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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나나] 엄마, 아빠는 어떤 사람이었어? -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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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5-06, 2017 12:29에 작성됨.

 

"메이드 카페에요~ 귀여운 메이드들과 함께 따뜻한 차를 마실 주인님을 모십니다~ 어서 와주세요~!"

 

하늘에서 흰 눈송이가 천천히 우아하게 떨어지고 있던 어느 겨울 날.

코트에 토끼 귀라는 다소 특이한 복장을 한 키가 작은 소녀는 추위에 덜덜 떨면서도 손에 든 피켓을 열심히 흔들며 호객 행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소복이 쌓인 눈으로 하얗게 뒤덮인 거리엔 지나가는 사람도, 사람의 흔적도 별로 보이지 않고 있었다. 오랜만에 사람이 나타났다 하면 열심히 피켓을 흔들던 소녀의 호객 행위에도 아랑곳 않고 지나가는 사람이 반, 그녀를 경멸하는 시선으로 바라보며 지나가는 사람이 반이었다.

 

"뭐야, 우사밍 성에서 온 전파계 아이돌이라더니… 알바였어?"

"지명도가 떨어지니 어쩔 수 없나 본데…… 어쩌겠어. 돈은 벌어야 하고."

 

그들 중에는 소녀의 정체를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사람들은 언젠가 한 번 마주쳤던 특이한 컨셉의 그저 그런 아이돌이 사실은 메이드 카페 아르바이트생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동정 어린 연민의 눈빛을 보내거나, 더욱 더 멸시하면서 지나갔다.

 

"……."

 

하지만 소녀는 무관심에도, 멸시가 섞인 시선에도 참고 버텨야만 했다.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시작해 지금까지 걸어온 아이돌의 길도, 생계가 걸린 아르바이트 일도 모두 포기할 수 없었다. 남들에겐 치졸하고, 유치하게 보일지는 몰라도 그녀에게 있어선 모두 삶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소중한 일들이었다. 살아남기 위해서, 그녀는 상처를 입고도 더욱 강해져야만 했다. 그게 우사밍 성인이라는 전파계 아이돌, 아베 나나로서 삶을 살아온 방법이었으니까.

 

"후……."

 

그렇게 나나는 어느 새 일상이 된 오전 호객행위를 마치고 손을 녹이고 있었다.

오늘 아침에도 소득은 없었다. 하긴 소득이 있을 리가 없었다. 가뜩이나 불경기인데 사람이 밖에 나오기 힘든 겨울. 심지어 눈까지 많이 내렸으니. 이 상황에선 충성심이 높은 고정 손님이라도 카페를 찾기 꺼려할 정도였다. 그리고 이걸 예상이라도 한 듯, 나나의 표정에는 실망감도, 우울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이런 무의미한 하루가 빨리 지나가기를 바랄 뿐이었다.

 

"춥다……."

 

나나는 손을 부비적거리며 꽁꽁 언 손을 녹이고 있었다. 하지만 차가워진 손은 좀처럼 따뜻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두꺼운 벙어리 장갑을 꼈는데도 맹추위는 기어코 장갑을 뚫고서 그녀의 여린 손을 얼게 만들었다. 더욱이 그녀의 마음 속에 찾아온 쓸쓸함 때문이었을까. 그녀는 오늘따라 유난히 추위를 탔다.

 

"하…… 이래서 겨울이 싫다니까……."

 

나나는 이래서 겨울이 싫었다. 살을 파고드는 추위 때문에. 거리에 찾아오는 적막함 때문에. 추위로 인한 무기력함 때문에. 그리고 가슴을 시리게 만드는 쓸쓸함 때문에. 손을 녹이다 만 그녀는 주머니에 두 손을 꼽으며 퇴근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빨리 이 겨울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러던 그 때였다.

 

"추워 보이시는데, 이거 받으세요."

"……?"

 

눈으로 뒤덮인 길바닥에 시선을 고정시키던 그녀의 두 눈에, 까만 장갑을 낀 손과 캔 커피의 모습이 들어왔다. 순간 화들짝 놀란 나나는 고개를 들어 장갑의 주인이 누구인지 살폈다.

 

"요즘 날씨 많이 춥죠? 고생이 많으세요."

"……!"

 

그녀의 앞에 서 있던 장갑의 주인은 검은 트렌치코트를 입은 키가 훤칠한 남성이었다.

그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나나에게 커피를 건넸다. 나나는 배려심이 깊은 건지, 오지랖이 넓은 건지는 몰랐지만 어쨌든 남자가 준 커피를 두 손으로 넙죽 받으며 이야기했다.

 

"가… 감사합니다! 호… 혹시 카페에 오실 주인님이신가요?"

"아, 아뇨. 저는 그냥 이 근처를 돌아다니던 사람이에요. 일 때문에 들릴 곳이 있어서요. 그러니 말씀 편하게 하셔도 되요."

"아… 그러시구나……."

 

오랜만에 손님이 온 줄 알고 기대를 했던 나나는 살짝 풀이 죽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에게 고마움을 느낀 그녀는 조용히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 그래도 감사합니다. 커피… 받아도 될는지 모르겠네요."

"괜찮아요. 사실 며칠 전부터 여기서 일하시는 걸 봤었는데, 좀 힘들어 보이시더라구요."

"……! 며칠 전부터 저를 보셨었다구요?"

"아…! 네. 그… 스토커나 이런 수상한 사람은 아니구요. 업무 차 이곳에 잠시 머물게 되었는데, 여길 지나갈 때마다 항상 계시길래 지켜보고 있었죠. 무지 추운데도 꿋꿋하게 일하시던데… 존경스럽습니다."

"조… 존경이라니요~ 에이…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오랜만에 다른 사람으로부터 칭찬을 들어서 기분이 붕 뜬 나나는 비즈니스용 말투가 아닌, 본래 그녀의 말투로 대꾸했다. 그러다가 아차 싶었는지, 입을 황급히 가리며 이야기를 이었다.

 

"아! 그… 방금 건 잊어주셨으면……."

"하하. 뭐 어때요. 자연스럽고 좋았는데요. 그나저나 날씨도 추운데 몸 건강 살피면서 일하세요. 뭐니뭐니 해도 건강이 최고에요."

"감사합니다. 저… 사실 이렇게 저한테 따뜻하게 대해준 사람을 만난 적이 없었는데. 살다 보니 별 일이네요. 이렇게 일하다가 그… 선생님 같은 분을 만나게 될 줄은."

"아, 제 이름은 P입니다. 당신은 아베 나나 씨… 맞으시죠?"

"……! 어… 어떻게 제 이름을?"

"아 그게… 사실 이 곳에 오면서 소문으로 들었거든요. 우사밍 성에서 온 전파계 아이돌, 아베 나나가 있다고……. 그 토끼 귀를 보니까 딱 알겠더라구요."

"……!"

 

나나는 줄곧 쓰고 있었던 토끼 귀를 만지작거리더니 얼굴이 새빨갛게 변했다.

그녀의 모습을 본 P는 내심 그녀가 귀여웠는지 피식 웃으며 이야기했다.

 

"아무튼 만나서 반가웠어요. 일이 바빠서 메이드 카페에 들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생각이 나면 들릴게요."

"아…! 네! 저… 저도 만나서 반가웠어요! 커피… 잘 마실게요!"

"네. 그럼 나중에 또 뵈요. 그럼 이만."

 

P는 당황스러워 하는 나나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어딘가로 향하였다.

그의 뒷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던 나나는 시야에서 그가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한숨을 쉬더니 조용히 중얼거렸다.

 

"후……. 뭐지, 저 사람……."

 

그러면서 말없이 따끈따근한 커피 캔을 이리저리 굴리며 손을 녹였다.

얼어있던 손이 녹으면서, 동시에 얼어붙은 그녀의 마음도 서서히 녹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나가 P를 만나게 된 이후부터, P는 종종 시간이 날 때마다 나나에게 커피와 조금의 격려, 덕담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계속되는 호의와 배려에 나나는 처음엔 그를 부담스러워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와 친해지기 시작했다. 어쩌다가 P가 메이드 카페에 한 번 오면 전담 메이드를 자청하며 그와 가까워지려 했다. 연인의 느낌이라기 보단, 서로의 처지를 이해해주는 친구라는 느낌이 두 사람 사이에 감돌고 있었다.

나나는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기뻤다. 자신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P와 만나면서 용기를 얻고 있었다. 아이돌로서 반드시 성공할 거라는 그의 격려 덕분에 그녀는 삶을 조금씩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P가 또 다시 카페에 들리길 기다리던 어느 날. 나나는 같이 일하는 후배에게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뭐……? 그 사람이?"

"네. P라고 했던 가요? 그 사람, 좀 예쁜 여자들이 있으면 항상 다가가서 말을 건다고 하던데요."

"말도 안 돼……."

"진짜에요. 아직까지 그 사람한테 낚인 여자들은 없는 것 같은데. 이쁘다는 둥, 연예인해도 되겠다, 가능성이 있다 등등 진짜 한탕 해먹으려고 사탕발린 말만 한다고 아주 소문이 쫙 퍼졌어요."

"……!"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었던 P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격려 해주던 그 남자가, 알고 보니 이 근방에서 예쁜 여자들한테 치근덕대기로 유명한 남자였다는 이야기. 그 이야기를 들은 나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행복했던 그와의 시간을 돌이켜보며 큰 충격에 빠졌다.

 

'뭐야… 그 사람……. 나한테 접근한 것도…… 나한테 호의를 베풀었던 것도…… 전부……."

 

그와 이야기하며 느꼈던 행복이 사실이 하루 아침에 거짓으로 변해버리자 그 뒤로 나나는 미소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건강 상의 문제를 핑계로 늘 하던 호객 행위도 쉬고 메이드 카페에 결근을 하는 일도 잦아졌다. 잠시나마 품고 있던 희망을 송두리째 빼앗기고 나서 느끼는 절망감과 박탈감은 그녀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그녀의 마음은 다시 얼어붙고 말았다.

 

그러나 살아남아야 한다는, 살아야 한다는 사명감, 혹독한 현실은 그녀를 억지로 사회로 내몰았다. 밀린 월세, 수도세, 전기세 등…… 지극히 현실적인 것들은 그녀로 하여금 없던 의욕도 억지로 짜내게 만들었다. 그렇게 가슴 속에 큰 상처를 입은 채, 메이드 카페 아르바이트생 아베 나나는 다시 치열하고 혹독한 사회로 돌아갔다.

 

그렇게 평소처럼 인적이 드문 어느 날.

 

"나나 씨…… 최근에 안 보이셔서 놀랐는데… 무슨 일 있었나요?"

"……."

 

야속하게도 P가 호객 행위를 하던 나나의 앞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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