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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블리아 X 데레마스] 아이돌 CAERULA 사건수첩 :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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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5-27, 2017 17:48에 작성됨.

제2회 어나스테에 출품할 예정인 소설 '아이돌 CAERULA 사건수첩'의 인터넷 연재분입니다. (총 3장 중 제1장 도입부까지 어나스테 전에 인터넷 공개 예정이며, 어나스테 종료 후에 나머지를 공개할지 말지 결정할 예정입니다.)

 

지난 달 이맘때 올렸던 공개본에서 예정되어 있던 스토리를 완전히 갈아엎어버리고, 프롤로그부터 다시 쓰게 되어 글을 다시 올립니다.

 

※ 기존에 예정했던 비블리아 고서당 제7권 분량 스포일러를 싹 빼고 스토리를 다시 썼으므로, 스포일러를 걱정해 읽지 않으신 분들도 읽으셔도 괜찮습니다.

 

수요조사도 진행중이니 많이 참여해주세요!

☞ 수요조사는 이쪽


[오리지널 주의]

본 소설에는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7권 이후 내용 및 '아이돌마스터 신데렐라 걸즈'에 대한 글쟁이의 독자적인 설정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이돌 CAERULA 사건수첩

~시오리코 씨와 푸른 악단의 수수께끼~

 

프롤로그

모리스 마테를링크 『파랑새』 ・ 1

 

수레 국화처럼 푸르고, 수정처럼 맑은 저 먼 바다 속은 매우 깊다. 그곳은 헤아릴 수 없이 깊어서 아무리 긴 닻줄을 풀어도 바닥에 닿지 않으며 세상에 있는 교회 종탑을 모두 포개놓아도 모자랄 정도이다.

 

시즈오카 현 아타미 시는 바로 그런 바다에 접해있다. 1500년 전 바다에서 뜨거운 물이 솟아나왔다고 하여 ‘뜨거운 바다(熱海)’라는 이름이 붙은 이 도시는 온천으로 유명해졌고, 지금까지도 시라하마, 벳푸와 함께 일본 3대 온천의 도시로 꼽혀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문인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오자키 고요는 이곳에 있는 별장 기운가쿠에서 『황금야차』를 썼으며, 다자이 오사무 역시 아타미에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달려라 메로스』를 썼다고 전해진다.

 

그 온천과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언덕배기에서 니노미야 아스카는 조부와 마주앉아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막 입춘을 지난 늦겨울의 찬바람이 얼굴을 스쳤지만, 두사람 모두 신경쓰지 않았다.

 

니노미야 아스카. 올해 막 생일을 넘긴 15세. 짙은 금빛으로 물들인 단발머리가 인상적인 이 소녀는 도쿄의 유명 프로덕션에 소속된 아이돌이다. 작년 이맘때 아타미를 들른 프로듀서에게 스카우트되어 지난 가을에 솔로앨범을 내며 데뷔해 한창 인기를 올리고 있다.

 

아이돌을 시작한 뒤로는 프로덕션 기숙사에서 살게 되어 학교도 도쿄로 옮겼지만, 주말에는 가끔 이렇게 집으로 돌아와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프로덕션의 다른 아이돌과도 친해지기는 했지만, 역시 집만큼 마음 편한 곳은 없었다. 특히 이렇게 조부와 마주앉아 책을 읽을 때면 머리 아픈 일도 전부 잊어버릴 수 있었다.

 

바람에 날린 꽃잎 한 장이 책장 사이로 떨어졌다. 일본에서 가장 먼저 핀다는 아타미 벚꽃이지만, 올해는 겨울이 유독 추웠던 탓에 2월 중순이 되어서야 막 개화를 시작한 참이었다.

 

“얘, 아스카.”

“응, 할아버지.”

 

조부의 부름에 아스카는 책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들었다.

 

“넌 말이다,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니?”

“그야 행복하고말고. 할아버지와 이렇게 앉아있는 시간이 행복하지 않은 적은 없었어.”

 

아스카의 대답에 조부는 껄껄 웃었다.

 

“넌 항상 그렇게 말했었지. 할애비 말은, 네 삶을 돌아봤을 때 말이다.”

 

아스카는 흘끗 조부가 읽던 책의 표지를 살폈다. 표지에 박힌 『파랑새』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뭐야, 『파랑새』 이야기인가. 그래도 대답은 같아. 좋아하는 일을 찾았고, 좋은 동료들도 만났고, 그 덕에 지금은 아이돌 경제의 중심을 향해 걸어가고 있어. 혹자는 세상에 너무 일찍 내던져졌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내 나이에 이런 축복을 받은 사람은 결코 많지 않겠지. 감사할 따름이야.”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조부는 여느 또래의 아이들과는 다른 어조로 대답하는 손녀를 보며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부턴가 아스카는 다른 아이들과 다른 표현을 쓰기 시작했다. 그런 아스카가 아이돌이 되어서도 평소의 표현을 그대로 쓰자, 젊은 세대들은 이런 아스카를 가리켜 ‘중2병’이라고 했다. 사춘기 청소년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자기를 드러내기 위한 열망의 표출, 어른이 되고 돌이켜보면 부끄럽기 이를 데 없지만 한번은 겪을 수밖에 없는 홍역과 같은 것을 앓는다는 뜻이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을 보면 그다지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조부는 아스카의 말버릇이 그런 정의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아스카가 이런 말버릇을 가지게 된 게 사춘기 때부터도 아니었다.

 

아스카의 조부에겐 젊어서부터 일본 각지에서 책을 모으는 취미가 있었다. 당장 파쇄기에 들어가도 이상할 것이 없는 찢어지기 직전의 책부터, 오랜 세월의 무게에도 불구하고 흠집하나 나지 않은 책까지. 개중에는 동화도 있었고, 소설과 시집도 있었고, 종종 과학이나 철학책에 관한 책도 있었다. 책장 한쪽을 채우기 시작한 책은 어느 순간 그의 방 둘레 전부를 덮었고, 집 전체를 덮었으며, 아예 서재용 건물을 따로 하나 지을 정도가 되었다. 소금기 가득한 바닷바람이 날아오는 아타미였으니, 그렇게 따로 서재 건물을 지어 환경을 조절해주는 게 책을 위해서 더 나은 선택이기도 했다.

 

아들이 생기고 또 손녀가 생겼을 때, 그는 자신이 모아뒀던 책 중 몇 권을 꺼내 잠자리에서 읽어주고는 했다. 아들 녀석은 책을 얼마 읽어주기도 전에 잠들어버리기 일쑤였는데, 30년이 지나 만난 손녀의 반응은 달랐다. 들고온 책을 전부 읽어줬는데도 또 다른 이야기, 또 다른 이야기를 요구했다. 서너 시간 동안이나 즉석에서 이야기를 만들어 아이들에게 들려줬다는 찰스 럿위지 도지슨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글을 읽을 수 있게 된 뒤로, 아스카는 아예 조부의 서재에 드나들기 시작했다. 동년배 아이들이 책을 찢고 책에 색칠을 하면서 놀 때, 아스카는 꼭 두꺼운 책을 들고 와서 한자가 많다고 칭얼대고는 했다. 두꺼운 책에는 그만큼 많은 이야기가 들어있을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안데르센 동화전집』 같은 것을 들고 왔을 때는 제대로 된 판단이었지만, 대개 그런 책들은 철학 서적이었으니 어린 아이가 읽기엔 무리가 있는 게 당연했다. 그럴 땐 그가 책을 제자리에 꽂아두고 다른 적당한 책을 꺼내주곤 했다.

 

그리고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스카는 아예 사전을 들고 서재에 눌러앉았다. 이때쯤엔 읽어줄만한 동화는 물론이고 청소년을 위한 소설도 바닥난 뒤였기 때문에 아스카는 점차 어려운 책으로 손을 뻗기 시작했다.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해도 글을 읽는다는 행위 자체를 하나의 놀이로 생각한 것인지, 다른 아이들이 바닷가에서 뛰어놀 때에도 아스카의 독서시간은 늘어만 갔다.

 

아스카가 쓰는 표현이 또래 아이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가족들이 인지한 것은 바로 그 무렵이었다. 분명 유아어를 쓸 만한 나이임에도 어른들도 잘 쓰지 않는 한자어가 아스카의 입에서 점점 늘어갔다. 쓰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소리글자인 히라가나로 써도 될 표현을 뜻글자인 한자로 쓰는 일은 새삼스럽지도 않을 정도였고, 종종 한시에서나 볼법한 한자가 아스카의 글에서 나오는 일도 있었다. 국어 시간에 ‘아아’라고 쓴다는 것을 ‘오호통재(嗚呼痛哉)’의 嗚呼라고 썼다가 담임교사에게서 무슨 뜻인지 알고 썼냐는 질문을 받았던 일화는 한동안 같은 반 학부모들의 얘깃거리가 되기도 했다.

아스카의 양친이 아스카로 하여금 다른 아이들과 비슷한 말을 쓰도록 가르치려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쓰는 표현이 이질적이라는 것을 구실삼아 따돌림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걱정 또한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아스카에게 생긴 ‘책에서 봤던 표현들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인식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었다. 더구나 주변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아스카는 아직 어린데 어려운 말을 아는구나’라며 칭찬을 해주기까지 했으니,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생이 되도록 아스카의 표현이 바뀌는 일은 없었다. 그나마 아스카 특유의 표현이 따돌림의 이유보다 또래의 동경의 대상 비슷한 게 되었다는 점은 가족들에게 있어 다행스런 일이었다.

 

그런 아스카를 조금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보는 아스카의 양친과 달리, 조부는 계속해서 책을 모으며 아스카와 함께 읽었다. 피붙이 중에 책을 나눌 사람이 있다는 게 즐거워서인지, 아니면 그저 손녀와 함께 있는 것이 즐거워서인지는 그 스스로도 답을 찾지 못했다. 단지 이렇게 아스카와 함께 바다를 내려다보며 책을 읽고 있노라면 혼자 읽을 때보다 마음이 평온해진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그렇지만 이제 그럴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아스카의 조부는 느끼고 있었다.

 

“있잖니, 아스카.”

“응.”

“할애비가 떠나면 말이다, 책을 처분하는 건 네가 맡아 주거라. 네가 갖고 싶은 책은 갖고, 그렇지 않은 책은 고서점에 넘겨주면 될 게야.”

“괜한 소리를.”

 

조부의 말에 아스카는 딱 잘라 답했다.

 

“삶과 죽음에 대해서 논하는 건 싫지 않지만, 그게 할아버지와 관계된 얘기라면 마음이 무거워지는데. 내일에 대한 믿음은 최소한으로 해두고, 오늘의 꽃을 취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Carpe diem, quam minimum credula postero. 호라티우스의 송시구나. 요즘 읽고 있니?”

“후미카 씨한테 추천받아서 말이야.”

“책을 좋아한다는 그 친구 말이구나. 책 이야기를 나눌 친구가 있는 건 즐거운 일이지.”

“나로선 범접하기 힘든 존재이지만.”

“목표로 꿈꿀 우상이 있다는 것 또한 행복 아니겠니.”

 

조부는 그렇게 말하며 슬며시 웃고는 다시 바다로 눈을 돌렸다.

 

“그래… 네게 책 친구도 챙겼으니, 이제는 정말 걱정하지 않고 떠날 수 있겠구나.”

“퍽 정정하면서 계속 존시 흉내를 낼 셈이야? 마지막 잎새는 고사하고, 떨어질 벚꽃잎도 아직 한참 남았는데.”

“아니, 아니란다. 요즘은 기력이 많이 쇠했어. 식사량도 꽤 줄었잖니. 아무래도 너희 할미를 다시 만날 날이 가까운 것 같아.”

 

아스카는 조부에게 살짝 원망의 눈초리를 보냈다. 칠순을 넘겨서도 멀쩡히 일본 이곳저곳을 다니던 분께서 대체 무슨 말을 하시는 건가.

 

“아스카, 네가 어릴 때 할애비가 이 『파랑새』를 읽어줬던 것 기억하니?”

“당연히 기억하지. 추억의 나라, 밤의 궁전, 숲속, 공동묘지, 행복의 정원, 미래의 나라, 어린 시절의 행복, 맑은 공기의 행복, 부모를 사랑하는 행복, 파란 하늘의 행복… 전부 기억해. 기억나지 않는 건 몇 번을 다시 읽어달라고 했었는지 정도겠군.”

 

조부가 들고 있는 책에 다시 아스카의 시선이 향했다. 모리스 마테를링크의 『파랑새』. 몽환적인 분위기 속에 마테를링크의 철학을 녹여내어 그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겨준 작품. 덕분에 지금까지도 주요 소재인 ‘파랑새’는 ‘행복’이라는 상징성을 갖게 되었고, 아스카가 아이돌로 데뷔하기 전에는 다른 프로덕션의 아이돌이 동명의 노래를 발표하기도 했었다.

 

“그래. 넌 이 책을 무척이나 좋아했단다. 할애비가 이 책을 좋아하는 만큼이나 말이야.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지. 쉬워보여도 어려운 극이고, 또 그만큼 많은 것이 담겨있으니 말이야. 그러니 할애비가 떠나더라도, 네가 이 책에서 배운 것만은 잊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계속해서 평소답지 않은 말을 이어가는 조부를 보며 아스카는 고개를 저었다. 거절의 뜻은 아니었다.

“정말이지… 계속 괜한 말을 한다니까. 앞으로도 계속 이 자리에서 함께 책을 읽을 건데 왜 자꾸만 자기 손으로 밤의 궁전의 잠긴 문을 열려 하는 거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아스카는 의자를 끌어 조부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는 의자에 앉아 책을 들지 않은 조부의 손을 꼭 잡았다.

 

“그래도, 그 뜻은 확실히 받았어. 이야기가 나온 김에 같이 복습을 해도 괜찮겠지?”

“그래, 그러자꾸나.”

 

해가 기울어 찬바람이 얼굴을 할퀴기 전까지, 두 사람은 오랜만에 『파랑새』를 같이 읽고, 그 안에 담긴 뜻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순간이 니노미야 아스카가 조부와 함께 책을 읽은 마지막 순간이었다. 아스카가 도쿄로 돌아가고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아스카 앞으로 부고가 날아들었다. 아스카와 함께 책을 읽던 그 자리에서, 할아버지가 『파랑새』를 품에 안은 채 잠들 듯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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