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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노세 시키 - "Cardiac Ar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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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5-30, 2017 02:47에 작성됨.

 

※주의: 캐릭터 붕괴요소가 들어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어느 날, 해질녘의 사무실에서 나누었던 이야기였다.

 

 

“심장은 말이야, 생명체에게 살아가는 의미를 부여해주는 존재야.”

 

나는 그의 옆자리에 앉아, 다리를 앞뒤로 흔들면서 제멋대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자판을 두드리던 손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

 

“살아가는 의미?”

“응, 심장이 뛰고 있는 한 생명체들은 반드시 살아가야 해. 그리고 심장이 멈추면, 살아가는 의미를 잃어버린 생명체는 그대로 멈춰 버려. 몸이 멈추고, 뇌가 멈추고, 시간이 멈추는 거야.”

“시간이 멈춘다……왠지 섬뜩한 이야기인걸.”

“냐하핫, 그런 의도로 말한 건 아니었는데~. 뭐~그러니까 너는 나한테 심장 같은 사람일까~? 네가 있음으로써 아이돌인 나는 아이돌로써 살아가는 의미를 얻는 거니까.”

 

내 말에 한 방 먹은 듯한 표정을 짓던 그는 멈추었던 손을 뻗어 내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웬일로 네가 기특한 소릴 다 하네? 오늘 나한테 뭐 바라는 거라도 있어?”

“흐흥~ 글쎄~뭐 난 이런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머리를 쓰다듬는 투박한 손길에 몸을 맡기면서 나는 가볍게 눈을 감았다.

그래, 넌 나에게 심장 같은 존재였어.

아니, 나에게는 또 다른 심장이었어.

삶에 흥미를 잃고 서서히 멈추어가던 나에게 살아갈 의미를 부여해주는, 내 몸 밖에 있는 두 번째 심장.

 

 


<Cardiac Arrest>

 

 

 

“……시키? 일어나렴…….”

“으응…….”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나는 신음을 흘리면서 눈을 떴다. 승용차 내부의 풍경이 보였다.

그새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목소리가 들려온 곳, 활짝 열린 뒷좌석의 문 쪽을 바라보자,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한 여성의 얼굴이 보였다. 몸에서 은은한 베르가모트 향을 풍기는 그녀는 단정하게 하나로 모아 묶어 내린 머리카락과 약간 아래로 처진 눈꼬리가 무척 처연한 인상을 주는 여성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미후네 미유. 나와 같이 사무실에 들어온 이와테 현 사람으로, 프로듀서의 부재 동안 나를 맡아주고 있는 사람이었다.

 

“여기는……?”

“병원 주차장이야…….”

“아아……벌써 도착했어……?”

“많이 피곤했나보네, 괜찮니……?

“으응, 괜찮아……미안해요. 금방 일어날 테니까.”

“무리하지 말렴…….”

 

잠시 후, 어느 정도 정신이 말끔해지자 나는 열려 있는 문을 통해 자동차에서 내렸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병원 건물의 녹색 십자가 너머로 비치는 땅거미가 서서히 지평선 저 아래로 녹아내리고 있었다.

몇 번인가 심호흡을 한 뒤, 나는 자동차의 문을 닫고 내 뒤에 서 있던 그녀를 돌아보았다.

 

“응, 이제 됐어. 출발해요. 면회시간 늦겠다.”

 

병원 안으로 들어간 우리는 곧바로 중환자실로 향했다. 중환자실 앞에 마련된 휴게실에 미유를 남겨두고 나는 혼자서 중환자실의 스테이션으로 향했다. 차트를 정리하던 간호사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환자 면회를 하려고 왔는데…….”

 

나는 품 속에서 작은 쪽지 하나를 내밀었다. 그의 담당 의사에게서 받은 면회 허가증이었다. 그것을 확인한 간호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쪽지를 다시 내밀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바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면회시간은 20분입니다.”

“고마워.”

 

간호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한 뒤, 나는 병실로 들어섰다.

병실에 들어선 내 시선을 가장 먼저 잡아 끄는 것은 화면에 무수한 그래프와 숫자를 띄우고 있는 모니터였다. 나는 병실 한 가운데 위치한 침대를 향해 다가갔다. 주위를 둘러보면 삑, 삑, 삑, 하고 규칙적인 소리를 내는 모니터가 주렁주렁 걸려 있었다. 심전도 그래프, 맥박, 혈압, 산소 포화도, 벤틸레이터(주: 자발적인 호흡이 어려운 중환자용 인공호흡기)의 작동 여부……내가 어깨 너머로 배운 지식으로 해독할 수 있는 정보는 이정도 뿐이었다. 전문적으로 공부를 했다면 좀 더 알 수 있었겠지만, 나는 간호 쪽에는 딱히 관심이 없었다.

침대 옆으로 다가간 나는 병상에 누워 있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마치 촉수처럼 모니터에서 뻗어 나온 수많은 케이블들이 그의 몸에 붙어 있는 수많은 전극과 연결되어 있었다.

평소의 짙은 감색 정장 대신 녹색과 흰색 줄무늬가 그려진 환자복을 입고 있는 그는 무척이나 건장한 체구의 남성이었다. 늘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던 눈은 조용히 감겨 있었고, 늘 미소를 걸고 다니던 입에는 두툼한 벤틸레이터의 호스가 꽂혀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냄새를 풍기는 땀과 기름기로 늘 번들거리던 피부는 금방이라도 부스러질 듯 바짝 말라 있었고, 늘 생기가 넘치고 립스틱을 칠해도 티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혈색이 좋았던 입술은 피가 통하긴 하는 걸까 싶을 정도로 새하얗게 바짝 말라 있었다.

 

“잘 지냈어? ……냐하핫, 농담이야, 농담. 잘 지낼 리가 없겠지……미안해. 꼴도 보기 싫을 텐데 계속 이렇게 들락날락거려서…….”

 

-삑, 삑, 삑.

 

“있지, 어제는 우즈키네랑 같이 미니 라이브를 했어. 네가 없는 무대가 즐거워봤자 얼마나 즐거울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즐겁더라……이것도 너로 인해서 일어난 화학 변화일까?”

 

-삑, 삑, 삑.

 

“다음 달에 커다란 공연장에서 합동 라이브를 한대. 다 들었어. 네가 기획한 거라면서? 카에데 씨네 프로듀서가 말해 줬어. 정말, 그런 게 있었으면 미리 말을 해 줬어야지.”

 

-삑, 삑, 삑.

 

“응, 괜찮아. 난 이치노세 시키니까. 기프티드니까 그런 건 식은 죽 먹기야. 네가 포기하지 않는 한, 나도 포기하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지켜봐 줘. 이제 두 번 다시 무책임한 짓은 하지 않을 거니까.”

 

-삑, 삑, 삑.

 

마치 정신분열증 환자처럼 허공을 향해 중얼거리던 나는 또 다시 찾아온 적막감에 입을 다물었다. 언제나 나를 향해 웃어주고, 내 이름을 불러주던 그는 오늘도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그의 침대에 걸려 있는 환자 카드를 바라보았다.

 

[좌상, 복합골절에 의한 신경, 순환계의 손상]

 

 


 

 

 

한달 전.

그 날은 유명한 연예인과 함께하는 등산 프로그램의 촬영이 있었기에 우리는 도쿄 근처에 있는 야트막한 산을 오르고 있었다. 야트막하다고는 하지만 높이가 그렇다는 말이고, 등산로는 빈말로도 편하다고는 할 수 없는 산세를 자랑하고 있었다. 등산로의 초입부터 짧고 굵게 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어마어마한 각도의 경사가 우리들을 반긴 것이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산길을 오르던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가벼운 배낭을 메고 걷는 나도 죽을 맛인데, 카메라를 비롯한 무거운 촬영장비를 지고 올라오는 스태프들은 오죽할까. 아니나다를까, 스태프들의 표정은 그야말로 죽지 못해 살아있다는 것을 온 얼굴로 말하고 있었다.

 

“잠시 쉬었다 가겠습니다!”

 

그 때, 우리들 중에서 가장 앞장서서 걸어가던 프로듀서의 목소리에 카메라맨을 포함한 일행이 모두 제자리에 멈춰 섰다. 촬영 감독의 정지 신호에 맞춰 카메라의 불빛이 잠시 꺼진 틈을 타, 프로듀서는 재빨리 내게 다가와 물통을 내밀었다.

 

“괜찮아? 걸을 만 해?”

“레슨도 잔뜩 받았겠다, 체력은 꽤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멀었구나~싶네.”

“아니, 넌 충분히 잘 해주고 있어. 여긴 내가 봐도 여간 험한 곳이 아니거든.”

 

내가 물병에 입을 대고 꿀꺽꿀꺽 물을 마시는 사이, 디렉터가 프로듀서에게 다가왔다.

 

“이야, P씨 덕분에 살았어. 길잡이 역을 맡았던 사람이 못 온다고 했을 때는 어떻게 되나 싶었는데. 설마하니 등산에 조예가 있는 사람이었을 줄이야.”

“별 말씀을요. 이런 곳에라도 써먹을 수 있는 취미라서 다행이죠. 그런데 이 속도로는 정상까지는 못 갈 것 같습니다만……혹시 다른 계획이라도 있습니까?”

“그게 말이지…….”

 

옆에 앉아서 두 사람의 이야기를 주워듣고 있던 그 때, 내 코를 자극하는 미묘한 향기가 느껴졌다. 체력도 어느 정도 돌아왔겠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곧바로 그 냄새를 쫓아가기 시작했다. 달작지근하면서도 시원한 냄새, 마치 멘톨과 아밀 포메이트, 이소아밀 아세테이트를 적절한 비율로 뒤섞어놓은 듯한 향기였다.

그 때, 나는 그 냄새를 쫓아가서는 안 됐다. 혹여 쫓아가더라도 프로듀서와 함께 갔어야만 했다. 하지만 내 ‘습관’은 나에게 그런 판단을 내릴 여유를 주지 않았다. 하나에 집중하면 주위를 살펴보지 않는 내 나쁜 버릇은 주위가 안전한 실험실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버릇이었지만, 주위에 온갖 위험요소가 산적한 야외에서는 죽기 딱 좋은 버릇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나에게는 그러한 자각이 없었다.

 

“킁킁, 이쪽인가~?”

 

코를 킁킁거리며 나는 정신없이 냄새의 근원을 찾아 다녔다. 내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 지도 모르는 채, 나는 정신없이 냄새가 나는 방향을 향해 수풀을 헤치면서 한 걸음씩 나아가기 시작했다.

 

“야! 시키!!”

 

그 때, 귀청을 찌르는 고함소리와 함께 내 등 뒤에서 짙은 땀냄새가 풍겨왔다. 그 어느 향수보다도 자극적인, 내 후각세포를 사로잡는 향기에 몸을 돌리려는 순간, 앞으로 내디뎠던 내 발이 크게 허공을 갈랐다.

 

“어?”

 

기우뚱, 몸이 기울었다. 발판도 없이, 균형을 잃은 몸은 버둥거릴 새도 없이 점점 그 기울기를 키워가기 시작했다. 멍하게 있던 전정기관이 한 박자 늦게 내 몸이 기울어지고 있으며, 아래로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나는 서서히 내 눈높이로 올라오는, 조금 전까지 내가 서 있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아뿔사, 낭떠러지였구나.

그제서야 나는 내가 어디를 걷고 있던 것인지를 깨달았지만 이미 돌이키기에는 너무 늦은 상황이었다. 슬로모션처럼 천천히 수직에 가까운 각도로 빙글 돌아가는 와중에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프로듀서가 나를 향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아하하, 저게 뭐야, 웃긴 얼굴이네.

몸의 기울어짐이 수평을 넘어서는 순간, 아슬아슬하게 지면에 붙어 있던 나머지 발 한 짝이 지면에서 떨어졌다. 반사적으로 손을 내밀어 손에 잡히는 것을 아무렇게나 잡았다. 잡초 몇 포기가 팽팽하게 당겨졌다가 힘없이 툭, 하고 떨어졌다.

끝이구나, 라고 생각하며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 순간, 땅을 박차는 소리와 함께 덥썩, 하고 무언가가 나를 덮쳤다. 뜨끈한 체온과 함께 나를 감싸 안는, 무척 익숙하면서도 짙은 땀냄새가 느껴졌다. 눈을 감고 있었지만, 누구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대단해, 그새 그 거리를 따라왔구나.

그는 성인 남성에 비하면 무척이나 가녀린 내 몸을 자신의 심장 소리가 들릴 정도로 억세게 꽉 껴안았다. 1초 정도 가벼운 부유감이 느껴지고, 곧이어 아래쪽으로 향하는 가속도가 느껴졌다. 몇 초나 지났을까, 라고 생각한 그 순간, 쿵,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나는 묵직한 충격을 느꼈다. 온몸을 고무 해머로 두드리는 듯한 충격이었다.

나를 억세게 안고 있던 그의 손이 스르륵 풀려났다. 그의 몸을 덮은 모양새로 그의 위에 앉아 있던 나는 충격이 어느 정도 가신 다음에야 그의 품 속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근육이 크게 놀란 듯 팔다리가 몹시 욱신거렸다.

머리 위에서 스태프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품 속에서 몸을 일으킨 나는 고개를 들어 우리가 함께 떨어진 절벽을 올려다보았다. 10미터 남짓한, 그다지 높지는 않은 절벽이었다.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내 밑에 깔려있던 그를 불렀다.

 

“미안, 미안~내가 발 밑을 못 본 모양이네. 괜찮아?”

 

하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대자로 사지를 넓게 뻗은 채 바닥에 누워 있는 그의 모습을 본 순간, 목덜미를 타고 무언가 차가운 것이 훑고 지나갔다.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과학자로써의 직감이 내게 말하고 있었다.

 

“……프로듀서?”

 

 


 

 

 

삑, 삑, 하는 비프음이 내 의식을 다시 현실로 끌고 들어왔다.

나는 침대 옆에 놓여있는 간이 의자에 앉아, 마치 수도관처럼 수액관이 주렁주렁 꽂혀 있는 그의 팔을 바라보았다. 늘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손. 투박하고 거칠고 단단하지만, 그 이상으로 부드럽고 따뜻했던 손.

나는 손가락을 내밀어 그의 팔뚝에 살짝 올려보았다. 평소에는 오히려 내가 덥다고 느낄 정도로 체온이 높았던 사람이었지만, 지금 그의 피부는 내 손 끝이 시릴 정도로 무척이나 차가웠다.

 

 

그가 나를 끌어안고 절벽에서 떨어지던 그 때, 그의 품 속에 안겨 있었던 나는 그의 몸에서 나는 소리들을 여과 없이 들을 수 있었다. 그저 쇼크 때문에 곧바로 떠올리지 못했을 뿐, 내 뇌리 깊숙한 곳에 각인된 그 소리는 지금도 꿈에서 곧잘 들려오곤 했다.

뿌드득, 뿌드득하는 그 소리는 두 사람 분의 체중이 실린 강한 충격에 그의 늑골과 척추가 산산조각이 나고, 그 뼛조각이 그의 몸 속을 사정없이 찢어발기는 소리였다.

스태프들이 막 구조대에 연락을 했을 때, 프로듀서는 분명히 의식을 되찾은 상태였다. 검붉은 피거품을 입에 물고, 코에서는 시뻘건 코피가 흘러나오고 있었지만 그는 분명히 살아 있었다. 그러면서도 어디서 그런 힘이 났던 것인지……그는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실낱처럼 가느다란 호흡을 이어가며, 극심한 통증에 기침조차 하지 못하면서도 억지로 손을 들어, 자신의 옆에서 패닉에 빠져 있던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아니, 객관적으로 보자면, 그것은 ‘두드렸다’기 보다는 ‘손을 얹었다’는 말이 더 정확한 행동이었다.

그제서야 제정신이 돌아온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무언가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인지 그는 몇 번인가 목 근육을 달싹거렸지만, 그 때마다 목소리를 대신하여 나온 것은 피거품이 끓는 끄륵거리는 소리 뿐이었다. 몇 번이나 말을 하려고 시도하던 그는 커다란 핏덩어리 하나를 토해낸 다음에야 그것을 단념했다. 가느다랗게 이어지던 그의 숨이 잠시 동안 멈출 정도였으니,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는 그의 옆에서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이라곤, 치밀어 오르는 무력감에 몸을 떨면서 그의 손을 꼭 잡고 있는 것뿐이었다. 화학이 아닌 분야에서는, 내 자그마한 실험실을 벗어난 나는 아이돌이었고, 자그마한 여자아이일 뿐이었다.

산소 부족으로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버릴 때까지 고통과 싸우던 그는 잠시 후, 저 멀리서 헬리콥터의 로터 소리가 들려올 때가 되어서야 다시 평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아니, 그것이 평정이라고 정의할 만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읏……!”

 

그 기억을 떠올리자 또다시 코끝이 시큰해졌다. 그가 다시 일어날 때까지는 절대로 울지 않겠다고 맹세했건만, 이 곳에만 오면 그 맹세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버리곤 했다.

찡해지는 코 끝을 문지르면서 나는 그의 마지막 눈빛을 떠올렸다.

그는 나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나를 원망하려던 것일까? 아니면 평소처럼 나를 혼내고 싶었던 것일까?

나는 입고 있던 옷의 소매로 눈가를 대충 훔쳐내고는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았다. 주어진 면회시간은 20분. 이제 슬슬 시간이 다 되어 간다. 의자에서 일어나서, 나는 병상 위에 누워 있는 그의 얼굴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이제 시간이 다 됐어. 또 올게.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너를 만나러 올게. 그러니까……포기하지 말아 줘. 나를, 그리고 너를.”

 

대답 대신 들려오는 것은, 삑, 삑, 하고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전자음뿐이었다.

 

 


 

 

 

공연 당일까지 D-17.

 

연습실에서는 라이브 무대를 앞둔 아이돌들의 레슨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다만 무대의 준비로 바쁜 것은 그녀들뿐만이 아니었기에, 각자의 프로듀서들을 대신하여 치히로가 마스터 트레이너와 함께 그들의 연습을 참관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시선은 다섯 명의 멤버들 중 가장 오른쪽에서 스텝을 밟고 있는 시키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시키는……잘 하고 있나요?”

“여전하지. 재능 하나만큼은 확실한 녀석이니까. 지금 저 상태로 무대에 던져 놔도 더할 나위 없이 멋진 무대가 나오겠지. 하지만……”

 

마스터 트레이너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곧바로 이야기를 계속했다.

 

”솔직히 말하면……내가 아는 시키가 맞나 싶을 정도야. 매번 적당적당히 하고, 잠시만 한 눈을 팔면 금세 어딘가로 사라져 있던 녀석이었는데 말이야.

“……그 사건……때문일까요?”

“……부정할 수는 없겠군.”

 

프로듀서의 사고 이후 시키는 ‘저게 정말로 이치노세 시키가 맞나?’싶을 정도로 변했다. 연습에서 땡땡이를 치는 일도 없었고, 레슨을 받을 때도 그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임했던 것이다.

 

“……올바른 쪽으로 배출되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글쎄……저게 정말로 올바른 쪽인지는 조금 더 두고 봐야겠지. 너무 자신을 죽이는 건 좋지 않을텐데.”

 

그 때, 치히로의 휴대전화가 윙윙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마스터 트레이너에게 양해를 구하고 연습실의 한 구석으로 가서 전화를 받았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흘깃 바라본 마스터 트레이너는 곧바로 아이돌들에게로 시선을 되돌렸다.

잠시 후, 통화를 마친 치히로가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전화의 내용은 대체 무엇이었던 것인지, 평소에는 좀처럼 포커페이스를 무너뜨리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치히로였지만 지금 그녀의 표정은 한 눈에 보더라도 무척이나 흥분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표정이 왜 그래? 좋은 일이라도 있었나?”

“네, 무척 좋은 일이 생겼네요. 그치만, 비밀이랍니다.”

“……그렇다면 포기해야겠군.”

 

이제는 즐거워하는 기색을 감추지 않고 빙글빙글 웃는 치히로를 바라보며 마스터 트레이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거 참, 모를 일이군.”

 

 


 

 

 

공연 당일까지 D-7일.

 

 

“10분 휴식한다!”

 

마스터 트레이너의 구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나는 연습실의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아뿔싸, 벌써 주저앉으면 안 되는데.

나는 힘이 들어가지 않는 다리를 억지로 움직여 내 가방이 있는 곳까지 향했다. 손을 뻗어 가방의 열린 틈으로 손을 집어넣고, 그 속을 더듬어 휴대전화를 꺼냈다.

휴대전화의 화면을 켜자, 아니나다를까 메시지 한 통이 도착해 있었다.

 

P: 지금쯤 연습중이겠지? 땡땡이 치지 말고 성실하게 해라?

 

이 오지랖은 아마 죽을 때도 안고 죽을 거야. 나도 모르게 점점 말려 올라가는 입꼬리를 의식하지 못한 채 휴대전화의 화면을 바라보고 있자니 등 뒤에서 달콤한 향기가 느껴졌다. 레슨 직후라서 그런지 더욱 진하게 느껴지는 체취는……프레데리카구나.

그것을 인식하기가 무섭게, 정답임을 주장이라도 하려는 듯 시야 한 구석에서 금빛 머리카락이 불쑥 튀어나왔다.

 

“짜잔! 시키, 뭐 보고 있어?”

“응? 비~밀~.”

“뭐, 시키가 저런 표정을 짓는 건 하나밖에 없지 않겠어?”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새침한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보았다. 프레데리카의 연두색 눈과는 전혀 다른, 마치 바둑알처럼 새까만 눈동자와 눈을 마주쳤다. 시오미 슈코였다.

아뿔싸, 한 명 더 있었구나. 프레데리카의 체취에 가려져서 전혀 눈치를 못 챘네.

 

“으응?! 뭐야뭐야, 비밀애인? 프라이데리카 잡지에 특집으로 실리는거야?”

“프라이데리카는 또 뭐람. 프로듀서 씨 얘기지?”

“냐하하~이거 벌써 들켜버렸네~.”

 

호들갑스럽게 반응하는 프레데리카와 빙그레 눈웃음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는 슈코를 향해 나는 항복의 뜻으로 두 손을 들어 보였다.

 

그 날, 프로듀서에게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남겼지만, 나는 그 이후로는 병원에 가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는 갈 수 없었다. 프로듀서가 남긴 내 마지막 스케줄인 크리스마스 라이브를 앞두고 점점 일정이 빡빡해졌기 때문이다. 유닛 동료들과 함께 레슨에 트레이닝에 인터뷰, 사진 촬영까지…...일반 병동이라면 모르겠지만, 시간대가 정해져 있는 중환자실의 면회 시간에는 어떻게 시간을 쥐어짜더라도 시간을 맞출 수가 없었다.

하루하루가 마치 고문처럼 힘들었다. 그의 향기를 복제한 향수로는 도저히 만족할 수가 없어서, 이제는 냄새마저 희미해져 버린 그의 책상 아래에서 하루 종일 지낸 적도 있었고, 그나마 그의 냄새가 남아 있는 그의 방에 숨어들어가 그의 침대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날밤을 지샌 적도 있었다.

그를 만나기 위해 그를 만날 수 없는 시간을 보내다니. 이 얼마나 역설적인 삶인가.

그렇게 하루하루 한계를 향해 내달리던 나를 구원해준 것은 열흘 전 치히로에게서 들은 이야기였다.

 

“프로듀서가 의식을 찾은 모양이에요. 어떻게 할래요? 만나러 가 볼래요?”

 

뛸 듯이. 아니, 날아갈 듯이 기쁜 소식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레슨도 연습도 다 집어던지고 그를 만나러 가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그라면 내가 다른 걸 다 내팽개치고 너를 만나러 가는 것보다 아이돌 이치노세 시키로써 남아있는 것을 더 좋아할 것이라 생각했으니까. 예전의 나였다면 그냥 다 내팽개치고 그를 보러 갔을테지만, 지금의 나는 그에게 커다란 빚을 지고 있는 몸이었기에, 그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이를 악물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아직 난 할 일이 남아 있으니까. 가능하면 다 내려놓고 개운하게 만나고 싶어.”

“그렇군요. 알겠어요. 그럼, 우리한테 맡겨줘요.”

“응, 부탁할게.”

 

그날 이후로, 치히로를 비롯하여 일정에 여유가 있는 어른들은 한번씩 나에게 그의 이야기를 해 주곤 했다.

 

‘오늘은 밥도 잘 먹었대요.’

‘이제 슬슬 인공호흡기를 떼려는 모양이에요.’

‘오늘은 농담도 던지더라?’

 

그리고 또다시 며칠이 지나자, 이제는 어느 정도는 스스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며 그에게서 메시지가 한 통씩 오게 되었다.

별 의미 없는 내용들 뿐이었지만 나는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그가 다시 눈을 떴다는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지금까지는 전혀 느낄 수 없었던 정체불명의 활력이 온 몸에 샘솟는 것 같았다.

그래, 멈춰 있던 심장이 다시 뛰는 것처럼.

 

 

*****

 

 

내가 그를 다시 만난 것은 라이브를 하루 앞둔 날이었다.

무대에서의 마지막 리허설을 마친 뒤, 때마침 시간이 맞아 떨어졌기에 나는 아무 망설임도 없이 곧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이제 정말로 회복기에 접어든 것인지, 그의 병실은 더 이상 중환자실이 아니라 병상이 거의 방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자그마한 1인실이었다. 병상을 비스듬하게 세워 놓고 창 밖을 바라보고 있던 그는 몸을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여어, 미리 크리스마스.”

 

언제나처럼 나를 향해 농담을 던지는 그의 모습에 나는 숨을 삼켰다.

몸은 홀쭉하게 줄어들었고, 얼굴색은 여전히 창백했고, 입술은 여전히 새하얗게 바짝 말라 있었지만,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건강하던 그 때와 하등 다를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달 만에 보는 자기 담당 아이돌은 어때?”

“음, 레슨은 안 빼먹은 것 같군. 땡땡이도 안 친 것 같고.”

“정말~이젠 안 그런다니까?”

“네가 그래놓고 도망친 게 한두 번이냐.”

“냐하핫, 그랬었지. 그래도 한두 번 빼먹는다고 다른 애들이랑 하는 덴 지장 없었고~?”

“뭐, 그거야 그렇겠지. 내 담당은 진짜 천재니까.”

 

이게 얼마 만에 듣는 그의 목소리인가. 금방이라도 넘칠 것 같은 눈물을 필사적으로 억누르며 나는 그의 병상 옆에 마련된 간이의자에 앉았다. 그러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 나를 불렀다.

 

“시키.”

“응?”

“이리 와.”

 

그렇게 말하며 그는 주삿바늘이 주렁주렁 꽂힌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평소보다는 손의 높이가 약간 낮았지만, 그것은 우리 둘 사이에서만 통하는 신호였다. 나는 주삿바늘을 건드리지 않도록 주의하며 자세를 낮추어 그의 손 아래로 머리를 밀어 넣었다. 환자복 너머로 희미하게 냄새가 느껴졌다. 무척이나 그리운 냄새……그의 냄새였다.

최대한 코에 의식을 집중해 희미한 향기를 추출하고 있자니 툭, 하고 그의 손이 내 머리 위에 내려앉는 것이 느껴졌다.

 

“……이야기 들었다. 굉장히 열심히 했다고. 힘들었지? 마음대로 도망도 못 가고.”

“……아니야, 안 힘들었어. 난 이치노세 시키인걸. 이런 건 식은죽 먹기란 말이야.”

“센 척 하지 마. 여기 아니면 어디서 속내 털어놓겠냐……지루했지? 엄청 지겨웠지?”

“……응.”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스위치가 돌아갔다. 어떻게 대응할 틈도 없이 눈시울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눈물샘에서 솟아오른 눈물은 안구를 타고 눈꺼풀 밖으로 줄줄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엄청 힘들었어……네가 없는 매일매일이 너무 지겹고 따분해서……매일 아침마다 다 내려놓고 도망치고 싶었어…….”

“그래, 그래. 그래도 잘 버텨 줬어. 정말, 많이 자랐구나.”

“……네가 견디고 있었으니까. 내가 먼저 도망쳤다가는……너를 볼 면목이 없었으니까.”

“……고생했구나, 정말로.”

“미안해……미안해요……그 날, 내가 조금만 자제했어야 하는 건데…….”

“괜찮아. 네 잘못이 아냐. 네 성격을 알면서도 가만히 놔둔 내 실수였지.”

“이 바보야……차라리 화를 내란 말이야……흑, 으아앙!!”

 

제대로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거기까지였다.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의 옆에 앉아서 오열을 쏟아냈다.

그는 환자복을 입은 자신의 옆구리에 머리를 박고, 연신 눈물 콧물을 쏟아내는 내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으며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잠시 후, 내가 어느 정도 진정되자 그는 자신의 옆에 있던 티슈를 집어 내게 내밀었다. 나는 티슈 몇 장을 뽑아 코를 풀고 눈물을 닦아냈다.

 

“우우……나한테서 이렇게 눈물을 뽑아낼 줄이야, 역시 제법이야.”

“음, 개인적으론 이거 녹화를 못 한게 무척 아쉬운데.”

“무사히 네 자리로 돌아오면 한번 더 해 줄게. 그나저나……돌아올 수 있는 거지?”

“물론, 반드시 돌아갈 거야. 네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빙그레, 예의 그 웃음을 지으며 말하는 그의 모습에 나는 조금이지만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어디 가면 안 돼. 네가 없으면 난 더 이상 아이돌로 남을 수 없으니까. 내가 누구 때문에 아이돌을 계속 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당연히 팬들 때문 아니야?”

“삐삐~ 40점입니다.”

“야, 아이돌. 배점 이상하잖아.”

“몰~라~.”

 

울음을 터뜨린 지 얼마나 되었다고, 눈꺼풀에 붙은 눈물이 차마 마르기도 전에 나는 그와 서로를 마주보며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그것은 일상의 무게를 알기 전에는 몰랐던 것. 너무나도 반가운 평소의 회화였다.

 

 

“어이쿠, 벌써 시간 다 됐네.”

“뭐야, 일반 병동인데도 제한시간 있어?”

“곧 회진시간이거든.”

 

중환자실에서 나왔다지만 여전히 관리대상이었기 때문인지 프로듀서의 면회시간은 그다지 길지 않았다. 쏜살처럼 지나가버린 시간에 아쉬워하며 돌아갈 채비를 하던 나에게 프로듀서가 말했다.

 

“……야, 시키. 만약에 내가 여기서 나가면 말이다. 네가 지긋지긋하게 하던 그 실종이란 걸 같이 해보고 싶어.”

“오? 뭐야, 하루 종일 여기에 있더니 따분해지기라도 한 건가?”

“하하, 아니라곤 못 하겠군.”

 

가볍게 웃음기 섞인 한숨을 내쉬는 그의 모습에서 나는 아주 조그마한 위화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 위화감은 너무나도 작아서, 나는 곧 그것을 별 것 아니라 생각하고 덮어 버렸다.

 

“좋아, 그럼 기대하고 있어. 이 실종 전문가님께서 확실하게 끌고 사라져 줄 테니까.”

“그래, 기대 안 하고 기다리고 있을게.”

 

그 대화를 마지막으로 몸을 돌려 병실을 나가려던 나를 그가 다시 한번 불러 세웠다.

 

“시키.”

“응?”

“……열심히 해. 다른 사람들 폐 끼치지 말고.”

“걱정 마. 내가 누구인데?”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곧바로 손을 흔들면서 그의 병실을 나왔다.

다만, 한 가지 신경이 쓰이는 것이 있다면. 병실을 나오기 직전 언뜻 마주친 그의 눈빛이 몹시 신경이 쓰였다.

 

‘뭐지……? 언젠가 본 적이 있는 눈빛이었는데……’

 

 

 

******

 

 

 

다음 날, 크리스마스 당일.

 

 

“고마워! 다들 사랑해! 라뷰~!”

 

화끈한 앵콜까지 포함한 라이브를 마치고, 한껏 달아오른 몸의 열기를 식힐 새도 없이 나는 곧장 대기실로 향했다. 면회시간은 이미 넘겼지만 전화라면 할 수 있을 것이다.

무슨 말을 하지? ‘네 마지막 선물은 무척이나 멋진 선물이었구나’라던가, 무슨 폼 나는 대사 없나?

전화로 무슨 이야기를 할까를 고민하며 대기실에 도착한 나는 대기실의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치히로! 전화 좀……?”

 

대기실로 들어선 그 순간, 나를 짓누르는 무거운 공기가 느껴졌다. 나는 말을 하려다 말고 입을 벌린 채 가만히 제자리에 멈춰 섰다. 직관적으로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나는 한 걸음, 방 안으로 들어가며 대기실 안을 돌아보았다. 침울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치히로와 동료들의 얼굴을 바라본 바로 그 순간, 머리가 띵해지며 서늘한 무언가가 내 목덜미를 훑고 지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몇 번의 시도 끝에, 마침내 나는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뭐야, 분위기 왜 이래? 사고라도 났어?”

“…….”

 

내 말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조용히 고개를 돌려 서로를 바라보았다. 마침내 창백한 얼굴로 앉아 있던 치히로가 자리에서 일어나, 비틀거리는 걸음걸이로 나를 향해 다가왔다. 조금 전까지 울고 있던 것인지, 쉰 목소리로 말하는 그녀의 두 눈은 빨갛게 부어올라 있었다.

 

“시키 양, 제 이야기 잘 들어요…….”

“응? 왜, 왜 그러는데?”

“프로듀서 씨가…….”

 

가늘게 떨리던 치히로의 입술이 하나씩 단어를 내뱉기 시작했다. 그것을 듣는 내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다.

 

 

 

“하아, 하아……!”

 

택시가 병원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나는 요금을 내는 미유를 남겨두고 굴러 떨어지듯 택시에서 내려 병원의 입구를 향해 내달렸다. 한밤 중의 병원 입구에 내 신발소리가 거세게 울려 퍼졌다.

이미 연락이 되어 있었던 모양인지, 당직 스테이션 앞에 도착하자 당직 명찰을 달고 있던 간호사가 전화기를 들어 어딘가로 연락을 했다. 잠시 후, 택시비를 내느라 늦었던 미유가 내 뒤를 따라 스테이션 앞에 도착할 무렵이 되자 간호사 한 사람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왔다. 나도 몇 번인가 본 적 있는 중환자실을 담당하는 간호사였다.

 

“저, 저기! 그러니까, 그게…….”

“……따라오세요.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뭐라 말을 해야 하는데 좀처럼 말이 나오질 않았다. 무겁게 가라앉은 그녀의 목소리에서 나는 무언가 불길함을 느꼈다. 그것은 마치 뱀처럼 내 발밑에서 스멀스멀 기어 올라와 내 목을 옥죄는 듯한 느낌이었다.

 

 

간호사가 발걸음을 멈춘 곳은 언젠가 와 본 적이 있던 곳인 중환자실이었다.

뭐야, 왜 여기로 온 거야? 그는 지금 일반 병동에 있잖아?

나는 마른 침을 삼켰다. 병실의 문이 열렸다. 은은한 수면등이 켜진 병실 안에서 우리를 맞이한 것은 새하얀 포단을 뒤집어 씌운 환자용 침대였다. 침대를 뒤덮은 포단 아래로 희미하게나마 사람의 실루엣이 보이는 듯 했다. 이미 자신들의 임무를 다한 것인지, 침대 주위에 걸려 있던 수많은 모니터링 장비는 검은 화면만을 띄운 채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거짓말이지?”

 

나는 침대를 향해 한 걸음 다가갔다. 시야가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머릿속을 맴돌던 생각들이 침대를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갈 때마다 뭉터기로 사라져갔다. 침대의 바로 옆에 도착한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포단의 끝자락을 집어 들었다. 포단 아래 가려져 있던 것은, 내가 가장 보고 싶었던 것.

 

“야……아무데도 가지 않겠다고 했잖아……돌아오겠다고 했잖아…….”

 

덜덜 떨리는 손으로 포단을 움켜쥐고 있던 그 때, 등 뒤에서 사망선고를 하는 의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12월 25일, 21시 40분에 패혈증에 의한 급성 심장마비로 사망하셨습니다. 저희로서는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했습니다만, 감염이 너무 급작스럽게 진행되어……정말로 죄송합니다.”

 

무거운 목소리로 침울하게 이야기를 하는 의사에게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도 분명 최선을 다 했을 테니까. 어느샌가 손의 떨림은 가라앉아 있었다. 머릿속은 잔뜩 먹구름이 낀 것 처럼,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손을 뻗어, 남아 있던 한 줌의 생기마저 사라져버린 그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너는 아마 모를 거야. 네 심장이 멈추어버린 이 날, 내 또 다른 심장도 함께 멈추어 버렸다는 사실을.

 

 


 

 

 

 

패혈증에 의한 급성 심장마비(Cardiac Arrest).

그를 죽인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한때는 스스로 박동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약해졌던 그의 심장이 제대로 회복되기 시작하면서 신체 구석구석에 들어 있던 독소들이 그의 심장을 공격한 것이 원인이었다.

 

3일 뒤, 병실에서 영안실로 옮겨진 프로듀서의 시신은 간단한 장례식을 마치고 곧바로 화장터로 들어갔다. 연락이 닿는 가족이 단 한 사람도 없었던 탓에 그의 장례식은 사무소에 소속된 아이돌들과 동료들만이 참가한 무척 작은 규모로 진행되었다.

병실에 들어와 그의 죽음을 가장 먼저 확인한 시키는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 단 한 순간도 자리를 벗어나지 않고 그의 옆을 지켰다. 병실에서도, 장례식장에서도, 화장터에서도. 사무소의 동료들이 그녀를 어떻게든 움직이려 해 보았지만, 그녀는 마치 망부석처럼 그의 옆을 지키고 있었다. 그녀가 자리를 털고 일어난 것은, 어지간한 성인 남성보다도 건장했던 그녀의 프로듀서가 그녀의 머리보다 조금 큰 항아리 안에 담겼을 때였다.

화장을 마치고, 유골함 안에 담긴 프로듀서의 유해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 이야기가 오갈 때 시키가 선뜻 손을 들었다.

 

“내가 맡겠어. 나에게 줘.”

 

주위 사람들은 모두 난색을 표했지만 그녀는 막무가내로 그의 유골함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갔다.

병원과 장례식장에서 머물며 며칠째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식사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던 그녀의 몰골은 그야말로 처참했지만, 유골함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던 그녀의 표정만큼은 어쩐지 무척이나 만족스러워 보였다.

그 날 이후, 사무소에 출근한 시키는 마치 시체처럼 사무소 곳곳을 돌아다녔다. 생기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눈으로, 마치 좀비처럼 휘청거리며 사무소 여기저기를 들쑤시고 다니는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던 사장은 고민 끝에 그녀에게 2주간의 휴가를 내렸다. 대성황으로 끝난 크리스마스 라이브의 포상에 더해, 가까운 사람의 상(喪)으로 마음을 다잡을 시간이 필요하다는 명목의 휴가였다.

휴가를 받기가 무섭게 자신의 집에 틀어박힌 시키는 그대로 동료들과의 연락을 끊었다. 그런 그녀의 행동에, 사무실의 동료들은 다소 걱정을 할 뿐 그다지 심각하다는 생각은 갖고 있지 않았다. 이전에도 시키는 뭔가 일이 있을 때면 종종 사라졌다가 다시 모습을 나타내곤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와 종종 함께 활동을 하곤 했던 슈코와 프레데리카는 무언가를 눈치채기라도 한 듯 그녀의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거나, 그녀의 집을 찾아가거나 하며 그녀의 안부를 확인하고자 애썼다.

결과적으로는 모두 헛된 일이었지만.

 

 

 


 

 

 

“하아~.”

 

다리 가운데에 서서, 난간에 몸을 기대어 한숨을 토해냈다. 한겨울의 싸늘한 공기로 새하얀 한숨이 퍼져나가더니 산산이 부서졌다. 이제는 흔적도 남지 않은 한숨을 바라보며 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2주의 휴가. 평소였다면 밀린 논문을 읽거나, 생각해둔 실험을 하거나, 그의 집으로 쳐들어가거나, 사무실에서 귀여운 아이들의 냄새를 만끽하며 시간을 보냈을 터이지만, 지금은 전혀 그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아무것도 할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심장이 멈춰버린 것처럼 내 몸이 멈춰버린 것만 같았다. 그의 장례식이 끝나고, 그를 완전히 떠나 보낸 뒤 며칠째 내가 한 것이라고는 그저 터덜터덜, 바다 위에 떠 있는 해파리처럼 정처없이 발 가는 대로 돌아다니는 것이 전부였다. 

 

그 날도 나는 발이 닿는 대로 앞으로, 앞으로 걷기만을 반복했다. 고개를 숙인 채, 발 앞만을 바라보며 걸음을 옮기던 나는 ‘까악’하고 울려퍼지는 까마귀의 울음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여기는……?”

 

정신을 차린 나는 주위를 둘러보었다. 내가 서 있던 곳은 공원의 입구였다. 사람 머리통만한 어마어마한 크기의 까마귀들이 여기저기에 앉아 자신들의 식욕을 게걸스럽게 채우고 있는 을씨년스런 공원. 내 기억 속에는 추억의 장소 중 하나로 남아 있는 곳이었다.

아이돌이 되어 처음으로 참가한 오디션에서, 나는 싫증이 난 나머지 내 차례가 돌아오기도 전에 곧바로 도망을 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알고 찾은 것인지, 그는 땀투성이가 되어서도 결국에는 나를 찾아냈다.

 

“냐하핫, 그래. 생각났어. 그 때, 너는 다짜고짜 내 멱살을 움켜쥐었지. 갓 데뷔한 담당 아이돌의 멱살을.”

 

그 때의 대화는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언제까지 어리광을 부릴 거야?”

“어리광이 아니야. 그냥 사라지고 싶었을 뿐인걸.”

“그게 어리광이란 거다. 너, 매번 흔적을 남기잖아? 내가 너를 따라갈 수 있도록. 누군가가 너를 찾을 수 있도록.”

“냐하핫, 그 편이 네가 재미있지 않아?”

“정신 차려. 지금의 넌 프로야. 과학자였던 너와는 다르다고. 싫증이 난다고, 흥미가 떨어졌다고 멋대로 포기할 수 있는 게 아니란 말이야. 너도 알면서 이 길을 선택한 거잖아?”

“……그럼, 너도 싫은데 억지로 하고 있어?”

“뭘?”

“내 담당……하는 거 말이야.”

 

그 때, 너는 이렇게 말했었지.

 

“멍청아, 말이 되는 소릴 해라. 억지로 하는 거였으면 이렇게 죽자사자 안 찾아다녔어. 난 누구 좋다고 쫓아다니는 성격은 아니지만, 나 좋다고 따라온 사람 걷어차는 사람도 아니거든?”

 

이제서야 말하는 거지만, 그 이야기, 솔직히 말해서 무척 고마웠어. 지금까지 내 편이라곤 한 사람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드디어 나를 바라봐주는 사람이 생긴 것 같아서 너무 행복했어. 하지만 이런 말을 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어버렸구나. 너를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이제는 없는 너에게 나는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돌아가자.”

 

이리저리 떠도는 것도 이제는 재미가 없어졌다. 나는 발걸음을 돌렸다.

 

 

 

집으로 돌아와서 병원에서 받아 온 커다란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상자 안에 든 것은 이제는 주인을 잃어버린 그의 소지품들이었다.

나는 소지품들 가운데 여전히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는 그의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소유자의 사망신고가 들어갔기 때문인지, 배터리가 부족하다는 경고창이 떠 있는 휴대전화의 상단에는 통신권 이탈이라는 문구가 나타나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휴대전화를 이리저리 만져보던 나는 문득 임시보관으로 처리되어 있는 메일이 한 통 남아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뭐지?”

 

예약발신이 걸려 있던 그 메일은 발신 버튼을 누르기 전 황급히 종료했기 때문인지 발신되지 않고 그대로 임시 보관함에 처박혀 있었다. 나는 곧바로 휴대전화를 조작해 메일의 내용을 확인했다. 타이틀은 공란으로 비어 있었고, 내용에는 짤막하게 한 단어가 적혀 있었다.

 

Date: 20xx/12/25 21:20

Title:

내용: 미안

 

의사에게서 전해들은 그의 사망시각으로부터 20분을 남겨둔 시각이었다. 자신의 최후를 직감하고 남긴 것일까, 언제나 맞춤법을 철두철미하게 지키던 그였지만 그 메일에는 마침표조차도 없었다.

대체 누구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일까? 나는 스크롤을 내려 수신자를 확인했다.

 

수신인: 이치노세 시키.

 

그것은 나에게 보내는 그의 마지막 전언이었다.

나는 문득 그의 살아생전 마지막 모습을 떠올렸다. ‘열심히 해’라며 나를 바라보던 그의 눈빛을 떠올렸다.

언젠가 본 적이 있던 눈빛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디서 본 것이었는지를 그제서야 확실하게 기억할 수 있었다. 그것은, 절벽 아래에서 죽어가던 그가 나를 바라보던 것과 같은 눈빛이었다.

그래, 그 때도 너는 나를 생각하고 있었구나.

나를 원망하거나 미워한 게 아니었어.

나는 내 손에 들려 있는 휴대전화를 바라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돌이켜보면, 너는 나에게 참 많은 것을 해 주었지.

천재소녀였던 이치노세 시키는 스스로 태어났지만, 아이돌인 이치노세 시키는 네가 만들어 주었기에 탄생할 수 있었어.

나는 너에게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받기만 했지.

지금까지 너를 위해서 내가 해 준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데 말이야.

하지만, 드디어 너를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걸 찾은 것 같아.

 

-만약에 여기서 나가게 된다면 말이야. 네가 지긋지긋하게 하던 실종이란 걸 같이 해보고 싶은걸.

 

나는 그의 살아생전 마지막 부탁을 떠올렸다. 그것은 늘 내 고집이 섞인 어리광을 받아 주던 남자의 처음이자 마지막 부탁이었다.

 

“그래……우리 함께 사라져버리자. 심장이 멈춰 죽어버린 사람은 세상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으니까.”

 

 

 


 

 

 

2주간의 휴가가 끝나고도 이치노세 시키는 사무소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있었다. 연락을 받는 일도 없었고, 연락이 오는 일도 없었다. 그 정도로 그녀에게는 충격이 컸던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려는 듯, 시키는 자신의 집에 틀어박혀 좀처럼 나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회사 입장에서 그녀를 그대로 놔 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제까지는 그녀의 전 프로듀서의 안배에 따라 그녀를 놔두었지만, 이제 그녀의 담당 자리가 공석이 된 이상 새로운 프로듀서와 함께 그녀의 새로운 출발을 준비해야만 했다. 이치노세 시키에게는 그 정도의 가치가 있었던 것이다.

 

며칠 뒤, 상부의 지시에 따라 치히로는 꺼림직한 마음을 억누르며 시키의 집으로 향했다. 치히로의 옆에는 그녀와 함께 프로듀서의 마지막을 보았던 미유가 동행하고 있었다. 그녀의 집에 도착한 두 사람은 초인종을 눌렀다. 반응이 없었다. 당연히 전화도 받지 않았다.

 

“시키 양? 안에 없어요? 저 치히로에요!”

 

미유와 눈빛을 교환한 뒤 치히로는 혹시나 싶어 현관문의 문고리를 돌렸다. 그러자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맥없이 현관문이 열렸다. 며칠이나 비어 있었던 것일까. 겨울의 한기가 새어 나오는, 텅 빈 집 안으로 들어간 치히로와 미유는 이내 부엌의 식탁 위에서 병원의 로고가 찍혀 있는 상자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상자는…….”

“……프로듀서 씨의 유해가 들어있던 상자네요.”

 

침을 꿀꺽 삼키고, 마음의 각오를 다진 치히로는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었다. 뭔가가 들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그들의 생각과 달리, 상자 안에 든 것은 짤막한 문구가 적혀 있는 쪽지 하나 뿐이었다. 치히로는 쪽지를 집어 들어 그 내용을 확인했다.

 

 

Death Sentence(사망 선고): Cardiac Arrest(심장 마비).

심장이 멈추면 사람은 죽는다.

죽어버린 사람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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