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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카-란코 AU 혹은 극중극] 개와 늑대의 존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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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4-28, 2017 02:18에 작성됨.

니노미야 아스카-칸자키 란코 천계 AU, 혹은 극중극.

개와 늑대의 존재론

 

motif from TARUE

https://twitter.com/dlddu128/status/857583581048131585

(후기 겸 해설 : http://idolmaster.co.kr/bbs/board.php?bo_table=creatalk&wr_id=6303)

 

“모든 민족을 혼란에 빠뜨려라.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모든 인간과 지옥과 지상을. 모든 것을 섞어 위대한 조물주를 괴롭혀라.”

-존 밀턴 作,『실낙원』 中


 

양치기개는 주인을 도와 그가 돌보는 양을 지키는 것이 사명이다. 양치기개가 양을 해치는 법은 없다. 천사 또한 같다. 위대한 신의 사자는 그분의 양치기개가 되어, 그분께서 아끼시는 인간을 지킨다. 악마의 꾐으로부터 그들을 지키고, 악마의 해코지로부터 그들을 지킨다. 그 행동에는 망설임도, 의심도 없다. 그분께서 사랑하시는 이들이기에 당연히 천사도 그들을 사랑하며, 새하얀 날개를 펼쳐 그들을 악으로부터 지킨다. 양치기개의 사명이란 그런 것이다.

 

그런데, 신이 전능(全能)하다면…

…대체 왜, 악마를 그냥 두는 것일까?

그리고, 감히 전능한 신께서 아끼시는 양들을 꾀고 해치는 것은…

…도대체 누구일까?

 

천사 칸자키 란코는 새하얀 날개를 펼치고 지상을 박찼다. 한참을 날아올라 돌아본 지상은 붉게 물들어있었다.

 

땅이 불탄다. 풀밭이 불타고, 숲이 불타고, 마을이 불탄다. 그 불길 속에서 살길을 찾아 헤매는 인간들의 비명이 하늘까지 닿는다. 신의 양치기가 결코 지나쳐선 아니 되는 지옥도가, 저 아래에 펼쳐져있다.

 

그럼에도 칸자키는 다시 하늘로 고개를 돌려, 지상으로부터 멀어졌다. 신의 양을 지키는 양치기개는 이곳에 없다.

 

자신이 받은 사명은 그분의 늑대가 되는 것이기에. 양의 목을 물어 숨통을 끊는 것이 자신이 받은 신명(神命)이기에.

 

순진한 인간들은 자신들에게 닥치는 재앙이 전부 신의 적대자 때문이라 믿는다. 그리고 신이 사자를 보내 자신들을 지켜줄 것이라 믿는다. 괴로울 때일수록, 그들은 신에게 의지한다. 자신들에게 재앙을 내리도록 명령한 것이 바로 그 신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채.

 

양치기개가 있다면 늑대가 있다. 동전에 앞면과 뒷면이 있듯, 누군가 선역을 맡으려면 누군가는 악역을 맡아야한다. 하지만 전능한 신이 선역을 맡는다면, 감히 누가 악역을 맡을 것인가.

 

신은 스스로 풀밭을 만들었다. 양이 뜯을 풀을 만들고, 양치기개를 만들고, 늑대를 만들었다. 그렇게 6일째 되던날, 비로소 신은 양을 만들어 풀밭에서 뛰놀게 했다.

 

그렇게, 신은 스스로 양치기가 되었다.

 

양도, 양치기개도, 늑대도, 모두 신께서 만드신 것.

 

풀밭에서 펼쳐지는 모든 것이 그분의 각본.

 

해치는 이도, 지키는 이도, 그 각본을 의심하지 않는다. 의심해서는 안 된다. 그저 신께서, 창조주께서 내리신 역할을 충실히 연기할 뿐.

 

그랬어야 할 터이다.

 

천사 칸자키 란코가 그 철칙을 어기고, 감히 그 분을 의심하기 시작한 것은, 과연 언제부터였던가.

 

홀로 위대하신 나의 신. 나의 창조주. 모든 것을 만드신 분. 모든 것의 주인 되시는 분.

 

내가 행하는 모든 것은, 바로 그분께서 뜻하신 바.

 

그런데 그분께서는 왜, 자신의 양을 해치라 하시는 것일까.

 

양들을 사랑하신다면서, 왜 자신에게 늑대의 사명을 지게 하시는 것일까.

 

과연 그분께서는, 정말 그들을 사랑하시는 것일까.

 

스스로 해치고 스스로 구하는 것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렇게 되뇌이며 지상에서 멀어져가는 칸자키 란코를, 검은 연막이 휩쌌다.

 

“이런. 내가 점찍어둔 곳이었는데, 선수를 친 자가 있었군. 신의 늑대가 이렇게 남의 먹이를 빼앗아도 되는 건가?”

 

검은 연막은 곧 천사의 옆에서 형태를 갖추어, 그녀와 비슷한 형태를 취해 나타났다. 양과 양치기개, 심지어 늑대까지 그 모습이 비슷한 것도 창조주의 취미였을까.

 

“너는…!”

 

그녀 앞에 나타난 이의 모습은, 너무나 낯설지만 너무나 익숙했다. 바람에 흔들리는 짧은 금빛 머리칼, 그리고 그 금빛 머리칼에서 갈라져 내려와 허리 아래까지 내려가는 보랏빛의 다른 머리칼.

 

“오랜만이군, 칸자키 란코.”

 

스스로를 양치기로 만들고, 양치기개와 늑대가 벌이는 싸움을 여흥으로 삼은 신. 그가 짠 각본에서도 눈에 띠는 늑대가 있었다. 그 어떤 늑대보다도 빠르게 날아 양을 물고 도망쳐, 양치기개들에게 싸움을 거는 늑대가 있었다. 신이 그렇게 만든 늑대이니 당연했다.

 

하지만 어느 날, 그 늑대가 명령 없이 양을 해쳤다. 각본에 없는 일이었다. 신은 대노했다. 다른 모든 양치기개와 늑대들로 하여금 그 늑대를 물어죽이게 했다.

 

자신의 운명을 직감한 그 늑대는,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어느 누구도 그 늑대를 찾지 못했다. 전능할 뿐 아니라 전지(全知)하다고 불리는 신조차, 그 늑대가 어디에 있노라고 말해주지 않았다.

 

신의 늑대 중 최고였던 자. 신이 자신에 이어 두 번째라고 이름 지은 자. 누구보다 빠르기에 늑대이면서도 ‘새’의 이름을 받은 자.

 

“니노미야 아스카(二宮飛鳥)…!”

“꽤나 화려하게 저질러줬군. 마치 예전의 날 보는 것 같아.”

 

흥미롭다는 듯 팔짱을 끼며 지상과 칸자키를 번갈아보는 니노미야를 향해, 허공에서 불길이 솟구쳤다. 몸을 날려 불길을 피한 니노미야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말했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인사 한 번 격하군. 요즘 천사들 인사 방식은 이런 건가?”

“하늘의 법도를 범한 죄인, 신의 눈을 피할 수 없는 법! 신의 이름으로 널 구속하겠다!”

“구속…말이지?”

 

늑대라고는 해도 결국 양치기의 목줄에 매인 늑대다. 주인 허락 없이 양을 물었던 늑대가 앞에 있다면, 붙잡아서 주인 앞에 바칠 뿐이다.

 

다시 한 번 불길이 솟구쳤지만, 니노미야는 가볍게 피해냈다.

 

“잊어버렸나본데, 이래봬도 신 다음가는 천사로 만들어진 존재라서 말야. 나를 붙잡고 싶거든, 신이 직접 와야 할 거야. 그리고…”

 

이번에는 여러 방향에서 내리꽂히는 불길. 이미 불타고 있는 지상과 함께 하늘까지 태워버릴 기세로, 불길은 니노미야를 덮친다. 평범한 존재라면 결코 빠져나가지 못했을 불길이다.

 

그러나, 신이 정한 격의 차이는 겨우 그 정도로 메꿔질 수 없는 것이었다.

 

“구속하는 건 이쪽이다.”

“뭣…”

 

어느새 불길을 뚫고 뒤로 날아든 니노미야의 존재를, 칸자키는 눈치채지 못했다. 뒤늦게 몸을 돌려 확인하려 했을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니노미야 주변에서 뻗어난 쇠사슬이 칸자키의 사지를 묶었다.

 

“큿…!”

 

사슬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쳐보지만, 그럴수록 사슬은 더 세게 옥죄어 올 뿐이었다.

 

“너무 몸부림치지 마. 괜히 고통만 더 심해질 뿐이니까. 네 몸이 상해서야 내가 몸소 여기까지 찾아온 의미가 없어질 테고 말야.”

“크윽… 거만 떨지 마라! 네가 모습을 드러낸 이상 곧 신께서 널 찾아내셔서…”

“신? 신이 날 찾아낼 거라고? 풋… 푸하하… 푸하하하!”

 

야생늑대가 되어버린 니노미야가, 양치기가 기르는 늑대의 목을 물고서 웃는다. 무엇이 우습냐는 물음도, 그 웃음에 묻혀 닿지 못한다. 한참을 웃고 나서야 니노미야는 칸자키를 향해 물었다.

 

“있지, 란코. 신이 왜 나를 내버려 뒀다고 생각해?”

“내버려두신 게 아니라 지금까지 계속 너를 쫓으셨…”

“아니아니, 그건 아니지.”

 

대답이 만족스럽지 않은 것인지, 니노미야는 칸자키의 대답을 끊어버렸다.

 

“그 양반 전지전능하단 이야기가 사실이란 건, 내가 누구보다 잘 알아. 그 제일의 총애를 받는 늑대로서 바로 옆에서 지켜봤으니까. 그런데 너희에게 날 찾아내라는 명령을 내린 거,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 잘난 전지전능하신 양반께서, 나 같이 도망친 천사 하나를 못 찾아서 너희에게 찾아내라고 했다고? 어째서 그랬을까?”

“그건…!”

 

칸자키의 말문이 막힌다. 마음은 부정하지만, 머리는 그 의문이 타당하단 걸 이해했다. 신이 전지하다면, 양치기개를 시켜 늑대를 찾아낼 필요가 없다. 늑대가 숨어있는 곳을 알려주고, 그곳에서 잡아오라고 말하면 될 뿐이다.

 

가끔 니노미야가 다시 나타나 인간을 해코지했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도, 신이 먼저 그녀가 나타날 곳을 짚어준 적은 없었다. 인간을 지키는 천사들, 양치기개가 도착했을 때는 항상 한발 늦은 뒤였다.

 

“도망친 순간부터 난 들켰어. 내가 어디로 숨든 신은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었지. 그런데도 지금 나는 이렇게 무사히 도망다니고 있어. 그게 뭘 뜻하는 걸까?”

 

신은 전능하고, 또 전지하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니노미야가 도망친 곳을 알았을 것이다. 천사들이 미덥지 않다면, 스스로 잡아내면 될 일이다. 그런데도 신은 니노미야를 붙잡지 않았다. 일련의 행동이 가리키는 답은, 하나뿐이다.

 

“설마… 아니야, 그럴 리가…”

“나도 처음에는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계속 인간들에게 재앙을 뿌리고 죄를 범하게 하고 다녀도, 신은 나보다 앞서가지 않더군. 너희를 시켜 아슬아슬하게 바짝 뒤쫓게 할 뿐이었지. 몇 번 그러다 보니, 답이 확실해졌지.”

 

마음속으로 그 답을 부정하는 칸자키를 대신해, 니노미야가 답을 꺼냈다.

 

“그래. 신은, 내 행동을 알면서도 방조했다.”

 

방조.

 

결코 듣고 싶지 않았던 답을, 칸자키는 듣고야 말았다.

 

유일하게 각본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명령. 니노미야를 쫓으라는 그 명령마저도…

 

“나를 쫓으라는 그 명령조차도, 그 양반에겐 각본, 여흥일 뿐이었던 거야. 내가 멋대로 인간을 해치고 다녔던 게 어지간히 재미있었는지 말야.”

 

부서진다.

신에 대해 가졌던 믿음이, 경외감이, 점차 조각이 되어 부서져간다.

신을 의심하면서도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믿었던 단 한 가지 믿음을 부정당하자, 나머지까지 부정당해 부서지는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지. 어차피 여흥거리가 될 거라면, 나는 내가 좋아하는 방식대로 실컷 즐겨주기로 말이야. 널 찾아온 이유도 거기에 있지.”

 

충격과 혼란 속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칸자키를 응시하며, 니노미야는 자신의 목적을 입에 올렸다.

 

“란코, 내 시종이 돼라.”

“무슨… 소리를…”

“내 방식의 존재론이다. 어쩌면 신이라는 양반은, 자기가 기르는 늑대 떼가 아니라 자기에게 덤비는 늑대 떼를 원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신이 악(惡)을, 마(魔)를 원한다면, 내가 그걸 다스리는 왕이 되어 주겠단 거지. 이왕 그 손아귀에서 놀아날 거라면, 시키는 대로 하는 것보다는 멋대로 하는 기분이라도 내면서 놀아나는 게 낫지 않겠어?”

“……”

“너는 내가 천사 시절부터 봐뒀으니 특별히 처음으로 고른 거야. 다시 말하지.”

 

“란코, 마왕을 섬기는 첫 번째 타락천사가 되어라.”

 

신의 뜻대로, 신을 등져라.

이보다 모순되는 말이 세상 어디에 있을까.

 

“…거절한다면?”

“그러면 나는 너를 놓아주고, 너는 다시 신의 곁에 돌아가 그를 충실히 섬기는 천사가 되는 거지. 이 모든 게 연극이라는 걸 알면서 말야. 못 믿겠다면 사슬부터 풀어주겠어.”

 

니노미야가 손가락을 튕기자, 사슬이 풀려 사라진다. 구속은 풀렸지만, 여전히 칸자키는 원래의 자리에 서있다. 그런 칸자키에게, 니노미야는 천천히 다가와 손을 맏잡고 얼굴을 가까이 했다.

 

“자, 대답은?”

 

몸은 자유로워졌다. 그리고, 신이 진정 뜻한 게 무엇인지 알았다. 설령 그것이 이 자의 거짓말이라고 해도, 그 경우엔 신이 전지하다는 것이 거짓이 된다. 어느 쪽이든, 칸자키의 길은 정해져있었다.

 

자신의 손을 잡은 니노미야를 보며, 천사 칸자키 란코는 읊조리듯 말했다.

 

“마왕 아스카여, 당신의 뜻대로.”

 

신의 뜻을 따른다는 충성심이 신을 등졌다는 배덕감과 뒤엉키고, 이내 전율이 되어 몸을 타고 흐른다. 순백의 빛을 띠던 날개는 마왕의 미소와 함께 점차 극흑으로 물들어간다. 그 광경을 흡족하게 바라보며, 마왕은 시종에게 고했다.

 

“그래. 신에게 노래해주자. 우리의, 존재론을.”

개와 늑대의 존재론,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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