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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노세 시키 "Gene/Human/Idol"(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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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6-04, 2017 00:28에 작성됨.

 

눈앞의 남자가 입을 움직인다.

성대가 진동하고, 입술과 혀, 이빨의 절묘한 움직임이 특정한 음성을 만들어내 자신의 의사를 전달한다.

 

그래. '의사소통'이라는 것.

아마도 시초는 지금도 많은 동물들이 사용하고 있는 경보음.

적을 발견했을때 특정한 음성을 만들어내 동료들을 도망치게하는 유전자를 가진 개체. 뭐 결국은 비명같은 것이었겠지만, 어쨌든 그런 행동을 통해 자신과 같은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는 개체들은 생존경쟁에서 승리하고 그 유전자를 널리 퍼뜨렸을 것이다.

 

모든 생명체는 이런 방식으로 '진화'한다.

 

자신의 존재 의의. 유전자를 보존하기 위해서 진화에 진화를 거듭해, 결국은 우리. 즉 인간까지 만들어냈다.

 

즉, 우리는 다른 모든 생명체와 다를바없이, 유전자를 위한 생존기계일 뿐.

 

난, 이 사실을 너무 일찍 알아버렸다.

 

우리들이 만든 이 사회가 너무나도 삭막하게 느껴졌다. 내 눈앞에 있는 사람들도 사람 이전에 정해진 프로그램대로 행동하는 기계로 보였다.

 

그래서일까, 지금까지 진솔한 인간관계라는건 가져본적이 없다. 

 

어쩌면, 아빠와도 이것때문에-

 

"--어이...이봐..."

 

아, 또 다른데로 생각이 새버렸다. 나 이 남자랑 대화중이었지 참.

 

"냐하핫~~미안미안~~잠깐 딴생각을 해버렸지 뭐람~"

 

"흐....대체 집중력이 얼마나 떨어지는거냐 너..."

 

패스트푸드점 입구를 어슬렁거리던 나를 보고 뭐 먹고싶은것 있냐면서 런치세트 메뉴를 사준 남자다.

 

키는 180중반대의 장신.

어깨도 넓은 꽤나 건장한 체격에 양복을 차려입었지만 한여름의 날씨는 어쩔수 없었는지 와이셔츠 단추는 두개정도 풀려있다.

 

그리고....어디선가 본거같은 사람이다. 기분탓인가? 인상 자체는 워낙에 흔한 외모라서 그런걸지도 모르겠다.

 

"미아냉~시키쨩 워낙에 산만해서 한번에 오래 집중을 못한단말이지~"

 

"....됬어. 괜찮아. 그런 사람도 있는거지 뭐. 그래서, 내가 한 말은 생각해봤어?"

 

 

웅...?

 

나 아까 무슨얘기 하고있었더라?

 

 

"그러니깐, 아이돌 말이야. 아이돌."

 

"음....진짜 나로 괜찮나? 시키쨩같이 싫증 잘내고 괴짜같은 사람이 아이돌이라니, 솔직히 상상이 잘 안가는데. 거기다 나, 가끔씩 실종되기도 하고."

 

"의외로 나쁘진 않을지도? 우리 사무소, 이래뵈도 네 생각보다 훨씬 정신나가.....아니 특이한 곳이거든. 그런점을 지지하는 팬들도 상당히 많은편이고. 물론 너정도면 좀 튀기는 하겠지마는-아 그리고 실종은 좀 아니야. 그건 내가 뒷감당하기가 너무 힘들다고;;;"

 

 

아이돌.

 

분명히...TV같은데 나와서 춤추고, 노래하고. 뭐 그런거였지?

 

일단 한번 해볼까? 마침 나 무작정 도망나와서 돈도 별로 없는데.

 

그것보다는-재밌는게 제일 중요하잖아.

 

재미. 

 

음~그래, 획실히 재밌을것같다.

 

그럼 정해진거지 뭐.

 

 

"넵~! 좋습니닷!! 이치노세 시키, 오늘부터 아이돌 1일차! 잘부탁한다궁~~"

 

"뭐...뭐야 생각보다 빨라?"

 

"흐흐흥~좋아! 그럼 이제 막 나도 무대에서 노래부르면서 춤추고 TV도 나오고 막막 그러는거지? 응응? 신난다앙~"

 

"어이 이봐! 그게 지금 당장 뭐 그렇게 되는게 아니라고! 일단 사무소에서-"

 

"아, 근데."

 

"응?"

 

"시키말이지...산만해서 금방 싫증나버리는 스타일이라서말이야, 만약 일하다가 재미없어지면-"

 

 

하지만, 재미.

 

유전자의 노예에 지나지 않은 우리에게 내려진 단 하나의 축복.

 

돈, 명성같은 우리가 만들어낸 허깨비같은 것엔 애초에 별 관심 없다.

 

그렇기에, 난 재미. 그것 하나만을 삶의 기준으로 삼고 살아왔다.

 

"바로 미국으로 돌아가버릴지도 모른다구? 그러니깐 싫증나지 않도록 잘☆부☆탁☆해~"

 

"무책임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거냐???"

 

"냐하핫~넝담넝담~~"

 

 

 

 

 

 

"냐핫~안뇽 프로듀서어~"

 

"여, 좋은아침. 왔냐?"

 

"킁킁....이거...흠...장미향이랑...에탄올?"

 

"와오, 놀라워. 에탄올은 그냥 술냄새로 생각할줄알았는데 그걸 구별하는거야?"

 

"후훗~이뢔뵈도 기프티드니깐~그럼...어제는 집에서 그것들로 뭘만들었을라나~?"

 

"....으휴...깜짝선물로 주려고 해도 꼭 이렇게 먼저 알아차려버린다니깐, 자."

 

프로듀서가 주머니에서 작은 유리병을 하나 꺼냈다. 어래, 이거 설마-"

 

"향수를, 만들어온거야?"

 

"무도회 라이브 확정기념 축하 선물이랄까? 뭐, 애초에 향 추출같은거야 도구만 있으면 되는 간단한 일이니까 말이지."

 

"우왓~시키쨩 감동감동!! 역시 프로듀서 유능해애~!"

 

 

 

 

 

프로듀서.

그는 자신을 그렇게 소개했다.하지만 그에 대해서 계속 알게 되자 왜 교수나 연구자 대신 프로듀서 일을 하고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그 정도로 다방면의 과학 지식이 풍부하고 이해도가 높다. 넌지시 한 말을 곱씹어보면 해외 유학까지도 갔다왔던것 같다. 모종의 사정때문에 중간에 그만두고 돌아온것같지만.

 

 

 

"흐음-다음에 네 DNA 추출하고 병에 담아서 굿즈로 내볼까? 인기폭발일지도?"

 

"에에~그거 너무 변태같잖앙~"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프로듀서는 역시 유전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궁금해졌었다. 이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이기적 유전자?' 아 그래, 좋은 책이지. 그렇고말고. 현대 유전학을 길아엎어버릴장도였으니 말이야."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 책에 대해서 오해를 많이 하더라고. 인간의 무가치함을 논하는 책이라면서. 문제는 저자라는 양반이 워낙 철저한 논리를 펴다보니 또 내용을 받아들이지 않는것도 어렵고, 출판 당시 염세주의자들이 속출했다는 말도 허풍은 아니지. 거기다 현재진행형인데."

 

"오해의 소지는 간단해. 책을 끝까지 읽지 않았거나 내용에 대해서 대략적으로만 이해한거야. 그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인간의 무가치함이 아니라 인간의 위대함이니까. 뭐....위대함까지는 내 주관적 해석이지만."

 

인간의 무가치함.

 

인간의 위대함.

 

이해되지 않았다. 아니 이해할 수 있을리가 없지. 아무리 생각해도 그 책이 말하는건-

 

"11장 마지막페이지였나? 거기에 분명히 써져있단말이지. 우리는 지구상에서 유일한 유전자의 '반역자'라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애초에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유전자 단위만으로 해석해보면 모순되는 행동은 차고 넘치고, 무엇보다 너와 내가 하는 일이 그렇잖아? 아이돌로서 다른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고, 또 그런 일들을 만들어내는 것은 유전자의 보존에는 아무런 이득도 없는일인걸."

 

"유전자에 대한 반역자라, 멋지잖아? 그래서 난 그 책을 좋아해. 그리고 '사람'들도 좋아하고. 뭐 그런거야."

 

 

 

그날, 꽤나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다.

 

'이기적 유전자'

 

1976년 출판된 이후 40년의 세월동안 꾸준히 읽혀지는 명저중의 명저.

그러나 동시에 삶에 실망한 염세주의자들을 양산해낸 책.

 

저자는 학교 교사들로부터 무슨책이길래 읽은 학생들이 이꼴이 됬냐고 공격당한적도 있다는것 같다.

 

다시 읽어보았다. 12년만이었나.

그리고 프로듀서가 말한 그 페이지에는 분명히 이렇게 써져있었다.

 

'우리는 유전자의 기계로 만들어졌고 밈 (문화로 생각하시면 될듯합니다-NaN0)의 기계로서 자라났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우리의 창조자에게 대항할 힘이 있다. 이 지구에서는 우리 인간만이 유일하게 이기적인 자기 복제자의 폭정에 반역할 수 있다"

 

 

 

 

 

 

 

"시키, 준비는 됬지?"

 

"응응!! 완전 준비 완료!!"

 

"좋아. 다녀와라. 무도회라고 쫄지 말라고!"

 

"걱정 마용~! 자 후레쨩! 가보자고!!

 

"예이~!"

 

"아 맞아. 시키. 잠깐만 이거."

 

"응....? 쪽지?"

 

"갖고있어. 첫번째곡 끝나고 한번 열어보라구."

 

"흐응- 맘같아선 지금 확 열어보고싶지만,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OK~"

 

"시키쨩~ 빨리빨리! 사람들 기다린다구?"

 

"네네~ 갑니당~!"

 

후우-

프로듀서가 의자에 앉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3일 밤낮 일만했더니 힘들어 죽겠구만...끝나면 일단 한숨 자든가 해야지 원."

 

아.

 

"교수님...자리는 제대로 찾으셨겠지? 일단 오셨다고는 했으니 뭐."

 

엄청 반짝반짝거릴겁니다. 

눈부실 각오정도는 해두시죠.

 

그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라이브 시작과 함께 한껏 달아오르기 시작한 무대와 관중석을 보며 프로듀서는 미소지었다.

 

 

 

 

 

 

"냐핫~! 모두 열심히 응원해줘서 고맙다구!!!"

 

"자 그럼 다음 곡은-너희들의 함성이 없으면 안부를거라고~?!? 함성으로 천장 날아가게 만들 각오는 되있어?!?"

 

와아아-!!!!

 

귀청이 떨어질듯한 함성이 고막을 미친듯이 진동시킨다. 진짜로 천장을 날려버릴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줄곧 생각해왔다. 모든 것을 바칠수 있을정도로 재밌는것이 있을까?

 

이제는 답을 찾았다. 아니, 애초에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이제 필요 없다.

 

우리는 유전자의 노예같은 것이 아니다.

스스로 자신의 존재 이유에 대한 답을 찾고 증명해내는 반역자이다.

 

그리고, 난 그 답을 찾았다.

 

프로듀서. 전부 그 남자덕이다. 만약 프로듀서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프로듀서? 아 맞아! 쪽지!

줄곧 한손에 들고있었으면서 까먹을 뻔했다.

 

펴보자.....음....?

 

1층 E열 17번 좌석?

 

"거기 누가 있다는건가? 누구길래-"

 

좌석을 눈으로 주욱 흝었다.

그리고.

 

 

순간 호흡이 멈췄다.

 

환호성을 내지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낯익은 사람이, 익숙허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앉아있었다.

 

 

 

 

 

 

 

 

 

 

 

 

 

아빠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앉아있었다.

 

 

<끝>

 

 

창작톡에 2차후기+후일담 올립니다!

후일담을 보시면 내용은 그때 완전히 이해되실걸로 생각합니다.

허접하지만 첫 단편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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