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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하야 「미안해. 나 더 이상은 참지 못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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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5-13, 2017 20:05에 작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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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현재

창틀에 서서, 세차게 부는 바람을 만끽한다. 아직 춥구나.

아래를 슬며시 내려다본다.

꽤나 아득한 높이에 잠깐 현기증을 느낀다.

이제 와서 보니, 사무소 빌딩 꽤나 높았구나.

여기서 떨어진다면 확실하겠지. 

문득 끔찍한 생각이 떠오른다.

발을 조심스레 내딛으며 시선을 돌려본다.

새벽 거리는 한산했지만, 멀리서 765프로의 동료들이 다 같이 걸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이들이 오기 전에 빨리 끝내야 된다.

이런 나를 보여줄 수는 없으니까.

 

신발을 벗고, 조심스레 두 발을 창틀 아래로 내려본다. 

 

바람이 허공에 닿은 두 다리를 간지럽힌다.

미안해 유우. 하지만 나 더 이상은 참지 못하겠어.

 

나 더 이상은..

 

 

2. 수 시간 전

음반 리코더 회사와 협약이 잘 풀린 기념으로, 프로듀서와 함께 거창한 식사를 해버린 것이 화근이였다.

어쩌면 내 주제에 너무 풀려버렸는지도 모른다.

평소 영양제 약이나 인스턴트 조리식으로 연명하던 주제에, 잘 먹지도 않던 불고기를 그렇게나 많이 먹어버렸으니..

 

프로듀서 「아, 치하야. 오늘 수고했다.」

 

치하야 「예. 프로듀서는 먼저 가세요. 저는 곡 확인 좀 더 하다가 갈테니까요.」(미소)

 

프로듀서 「고맙다. 내일 보자 치하야!」

 

저 멀리 이탈리아의 유명한 시인 단테는 외면은 중립이 아닌, 암묵적 동의이며 동조나 다름 없는 죄악이라 말하였다.

나 또한 사무소의 문이 고장난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암묵함으로써,

결국 스스로를 고난에 빠트리는 죄악에 던져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프로듀서가 문을 닫아버리는 바람에 버티지 못한 문이 마침내 운명을 달리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까지,

나는 그저 눈 앞에 악보에만 신경 썼으니 지금 생각하면 원통할 뿐이다.

 

프로듀서가 나간지 몇 시간이나 흘렀을까,

어느새 잠든 나는 배 속에서 보내오는 불길한 신호와 함께 눈을 떴다.

배가, 꾸르륵 하고, 위기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묵직한 것이 내려오고 있었다.

이것은 분명, 어마어마한 것이였다.

비견하자면, 산사태 이상으로 쓰나미에 가까운 그런 거대한 것.

 

그 전초로, 나는 곧 다가올 거대한 시련을 알리는 사자의 우렁찬 나팔 소리를 엉덩이 사이로 울려버렸다.

ㅡ뿌우웅!

당연지사 나는 스스로의 천박함을 자책하며 서둘러 사무소를 빠져나가 화장실로 들어가려 했다.

 

ㅡ철컥

 

치하야 「어?」

 

아아, 문이 잠기지만 않았더라도 이 비극은 없었으리라.

 

그 빌어먹을 문이 문이 잠겨 있었다. 

 

2.

그제서야 난 문이 고장나서 열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프로듀서가 문을 세차게 닫은 순간, 이 유구한 역사를 지닌 사무소만큼이나 오랜 세월을 거친 문 또한 결국 생을 달리했으리라.

허나 그딴 사실보다는, 아래의 '좁은 구멍'을 통해 당장이라도 쏟아질 것만 같은 '거대한 쓰나미'에 온 감각이 쏠려 있었기에

나는 헤어지려는 어미의 손을 잡고 늘어지는 아이처럼, 한동안 덧없이 문 손잡이만 잡고 미친듯이 돌렸다.

 

시간은 이미 30분이나 지나 있었다.

프로듀서에게 전화하면, 사무소까지 오는데 최소 그만큼의 시간이 또 걸릴 것이고

그 때까지는 괄약근이 버티지 못할 것이란 걸 알면서도 나는 전화기를 다급히 누르며

마지막 남은 희망으로 제발 프로듀서가 아직 근방에 있기만을 빌고 또 빌었다.

 

하지만 그이는 아예 전화를 받지조차 않았다.

 

치하야 「끙야앗..무능한 프로듀서!!」버럭

 

나는 이미 진작에 집에 도착하여 잠자고 있을, 죄 없는 프로듀서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설마 나 이대로 여기에 갇혀서

여기에서..싸버리는거야?

 

..아니, 그러지는 않겠지.

나는 교양인이다. 가희 키사라기 치하야이다.

차가운 지성인이라고?

그깟 무능한 프로듀서의 도움 없이도 이런 정도의 위기는 충분히 헤처나갈 수 있다고?

조금만 기다리면, 아이들이 새벽 스케줄 소화를 위해 출근할 시간이다.

그 때까지만 버티면..

그리고 이깟 고난 따위는 유우를 잃은 비극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1시간 후-

 

치하야 「끙야앗..미안 유우. 이건 도저히 버틸 수가 없을 것 같아.」

 

ㅡ꾸르륵

 

시간이 얼마 없었다.

거대한 갈색 해일이 괄약근이라는 부실한 댐을 파괴하고 바깥 세상으로 쏟아지기 일부 직전이였다.

눈이 돌아가기 시작하고, 다리가 꼬이기 시작했다.

 

치하야 「끄으윽..빠, 빨리..」

 

눈이 돌아가본 적 있는가?

나, 키라사키 치하야는 두 번 있었다.

한번은 유우를 잃었을 때.

그리고 또 한번은, 사무소 마닥에 갈색 쓰나미를 쏟아낼 위기에 처한 지금 이 순간.

 

이 대재앙적 위기를 타개해줄 무엇인가를 향해 절박한 심정으로 사무소를 훝어보기 시작했다.

지금 내 신경은 온통 '그 것'에 향해 있었다.

더이상은 버틸 수가 없어. 괄약근이..이제는 찢어질 것만 같아.

배는 격류 속에 놓인 대양처럼 요동치며 세찬 폭풍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살짝만 눌러도, 그대로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먼저 사무소 탕비실 쪽으로 눈이 향한다.

하지만 쓸모 있는 것은 전혀 보이질 않는다.

하루카의 과자 봉투? 다 담기에는 너무 작아.

유키호의 차 주전자와 찻잔? 아냐 모두 쏟아내기에는 좀 작고..유키호에게 차마 못할 짓이야.

그 그래도..반반씩 옮겨 싸면 되지 않을까?

너무 급한 나머지 치하야는, 비록 잠깐이지만

싱크대 위에 쏟아내고는 물로 계속해서 내리면 되지 않을까 하는 그런 야만하고 천박한 생각조차 해버린다.

하지만 그 싱크대로 접시를 닦고 찻물을 우릴 야요이와 유키호를 생각하니, 차마 인간적 마지막 양심에 걸려 그런 생각은 지워버렸다.

 

그때 내 눈이 창문으로 향했다.

 

치하야 「저..(끙아얏) 창문..아래 화장실이랑 연결되어 있었지?」

 

4.

다시, 현재

창틀에 서서, 세차게 부는 바람을 만끽한다. 아직 춥구나.

아래를 슬며시 내려다본다.

이제 와서 보니, 사무소 빌딩 꽤나 높았구나.

여기서 떨어진다면 확실하겠지. 

문득 끔찍한 상상이 떠오른다.

 

그것은 뉴스 기사거리였다.

가히 키사라기 치하야, 오늘 새벽 사무소 4층에서 투신.

주변에는 온통 갈색의.. 

머리를 저으며 끔찍한 생각을 얼른 지워버린다.

아무도 없을때, 빨리 내려가서 해결하고 빠져나오면 되는거야. 그런거야.

 

발을 조심스레 내딛으며 시선을 돌려본다.

새벽 거리는 한산했지만, 멀리서 765프로의 동료들이 다 같이 걸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맙소사! 왜 예정보다 더 빨리 오는거야!

 

마음이 다급해진다. 아이들이 오기 전에 빨리 끝내야 된다.

이런 나를 보여줄 수는 없으니까.

 

신발을 벗고, 조심스레 두 발을 내려본다. 바람이 허공에 닿은 두 다리를 간지럽힌다.

미안해 유우. 하지만 나 더 이상은 참지 못하겠어.

나에게 힘을 줘 유우. 제발 아이들에게 들키지 않고 화장실에 들어갈 수 있게 해줘!

몸을 돌리고, 한 다리를 허공으로 내려본다. 제발 닿아라 닿아라..

하지만 야속하게도,

그 순간 신께서는 이미 비극을 점지해주셨는지도 모른다.

 

하루카 「치, 치하야!!」

 

미키 「치하야씨라니, 하루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는 거..야?

어..치하야씨가 왜 저기..치하야씨!!!」

 

하루카 「치하야! 안돼!!」

 

765 프로의 모든 아이들의 시선이, 창틀에 대롱대롱 메달려 허공에 추하게 발버둥치는 내게 일제히 꽂혀버린다.

그 순간만큼은, 수치심이 가득하게 작렬한다.

하지만 배에서 ㅡ꾸르르륵 하고, 마지막 경고 신호를 보내오자 그런 것들은 더이상 신경 쓰이지 않았다.

이왕 이렇게 된거 빨리ㅡ

 

마코토 「참아 치하야! 거기에서 놓아버리면 안돼ㅡ」

 

하루카와 아이들이 달려온다.

수치심에 얼굴이 붉게 물들어버린다. 제발, 날 보지 마. 잡지도 마.

그때에는 정말로 놓아버릴지도 모를 것 같다고?

하지만 수치심이고 모고 내 괄약근은 이미 바다를 가르는 모세처럼,

거대한 갈색 쓰나미의 압력에 조금씩 길을 내어주고 있었다.

이제는 못 버텨!

 

그 순간, 허공을 추하게 더듬거리던 내 왼 발이 마침내 화장실의 창틀 위에 안착하니,

마침내 내게 구원의 순간이 찾아왔ㅡ

 

ㅡ쾅!

 

하루카 「기다려 치하야! 꼭ㅡ꼭 구해줄 테니까!」

 

마지막 발도 서둘러 올리고는, 이제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였다.

문을 잠그고, 변기에 포근하게 앉아 한바탕 빠르고 신속하게 쏟아내고

다시 차분하게 나와서 설명하기만 하면 끝났을 일이였다.

하지만 내 손을 누군가가 강하게 끌어 올리며 모든 것이 망해버렸다.

이 순간만큼은, 원망을 가득 담아 그녀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치하야 「하루카. 이거 놔!」

 

치하야 「나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다고! 놔! 놓으라고!」

 

치하야 「이제 날 내버려 두라고!」

 

하루카 「내버려 두지 않아.」(진지)

 

하루카 「내버려 두지 않을꺼야!」

 

하루카 「나 앞으로도 치하야랑 함께하고 싶은걸?(울먹)」

 

하루카 「계속해서 무대에 서고 함께 노래를 부르고 싶은걸!(울컥)」

 

하루카 「참견이라는 건..알아(뚝뚝)」

 

하루카 「하지만...그래도...나 치하야가 계속 살아서 아이돌을 해주길 바래!」

 

하루카가 흘리는 눈물이 방울이 내 손목을 타고 흘러내린다.

뒤이어 미키, 히비키, 야요이, 유키호..아이들이 달려와 내 손목을 붙잡고 끌어올린다.

 

야요이 「우아앙! 치하야씨 죽지 말아요.」

 

히비키 「이대로 포기하면 안됀다죠! (울컥) 제발..」

 

마미, 아미 「끄으응!」「치하야 언니 절대로 안 놓아줄꺼라GU?」

 

아즈사 「얘들아? 다같이 끌어올리는거야! 하나 둘ㅡ」

 

타카네 「흥야앗! 셋!」

 

너무나도 감동적인 순간이다.

창틀에 걸려서 피부가 베이고, 더러운 것이 옷에 가득하게 묻어도

아이들은 나 한 명을 끌어올리기 위해서 온 몸을 내던졌다.

평소라면 고마움에 눈물이라도 흘리며 읍소해도 모자를 판이겠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나는 마침내 마지막 댐을 무너트리며 그것이 새어나오는 그 순간까지

마지막으로 발악하면서 소리지르는 것 밖에는 할 수 없었다.

 

치하야 「놔! 놔! 놓으라고! 놓아ㅡ」

 

그리고, 재앙을 알리는 마지막 사자의 나팔소리.

괄약근의 폭정에서 해방된 대장의 백성들이 마침내 거침없이 바깥으로 탈출하기 시작했다.

 

뿌우웅.

 

그리고ㅡ푸드드득.

 

 

엔딩.1

아이들은 치하야를 안전하게 끌어올리자마자 너나할것없이 그녀를 꼭 껴안았다.

마치, 다시는 놓아주지 않겠다는 듯이.

아마도, 이미 몇몇은 무언가 불쾌하고 한 편으로는 익숙한, 그런 구리구리한 냄새를 감지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펑펑 울면서 자신들의 소중한 동료 키사라기 치하야를 꼭 껴안느라

그 정도는 신경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루카 「절대로 놓아주지 않을 꺼니까..(뚝뚝)」

 

하루카 「무엇이든 다 들어줄께. 그러니까 제발 우릴 떠나지만 말아줘..」

 

마침내, 차갑던 치하야의 표정이 풀리며

그녀의 두 뺨 위로 투명한 이슬이 줄지어 흘러나온다.

 

치하야 「무엇이든 다 들어주는거지?

무엇이든 다 이해해줄꺼지?」

 

아이들 전원 「응! 응응!」

 

치하야 「나..못 참아버렸어.」

 

히비키 「훌쩍..괜찮아 괜찮아. 우리가 유우를 대신하지는 못하지만, 항상 함께할 테니ㅡ」

 

치하야 「그런게 아냐..(왈칵)」

 

치하야의 청바지 아래로 흘러 나오는, 갈색의 국물이 이미 그녀의 대답을 대신하고 있었다.

 

치하야 「나..참지 못하고 지려버렸어..묽고 걸죽한 걸로..(뚝뚝)」

 

치하야 「그래도 이해해줄꺼지?」

 

하루카 「아..음..어..(슬금슬금)」

 

야요이 「웃..우..이건 저도 좀 (주춤주춤)」

 

치하야 「다들 이해해줄꺼지?」

 

치하야 「응?」

 

치하야 「..어..대답 좀 해줄래?」

 

치하야 「응?」

 

이후 바지를 갈아입은 치하야는 아이들의 도움으로 프로듀서가 오기 전에 사무소 바닥을 깨끗하게 닦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날의 사고는 모두의 '무덤까지 가지고 가는 비밀'이 되었다.

 

엔딩.2

마코토가 잠긴 문을 억지로 뜯어버렸고,

뒤이어 들어온 아이들은 사무소 쇼파에 앉아 고고하게 악보를 확인하고 있는 가희 키사라기 치하야를 발견하고는 

반가움에 각자 인사를 건넸다.

치하야는 언제나처럼 우아한 미소로 그녀들을 맞이했다.

 

치하야 「후훗. 다들 반갑네.」

 

야요이는, 언제나처럼 싱크대로 향했다.

수세미에 세제를 적셔, 탕비실에 아직 남은 접시들을 닦아본다.

그런데 싱크대에서는 이상하게 구리구리한 냄새가 나고 있었다.

 

야요이 「웃우..이건 마치..」

 

하지만 야요이는, 양갈래 머리를 흔들며 망측한 생각을 지워버렸다.

대신, 싱크대 홀의 거름망에 가득히 쌓인 라면과 기타 기이한 갈색 찌꺼기들을 발견하고는

귀엽게 볼을 부플리고는 타카네에게 말했다.

 

야요이「웃우! 타카네씨, 라면에 이것 저것 넣어서 먹고 버리면 싱크대가 막혀버려요!

그리고 이상한 거 아무거나 넣으면 건강에 안 좋고, 싱크대에서 냄새도 난다구요.」

 

타카네 「라 라면은 먹은 적이 없는데..기이하군요!」

 

치하야 「흠흠..」

 

유키호 「헤헷. 치하야짱, 혹시 녹차 마실래?」

 

치하야는 찻잔을 앞에 내려놓은 유키호가 권하는 차 주전자를 한동안 응시하더니,

그것을 강하게 거절하며 말했다.

 

치하야 「아..오늘은 차가 마시고 싶지 않네.」

 

치하야 「대신 히비키에게 주는건 어떨까?」

 

히비키 「후후, 하긴, 본인이 생각해도 본인은 녹차 같이 완벽한 차가 어울린다죠?!」

 

유키호 「그러면..히비키 여기..(헤헷)」(졸졸졸)

 

녹차를 맛있게 음미하는 히비키를 바라보며,

치하야는 한동안 기묘한 느낌을 음미했다.

 

 

ps. 치하야의 모든 것을 배려해주는 아이들의 정다운 모습을 쓰고 싶었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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