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카테고리.

  1. 전체목록

  2. 그림

  3. 미디어



[피드백] 765 프로덕션의 검은색 프로듀서 (1)

댓글: 6 / 조회: 799 / 추천: 1


관련링크


본문 - 05-20, 2017 04:27에 작성됨.

 야심한 밤의 한 식당. 주방장이 특기로 삼을 수 있을 정도로 만드는 데 자신있어하는 요리가 딱히 없어 다른 식당들이 으레 하는 것처럼 그 식당에서 가장 잘 만드는 음식이나 한 종류의 음식을 대표 메뉴로 내세우는 대신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메뉴판에 올려놓고 다양한 손님들을 받는 그 식당의 내부에는 나무가 주로 사용된 조용한 분위기의 인테리어를 기반으로 그것을 보조하려는 듯 아기자기한 느낌을 내는 작은 인형 장식들이 계산대 옆쪽의 장식장에 들어차있었고, 식당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젖힐 수 있는 칸막이로 나뉜 삼면이 막힌 개인 식탁에는 드문드문 눈에 띄는 빈자리들을 제외하면 메뉴판에 쓰인 음식들보다 많은 수의 다양한 사람들이 그곳에 앉아서 요리를 주문하고, 때로는 술을 함께 주문한 다음 식탁에 앉아 주문한 음식이 오기를 기다리거나 종업원이 가져다준 음식을 즐기며 혼자서, 혹은 여럿이서 그들만의 방법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내세우는 음식은 없었으나 저렴한 가격과 꽤 괜찮은 음식의 맛에 힘입어 그 가게를 찾아오는 손님들이 꽤나 있었기 때문에 영업은 그럭저럭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었으나, 그 가게의 종업원은 단 두 명밖에 없었기 때문에 주문이 밀려서 바쁘게 뛰어다니는 두 종업원들은 사장이 다른 종업원을 고용해 부족한 일손을 채워주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종업원이 한 명만 더 있어도 일손 부족은 많이 해소될 것 같았지만 불행히도 사장은 두 명의 종업원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어 당분간 새로운 종업원이 들어올 일은 없었고, 하는 일에 비하면 그래도 임금이 꽤나 짭짤했기 때문에 힘든 일에 지쳐가면서도 그만둘 수 없는 두 명의 돈이 필요한 종업원들은 당연히 그 날도 일손 부족에 시달리고 있었다.
 “거기, 자네?”
 그렇게 두 명이 바쁘게 일을 해나가는 와중에, 정장을 차려입은 한 손님이 자신에게 음식을 가져다주고 다음 일을 처리하러 가는 검은색 단발을 한 여종업원을 불러 세웠다.
 “네, 손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그 종업원은 얼굴 한가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녀는 그 손님이 어째서 자신을 불렀는지 궁금했다. 손님이 종업원을 부르는 경우 운이 좋으면 주문을 고치거나 무언가를 가져다달라는 등의 사소한 일이었지만 가끔씩은 손님의 사소한 불만사항을 처리해주어야 했고, 재수 없으면 가게에서 행패를 부리거나 은근슬쩍 성희롱을 해대는 경우도 있었으니까.
 정중하게 말한 걸 보면 손놈은 아닌 것 같은데, 귀찮은 일만 아니었으면 좋겠네.
 손님이 왕이라는 말만 믿고서 날뛰어대는 망나니들을 처리하느니 차라리 혼자서 두 명분의 일을 감당하는 게 훨씬 나았다.
 “자네, 우리 프로덕션에서 일해보지 않겠나?”
 하지만 이런 상황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정장을 입은 손님은 명함을 건네며 765 프로덕션의 사장인 타카기 준지로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녀는 손사래를 쳐 명함을 대충 거절한 다음, 의심이 가득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반신반의도 아닌 완전한 의심이었다. 상식적으로 처음 본 식당 종업원에게 자신이 어느 기업의 사장이라고 소개하며 뜬금없이 같이 일해보자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십중팔구 돌팔이 혹은 사기꾼일 것이었고, 그녀의 생각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못 들어본 회사라면 인력난에 시달리다 이런 곳에서까지 사람을 구한다고 생각하고 반신반의의 영역에 들어설 수라도 있었겠지만, 그는 분명 765 프로덕션이라고 말했다. 그녀가 알기에 그곳은 한창 주가가 올라가고 있는 아이돌이 열둘이나 소속된 전도유망한 회사였다. 그런 곳에서 뭐가 아쉽다고 여기까지 와서 사람을 구하겠는가?
 “아저씨, 시답잖은 일로 서로 귀찮게 하지 말죠? 가뜩이나 할 게 쌓였는데.” 그가 그녀를 불렀을 때 그녀가 지어보였던 미소는 이미 그녀의 얼굴에서 사라진 상태였다. “이렇게 그럴싸한 명함 하나 던져주면 그냥 넘어올 거라고 생각하셨나보네요?”
 그녀는 그의 손에서 명함을 빼앗아, 식탁으로 사납게 던졌다.
 그녀의 손을 떠난 명함은 사납게 내쳐질 때와는 달리 식탁 위에 천천히 내려앉았고, ‘자칭’ 사장은 당황한 표정으로 황급히 명함을 집어 그녀에게 다시 건넸다.
 “그, 그럼 더는 귀찮게 하지 않을 테니 명함만이라도 받아주게!”
 그녀는 그가 건넨 명함을 대충 휙 둘러보고 나서 신경질적으로 바지주머니에 대충 집어넣었다. 그 과정에서 명함이 조금 구겨지긴 했지만, 그녀가 상관할 바는 아니었다. 지금 그녀가 신경 쓰고 있는 유일한 사항은 빨리 일을 끝내고 집으로 가는 것뿐이었으니까.
 “됐죠? 전 일이 많아서 이만 갑니다.”


 기나긴 일이 끝나고 집에 도착한 그녀는 지쳐버린 몸으로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일이 바빠 들여다볼 틈조차 없었던 휴대전화를 꺼내 자신에게 온 연락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어두운 집 안에서 유일하게 빛나고 있는 휴대전화의 화면 위에 두 통의 문자메시지가 그녀의 전화기 속에서 잠든 상태로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표시가 나타나 있었다.
 그녀는 별 기대 없이 메시지를 열어 그것들이 스팸문자라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그것들을 삭제해버린 뒤 휴대전화를 힘없이 바닥에 내려놓았다.
 젠장, 일하다가 휴대폰 볼 여유조차 없는 그딴 곳에서 얼마나 더 일해야 하는 거지? 언제까지고 이럴 수는 없다고.
 그 생각의 꼬리를 물고 예전에 들은 말이 그녀의 머릿속에 떠올라 오르골이 연주되는 것처럼 천천히 풀어져나간다.
 “너 같은 고아는 변변한 직장도 가지지 못하고 이곳저곳을 전전하면서 추하게 살 거야. 지금도 우리 집에 빌붙어먹고 있잖아? 나? 난 당연히 아니지. 난 너와는 달리 우아하게 잘 살 거라고.”
 나가 뒤져, 망할 년아. 왜 갑자기 내 머릿속에서 지랄이야.
 그녀가 떠올린 말은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언젠가 자신을 조롱했던 말이었다. 들을 당시에도 끔찍하게 싫어했기에 잊어버리고 싶었던 말이었지만 그 때문에 역설적으로 잊어버리지 못해 가끔씩 생각나서 계속 자신을 짜증나게 하던 말. 지금은 부정할 수도 없는 그 말이 어느 때보다 더 싫게 느껴졌다.
 그녀는 멋들어지게 살고 싶었다. 사회 계층의 상위에 있는 재벌들은 그치들이 보기에 불쌍한 사람들한테 기부할 거 다 기부하면서도 잘 먹고 잘 살지만 그녀는 자신의 입만 걱정하면서 이기적으로 살아도 돈에 쪼들리고 일에 시달려가며 살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 불공평했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바지주머니로 가져가, 그곳에 들어있던 명함을 꺼냈다. 어째서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녀의 손가락에 끌려나온 살짝 구겨진, 조그맣고 수수한 명함을 멍하니 보던 그녀는 어쩌면 그 명함이 불만족스러운 삶에서 탈출할 수 있는 마지막 티켓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아직 ‘자칭’ 사장의 말을 의심하고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그 의심은 순수한 의심이 가득했던 처음과는 달리 절망적인 자신의 삶에 대한 경멸과 혹시나, 하고 생겨난 일말의 희망이 이끌어낸 기대를 통해 반신반의의 단계에 접어들고 있었다.
 한 번 확인해 봐서 나쁠 것은 없다고 생각하며, 그녀는 컴퓨터 앞에 앉아 전원을 켜고 싸게 구한 고물 모니터가 언제나처럼 창백한 빛을 뱉어내기만을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컴퓨터가 켜지며 모니터에서 나온 빛이 그녀와 어둑어둑한 방 안을 푸르게 비추었다.
 그녀는 그 빛에 의지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녀는 자신이 질리도록 봐온 그 장소를 정말로 싫어했다. 싸게 구한 집, 곰팡이 핀 벽지, 싱크대와 일체형인 가끔 사용하는 가스레인지, 방 한구석에 가득히 쌓인 냉동식품 포장지들이나 이 외 변변찮은 가구들 같은 것들 모두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그녀의 집은 그녀를 대변하는 공간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녀도 자신이 생각하기에 별 볼일 없는 삶을 살고 있었고, 그녀가 자신의 집을 마음에 들지 않아하는 것만큼이나 그녀는 자신의 삶에 만족할 수 없었으니까.
 그녀는 마우스와 자판을 이용해 인터넷을 켜고 구글 사이트에 들어가 765 프로덕션에 대해 검색했다. 그러자 수많은 글자들과 링크로 연결된 인터넷 사이트들이 모니터 위에 펼쳐졌다.
 그녀는 그것들의 대부분이 자신이 찾는 내용이 아니라고 가정하고 무시하기로 했다. 765 프로덕션에 대해서 검색하면 나올 것들의 대다수는 아이돌에 관한 것일 텐데, 그녀는 765 프로덕션의 아이돌에게 관심이 하나도 없었고 자신에게 명함을 건네준 그가 정말로 765 프로덕션의 사장인지만 확인하면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런 검색결과들을 신경 쓸 필요도 없었다. 그녀가 찾던 것은 검색 시스템의 알고리즘에 의해 맨 위에 올라와 있었고, 그녀는 마우스를 움직여 그 링크를 클릭하는 간단한 작업만으로 자신이 받은 명함이 정말로 번듯한 OL 라이프에 입문하기 위한 티켓이 될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곳인 765 프로덕션의 공식 홈페이지로 들어갈 수 있었으니까.
 정말로 그 사람이 사장이라면 홈페이지에 나와 있지 않겠어?
 홈페이지에 들어가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탐색하던 도중, 그녀는 익숙한 이미지를 발견했다. 식당에서 만난 이상한 사람의 사진이었다. 그녀는 그 사진 밑에 쓰인 직책을 보았고, 그 순간부터 그녀의 머릿속에서 그 사람의 이미지 밑에 생각으로 써넣은 문구는 ‘자칭 사장’이 아닌 ‘사장’으로 바뀌었다.
 말 그대로, 그녀에게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그녀는 어째서 그가 그녀에게 자신의 프로덕션에서 일하는 것을 권유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765 프로덕션처럼 알려진 곳이라면 구인광고를 냈을 때 사람들이 벌떼처럼 몰려가지는 않겠지만 최소한 원하는 사람을 골라서 쓸 수 있을 정도로 응시자가 모일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자신에게 그곳에서 일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단 말인가?
 어쩌면 다른 걸 바라고 고용하려고 했는지도 모르지.
 별로 유쾌하지 않은 추론이 계속되었지만, 그 추론은 결국 ‘알 게 뭐냐’는 생각으로 끝이 났다. 일을 잘 할 것처럼 보여서 고용하려고 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정말로 이상한 일 때문에 고용했거나 그녀를 호구로 알고 이용해먹으려고 한다면 그 자리에서 바로 때려치우고 뛰쳐나올 생각이었다. 그런 곳은 안정적인 직장이라고 할 수 없었고, 그따위 직장은 필요 없었다.
 그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누군가를 이용하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장려할 정도로 마음에 드는 일이었지만, 자기 자신이 그 대상이 되는 것은 사절이었다.
 그녀는 명함에 쓰인 연락처로 당장 전화할 생각이었다. 늦은 밤이라 잠자리에 들어 연락을 받지 않을 가능성도 있었지만, 그렇게 되면 깨어나서 받을 때까지 최소한 세 번은 전화를 걸어볼 작정이었다. 누군가의 단잠을 신경 쓰는 것에 대한 우선순위는 자기 자신의 용무에 대한 것보다 훨씬 낮았다. 그녀에게는 그녀의 볼일이 더 중요했다.
 남이 좋은 꿈을 꾸고 있건 말건 알 게 뭔가.


 그녀가 사장과 만나 면접을 보기로 되어 있는 장소인 765 프로덕션의 건물은 업계에서 같은 위치에 서있는 그 어떤 프로덕션도 따라올 수 없는 규모의 건물이었다.
 작았다. 인기 있는 아이돌이 열두 명이나 소속된 회사의 하나밖에 없는 사무소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도 작은 건물이었다. 초라한 건물에 위치해 있는 765 프로덕션의 사무소는 그곳이 어떤 곳인지를 나타내는 그 어떤 표지나 간판 하나 설치되어 있지 않았으며 창문에 테이프를 붙여 그려놓은 ‘765’라는 숫자만이 쓸쓸하게 그 건물이 765 프로덕션이라고―최소한 그곳이 765라는 숫자와 연관 있는 장소라고―주장하고 있었다.
 충분히 놀랄 만한 상황이었지만, 그녀는 딱히 놀라지 않았다. 앞으로 자신이 일하게 될지도 모르는 곳에 대한 조사는 이미 아침에 끝내놓았고, 경악은 그 때 충분히 했다. 지금에 와서는 앞으로 자신의 고용주가 될지도 모를 사람이 돈을 너무 아끼는 것 같아 꺼림칙하기만 할 뿐이었다.
 첫인상은 꽤나 좋은 사람처럼 보였는데, 역시 생긴 것만으로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되는 모양이지.
 그녀는 사장에 대한 변화한 인식을 곱씹으며 횡단보도를 건너 목적지로 다가갔다. 가까이서 보니, 그 건물의 1층은 식당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자신이 가려고 하는 곳과는 달리 그 식당은 타루키정이라는 식당의 이름이 쓰인 어엿한 간판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일이 잘 풀리면 저곳에서 축배를 들어도 되겠다고 생각했지만, 이내 그 생각을 지워버렸다. 그녀는 아직 고용된 것이 아니었다. 저곳에서 축배를 들며 즐거운 자축의 시간을 보낼 수도 있었지만 절망적인 고배를 마시며 쓰디쓴 인생을 다시금 되새김질하는 시간이 될 수도 있었다. 쓸데없는 생각으로 기대감을 부풀리는 것은 최악의 상황을 더욱 비참하게 할 뿐이었다.
 또다시 찾아온 기회가 날아가 버릴 것만 같아서 내심 불안했다. 하지만 지레짐작으로 겁먹고 물러설 수는 없었다. 인생의 도로 위에서 현재 그녀가 서 있는 곳은 갈림길 없는 외길이었다. 할 수 있는 선택은 지나쳐온 갈림길이 나올 때까지 뒤로 돌아가거나 저 앞에 더 나은 것이 있다고 믿으며 앞으로, 미래의 불확실성이라는 어두운 베일이 드리워져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그곳으로 나아가는 것뿐이었다.
 뒤로 돌아가서 식당과 패스트푸드점을 전전하며 살아가는 불만족스러운 생활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어느 곳으로 나아가야 할지 깊게 생각할 필요는 없었고, 또한 그것을 실행하는 데 큰 결심은 필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타루키정의 앞을 지나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4층까지밖에 없는 건물임에도 승강기가 설치되어 있었으나, 오랫동안 관리되지 않아 변색된 금속 문 앞에 테이프로 붙인 너덜너덜한 종이가 그 승강기는 움직일 수 없음을 알려왔다. 그녀는 승강기로 편하게 올라가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계단을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조금 오래된 건물이었지만 승강기를 제외하면 그동안 관리가 잘 되어온 듯 오래된 건물에서 나기도 하는 곰팡이 냄새는 전혀 없었고, 여러 사람이 오르내렸을 계단은 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다. 넓지는 않았지만 좁지도 않은 통로의 창문에서 들어오는 빛이 층계참을 비추며 묘하게 편하고 아늑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계단을 올라, 그녀는 765 사무소의 문 앞에 도착했다. 765 프로덕션이라고 쓰여 있는 불투명한 유리창이 달린 금속 문이었다. 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서 사장을 만나면 면접이 시작되는 것이다.
 긴장은 되지 않았다. 오로지 기대감만이 그녀의 몸속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손잡이를 잡은 채로 앞으로 일어날 일을 생각해보았다. 면접관의 질문, 잠깐의 생각, 그리고 대답. 면접은 언제나 똑같았다. 자신이 입사지원서를 넣은 것이 아니라 사장이 먼저 권했다는 점만 빼면 이번 면접도 전혀 다를 게 없을 터였다. 그녀는 최선의 답을 하고,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번 면접이 다른 면접들과 다르기를 바랐다.
 그녀가 본 면접은 언제나, 언제나 실패였다. 그녀는 면접관들이 원한다고 생각하는 밝은 사람의 이미지를 그대로 자신에게 덧씌워낼 수 있었고, 그렇게 했다. 그러나 행운은 다른 사람들의 편이었다. 그녀는 언제나 탈락했다. 그녀가 가장 면접을 잘 봤다고 생각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그 때는 경쟁 상대가 나빴던 것이 컸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합격자는 면접관이 하는 질문에 말을 더듬거리며 대답도 제대로 못 하던 그 회사 CEO의 외동아들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일대일 면접이었다. 경쟁자는 아무도 없었다.
 기대를 품은 채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문이 있는 벽과 칸막이 사이로 밖에서 보았던 ‘765’라는 숫자가 붙은 창문과 불편해 보이는 작은 의자들, 바닥의 주황색 타일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깨끗한 곳이었다. 건물의 규모가 작아 관리하기 편해서였는지 바깥처럼 관리가 잘 된 것 같았다. 안쪽은 한산했다. 그녀는 아이돌 사무소가 이렇게 한산해도 되는 것인지 자문해보았지만, 아이돌들 모두가 일이 있을 테니 딱히 이상한 일 같지는 않았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가려져있던 사무소의 풍경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작은 사무실 안에는 작은 TV와 편하게 앉아서 TV를 볼 수 있는 소파, 간단한 조리 정도는 가능해 보이는 작은 부엌과 여타 사무실에 필요해 보이는 것들이 집약적으로 들어차있어 밖에서 보았던 것보다 커다란 공간에 들어온 것만 같은 착각을 주었다.
 “아, 어서 오세요! 오늘 오시기로 하셨던 분이신가요?” 일을 하고 있었는지, 그녀가 들어온 것을 뒤늦게 알아차린 녹색 머리의 여성이 그녀를 맞이했다. “곧바로 사장님을 불러드릴게요. 이쪽에서 편히 앉아계세요.”
 그녀는 안내를 따라 칸막이로 다른 곳과 나누어진, 소파 두 개가 탁자를 사이에 끼고 마주보도록 놓여 있는 창문 옆쪽의 자리에 앉았다. 회의나 면접 등의 일에 주로 사용되는 곳 같았다. 그녀가 자리에 앉자, 녹색 머리의 여성은 입구 쪽의 벽에 있는 문으로 들어갔다.
 사장실이라, 정말로 있을 건 다 있네.


 잠시 후, 그녀는 녹색 머리의 여성이 가져다준 향이 좋은 차가 담긴 잔을 언제든지 편하게 마실 수 있도록 자신에게 가까이 가져다놓은 채로 그녀를 이곳으로 부른 사람과 마주앉아 그가 친근한 태도를 보이며 건네는 실없어 보이는 질문들과 면접에서 흔히 나오는 일반적인 질문들에 성실하게―혹은 성실하게 보이도록―대답하고 있었다.
 “그럼 마지막으로 묻겠네. 자네…. ‘아이돌’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면접 도중에 튀어나온 질문 하나. 그녀는 알 수 없었지만, 사실 그 질문은 사장이 그녀에게 한 질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녀가 아이돌을 보는 시선으로 많은 것을 알 수 있었으니까.
 예상 범위에는 없는 질문이었지만 떠오르는 것은 있었고, 그녀는 떠오른 것을 곧바로 말했다. “일차적으로는, 상품이겠죠.”
 그녀가 생각한 아이돌이란 상품이었다. 사람이라고 해서 상품이 될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일반적인 상품들보다 조금 많이 복잡할 뿐. 일반적인 상품은 홍보를 해서 소비자에게 어필해 소비자들이 그것을 사도록 한다. 물론 애프터서비스나 고객들의 피드백을 반영한 상품의 개선이 이루어지는 등, 팔고 나서 끝났다며 입을 싹 씻어도 되는 것이 아니긴 했지만, 간단히 설명하자면 그랬다.
 아이돌도 비슷했다. 잠재적 소비자들에게 홍보하여 그들을 소비자, ‘팬’으로 만들어야 했다. 여기까지는 다른 상품들과 비슷하지만, 사람을 상품으로서 홍보하는 것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일’이 필요하다. 수익을 얻고 홍보 효과를 보기 위해, 그리고 커리어를 쌓기 위해서는 일을 지속적으로 받아내야 했다.
 하지만 결국, 근본적으로는 같은 상품이었다.
 “그 다음은? 일차적이라고 했으니 그 다음이 있겠지. 말해보게.”
 물론 있었다. 그녀는 언젠가 친구가 해줬던 말을 떠올렸다. 그녀가 친구의 집에 놀러간 날, 밤이 늦도록 놀았던 날에 그녀의 친구는 창문을 통해 보이던 밤하늘의 조각 너머에서 빛나던 몇 개 되지 않는 별들과 화학물질에 잠식된 공기에 질식하고 도시가 발하는 떨어진 빛들 사이에 파묻혀 보이지 않는 별들을 응시하며 저 별들이 꼭 사람들의 인생 같지 않냐는 말을 그녀에게 해준 적이 있었다.
 “커다란 업적을 이룬 사람들은 역사에 남아 밝게 빛나. 그런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빛은 밤하늘이라는 역사 속에서 보이지 않지. 이게 끝이 아니야. 우리는 저 위에서 볼 수 있는 것과 볼 수 없는 것만을 인지하지만, 그 둘만이 있는 건 아니잖아? 주기적으로 빛을 내는 변광성처럼 몰락하고, 몰락한 곳에서 다시 일어서는 사람들도 존재했고, 단 한 번 빛나고 나서 비극을 맞이하는 초신성들 또한 존재해왔어. 그리고 앞으로도 존재하겠지! 아, 물론 초신성의 경우에는 나타나게 된 원인이 다르지만 그 정도는 넘어가지 뭐! 아무튼, 정말로 사람들의 인생 같지 않아?”
 오래된 일상의 기억 속에서, 그녀의 친구가 다시 한 번 자신의 생각을 말해주고 있었다.
 어려운 말들을 늘어놓으며 자신의 허영심을 충족하고자 하는 지적 허세나 멋진 말로 자신을 치장해 남들과 차별화하려는 애처로운 시도로 치부할 수 있을 법한 말이었지만, 그녀의 친구는 단지 번쩍! 하고 떠오른 생각을 함께 놀고 잡담을 나누면서 먹을거리를 연신 입안에 집어넣고 있던 자신의 친구와 공유하고 있을 뿐이었다.
 적어도 당시의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친구의 생각에 동의할 수 없었다. 그녀의 시선으로 바라본 친구의 생각에는 빠진 것이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무시했던 것인지, 의식적으로 무시하고 좋은 쪽만 골라잡아 말한 것인지 이제는 알 수 없게 되었지만, 그녀의 생각에는 빛나지 못한 별들이 겪은 일들이 빠져있었다. 그녀의 친구는 눈에 보이는, 빛나는 별들을 보며 얻어낸 자신의 생각을 그녀와 나누었고, 그녀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밤하늘의 어둠에 삼켜진 별들을 응시하며 친구의 생각에 대해 생각했다.
 그녀가 생각하기에 사람의 인생에 빗대기 가장 적절한 것은 나비의 일생이었다. 나비가 날기 위해서는 번데기가 어쩌고저쩌고 날개를 말리는 시간 어쩌고저쩌고 하는 틀에 박힌 진부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녀는 나비의 일생 자체를 떠올렸다.
 나비가 날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살아남는 거지. 천적들한테서 살아남고, 자기 몸에 알을 까려는 기생벌이나 여타 다른 위협에서 살아남아야 해. 그래야 날 수 있어. 그래야 네가 말했던 것처럼 '빛날' 수 있다고.
 살아남는 것이 우선이야.
 그녀는 천적들에게서 살아남는 것은 행운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운이 좋아서 살아남아야 번데기를 만들고 나비가 되어 날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수많은 곤충들이 살아남기 위해서 노력해왔고 또 살아남았지만, 개중에는 곤충을 기르려는 사람에게 잡혀 안전한 환경에서 자라나는 경우도 있었을 테고, 유난히 천적을 적게 만나 천수를 누리고 가는 곤충들도 있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행운이었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압도적인 재능이, 어떤 사람과의 우연한 만남이, 스쳐 지나간 한 가지 아이디어가 성공으로 이어진다. 성공적인 인생에 필요한 것은 그런 행운을 만나는 것이었다.
 아이돌 또한 마찬가지였다. 재능을 타고난 아이돌들도 있고, 커리어를 잘 쌓아서 성공한 아이돌도 있고, 캐릭터를 잘 잡아서 성공한 아이돌도 있다. 하지만 돈을 위해 사람들의 관심을 끌려는 악질적인 찌라시에 의해 평판이 나빠지기도 하고, 그것을 곧이곧대로 보는 사람들에 의해 상처입기도 한다. 연애를 하다 파파라치에게 걸려 스캔들이 나는 경우도 왕왕 존재했다. 지금까지 이뤄왔던 모든 것들이 자기 잇속만 챙기는 기생충 같은 사람들에 의해 무너져버릴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은 행운이었다. 아이돌 또한 행운이 필요한 나비 같은 존재들이었다.
 그녀가 자신이 생각한 바를 사장에게 말하자, 그는 깍지 낀 손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그녀가 한 말을 골똘히 생각했다. 독특한 답이었다. 그녀가 처음으로 한 말, 아이돌이 상품이라는 말은 어느 정도 사실이었지만 생각해내기 쉬운 말이었고 또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을 생각이었다. 무엇보다, 그가 생각하는 것과는 매우 다른 답이었다. 그 자신도 아이돌이 무엇인지 정의내리지 못했지만, 무엇이 '아닌지'는 정의내릴 수 있었다. 그녀들은 단순한 상품으로만 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의 두 번째 답은 상당히 특이한 접근법이었다. 그녀는 애벌레는 자라서 번데기를 만들고 나비가 되어 날아간다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이야기에 기생벌과 천적이라는 위험한 존재들을 집어넣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그것은 그도 지금껏 겪어온 이야기였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겪었을 이야기였다.
 “하지만.” 생각에 빠진 그를 보며 그녀가 이야기했다. “이 두 가지가 완벽한 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죠. 애초에 완벽한 답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 질문 아닙니까. 누군가에게 아이돌이란 존재는 경외하며 우상처럼 받들어지는 존재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친구가 되어주었으면 하는 존재일 수도 있으며 누군가에게는 대리만족의 대상, 또 누군가에게는 은인일 수 있으며 누군가에게는 자기 말에 따라야 하는 약자일 수도 있으니까요.
 저는 아직 잘 모릅니다. 쥐뿔도 아는 게 없다고요. 아이돌에 대해서 배워가고 그것을 토대로 제 생각이 바뀌어갈 수는 있겠죠. 하지만 모두가 정답으로 인정할 만한 답은 앞으로도 낼 수 없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생각한 것을 그대로 들려드렸습니다.”
 “그 말은, 현재 자네에게 있어 아이돌이란 상품에 불과하다는 말인가?”
 사장의 말에서, 그녀는 자신의 생각이 그가 생각하는 아이돌에 대한 가치관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좋지 않은 상황이었으나, 해결법은 존재했다. 그녀는 자신이 한 말을 둘러대거나 철회할 수 있었고, 그렇게 해서 사장의 마음에 들 만한 답변을 내놓을 수도 있었다.
 쉬운 일이었다. 손님을 상대하면서 웃는 얼굴을 한 상태로 속으로 다른 생각을 하는 것과 별반 다를 것 없었다. 하지만 어설픈 변명은 약이 아닌 독이 될 가능성이 다분했고, 설령 잘 둘러댄다고 해도 안 좋은 인상을 남길 여지가 있었기에 그녀는 자신의 말을 변명하는 대신 다른 말을 덧붙였다.
 “그렇습니다. 저에게 아이돌이란 공적인 일로 만나는 사람들이며 서로의 이득을 위해 홍보해야 할 상품일 뿐입니다.” 그녀는 차를 조금 마신 뒤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제가 가진 두 번째 의견 또한 유효합니다. 저는 제 직업에 최선을 다해서 아이돌에게 행운이 되어줄 것입니다. 그것이 저와 아이돌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길일 테니까요.”
 사장이 본 그녀는 아이돌을 키우고 인기 있게 만들기 위해서는 그 어떤 일을 해도 상관없다고, 심지어 다른 아이돌을 무참히 짓밟고 그 위에 올라서도 된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옛 동료와 비슷한 사람이었다. 765 프로덕션은 정반대의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이끌어나가는 곳이었다. 그는 그녀를 고용해야할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녀가 적응할 수 있을지에 대한 문제는 둘째 치고, 정반대의 가치관을 지닌 사람은 다른 구성원들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앞으로 배워나갈 수도 있다고 말했고,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녀는 바뀔 수도 있었다. 어쩌면 그와 다른 길을 걸어간 그의 동료와 달리 그녀는 지금껏 그가 걸어온 길로 나아가게 될 수도 있었다.
 자신이 찾아낸 열세명의 아이돌과의 만남을 통해서.
 “자네, 어째서 이 일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나?” 그가 결정을 내리기 위한 질문을 던졌다. “이쪽 일은 자네가 하던 일과는 많이 다를 걸세. 그건 알고 있겠지. 그렇지만 자네는 이 자리에 앉아 있어. 그런데, 어째서인가? 이곳에서 일을 하고 싶은 이유를 나에게 말해줄 수 있겠나?”
 “저에게도 행운이 찾아왔다고 생각했습니다. 저 또한 다른 사람들처럼 나비와 같은, 번듯한 인생을 꿈꿔왔습니다. 화려한 삶이 아니어도 좋다고, 어디 가서 내보일 만한 직업이라면 괜찮다고 생각해왔습니다.”
 물론 그녀의 ‘나비 이론’은 그녀 자신에게도 적용되었다. 차이점이라면, 그녀가 추구하던 삶은 나비를 잡아먹는 천적, 혹은 기생벌의 삶이었다. 그녀는 문제가 생기지 않는 선에서라면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을 이용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나비의 삶을 동경하고 있었다. 불만족스러운 삶에서 탈출하고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었다. 그러나 길이 보이지 않았기에, 행운이 오지 않았기에 나비가 되는 것을 포기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행운이 찾아와 기회를 만들어 주었으니, 이제 그 기회를 잡으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겠는가.
 “잘 나가는 프로덕션의 사무원이라면 그럭저럭 괜찮은 직업이었기에 당신이 정말로 이곳의 사장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나서 이 기회를 잡아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돈이나 허영심 때문은 아니었어요. 좀 더 수수한 이유 때문이었죠. 어딘가에 머물지 못하고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힘들게 사는 게 싫었을 뿐이라고요. 저는…. 제가 안심하고 머물 수 있는 안정적인 직장이 필요했습니다.”
 한심한 이유네.
 하지만 가끔은 한심한 진심이 멋들어진 거짓보다 나을 때도 있지.
 “그런가.”
 이제 그녀를 채용할 것인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인지 결정을 내려야 할 때였다.
 그녀는 아이돌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 765 프로덕션의 모토인 ‘단결’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었다. 그녀를 채용하는 것은 도박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있을 곳을 원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감을 믿었다. 언제나 그랬다. 하지만 이번엔 사람을 보는 자신의 안목을 믿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믿음은 약간이지만 처음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그가 믿는 것은 앞서 자신이 뽑은 열두 명, 아니, 열다섯 명이었다. 그들이라면 765 프로덕션을 그녀가 있을 곳으로, 그녀를 765 프로덕션에 있을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이제 도박을 할 때였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아이돌이 단순히 상품이라는 것에 동의할 수는 없네. 자네가 말했던 것처럼 답은 없는 질문이야. 나도 예전에는 한 아이돌의 프로듀서였고, 내 나름대로 답을 찾으려고 노력했다네. 한때는 찾았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아직까지도 찾지 못했지. 어쩌면 자네의 생각이 맞을지도 모르지. 아예 틀린 말이라고는 할 수 없으니.
 자네가 면접에서 탈락했다는 뜻은 아닐세. 실은 곧 프로듀서 한 명이 연수를 떠나게 되어 일손이 부족해질 참이라 시간이 부족하거든. 자네, 정말로 우리 아이돌 제군에게 행운이 되어줄 수 있겠나?”
 “제가 할 수 있는 만큼은.”
 “좋네. 지금은 그것으로 충분해.”
 사실상의 합격 통보였다.
 마음이 놓인 그녀는, 정말로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기로 했다.
 “어째서 저한테 일을 권유하셨는지 들을 수 있을까요?”
 “간단하다네.” 그가 곧바로 대답했다. “'팅!'하고 오지 뭔가?”
 전혀 납득할 수 없는 이유였다.
 “그 말, 진심입니까?”
 “당연히 진심이라네.”
 낭만주의자 사장이라니, 좋지 않았다. 어쩌면 765 프로덕션이 아직도 이런 작은 건물에 처박혀 있는 이유도 사장의 낭만주의 때문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녀는 대체 어떻게 이 프로덕션의 머리가 저 꼴인데 아직도 파산하지 않았을 뿐만이 아니라 오히려 상승세를 타고 있는지 궁금했다. 사장이 자신을 놀리고 있거나 사장을 제외한 나머지가 능력이 좋을 가능성이 다분했다. 이런 자리에서 사람을 놀릴 이유는 없었고 가볍게 말하긴 했지만 장난치는 것 같지도 않았으므로 그녀는 후자일 것이라고 잠재적으로 결론을 내렸다. 사장의 능력을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이유가 다소 어이없기는 했지만 그 어이없는 이유 덕분에 기회가 찾아왔으므로 그 점에 대해서도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녀는 생각하는 척한 뒤 말했다. “하겠습니다. 아직 사무원 일에 대해서 완벽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사무원 일이라고?” 사장이 말허리를 잘랐다. “우리가 뽑는 사람은 사무원이 아니라 프로듀서였네만?”
 “네?”
 “아무래도 서로 간에 오해가 있었던 모양이군. 혹시…. 생각이 바뀌었는가?”
 그녀는 시선을 아래로 내리깐 채 탁상을 멍하니 바라보기 시작했다. 생각하는 척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정말로 생각하고 있었다.
 오래지않아 결론이 나왔다. 자신이 생각했던 일과는 매우 달라지긴 했지만, 거리낄 것은 없었다. 오히려 프로듀서 업무가 더 적성에 맞을지도 몰랐다. 프로듀서의 업무 중에서 사람을 대하고, 비위를 맞추고 최선을 다해 설득하는 일은 꽤나 높은 비중을 차지했고, 그런 일이라면 지금껏 손님들을 상대하며 숱하게 해왔던 일이었다. 그것은 비단 일뿐만이 아니라 그녀가 살아오면서 수없이 해온 일들이었다.
 “아뇨. 하겠습니다.”
 영업용 미소라면 익숙했다.
 “참, 자네 이름이 뭔가?” 그는 그녀의 이름이 쓰여 있을 이력서를 들어올리며 말했다. “여기에 이름이 적혀있겠지만, 자네의 입으로 직접 듣고 싶군.”
 어려울 것 없었다. 오히려 반가웠다. 그녀는 이력서에 쓰여 있는 이름을, 정확히는 그 종이 위에 잉크로 낙인처럼 박힌 자신의 성을 싫어했다. 그걸 보지 않고 자신에게서 이름을 듣고 싶다는데, 뭘 꺼리겠는가?
 “라고 합니다.”

 

 

 

---------------------------------------------------------------------------

 

이 글은 White, Black, Colorless라는 창댓의 과거 시점을 다루는, 외전격 글입니다.

원래 오리캐를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호칭 문제 등에 의하여 결국 이름을 붙이고야 말았네요.

 

아무튼 이 글에 피드백을 해주셨던, 언제나 도움이 되어주시는 첫 번째 독자 분과 그저 그런 글을 봐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를 표합니다.

1 여길 눌러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