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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제] 『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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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4-28, 2017 18:53에 작성됨.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유쾌하고 경쾌하오. 이런 때임에도 연애까지라는 것이 없다는 것이 교쾌하오. 이 때의 기분은 너무나 상쾌하여 내가 마치 번쾌의 칼을 휘두르는 것 같소. 너무나도 꾸며진 듯한 상쾌함이오. 언젠가는 목이 잘리지 않을까 그것이 상쾌하오.

아직 보지 못한 별이 많이 있음에도 나의 어둠게 덧칠된 위상은 이미 저 하늘에까지 닿았소.

마치 내가 별이나 된 기분이오. 하지만 나는 별이 될 수 없음에도 별에 가까이 있는 것은 더러운 검은색의 집합이오.

빛나는 하얀색 별들은 더럽히지 않는 것이 천재의 상책이오. 더렵혀지는 것은 어둠뿐이고, 어둠만이 별을 만드는 더러움이 되겠지.

이쯤 되어서 다시 자신의 소개를 하겠소. 나는 소녀들을 끌어올리고 끌어내리는 무대 뒤의 배고픈 인형사요. 다른 말로는 마스터라고도 불리지. 허울 좋은 별명인 아이돌 마스터.

아이돌을 모르는 사람은 있어도 아이돌 마스터인 나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오. 뒷세계의 암약자, 아담 스미스의 더러운 뒷손. 더 셀러.

그 호칭들은 너무나도 유쾌하고 경쾌한 울림이어 가슴 속에 있던 일말의 기쁨이 슬픔이란 약으로 전쾌되는 기분이오.

전쾌된 몸이 그 전에는 이만큼 아린 적이 없었던 것처럼 말초신경의 깊숙한 곳까지 전율하게 만드오. 굿바이.

 

 

모든 자들이 박제로 삼는 천재를 아시오?

나는, 어떤 아이돌이라도 순식간에 마스터해버려 이내 톱으로 올리는 것이 너무나도 시시한 일상이 되어버린 나는, 아해들의 마음을 설계하오.

천재는 언제나 설계하고, 참작하고, 작곡하고, 찬양하고, 계산하고, 통제하고, 조작하고, 박제하고 복사하오.

언제나 아이돌들을 하늘 위로 올린 다음 천천히 떨어지게 두는 것은 어린아이가 미끄럼틀을 타고 천천히 내려오는 것같이, 빛나는 유성을 내게로 품기 위함이오. 언제나 이 작업은 천재만이 설계할 수 있는 교성의 집합이오.

쥐죽은 듯 소리없는 발걸음과 별천지 뒤에 숨은 성운의 공작시간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거지같이 아름다운 신데렐라들의 무대요.

호박마차를 타고 오는 신데렐라들의 아름다움은 열두시가 지나도 남아있기를 바라는 왕자들에 의해 박제되오.

영원하지 않아야만 하는 은색 금제를 목에 건 신데렐라들의 아름다움은 그저 자신들이 죽지 않는 불사신인 것처럼 알 수 없는 말들을 읊조리는 왕자들에 의해 박제되오.

그녀들에게 잠시 동안 달려있었던 천사의 날개는 언젠가 촤르륵-하는 소리를 내며 다시 본 주인들에게 돌아갈 테요. 주인이 있는지는 의심스럽지만.

하지만 가진것이 일신의 욕심밖에 없는 왕자들은 날개를 박제하여 그녀들에게 다 죽어버린 날개만을 선물하곤 날아보라고 할 테요.

신데렐라들은 잠깐 퍼덕거려보다가 지쳐 쓰러져 도쿄의 휘황찬란한 타워에서 붉은 별로, 그러다가 이내는 작은 흑색 왜성으로 남아버릴테요.

나는 그것이 너무나 싫소. 생각이 없는 왕자들은 그저 궁에서 술이나 마시다가 세상으로 뚝 떨어져버린 여집합으로 실성해 버렸으면 좋겠소. 오픠더진.

 

 

박제가 되어버린 신데렐라를 아시오?

너무나도 높은 곳으로 올라갔음에도 날개가 타버리지 않은 다이달로스의 이야기를 아시오?

다이달로스는 실제로 이카로스보다 높게 올라갔었소. 하지만 하늘에 올라가 죽어버린 것은 불쌍하고 불쌍한 젊은 녀석이지.

나는 마치 추락하는 이카로스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던 다이달로스처럼 신데렐라를 팔아넘기오. 무고한 신데렐라의 마법을 풀고, 무고한 욕망의 금제를 다시 덧씌우고는, 무고한 인간의 손목을 그어버리고는 무심한 숫자와 굵은 선들을 그 위에 써내려가오. 이것은 바코드요. 그 누구도 살 수 있게 만든 바코드.

나는 젊음을 팔아 늙음을 사고, 그 늙음으로 다시 젊음을 팔 준비를 하오. 무지몽매한 백성들은 그런 것을 알 턱이 없소. 사실 몰랐으면 좋겠소. 그렇다면 그들은 그들의 작은 날개로 퍼덕여 꿀을 모아올테니.

백성들의 의무는 생각 없이 신데렐라의 화려한 모습을 보며 찬양하는 일이오. 그것은 누구나 할 수 있기에 백성들의 것이오.

하지만 어느새 불로불사가 되어버린 나와 그 부류는 그녀들을 찬양할 수가 없소. 왕자를 섬겨야 하는 운명을 타고난 작은 벌은 피곤한 법이오.

그렇다고 그녀들을 멸시할 수도 없소. 그것은 애증이며, 동정이며, 한 가닥의 슬픔이며, 실낱같은 희망만이 남아있는 현실이오. 맛 없는 희망이란 독.

현실의 쓰디쓴 맛에 고통받는 불로불사를 위하여 늙은 왕자들은 가끔 그들의 정상에 맞지 않는 실성한 짓을 하오.

늙은 왕자들은 무지막지한 무기들로 신데렐라의 몸에 내재되어있지 않은 재능들을 사서 그들의 옆에 두오.

배고픈 인형사인 나는 가끔 배가 고프면 인형을 왕자들에게 팔아넘길 수밖에 없소. 마리오네트의 또다른 마리오네트, 가면속의 또다른 가면.

나는 아마 다시 젊어질 수도 늙어갈 수도 없을거요. 그것이 내가 있는 존재 이유이니까. 아듀.

 

 

여기서, 다시 한 번 물어보겠소.

그대들은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밀랍으로 덕지덕지 붙인 날개로 추락하듯이 하늘로 올라가야 하는 신데렐라들을 아시오?

왕자들에게 갈갈이 찢겨진 날개의 댓가로 21세기의 카니발리즘의 먹잇감이 되어야 하는 신데렐라들을 아시오?

한 때는 나도 신데렐라들에게 날개가 있다고 생각했었소. 아직 젊어갈 때의 일이오. 천천히 늙어가기도 한 때.

하지만 인형사가 된 뒤로부턴 그저 뒷배경에서 쥐꼬리만한 돈을 벌고 젊음을 팔고 있소. 그것이 그대들이 천재라고 부르는 박제된 인형사의 날개.

내 등에 돋아났던 날개는 이미 사라지고 없소. 아마도 왕자들이 떼어갔을 거요. 아니면 날개조차 달아보지 못한 신데렐라들이 아직 만들고 있겠지.

손톱만한 날갯자국은 언젠가 다시 돋아나 나조차도 하늘을 날 수 있게 해줄테요. 이카로스처럼 추락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자유의 댓가이니 기꺼이 그리할테요. 자유라,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기분이오. 사요나라.

 

 

미쓰꼬시 옥상에 올라가 본다.

푸르른 하늘, 주황색 태양, 그리고 핑크색 비눗방울.

열 두시를 알리는 알람이 작게 진동한다. 시간이다. 하얗고 하얀 시간을 꿈 꿀 수 있는 시간이다.

 

좋아, 날개야 돋아라. 

다시 한 번 날아 보자꾸나.

날자, 날자, 날자, 날자. 날아보자.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만 날아 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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