개시!!"

 

어찌되었든, 광신도들에겐 귀천을 불문하고 공정하고 공평한 포탄 세례가 필요했다. 이런 광신도들은 살아남을 시간이 없었고, 그들의 적은 순간의 포격으로 빠른 전멸을 원했다. 포문이 불을 뿜고, 실전에서의 성능 테스트가 필요했던 여러 포탄들이 각자의 방법으로 날아가 저택에 쳐박혔다.

 

"무, 무너지잖아!!!"

 

"어떻게엑.... 쿨룩...."

 

전쟁터에 나가지 않고 후방에서 호가호위를 즐기던 귀족들은, 최근의 전쟁이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알지 못했다. 요새라는 것의 가치가 매우 낮아졌다는 걸 증명한 제국과 왕국 간의 전쟁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저택으로 숨어들어간 자들이 무너지는 벽에 척추와 어깨가 짓뭉게지고 폭발하는 충격에 팔과 다리가 날아가고 비산하는 파편에 두개골이 뇌 째로 찢겨가며 죽었다.

 

"지, 지금이라도 항복하자고!! 그 이상한 신한테 홀렸다고!!"

 

"그래! 우린 협박당한 거라고 하면 이해해줄 거야!! 전속 창녀들 몇명 꽂아주자고!!"

 

몸에 나무뿌리 같은 혈관이 돋은 광신도들은 빈민가 소탕작전에서 대부분 죽어버렸다. 귀족들 중에서도, 정신이고 영혼이고 별에게 줘 버린 광신도들은 먼저 싸우다가 피떡이 되어버렸다. 

이 상황 속에서, 신심 없는 자들이 신을 포기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머리는 썩고 눈은 멀었지만, 이렇게 가까이 다가온 죽음의 냄새를 맡지 못할 정도로 코가 썩은 건 아니었다. 이들은 으레 그랬던 것 보다 좀 더 솔직한 모습이 되어 남에게 희생을 강요하기 시작했다.

 

"병신아, 이단심문관이랑 영주는 여자라고!! 니네 집에 남창들 끼워줘!!"

 

"그거야 모르는 일이지!! 너야말로 가문에 모아둔 공예품들 다 바쳐!! 그 덕후년이 알아서 다리도 벌려줄 거다!!

 

"니가 내야지!! 너네 막내는 아인헤리야 들어가서 살아남기도 쉬울 거 아냐!!"

 

노골적으로 목숨과 물욕을 저울질하는 현장을 앞에 두고

 

"아하하하하, 미카 그 썅년은 의외로 멀쩡한 편이었던 거 아냐?"

 

"누구... 사, 사도님!! 저희를 살려주십시오!!"

 

그리고, 배신을 꾀하던 자들이 또 다시 배신당할 뻔 한 자 앞에서 목숨을 구걸하는 모습을 보고

 

"물론이지..... '엄마'한테 너희들을 선물로 주면 굉장히 기뻐할 거야...."

 

유이는,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애초부터 충실한 신도가 되어줄 거라곤 유이도 별도 기대하진 않았지만, 가면을 벗어던지고선 노골적이고 추악한 모습만을 보여주는 추태 앞에선 배신자에 대한 증오보단 '이런 놈들 써먹자고 포섭한 우리도 참 한심하다' 라는 자괴감이 앞섰다. 상대하기도 귀찮다는 듯, 유이가 손을 휘두르자 배신자들의 상반신이 터져 날아가버렸다.

 

동시에

 

".....끈질기게 구네."

 

포탄 세례와 함께 시커먼 수정의 창이 유이를 향해 날아들었다.

맞는다고 해서 죽는 건 아니지만, 이런 자리에서 발이 묶여도 곤란하다. 그렇게 판단한 유이는 하늘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You are listening to radio happy!"

 

그것은 폭음이자 충격이었지만, 들을 수 있다면 즐거운 에너지가 넘치는 활기찬 노래였다. 이 즐거움 가득한 파동의 방어벽이, 날아오던 모든 포탄을 막아내고 그 자리에서 폭발시켜버렸다. 유이에겐 파편은 커녕 약간의 충격도 날아오지 않았다. 귀족들이 살던 단단한 저택을 부숴버린 최신 과학의 산물조차, 신앙의 방패를 뚫지는 못했다. 귀족들이 진정으로 믿고 의지해야 할 것은 쓸데없이 비싸 보이는 저택과 자신이 쌓아둔 재산이 아니라, 신께선 결과적으로 자신을 돌봐줄 거라고 하는 강렬한 신앙심이었던 모양이다.

 

"いつもそばにいるよ 眠い朝も憂鬱な夜も....."

 

파동의 틈을 뚫고 들어온 결정창이 유이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창이 스쳐 지나간 자리에 남은 검은 결정 가루들이, 유이의 피부를 파고들기 시작했다. 원념, 혹은 증오를 담은 마법은, 신앙심으로 무장한 광신도의 피부를 서서히 뜯어내기 시작했다. 턱근육과 힘줄이 드러나기 시작한 얼굴을 만진 유이가, 약간 의아하다는 듯 한 표정으로 노래를 하면서 유키미가 숨어있을 만한 곳을 향해 파동을 방출하였다. 바닥에 닿은 작은 충격파가, 땅을 뒤집고 흙을 뜯어내는 강렬한 파장이 되어, 땅 위에 있던 것들을 땅에서 떼내버린다.

거적데기 같은 천만 하늘 높이 날아갔다.

 

"아까부터 이런 식이라니까....."

 

유키미와 유이가 만난 순간, 유이는 당연히 유키미를 공격하였다. 강렬한 파동이 유키미를 덮쳤고, 그 후 유이는 시체를 확인하지 않고 자기 할 일을 하러 가버렸다.

그것이 유이의 실책이었다. 곳곳에 남은 건물 잔해들 사이로, 유키미의 공격이 끊임없이 날아들었다. 공격이 날아온 곳을 향해 파동을 날려 근처를 통째로 뜯어내도, 유키미의 공격은 유이의 파동을 비웃기라도 하듯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모습을 보였다 싶으면, 방금 같은 거적데기였다.

 

"게다가....."

 

유이는 결정 가루들이 침식해가던 얼굴 근육을 잡고, 자기 얼굴을 향해 파동을 쏘았다. 콰직, 하는 소리와 함께 두개골이 갈라지고 얼굴의 살점이 전부 날아갔다. 눈알은 신경과 힘줄의 힘으로 아슬아슬하게 대롱거리며 매달려 있었고, 턱뼈는 반쯤 으스러져 이빨을 바닥에 쏟아버렸다. 광대뼈도 마찬가지였다. 으스러진 해골이 여자의 몸 위에서 딸그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흔들리고 있었다.

동시에, 유이의 머리 위에서 신호탄이 터졌다. 신호탄의 불빛이 유이의 풍성한 금발을 조금 태워버린 순간, 유이는 지금이라도 척추뼈에서 떨어져나갈 것 같은 두개골을 부여잡고 도망쳤다. 포격에 휩쓸린다고 해서 죽지는 않지만, 이런 곳에서 몸을 고치는 데 시간을 써버렸다간 제 때 도망칠 수 없게 된다. 유이가 도망친 자리에 포탄의 비가 내렸다.

 

"나한테 원한이라도 있나? 왜 이리 상처가 남지?"

 

이 정도라면, 별의 은총으로 금방 나아야 한다. 하지만 결정에 당한 상처들은, 마치 유이의 신앙심을 자기 힘으로 삼아버리듯 상처를 후벼파고 뜯어내버린다. 정돈된 마법이나 아이돌의 능력, 혹은 과학적인 무언가와는 다른 좀 더 근본적인 무언가가 유이의 상처를 후벼파고 있었다. 원한, 증오, 복수. 유키미의 마음이 만들어낸, 인간이 본능적으로 품고 있는 저주받은 마음이, 저주의 대상이 된 유이의 신앙심을 좀먹어 상처를 뜯어내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절대로 편히 보내지 않겠다는 듯, 다시 한 번 결정창이 날아왔다. 이번에는 몸을 굴려 피할 수 있었다. 직후에 하늘에서 떨어진 결정 조각들도, 파동 한 번으로 전부 다 깨트려 날려버렸다. 유이가 반격을 했을 땐, 그곳엔 거적데기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어디서 죽었는지 모를 시체만, 길다란 소장과 대장의 궤적을 남기며 하늘로 용처럼 날아올라 거대한 지렁이처럼 떨어졌다.

 

"귀찮게 굴지 마!!"

 

유이는 있을 법한 곳에 사방으로 파동을 던졌다. 포탄의 화력으로는 결코 일으킬 수 없는 폭발이 저택 하나를 순식간에 가루로 만들어버렸다. 그 여파에 휩쓸린 귀족들도 가루가 되어, 미세하게 뭉친 핏방울들만 넓게 퍼져 작은 피보라들을 일으켰다. 폭발의 여파가 끝나기도 전에, 이번엔 총격이 유이의 척추를 뚫어버렸다.

 

"이게.....!!"

 

총에 맞음과 동시에 반격한 유이. 공간이동이라도 하지 않는 한, 이번 공격을 피할 수는 없다. 하지만 유키미는 이번에도 거적데기 하나만 남기고서 다른 곳에 몸을 숨겼다. 결코 결정타는 되지 못하지만, 천천히 깎여나가버린다는 게 무슨 뜻인지 유이는 점점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보니 시부야 린을 이런 식으로 몰아붙인 사람이 있다고 하던데......"

 

유이는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애썻지만, 유키미는 그럴 시간을 주지 않았다. 이번엔 총격과 마법이 여러 방향에서, 상당한 시간차를 두고 날아왔다. 총알에 검은 결정이라도 집어넣은 건지, 총에 맞은 부위가 제 때 낫지를 않는다. 마법에 직접 당한 것 보다는 나아서, 그래도 천천히 치료되고 있긴 하지만 몰려간다는 건 마찬가지다.

 

"귀찮네....."

 

벌써 몇 발이나 맞은 걸까. 일단 유이의 몸에 박힌 총알은 총 네 개였다. 유이는 마침 만난 네 명의 변절자들의 머리를 터트려버리는 걸로 스트레스를 풀었다. 하지만, 그 사이에 또 결정이 박혀버렸다. 이번에는 허벅지였다. 그것도 상당히 큰 걸로. 뽑아내긴 했지만, 이미 반 이상의 결정이 분해되어 유이의 혈관을 타고 퍼져나가며 몸을 갉아대고 있었다.

 

"흐읍!!"

 

유이가 다리에 힘을 주었다. 나무뿌리, 혹은 충혈된 혈관 같은 것들이 다리 피부를 뚫을 기세로 튀어나와, 진짜로 몇 군데를 터트리며 흘러들어온 결정 조각들을 분출해내었다. 그와 동시에, 유이의 허벅지가 끔찍한 검은 뿌리들에 휘감겨 새로운 살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

 

쏴도, 금방 낫고 부활한다. 인간은 저러지 못한다. 회복 능력을 갖춘 아이돌도 저렇게까지 버틸 수는 없다.

유이가 타오르는 듯 한 긴장감 속에서 서서히 말라가는 동안, 유키미는 아무리 애를 써도 무너지지 않는 요새 앞에서 무력한 저주를 바랄 수 밖에 없었다.

 

".....어째서."

 

바로 저기 있는데.

바로 눈 앞인데.

지금이라도 목을 노리 수 있는데.

목을 몇 번이고 쑤시고, 심장을 뚫고, 척추를 부수고, 내장을 헤집고, 사타구니를 벗겨내고, 두개골에 결정창을 박아넣었는데도 왜 죽지 않는 거야.

 

끔찍한, 끔찍할 정도의 무력감이 유키미를 오랬만에 방문했다. 옛날 고아원 시절 이후로 잊고 싶어했던, 지금까지 필사적으로 도망쳐왔던 그 무력함이 최악의 요새가 되어 유키미를 짓뭉게기 시작했다. 능력에 눈을 뜨고, 살아남기 위해 마법을 배우고, 실제로 살아남아 세상과 마주봐 왔지만 자신을 마주하지 못했던 아이가 가진, 유일한 방패인 비정한 청부업자의 가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르릉."

 

페로가 주인의 상태를 깨닫고, 주인을 발로 건드려서 퇴각을 요청한다. 당신도 전문가라서 잘 알겠지만, 이대로라면 죽는 건 우리다. 페로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냉정하고 냉엄한 세계에서 살아남아 온 프리랜서는, 여기선 물러나고 나중을 기약할 때라는 걸 금방 파악할 수 있었다.

 

"......."

 

죽여야 한다. 반드시. 절대로 놓칠 수는 없다. 이 천재일우의 기회가, 언제 다시 찾아올 지 모른다.

하지만, 여기서 죽이려 했다간 반대로 죽어버릴 수도 있다. 언제 다시 찾아올 지 모를 기회를 위해서라도, 여기선 살아남아야 한다. 계약 위반도 아니다. 후일을 도모해야 한다. 나중에라도 죽일 수 있다. 어차피 이 광신도들은 계속 죽여버릴 것이고, 그러다 보면

살면서 처음으로 사귄 친구들을 죽인 저 여자를, 직접 죽일 수 있는 날도 다시 찾아오겠지.

 

유키미는 발을 뒤로 빼었다. 등을 보이지 않고, 정면을 향한 채로 천천히 뒷걸음질친다.

그러다, 유키미는 자기 발뒤꿈치에 무언가가 걸렸다는 걸 깨달았다. 지쳐있던 탓일까, 발 밑을 확인하지 못한 것이다. 유키미는 죽여버리고 싶지만 못 죽인 금발 광신도에게 눈치채이지 않도록 발뒤꿈치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어린 아이의 머리였다.

 

유키미가 직접 치료해주고, 너무 뒤늦은 마음만을 조용히 담아 살기를 바래며 보낸 그 아이의 머리통이었다. 최후가 어지간히 고통스러웠는지, 그녀의 발치에 닿은 얼굴이 고통을 호소하는 모습 그대로 굳어있었다. 살기를 바랬던 마음은, 누구도 알아주지 못했던 고통스런 최후가 되어 유키미에게 다시 돌아왔다.

 

"죽인다."

 

어째서 죽었을까.

알 바 아니었다. 

지금까지 스스로를 보지도 못했던 유키미는, 처음으로 자신이 투영한 자신의 모습이 아닌 진정한 자신을 보았다. 복수와 증오가, 그녀가 가지고다니는 검은색 수정으로 만들어진 편광렌즈가 되어 자아와 감정의 초첨과 상(像)을 잡아주었다.

 

"......어? 뭐야. 정면승부라도 벌일 생각인 거야?"

 

유이는 어느 새 자신 앞에 나타난 유키미를 경계하면서도, 내심 흥미롭다는 듯 쳐다보며 물었다. 거대한 흑호(黑虎) 위에 올라탄 소녀가, 대답 대신 수정구를 꺼내들었다. 유이를 괴롭혀왔던 결정창들이 떠오르고, 그 주위를 검보라색 빛무리들이 헤엄치기 시작했다. 포연이 타오르고 부패가 불타는, 어제까지만 해도 세상을 다 가지고도 만족하지 못했던 자들이 죽은 곳 위를 검보라색 광선이 가로질렀다.

 

"땅에 발 붙이고, 유이를 이길 거라고 생각한 거야?"

 

어디 있는지 훤히 알고 있다면, 힘을 아낄 이유도 없다.

유이는 '조금 더' 힘을 냈다. 성기사가 질주를 시작하듯 땅을 크게 밟은 유이를 중심으로, 세계에서 공간과 이치를 분리시키는 듯 한 울림이 퍼져나왔다. 동시에, 하늘로 날아오른 페로에 매달린 유키미가 유이의 머리에 검은색 결정을 뿌렸다. 유이는 가소롭다는 듯, 기합 소리 한 번으로 공기를 폭발시켜 결정들을 부숴버리고 유키미를 노렸다. 유유히 피해서 건물 잔해 위에 착지한 유키미가, 다시 수정구를 꺼냈다. 바닥에는 부숴진 결정 조각들이 널려있었다. 그 결정 조각들이 검보라색 빛이 되어, 정가운데에 있는 유이의 온 몸에 박혔다.

 

"크윽....."

 

"좀, 죽으라고.......!"

 

유키미가 감정을 드러내며, 페로의 입에 수정구를 물렸다. 다시 한 번 호랑이의 모습이 된 페로의 입 안에서, 검보라색 기운을 뿜어내는 수정구가 방금 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한 마법을 쏘았다.

 

"고작, 이 정도로!!"

 

유이는 뭄을 슬쩍 돌려 광선을 피했다. 온 몸에 마법이 박히고서도 움직인 것이다.

 

"터져"

 

"죽어라!!"

 

유이의 두 발자국.

공기의 진동. 그리고 대기의 진동. 마지막으로 이미 끊겼어야 할 광선의 진동.

유이는 유키미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걸음을 밟아 눈에 보일 정도의 충격파와 함께 땅에 있는 모든 걸 전부 부숴버리고, 다시 한 번 걸음을 밟아 대기를 부숴버린다.

그 사이, 유키미는 사라졌어야 할 광선을 유지시키다, 세 번째 걸음을 떼려는 순간 검보라색 빛과 함께 폭발시켰다. 한 순간 결정 다발의 형태를 유지한 그것은, 유이의 내장과 다리, 뼈, 골반, 가슴, 머리 등 모든 부위를 순식간에 찢어놓았다. 충격파를 페로의 함께 겨우 막은 유키미가 뒤로 날아가다 벽에 박혀버렸다. '해냈어' 그녀는 드디어 저것을 죽였다고 생각했다.

 

".....You are listening to radio happy!"

 

그리고, 세 번째 걸음이 떨어졌다. 저것은, 온 몸이 찢겨 나갔다. 움직일 수 있을 리가 없다. 의식이 있어도, 신경과 근육이 뜯겨나가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유이가 씨익, 하고 웃었다.

 

 

 

 

 

 

 

 

 

 

".....저기에요!! 저 여자에요!!"

 

이단심문관 아이카와 치나츠가 소리쳤다.

 

"확인했습니다. 아인헤리야, 소탕을 실시한다!!"

 

바닥에 발이 닫기 전, 불과 강철의 비가 썩은 세계의 잔재 위에 내렸다. 유키미가 살기를 바랬던 아이의 머리와 몸통은 열과 충격 앞에 산산히 부숴져, 소탕당한 피보라가 되어 무가치하게 사라졌다. 무의미한 소망이었다.

 

 

--

 

 

"어, 어머니!!!"

 

아인헤리야의 구성원 중 많은 수는 귀족의 자제들이다. 당연히, 이번 반란에 연루된 광신도의 가족들도 다수 포진하고 있다.

 

"사, 살려주십시오!! 제가 잠시 눈이 멀었습니다!! 아들아!! 제발 부탁한다!!"

 

아들은, 자기를 낳아준 어머니에게 총구를 겨누고 있었다. 고급스런 옷은 반 이상 찢기고 불타고, 화장은 진작에 재와 연기에 덮혀 흉측한 몰골이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에는 모자관계가 있었다. 아들이 총구를 치우려 했다.

닛타 미나미의 앞에서.

여기서 방아쇠를 죽이면 아들은 어머니를 죽인 쓰레기같은 패륜아가 된다. 하지만 방아쇠를 당기지 않으면 둘 다 죽어버린다. 닛타 미나미는, 부하의 뒤에서 조용히 선택을 강요하고 있었다.

 

".......영지 안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제가 처리하죠."

 

그 광경을 보다 못한 카미죠 하루나가 직접 나섰다.

 

"여, 영주님!! 제발 살" "눈 감아요. 아, 이미 늦었나."

 

결국 아들은, 눈을 감지도 못하고 돌리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굳은 채로, 자신을 지금까지 길러준 소중한 가족이 영주의 주먹질 한 번에 잘 뭉게진 고기가 되는 것을 지켜보았다. 비명이 있었다.

 

"쓸데없이 자비롭군요."

 

"쓸데없이 잔혹한 것 보다야 낫죠. 죽일 사람들을 빼곤 같이 살아야 하니까."

 

영주의 경호로 붙어있던 페로가 고개를 저었다. 페로의 이빨엔 사람의 살점과 뼛조각, 어디선가 굴러온 눈알이 걸려 있었다. 이에 걸린 걸 전부 다 혀로 핥은 다음 맛있게 먹는 그것의 모습을, 닛타 미나미는 흥미롭다는 듯 지켜보았다.

 

"하지만 저들과, 저들에게 동조하는 자들에게 자비는 필요 없죠."

 

"이단심문관, 임무 수고하셨습니다. 곧 고국으로 돌아가신다고 들었습니다. 부디 이번보단 무탈한 귀성길이 되길."

 

아이카와 치나츠와 카미죠 하루나가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닛타 미나미도 예의를 갖추어 인사했다. 서로 더 이상 얼굴 볼 일 없는 관계이니, 굳이 나쁜 감정이 생길만한 일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영혼 없는 예식이 진행되는 동안, 이번 일의 '공로'로 캔디 아일랜드에 들어가게 될 미무라 카나코가 바쁘게 뛰어다니며 구호 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저렇게 뛰어다니는 게 예삿일인데도 살이 안 빠지는 걸 보면, 체질이라는 것도 있는 모양이다' 닛타 미나미는 생각만 하기로 했다. 현명한 판단이었다. 인신 공격은 어딜 가나 환영받지 못한다. 그녀 자신이 스스로를 제지할 수 있을 진 모르겠지만.

 

"예. 오늘 떠날 생각입니다."

 

"송별식은" "필요 없습니다. 솔직히, 지금 당장이라도 떠나고 싶어요."

 

카미죠 하루나는 이해한다는 듯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무엇을 봤는지 적은 보고서를 보면, 누구나가 다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오오츠키 유이.... 과거 죠가사키 미카가 이끌던 용병단 소속이었군요. 사망한 줄 알았는데, 설마 멀쩡히 돌아다니고 있을 줄이야."

 

"사이온지 령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그거의 연장선이겠죠."

 

사이온지 령.

'그러고보니까 유키미가 사이온지 령 출신이었지' 카미죠 하루나는 이 끔찍하고 기괴한 결말 앞에서 눈을 돌리며, 유키미에 대한 생각으로 도피를 시도했다.

영지는 빈민가도 상류층도 공평하게 불타고 있었다. 중요한 산업 시설들은 지켜내었고, 적절한 인구 조절과 부의 재분배를 통해 영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게 되었다. 그뿐으로 끝날 이야기는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 선에서 끝내자고 말했다. 카미죠 하루나는 영주로서, 죽은 자들은 죽은 채로 둘 수 밖에 없었다. 역시 이 일은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는 걸 다시 한 번 실감하며 죽음과 돈을 서류로서 처리하는 게, 그녀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러고보니, 유키미는요?"

 

"지금 쉬게 두고 있어요. 일단 모로보시 키라리 기사단장에게 서면상으로 보고는 마쳤어요. 다음 일도 그쪽에서 나오겠죠."

 

유이의 공격에 당하고, 날아가고 잘린 곳 없이 멀쩡한 건 그야말로 천운이었다. 덕분에 한창 이불을 차서 공중에 날리느라 바쁜 그녀였다. 프로로서의 정신이 뒤늦게 되살아나서 유키미를 괴롭히는 장면을 상상한 하루나는, 그 귀여운 모습에 조금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안경을 얹어주면 더 완벽하겠지.

 

"모로보시 키라리가..... 흠, 괜찮은 인재에 먼저 손을 댄 건가."

 

"그거라면, 깊은 곳의 교단에 손을 뻗은 것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그런데 하라다 미요는요?"

 

"글쎄요.... 제국 쪽에서 갑자기 정보를 은폐한 것 같던데. 알아보도록 하죠."

 

"혹시 알게 되면 저희 두캇에도 알려주세요. 그리고 태양의 젤러시교에도."

 

이단심문관은 다시 한 번 인사를 한 후, 빠른 귀국 준비를 시작했다. 그녀의 손엔, 사람 하나 정도는 들어갈 만한 가방이 들려 있었다.

.......빈민가는 카미죠 하루나의 아버지 때 처럼 불타고 있었다. 이번에는 그 학살을 주도했던 상류층도 불타고 있었다. 이번 학살의 주동자는, 다름아닌 카미죠 하루나 자신이었다. 결국 종교의 권위를 빌려 귀찮은 문제를 폭력적으로 해결한 위정자는 그녀였던 것이다. 영민을 위한다는 명분과 광신도를 토벌한다는 명분으로 언제까지 폭력과 학살을 정당화시킬 수 있을까. 그녀는 그 문제에 대해서 잠깐 고민하다, 어쩌다 보니 얻어낸 귀족들의 예술품들을 가지고 노는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마침 그녀가 최고의 걸작을 만들었을 때 썻던 재료들--인간의 뼛가루 같은 게 잔뜩 있기도 했다. 잘만 하면, 아인헤리야와의 교섭에서도 쓸 수 있을 거라는 계산도 있었다.

 

그녀는, 의외로 위정자가 체질에 맞는 걸 지도 모른다. 그녀가 안경은 써도 편광렌즈를 쓰지 않는 이유는 명백해 보인다.

 

 

 

 

 

 

 

 

 

 

 

 

 

 

 

 

 

 

두캇 공화국, 아이카와 치나츠의 집.

그녀는 귀국하고 간단한 보고를 마치자마자 자신의 저택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저택의 깊숙한 곳, 바깥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 가서 자신이 직접 가져온 묵직한 가방을 열었다.

 

"........유이, 호화 여행을 기대했던 거야."

 

"불평하지 마. 나도 최고 등급 부양정을 타고 오고 싶었다고. 결국 비행선을 타고 오게 됐지만. 그리고 유이도 나랑 같이 비행선 탄 거니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불평하지 마."

 

"우와, 귀족 인성 상태가?"

 

"거기 있던 귀족들보다야 낫지. 아무튼, 챙겨온 거나 마저 먹자."

 

유이가 가방 속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손에는 잘 포장된 고기 주머니가 들려 있었다.

 

"......괜찮겠어?"

 

유이가 물었다.

유이는, 아주 조금 제정신이 돌아왔던 걸 지도 모른다. 자신이 벌이는 짓이 얼마나 끔찍했던지를 조금은 자각했던 것이다. 만일 치나츠가 거기서 유이를 혐오했다면, 그녀는 마지막 순간에 홰개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유이가 만든 거잖아. 맛있을 거야. 장모님이 나 먹으라고 유이를 잘 가르쳐놨네."

 

"흥이다~ 치낫츠 먹으라고 기른 유이 아니거든요~"

 

치나츠의 눈과 피부에, 검은 나무뿌리 같은 타락의 증표가 돋아나기 시작했다. 이미 차갑게 식어버린 갓난아기 요리를 입에 대고 삼킬 때 마다, 치나츠는 점점 별을 보기 시작했다. 아니, 그녀는 끔찍한 짓을 통해 별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유이처럼 멍청하지 않은 그녀는, 유이가 섬기는 것이 어떤 것인지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유이와 함께하기 위해선 타락과 죄악에 몸과 정신을 물들여, 영혼을 별에게 바치는 수 밖에 없다는 걸 깨달아버렸다. 치나츠의 결단은 빠르고도 간결했다.

 

"아, 장모님. 이거 먹고 유이 먹어도 되죠?"

 

'얼마든지'

 

별도, 치나츠의 빠른 결단을 기특히 여겼다.

아이카와 치나츠에겐 영혼을 어둠에 바칠 정도의 절망은 없었다. 그녀는 단지 사랑 때문에 타락에 영혼을 던졌다.

 

"아잉~ 배 위에서 삐그덕삐그덕 해 버려~"

 

"이번엔 제대로 침대 위에서" "아, 그럼 유이가 리드할께. 잘먹겠습니다~ 그리고....."

 

그날, 아이카와 가의 시종 하나가 실종되었다. 아이카와 가의 힘도 있고 해서, 큰 사건으로 발전하지는 않았다.

다음 날 아이카와 치나츠는, 반질반질한 얼굴로 배를 만족스럽게 쓰다듬고 있었다. 유이와 함께 요리한 사람 고기가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그 상태로 그녀는 의회에 나가 오니기리 교의 위험성을 역설했다. 그녀 옆에는 경호원으로 금발 여성이 붙어있었다. 그 오오츠키 유이와 닮은 모습이지만, 그녀와 그녀의 가문이 가지는 신뢰는 너무 두터워 상을 왜곡하기에 충분했다.

 

아이카와 가의 여식이라는 입장도, 이단심문관이자 장래유망한 법률가라는 타이틀도, 전부 다 유리에 반사되어 비쳤을 뿐인 흐릿한 상에 불과하다. 자기 안에 깊은 곳에 있는 광인의 소질을 비춰줄 별빛 편광렌즈는, 그녀 자신에게만 있으면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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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광선글라스라고 하면 낚시용품이라는 이미지가 강하죠. 그거 쓰면 바닷물 수면 아래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들도 볼 수 있습니다. 적절한 곳에 밑밥을 뿌리면 그거 줏어먹자고 달려드는 물고기들이 잘 보이죠. 감성돔은 감성넘치는 맛이었지.

 

아무튼, 이걸로 일본 가기 전에 편광렌즈는 완결시켰습니다. 길었습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당분간은 일도 있고 해서, 신데판에는 손대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사실 스토리 따라가는 걸로도 벅차네요. 이거 쓰면서 충돌 안 일어날지 엄청 조심하면서 썼으니까요. 그래서 더 오래 걸린 거임(책임전가)

 

밤이 늦었군요. 전 목요일날 출국을 위해서 이만 자야 되겠습니다.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다시 신데판에 손 대보고 싶네요. 그럼, 잠시나마 신데판과는 작별인사를. 함께해서 즐거웠고 다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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