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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인의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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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5-21, 2017 00:17에 작성됨.

 

"으으음......"

 

나는 테이블에 놓여진 머그컵에 시선을 집중했다. 안에 담겨있는 액체는, 짙은 갈색보다도 훨씬 더 어두운 색깔. 홍차의 향보다는 조금 더 쌉싸름한, 특유의 향이 뜨거운 김을 타고 올라온다.

 

오늘 큰맘 먹고.....아니, 그정도까지는 아니지만.....그래도 조금 고민하면서 시켜본 이 물건의 정체는, 커피다. 그것도, 아메리칸-커피!

 

평소의 나하고는 그리 큰 인연이 있거나 하진 않은 마실 것. 보통 카페에 오거나 하면, 코코아나 밀크티 같은 걸 시키니까. 그런데도 왜 굳이 이것을 시켰냐고 한다면, 거기에는 눈물로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깊은 사연이......!

 

있다는 건 아니고, 실은 그냥 단순한 호기심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그게.....나랑 달리 내 친구는 커피를 자주 마시는 것 같았거든. 그래서, 이렇게 카페에서 커피를 시켜서 마셔보면 어떤 느낌일까 해서. 단순한 호기심 충족 말고도, 앞으로 이와 관련된 이야깃거리가 생길 것도 같으니 일석이조라고 해야할까나.

 

하여튼, 그래서 이 하루카 씨는 커피에 도전! 했다는 것입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커피를 접하지 않았다, 라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리 접한 적은 드문 이질적인 이 느낌. 이야~ 참을 수 없네요 이거.

 

자, 이제 하루카 선수는 어떻게 할까요!

 

어쩌긴 어찌나요, 이제 좀 식은 것 같으니 한 모금 들이켜봐야겠죠!

 

나는 마음 속으로 열띤 나레이션을 재생하면서 머그컵을 양손으로 감싸안았다. 음, 기분 좋을 정도의 온기가 느껴진다. 양 손바닥 가득 온기가 퍼질 때까지 약간 더 기다렸다가, 머그컵을 들었다. 그러고는 입가로 가져와서, 천천히, 조금씩 흘려넣는다.

 

홀짝.

 

"읏."

 

으앗, 아직 뜨겁다. 나는 서둘러 잔을 내려두고는, 한 손으로 입을 가렸다. 혀 끝에서 아픔이 슬며시 올라오는 걸 보니 데인 게 확실하다. 으으, 조금만 더 기다렸다가 마실 걸 그랬나. 지금와서 후회를 해보지만, 조금은 늦어버린 것 같았다. 이건 뭐 어쩔 수 없었다고 치고, 그래서 가장 중요한 커피의 감상은 어떠냐면.....

 

쓰다.

 

네, 역시 좀 쓰네요. 미리 설탕을 넣는 게 좋았을까. 카페 한구석에 비치된 슈가스틱이 절로 눈에 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러면 뭔가, 지는 것 같잖아. 치하야쨩만 하더라도 설탕, 넣지 않는 것 같아보였고. 역시 있는 그대로의 커피와 마주하지 않으면 안되는 거겠죠. 나는 컵 안의 온도를 가늠해보고는 다시 입가로 가져와, 살짝 기울였다.

 

음~ 이제 좀 마시기 적당한 온도가 된 것 같은데. 그렇다고 해도 씁쓸하다는 건, 변함 없지만. 절로 미간이 좁혀지는 쓴 맛에 나는 컵을 도로 내려놓았다. 컵 안에는 커피가 반절 넘게 남아있었다.

 

치하야쨩은 이런 걸 잘도 홀짝 홀짝 마시고 있던 거네. 이런 단맛도 부드러움도 느껴지지 않는 액체를, 잘도. 향은 좋지만. 머리 한구석에서 친구에 대한 감탄을 떠올리며, 커피를 마저 한 입 머금어본다. 으으,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 맛. 이런 거, 천천히 마셨다가는 계속 고통받을 게 뻔해. 차라리 단번에 전부 해치워버리는 게 낫겠지!

 

나는 잔을 또 한 번 내려놓고는 길게 심호흡 했다. 그러고는 이제 잔잔한 온기가 흐르는 잔을 양 손으로 부여잡았다.

 

"좋아, 그럼.....!"

 

꿀꺽꿀꺽꿀꺽!

 

나는 전장에 나서는 무사와도 같이 결의를 다지고는, 남은 커피를 단번에 벌컥벌컥 들이켰다.

 

툭.

 

적장, 물리쳤다! 나는 상쾌한 기분으로 빈 잔을 내려놓았다. 이걸로 커피 완전 정복이에요! 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첫 걸음은 확실히 밟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치하야쨩이 느끼는 감상을, 조금은 체험해볼 수 있었던 거라고. 즉, 그러니까......

 

쓰다.

 

아니, 이게 아닐 텐데. 치하야쨩이 느끼는 건. 그렇지만 쓰다. 입 안에 남은 씁쓸함이, 좀처럼 가시질 않는다. 정말, 치하야쨩은 이 쓴 걸 잘도 마시는 구나. 대체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는 걸까? 설마,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몰래 설탕을 추가한다던가? 아니, 이건 아니야. 언젠가 쭉 지켜봤을 때도 아무렇지도 않게 커피를 마셨는 걸. 음, 그럼 나와 달리 쓴맛도 달게 느껴지는 걸까? 미각세포가 완전히 다른 신인류!? 뭐야, 그건. 내가 생각한 것치고도 많이 좀 엉뚱한 것 같은데.

 

잠깐, 그러고보니 커피의 쓴맛조차 즐길 수 있으면 어른이라는 말이 있었지. 친구들한테도 많이 들었어. 그렇다는 건 치하야쨩, 어른이라는 거네에.....아직 코코아를 졸업하지 못한 나와는 아주 다르게.

 

나는 완전한 바닥을 보인 머그컵 안을 들여다보았다. 오늘은 어떻게든 전부 마셔버릴 수는 있었지만, 다음에 또 마시기에는 상당히 꺼려진다. 만약 또 도전하거나 한다면, 분명 달콤한 쿠키가 필요할 거야. 나는 아직도 쓴맛이 남아있는 혀를 굴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늘의 커피 체험은 결국, 씁쓸함만을 남기고 말았구나.

 

......

 

일줄 알았는데. 나는 유달리 두근거리는 가슴에 슬며시 한 손을 올렸다. 그 뿐만이 아니다. 등에는 식은 땀이 흐르고, 어쩐지 머리도 좀 아픈 것 같았다. 에, 뭐지. 어떻게 된 거지. 나는 비틀거리며 사무소의 소파 한 구석에 털퍽 주저 앉았다. 이상하다, 왜 이러지? 오늘 아침만 하더라도 아무 이상 없었는데. 어지러운 머리를 흔들며 사무소를 둘러보았다. 프로듀서 씨나 리츠코 씨는 물론이요, 심지어 코토리 씨조차 없는, 조용하디 조용한 오늘의 765 사무소.

 

어디보자, 지금 점심 시간이니까 아마 코토리 씨는 점심 드시러 나가신 거겠고, 프로듀서 씨는 마코토랑 히비키를, 리츠코 씨는 류구코마치를 서포트하러 가셨겠지. 다른 사람들도 각자 스케쥴에 맞춰서 이것저것......나는 머릿 속에 남아있는 정보와 화이트보드에 적혀있는 스케줄표를 어렵게 조합하며 사무소가 이렇게나 텅텅 빈 이유를 추측해보았다.

 

"음, 뭐야. 그런 거구나."

 

끄덕끄덕. 나는 점점 더 무거워지는 머리를 멋대로 끄덕이고는 소파에 푹 몸을 기댔다. 우와, 큰일났네 이거. 두근거림이 멈추지 않는다. 머리도 핑핑 도는 것 같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나는 한참 끙끙거리다가 이유를 겨우 도출해냈다.

 

아마, 아침에 마셨던 예의 아메리칸- 커피 때문이 아닐까. 아메리칸, 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엄청 썼으니까. 쓰니까, 그만큼 카페인도 잔뜩 들었지 않았을까. 그리고 카페인이 많다는 건, 그만큼 잠이 잘 안오고 두근두근거리고 머리 아프고 그렇다는 의미니까!

 

"어, 어, 어쩌지....."

 

아직 일까지는 여유가 있다. 조금 자면 나아지지 않을까, 해서 눈을 감아본다. 그렇지만 역시 잠이 오지 않는다. 한참 딴짓하고 싶은데 아주 무서운 선생님이 딱 감시하고 있는 느낌이라고 해야할까나. 오, 꽤 괜찮은 비유인데. 아니아니, 잠깐만. 그럴 생각할 때가 아니라니까. 앞으로의 일을 걱정해야한다고!

 

에, 어, 그러니까.....카페인, 이게 다 카페인 탓이니까 이것만 어떻게 하면 되겠지. 그런데, 그런데, 어떻게, 해야? 따로 카페인을 중화시키는 약 같은 게 있나? 그런 건 못 들어봤는데. 그, 그럼 어떻게 해야하는 거지? 모르겠어~~~!

 

한참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둥지둥거리고 있을 때였다.

 

끼이익.

 

문소리가 들려왔다. 누구? 정신없어하던 나는 머리 속에서 아는 사람들의 얼굴을 차례대로 떠올려보며 사무소로 들어온 사람이 누군지 확인했다. 조금 큰 키, 살짝 푸른 빛을 띄는 긴 머리칼. 전체적으로 슬렌더한 인상. 아, 그래. 치하야쨩이다.

 

"하, 하루카!?"

 

치하야쨩이 이쪽을 확인하고는 후다닥 급하게 달려왔다. 그러고는, 급하게 내 손을 강하게 부여잡았다. 에, 저기? 잠깐만?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나한테 치하야쨩은 높은 목소리로 물었다.

 

"어디 아파? 감기?"

"가, 감기.....?"

 

자기 입으로 한 번 더 되물어보고나서야 겨우 그 의미를 파악한 나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눈길을 거두지 않는 치하야쨩에게, 진짜 이유를 밝혔다.

 

"그게, 오늘 아침에 커피를 마셔봤는데 많이 쓰더라."

".....커피?"

"역시 아메리칸은 뭐가 다르긴 다르다고 해야할까.....아, 그래서 이게 아니라."

"그래서, 커피를 많이 마셔서 힘들다, 이 소리니?"

"응, 응."

 

머리 속에서 떠오르다 가라앉다를 반복하는 말들을 단박에 정리시킨 말에, 나는 격한 동감을 표시했다. 그러자 치하야쨩은 한숨을 내쉬고는 꼭 쥐었던 내 손을 천천히 풀어놓았다.

 

"평소에 잘 안 마시던 것 같은데 갑자기 왜? 얼마나 마셨길래 이러니."

"에헤헤, 그, 그냥, 한 번 도전해보고 싶어서......"

"그래서, 몇 잔이나?"

"한 잔. 그 이상은 마시려고 해도 못 마실 거야. 엄~청 썼으니까."

 

내 말에 치하야쨩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몇 번 갸웃거렸다. 그러고는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고는 다시 한 번 물었다.

 

"저기, 혹시 커피 시킬 때 샷은 얼마나 추가할 거냐는 말, 듣지 않았어?"

 

음.....들었던 것 같긴 한데. 나는 어지러운 머리에서 조각조각 떠오르는 기억들을 짜맞춰보았다. 그래, 처음 커피를 주문했을 때, 샷이라는 것을 추가할 수 있다고 해서, 한 두 개까지는 추가시켰던 기억이.....

 

"응. 잘은 모르겠지만, 투샷으로....."

"바보야....."

 

고개를 푹 숙인 치하야쨩에게서 이쪽을 나무라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뭐, 뭐지. 그 말에 담긴 자세한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웠던 나는 조심스럽게 치하야쨩을 살폈다. 치하야쨩은 내 쪽에 흘낏흘낏 시선을 두다말다 하더니 더듬더듬 설명을 시작했다.

 

"샷은 에스프레소.....그러니까 원액 같은 거니까 그걸 추가하면 그만큼 더 쓰고, 카페인 양도 많아지는 거야."

 

아, 뭐야. 그런 거였구나. 그럼 난 그 샷이라는 걸 두 개나 추가했으니까.....당연히 썼던 거였어! 이렇게나 두근두근거린다던가, 머리가 아프다던가 하는 것들도 당연한 결과고! 이렇게 깨달음을 얻고나니 마음은 조금 편해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섭취한 카페인 양은 갑자기 줄어든다거나 하지 않는다....

 

"하루카도 참, 갑자기 안하던 짓을 다 한다니까."

"아하하.....그게, 치하야쨩이 마시길래 맛이 어떨까 궁금해져서."

"그렇다고 처음부터 너무 강한 걸 도전하는 건 좀 아니지 않을까....."

"나라도 해서 그러고 싶었던 건 아니었는 걸."

 

그러니까 이건, 무지가 빚어낸 참극이었던 겁니다! 같은 쓸데없이 거창한 항변을 끝에 덧붙여보았지만, 그리 통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치하야쨩은 가볍게 항변을 무시하고는 몇 번 더 내 얼굴을 보거나 하면서 뭔가를 재는가 싶더니, 핀잔섞인 걱정을 입에 담았다.

 

"그래서 어떠니. 그렇게 떠들어대는 걸 보니 큰 걱정할 필요는 없는 것 같지만."

"어디보자, 지금......굉장히 두근두근거리는데.....어쩜 이거.....사랑!?"

"카페인 과다 복용에 의한 부작용이겠지."

 

피, 이럴 때는 좀 어울려주면 어디 덧나나. 나는 치하야쨩의 매몰찬 대답에 굴하지 않고 한 번 더 입을 열었다.

 

"아니, 꼭 그렇지만은 아닌 것 같아. 뭐라고 해야할까, 지금 치하야쨩을 보니 숨이 가빠지고 정말 심장이 터질 듯이 두근거려서.....!"

"부정맥이네. 이거 부작용이 정말 심한 걸. 더 늦기 전에 병원이라도 가보는 게 어떨까."

 

치하야쨩은 끝까지 차가웠다. 흑, 너무해. 친구라 해도 사정없이 찔러오는 차디찬 칼날 같은 대우에 나는 고개를 푹 떨궜다.

 

"있지, 하루카."

 

그런 지 몇 분쯤 지났을까, 메고 있던 가방을 내려놓은 치하야쨩이 다시 이쪽을 불렀다. 마음만 같아서는 여기서도 똑같이 냉담하게 대하고 싶었지만, 그런 마음과는 별개로 벌컥벌컥 자꾸만 뭔가 튀어나왔다.

 

"뭐, 뭔데! 요!"

"끝에 왜 존대가 붙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신경 안 쓰도록 노력해볼게."

"그래서 무슨 일? 설마 지금 와서 하루카 실은 나도 너를.....같은 정열적인 고백을!?"

"카페인은 생각보다 무서운 물질이었네."

 

이런, 꽃노래도 세 번까지라고 했던가. 조금, 도가 지나쳐버린 것 같은데. 이쪽을 보는 치하야쨩의 눈빛, 아까보다 더 식어버린 것 같아. 나는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며 최대한 공손하고 거리감 있는 어투로 질문했다.

 

"그래서.....제게 무슨 용무가 있으신 겁니까? 키사라기 씨께서는."

"그냥, 조언해줄 게 있어서 그렇습니다 아마미 씨."

"조, 조, 조, 조언이라니, 뭔가요, 그건!"

 

이거, 아무래도 카페인의 탓일까. 자꾸만 평소보다 텐션이 과잉 상승하는 것 같았다. 평소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반응할 것에도 일일이 큰소리를 내고 만다고 해야할까......어쩌지. 나중에 일 할 때도 이러면 큰일일텐데. 괜찮을까? 실수 같은 거 잔뜩 해버리거나 하지 않을까? 원래도 덜렁거리고 그러는데 이런 상태여서는 막 사고를 일으키고 그러지 않을까? 그, 예를 들어서, 기재를 망가트린다던가, 그 그러면 정말.....벼, 변상 하지 않으면.....그렇지만 그런 거, 비싸겠지? 아니, 무엇보다 망가트리지 않도록 주의하는 게 가장 급선무.....

 

"하루카?"

 

앗, 순식간에 그쪽으로 사고가 쏠려버리고 말았다.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뒤늦게 정신을 차리자, 그 이름을 불러준 장본인이 뚱한 얼굴로 이쪽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아, 미안. 그래서.....뭐였지?"

"그냥, 다음에 도전할 일이 있으면, 카페라떼 같은 걸 시켰으면 해서. 그 편이 하루카한테 더 맞을 것 같으니까. 그렇게 쓴 건 나라도 마시기 힘들다고."

"어, 어어."

"그렇게 얼굴을 새빨갛게 하고 있으면 누가 봐도 오해하겠다. 그러니까, 다음부터는 주의하는 게 좋을 거야."

"으, 응."

 

처음에는 의미도 모른 채 끄덕끄덕. 그러다가, 뒤늦게 의미를 깨닫고는 그 자리에서 정지. 또 한 번 시간이 지나 뭐라도 말해볼까 했을 때는, 이미 그 말을 들을 사람은 가버리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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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세키 님(@KisaekiP)의 글을 바탕으로 멋대로 덧붙여봤습니다. 하루치하 왓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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