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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카『펜은 칼보다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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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5-28, 2017 16:23에 작성됨.

펜은 칼보다 강하다.

흔히 쓰이는 관용구로 이 글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치하야쨩은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제 친구이자 동료이자 따라잡고 싶었던 목표이자 동경하던 가수였던 사람입니다. 그녀는 죽었습니다. 자살했습니다. 그 사건 이후 누구와도 만나길 거부하던 그녀는 자신의 자취방에서 목을 메고 말았습니다.

휴대폰에서 자신과 유우에 관한 내용이 담긴 트위터와 각종 뉴스기사를 본 흔적이 가득했다고 합니다. 검색 기록 또한 유우와 치하야쨩 자신에 대한 내용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오직 혼자서,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읽고 또 읽으며 곱씹은 것입니다.

치하야쨩의 시체가 화장되는 동안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경에 따르면 최초의 살인자인 카인은 자신의 동생을 죽이는 것에 돌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최초의 살인 이후 인류 발전의 역사와 함께 무기는 언제나 더 빨리, 더 멀리서, 더 간결하게 상대를 죽일 수 있는 방향으로 발전해왔습니다. 주먹, 돌, 곤봉, 창, 활, 총을 지나 마침내는 미사일에 이르렀습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왜 이런 식으로 발전되어 온 것일까요?

상대를 더욱 효과적으로 죽이기 위해서? 물론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사실 사람들은, 살상 효과보다는 자기가 무언가를 죽인다는 것을 체감하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닐까요?

저는 사람을 죽여본 적이 없습니다.

앞으로도 없을 겁니다.

사람을 죽인다는 상상만으로도 머리가 아프고 속이 메스꺼우니까요.

하지만 만약 어떤 이유로든 제가 사람을 죽이게 된다면, 그 사람이 죽을 때까지 내지르는 비명이, 손끝의 감각이 제가 사람을 죽이고 있다는 것을 계속해서 주지시켜 줄 것입니다.

그건 분명 무척이나 괴로운 일일 겁니다.

만약 총이라면 어떨까요? 방아쇠를 당기기만 하면 상대는 쓰러집니다. 한 사람이 죽는 것은 이렇게나 간단합니다. 제게 한 것은 그저 방아쇠를 당기기만 했을 뿐이니까요.

미사일은 어떨까요? 그럴 일은 없겠지만 제가 어떤 군 사령부의 지도자가 되었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저는 지도를 바라봅니다. 지도를 바라보다가 쿠키를 먹고 커피를 한 잔 마십니다. 눈을 감고 커피향을 음미하다 눈을 뜰겁니다. 그리고는 눈 앞에 있는 버튼을 살짝 누를 겁니다. 그리고 나면 수백, 수천, 누군가의 아버지, 사랑스러운 딸, 혹은 형제가 단숨에 사라지는 악의가 어딘가를 향합니다.

그리고 죽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게 스스로 사람을 죽인다는 자각이 있을까요? 없지는 않을 거에요. 그치만 그 생생함은, 현장감은? 무게감은 어떨까요? 정말로 제가 사람을 죽인다는 실감이 들까요?

죽은 사람들은 그저 수치로만 다가올 겁니다. 201X년, XX월, XX일, XX:XX:XX. XX지역에 미사일 발사. 사상자 6,217명. 서류철에 보관된 한 없이 가벼운 종이뭉치위에 인쇄된 문장으로 말입니다. 거기엔 그 사람이 무엇을 좋아했는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무슨 생각을 했는지가 없습니다.

있는 거라곤 그저 차가운 정보의 나열.

그만큼 죄책감은 덜 할 겁니다.

하지만 미사일의 발명 이후 무기의 발전은 멈추었습니다. 도태되었습니다.

왜일까요?

무기는 너무나도 발전해버렸습니다. 누구 하나라도 이 무기를 사용했다간 양쪽이 파멸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그래서 최고의 무기는 사실상 사용할 수 없는 애물단지가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원했습니다.

조금 더 강한 무기를, 그리고 조금 더 죄책감이 덜한 무기를.

그래서 우리는 여지껏 없었던 무시무시한 무기를 손에 넣어버렸습니다.

네, 바로 인터넷이라는 이름의 무기입니다.

이건 제가 아마존의 오지에 있더라도, 뉴욕의 카페에서도, 혹은 도쿄 어딘가의 조그마한 제 방에 있더라도. 상대방이 어디에 있든 간에, 장소와 시간을 가리지 않고 실시간으로 공격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이 무시무시한 성능의 무기는 누구나 손에 쥘 수 있고 아무렇지 않게 휘두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악플을 달거나 상대를 조롱한다해서 그 사람이 받는 상처가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이 무기는, 칼로는 입힐 수 없는 더욱 깊숙한 곳에, 사람의 정신이나 마음에 상처를 남깁니다.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치료할 수도 없습니다. 죄를 물을 수도 없습니다. 만약 그로인해 상대가 힘들어한다면 힘들어 하는 모습을 비웃습니다. 마치 곤충이나 작은 동물을 괴롭히는 어린아이처럼, 즐거움에 취해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릅니다. 누군가를 상처입히고 있다는 자각이 없는 겁니다.

그저 견디는 수밖에 없습니다. 견디고, 견디고, 또 견디는 겁니다.

그리고 마침내 더는 견디지 못하게 된 사람은...

치하야쨩은... 죽고 만 겁니다.

치하야쨩은 죽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그 사실이 너무 슬프고 화가 납니다.

정말로 펜이 총보다 강하다면, 펜으로 이루어진 범죄는 총으로 이루어진 범죄보다 엄하게 처벌해야 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치하야쨩을 죽인 사람들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습니다.

치하야쨩의 슬픈 과거를 폭로한 악덕기자는 지금도 멀쩡히 잡지에 기사를 쓰며 지내고 있습니다. 치하야쨩을 두고 떠들던 네티즌들은 고작 이런 일로 죽어버렸다며 치하야쨩의 멘탈이 약하다며 비웃고 있습니다.

더 이상 치하야쨩을 볼 수 없는데도, 다시는 저를 보고 웃어주지도 않고 만날 수 없는데도, 그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묻고 싶습니다. 당신들이 무슨 짓을 저지른진 알고 있냐고.
저는 묻고 싶습니다. 당신들이 하고 있는 일의 의미를 알고 있냐고.
지금 이 순간에도 치하야쨩의 죽음을 두고 비웃고 조롱하며 가쉽거리로 삼고있는 그들이 미워서, 너무나도 미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정말로 밉습니다.

치하야쨩이 보고 싶습니다...

 

 

예전에 써서 765갤에 올렸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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