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카테고리.

  1. 전체목록

  2. 그림

  3. 미디어



『Серебряная звезда』 - Welcome to Liberty city! (6)

댓글: 2 / 조회: 478 / 추천: 2


관련링크


본문 - 05-05, 2017 09:04에 작성됨.

【소환자】의 진료실을 빠져나온 아냐가 고통이 약간은 사그라든 왼팔을 쳐다보며 길게 한숨을 쉬려는 찰나,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서 그녀에게로 다가오는 낮고 우울한 발소리가 들려온다. 이번엔 또 무슨 일이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아냐는 이 도시에서 눈을 뜬지 겨우 하루 남짓 지났을 뿐인데 벌써부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는 듯이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그리고 이내 멈추는 발걸음의 소리. 상냥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오지 않는 것을 봐서는 그다지 마음에 드는 사람은 아닐거라고 생각하며, 아냐는 내뱉지 못한 한숨을 길게 내뱉고는 발걸음이 들려온 쪽을 쳐다본다.

 

그 곳에는 아냐보다 머리 하나 정도가 작은, 그러나 눈빛만은 너무나도 아름답고 날카롭게 빛나는 흰 가운의 소녀가 조용히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냐를 계속해서 쳐다보는 것으로 봐서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모양. 하지만 처음 보는 사람에게 어떻게 말을 걸어야하나의 덫에 걸린 듯, 입만을 작게 움직일 뿐 전혀 소리를 내지는 못한다. 소심한건가, 아니면 정말로 무언가 얘기하고 싶지 않은 것을 얘기하고 싶은 건가. 아냐가 어느 쪽이든 자신이 말을 걸지 않으면 영원히 알 수 없는 난제로 남을 것이라는 느낌을 받으며 천천히 입을 움직여 먼저 질문을 던진다.

 

"달리 이야기하고 싶은게 있는건가?"

 

"아, 일본어도 할 줄 아는군. 그건 참 다행이야. 미나미군에게 들은 걸로는 일본어를 잘 구사 못한다고 해서 말이야."

 

"....러시아어 쪽으로 다시 말해도 괜찮을까?"

 

"아니아니, 그러지 말아주게. 러시아어를 번역하는 기계를 만들려면 아직 하루는 더 있어야 하니까. 아, 그보다 내 소개를 하지 않았군. 나는 이케부쿠로 아키하 박사라네. 기계공학자지."

 

"박사...."

 

아냐가 왠지 모르게 거부감이 드는 『박사』라는 호칭에 얼굴을 찌푸리며 중얼거리자 이케부쿠로 박사, 즉 아키하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가 표정을 풀 때까지 기다린다. 잠시 한 마디 말도 없이 머리를 지긋이 누르며 아키하를 쳐다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낮은 목소리로 러시아어 몇 단어를 중얼거리고는 약간 표정을 푼다. 그 표정에 아키하가 다행이라는 듯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다가 이내 자신이 아냐에게 찾아오게 된 경위를 설명한다.

 

"아, 그렇지. 일면식이 없음에도 자네를 보려고 한 것은, 그 총 때문이라네."

 

"....총?"

 

아냐가 아키하의 입에서 나온 총이라는 말에 조금이나마 풀어놓았던 얼굴 표정을 다시 시베리아의 만년설처럼 딱딱하게 굳혀 버리고는 너무 많은 의심이 한꺼번에 피어올라 다 막을 수 없다는 듯한 불타는 눈빛으로 아키하를 쳐다본다. 아, 이건 내가 잘못한 건가. 아키하가 현명하지 못했던 자신의 선택을 후회한다는 듯이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손을 내저으며 사정설명을 한다.

 

"아, 그걸 어떻게 하겠다는게 아니네. 그저 이번에는 운이 좋아서 CheyTac을 잡았지만, 다음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것 아니겠는가."

 

"그건, 내가 어떻게든 하면 돼. 당신이 신경쓸 일이 아니야."

 

"아니, 나도 신경써야만 하는 일이네. 자네가 들고 있는 그 총에 꽤나 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달려 있네."

 

"많은 사람들의 목숨? 그건 무슨...."

 

"미안하군. 이 이상 얘기했다간 나는 바로 삭제되어버리고 말 테니까 더 이상은 말해줄 수 없군."

 

"그러니까 그게 무슨...."

 

"그러니 제발 그 총을 잠시만 나에게 맡겨주지 않겠나. 잠시만 살펴보고 돌려줄테니 말이야."

 

"....."

 

아키하의 간곡한 부탁에 아냐가 전혀 그러고 싶지는 않지만, 자신의 손에 달린 목숨의 무게가 느껴졌는지 총을 든 오른손에 미세한 떨림이 느껴진다. 아니, 그것은 총에서의 떨림이 아닌 몸이 거대한 공포를 마주했을 때 반사적으로 나오게되는 인간의 본성. 인간의 본성같은 건 예전에 넘어섰다고 생각했는데. 아냐는 그렇게 생각하며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순순히 오른손을 내밀어 아키하에게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SV-98을 넘겨준다. 아냐의 미세하게 떨리는 손을 잠시 쳐다보던 아키하는 고개를 숙이며 아냐의 분신을 두 손으로 낑낑거리며 들고는 입을 연다.

 

"고맙군. 덕분에 여러가지 샘플을 얻을 수 있겠어."

 

"샘플?"

 

"아, 아무래도 기계공학자라 새로운 발명품에 대한 샘플이 필요하거든."

 

"무슨 발명품을 만들려고 내 총까지 가져가실까?"

 

아키하의 말에 아냐가 전혀 미덥지 못하다는 듯이 눈가를 찌푸린다. 아냐의 말에 아키하가 딱히 반론할 생각은 없는지 아하하, 하고 난처한 듯이 웃으며 애꿎은 총만 만지작거린다. 저 웃음의 의미는 뭘까, 지금 아키하가 어떤 짓을 하더라도 부정적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 아냐는 그 웃음마저도 어떤 계산이 숨어있다고 느껴버리는 모양인지 날카로운 눈빛을 빛낸다. 그 눈빛이 꽤나 부담스러운 아키하는 어쩔 줄 몰라하는 표정을 짓다 아냐에게서 흘러나오는 러시아식의 낮고 우울한 질문에 화들짝 놀라며 그녀를 쳐다본다.

 

"정말로 문제 없는건가?"

 

"100%장담은 못 하네. 99.9% 장담은 할 수 있어도."

 

"장담은 못 한다라.... 뭐, 인간미는 있어서 좋네."

 

아키하가 데우스 엑스 마키나일 것 같은 모습과는 딴판으로, 너무나 당연한 0.1%의 의외성 운운하며 미소를 짓는다. 어이가 없네, 아냐가 중얼거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도 옅은 미소의 흔적을 얼굴에 날카롭게 남긴다. 아냐의 표정을 본 아키하가 한 시름 넘겼다는 듯이 조금 웃고는 어디선가에서 꺼낸 돋보기로 SV-98의 총구 부분을 자세히 살펴본다. 딱히 흥미로운 곳은 없는지, 아키하가 약간은 실망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돋보기를 품 속에 집어넣고는 입을 연다.

 

"늦어도 내일 새벽까지는 돌려주도록 하지. 그럼 나는 이만."

 

아키하는 자신이 할 말만 속사포로 말하고는 아냐가 무어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이미 미운털이 박혀버린 상사의 근처를 피하는 말단 사무원처럼 자리를 피해 멀리 사라져 버린다. 생각보다 느리지는 않네, 아냐가 지금까지 만났던 사람 중에는 가장 흥미로운 사람이라는 듯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미소를 짓는다.

 

"아냐 짱?"

 

어디선가에서 천사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제는 변장을 해야 할 시간. 아냐가 약간의 떨림이 남아있는 오른손을 왼팔에 붙이고는 꽤나 아픈 시늉을 한다. 천사는 아냐에게로 가까이 다가와 괜찮냐고 물어보며 슬픈 표정을 짓는다. 이 표정은 나를 위한 걸까. 아냐는 아키하의 말과 【소환자】의 말 때문에 머릿속이 복잡해진 듯한 표정이다. 어디로 가야만 할까, 마치 길을 잃어버린 듯한 작은 새끼 양처럼 하얀 피부의 소녀는 슬픈 눈을 하고 있다.

2 여길 눌러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