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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즈 담당 프로듀서는 죽을 만큼 후회했다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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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4-24, 2017 21:22에 작성됨.

원작
아이돌 마스터 신데렐라 걸즈 - 반다이 남코 엔터테인먼트/ A-1 Pictures

- 후타바 안즈는 독특한 컨셉과 특유의 귀여움으로 요즘 떠오르는 인기 아이돌이다. 그녀는 기간 한정 유닛 C5의 센터를 맡아 오다이바 페스에서 대활약했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지지한 담당 프로듀서의 사연이 화제다. 후타바 안즈 담당 프로듀서는 놀랍게도 고아 출신이었다.

- 그의 성장 배경은 정말 눈물겹다. 부모에게 버림받아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했던 그가 이젠 아이돌 업계에서 성공해 명성을 손에 넣었다. 그야말로 인생 역전이 따로 없다. 그는 인생이라는 잔혹한 게임에서 한판 뒤집기 승을 이루었다.

- 346 프로덕션이란 거대한 무대에서 그는 노력을 얼마만큼 퍼부었을까? 346 프로덕션은 연예계 굴지의 대기업. 출신의 압박이 있는 그에게 있어 그곳에 서기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걸 해냈다. 대체 어떻게 해냈을까? 본지는 그가 가진 콤플렉스가 오히려 그의 힘이 되었다고 예상한다.

- ……후타바 안즈 담당 프로듀서는 그런 점에서 다른 이들과 다르다. 그는 정말로 아무것도 없는 환경에서 올라와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가 성공한 비결. 그건 바로 남들에게는 없는 절실함과 좌절감이었을 테지. 그걸 태어나면서부터 누구보다 먼저 맛보았기에 프로듀서는 강해질 수 있었다.

- ……씨는 의지만 있으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그는 심지를 굳히고 꼭 성공하겠단 일념으로 아이돌 업계에 투신했다. 오히려 출신 덕분에 강한 의지를 갖추게 된 것이다.

- 프로듀서는 후타바 안즈를 담당하기 전에도 여러 아이돌을 맡았다. 그중에는 장 안의 화제였지만 안타깝게 사라진 C.M.Y.K.도 있었는데…….

- 오오츠키 유이의 예전 담당 프로듀서는 담당 아이돌을 살갑게 대하기로도 유명했는데, 아마 부모에게 버림받은 트라우마로 인한 방어기제로…….

- 자기 과거를 극복했단 거 아닙니까. 이런 사람은 정말 업계의 보물이죠.

가수 부서의 부장실에서 커피를 후루룩거리는 소리가 잔잔하게 겹친다. 가수 부서 부장과 예능 부서 부장이 낸 소리다. 가수 부서 부장은 자리에 앉아서, 예능 부서 부장은 옆에 서서 커피를 홀짝였다. 가수 부서 부장이 먼저 잔을 깨끗이 비우고 못마땅한 얼굴로 모니터를 보며 말했다.

모니터엔 안즈 담당 프로듀서의 출신에 관한 기사 리스트가 잔뜩 떠올라 있다.

“이거 이래도 됩니까?”
그러자 예능 부서 부장이 입에 남은 커피를 마저 마시고 대답했다.
“의외네요. 마음이 약해지셨나요?”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이런 게 무슨 효과가 있느냔 말입니다.”
가수 부서 부장은 대놓고 툴툴거렸다. 그러면서 기사 리스트를 훑었다. 어딜 봐도 프로듀서의 사정을 미담으로 포장한 기사밖에 없다. 헐뜯는 기사는 전무.

“후타바가 움직이는 틈을 타서 언론에 접촉, 그리고 상대방이 안심한 틈을 타……. 이렇게 터트리는 건 좋은데 말이죠. 내용이 이해가 안 됩니다.”
예능 부서 부장은 가수 부서 부장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곤 자그마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 나이가 됐는데도 이걸 모르시다니요……. 제가 다 놀랐네요.”
“거 뜸 들이면서 사람 놀리지 말고 이게 뭔지 알려나 주세요!”
하지만 예능 부서 부장은 오히려 더 뜸을 들이며 잔을 깨끗하게 비웠다. 가수 부서 부장의 말에 심술이라도 난 걸까. 그는 손수건으로 입가를 쓰윽 닦고 난 다음에서야 말을 이었다.

“이 사연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야 세간에서 보면……. 미담이겠지요. 벌써 인생 역전이니 뭐니 떠들잖습니까.”
“그렇죠, 미담. 인생 역전극. 대단한 사람……. 이런 식으로 퍼지고 있죠. 그런데 말입니다. 그게 본인한테 꼭 좋다곤 할 수 없어요.”
예능 부서 부장은 가수 부서 부장 뒤에 섰다. 그는 의자 등받이 너머로 보이는, 자신이 만든 작품을 보며 큭큭거리고 웃었다. 예능 업계 기사 페이지에 수 놓인 안즈 담당 프로듀서에 관한 기사 목록.

그 모든 게 예능 부서 부장이 알고 있는 인맥을 통해 지시된 것이다. 굵직한 줄기는 예능 부서 부장이 짰고, 세부 사항은 각 언론사가 덧대는 식으로 안즈 담당 프로듀서의 미담이 퍼졌다.

“숨기고 싶은 게 드러나서 좋은 사람은 없어요. 설령 그게 타인이 보기엔 훌륭하고 대단한 것일지라도, 본인의 인생에 상처가 되었다면, 그 상처가 흉이 졌으면 드러내고 싶지 않은 법이죠. 곪아 터진 상처를 보고 옆에서 멋지다고 해 봤자, 상처의 고통만 지독하게 떠오를 뿐입니다.”
예능 부서 부장은 의자 등받이를 잡고 허리를 숙였다. 그리곤 가수 부서 부장에게 속삭였다.

“그리고 그게 그 애송이 프로듀서가 무너지는 계기가 될 겁니다.”

그날 저녁. 346 내에서 임시 회의가 열렸다. 의제는 안즈 담당 프로듀서에 관한 것. 정확히는 프로듀서의 개인 정보를 흘린 언론에 관해서다. 회의실 하나에 안즈 담당 프로듀서, 미시로 상무, 가수 부서 부장, 예능 부서 부장 그 외 등등 346 프로덕션의 중요인물 여럿이 모여 심각한 분위기를 공유했다.

그러나 회의실에 가득 깔린 무거운 분위기와 달리 예능 부서 부장과 가수 부서 부장의 속은 더없이 가벼웠다.

안즈 담당 프로듀서의 침통한 얼굴을 직접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건 346에서 본격적으로 항의해야 할 일입니다.”
미시로 상무가 단상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는 동시에 분위기를 휘어잡았다. 회의실에 감도는 분위기 대부분이 그녀에게서 피어난 것이다. 상무는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이 사태가 왜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인지, 346가 왜 직접 움직여야 하는지 설파했다.

참가 인원 대부분이 심각하게 들었으나, 그런 가운데 가수 부서 부장이 혀를 차면서 끼어들었다.

“다른 건 그렇다 쳐도, 우리까지 부를 일입니까? 이게?”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리고 미시로 상무가 만든 분위기를 흩트리려고 대놓고 한숨을 내쉬었다. 주변 시선이 순식간에 그에게 향하고 분위기가 점점 희석된다.

가수 부서는 346의 거대한 축. 그 사실이 회의실에 모인 이들의 고개를 틀어잡고 그의 말을 경청하게 했다.

“이건 346의 일원을 언론에서 공격한 심각한 사태입니다.”
“그건 아이돌 부서 문제겠죠. 굳이 가수 부서와 예능 부서까지 끌어들일 이유가 있습니까?”
“사원을 보호하는 건 기업의 의무입니다!”
“이건 개인의 과거잖습니까. 업무상의 과실에 의한 것도 아니고 말이죠. 굳이 우리 부서까지 끌어들일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
가수 부서 부장의 뻔뻔한 태도에 미시로 상무는 이를 악물었다.

상무는 이 사건의 주모자를 가수 부서 부장으로 추측했다. 그래서 다른 부서도 회의에 부른 것이다. 그러나 아직 실증이 없어 정식으로 항의할 수도 없다. 찾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가수 부서 부장과 예능 부서 부장은 이 상황을 연출하기 위해 후타바를 건드리고, 그 틈을 타 꼬리를 최대한 숨기고 움직였으니까.

그렇기에 가수 부서 부장이 뻔뻔하게 굴어도 미시로 상무는 이를 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가수 부서와 예능 부서를 부른 이유는 단 하나, 미시로 상무는 분노를 되새기며 말했다.

“업무상의 과실 같은 게 아니죠. 공격입니다. 이건 명백한 공격입니다. 그러니 저는 그를 보호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 누가 됐든 간에 이런 식으로 우리 사원을 건드리는 걸 가만두고 볼 순 없습니다.”
그러니까 더는 프로듀서를 건드리지 마라.

상무의 분노가 철철 흐른다. 상무의 기세에 밀렸는지 가수 부서 부장이 조금 움찔거렸다. 가수 부서 부장의 얼굴이 약간의 수치로 붉게 물들었다.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오기가 생겼는지 그는 미시로 상무에게서 눈을 돌리곤 비아냥거렸다.

“공격이요? 이건 공짜로 우리 346를 홍보해주는 거잖아요. 언론엔 다 칭찬밖에 없습니다.”
가수 부서 부장은 저열하게 웃었다.
“오히려 마케팅 전략으로 이용하는 편이 우리 346 입장에서 좋은 게 아닙니까?”
순간, 미시로 상무는 사회대에 올려둔 종이 자료를 거칠게 움켜쥐었다. 종이가 상무 손에 말려 들어가 과격하게 구겨졌다. 상무는 그걸 던지려고 했다. 그러나 그 전에 프로듀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됐습니다.”
프로듀서는 종이를 쥔 미시로 상무의 손을 가리듯이 사회대 너머에 섰다.

“이미 퍼진 거는 어쩔 수 없습니다. 주워 담을 수 없어요.”
프로듀서는 회의실을 쭉 둘러본 다음에 마지막으로 미시로 상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니까 여기까지만 하죠.”

회의는 프로듀서의 선언으로 인해 흐지부지 끝났다. 회의실에 모인 인원이 한 둘씩 해산한다. 그중 몇몇은 수군거리며 프로듀서를 훑어보곤 회의실을 나간다.

“이건 이렇게 끝낼 일이 아니야.”
미시로 상무가 프로듀서 앞에 섰다. 미시로 상무는 더할 나위 없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프로듀서를 똑바로 응시했다. 그야말로 무신의 불상 같은 기백. 그러나 프로듀서는 상무의 시선을 받아도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다. 그 기백이 자신에게 향하지 않았음을 알기에.

“이미 엎질러진 물입니다.”
“이대로 포기할 셈인가? 자네는……!”
“전 꺾이지 않을 겁니다.”
프로듀서는 주먹을 꾹 쥐었다.

“안즈한테 그렇게 맹세했어요.”
프로듀서는 그 말을 끝으로 회의실을 나섰다. 상무는 그런 프로듀서의 뒷모습을 씁쓸하게 지켜보았다. 프로듀서의 발걸음이 평소보다 불안정해 보였다.

12월 17일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다. 안즈는 평소처럼 아이돌 활동에 매진했다. 버라이어티 방송에 출연하고, 라이브도 하고. 안즈는 시간을 충실하게 보냈다. 활동 주기가 돌아 이제 슬슬 쉴 때가 됐으므로 오늘은 휴일로 지정되었으나, 안즈는 오늘도 346의 문턱을 밟았다.

안즈는 평소처럼 사무실 문을 열고 사무실에 들어왔다.

프로듀서가 화면을 뚫어지라 보면서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었다. 타이핑 소리가 유난히 시끄럽게 사무실을 가득 메웠다. 프로듀서는 안즈가 들어왔는데도 눈치채지 못했는지 빨려 들어갈 기세로 시선을 화면에 고정했다.

안즈는 일부러 소리 내서 문을 닫았다. 그때야 프로듀서의 고개가 안즈에게 향했다.

“어? 웬일이야? 집에서 쉬지.”
“집에 있기 심심해서.”
“낮잠을 늘어지게 잘 줄 알았는데.”
“오늘따라 안 당기네.”
안즈는 소파에 몸을 던졌다. 쿠션이 안즈를 부드럽게 받는다. 안즈는 소파에 잠기면서 물었다.

“그렇게 열심히 뭐 해?”
“전에 말했던 신데렐라 프로젝트 기획을 손보고 있었어.”
프로듀서는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안즈는 소파에서 뒹굴며 프로듀서의 얼굴을 관찰했다. 얼굴, 머리, 옷차림 모두 말끔하지만, 눈가와 눈빛, 그리고 피부 전반적으로 피로가 서렸다. 프로듀서의 낯빛이 평소보다 칙칙하다.

초췌하고…… 핼쑥하다.

“휴식은 제대로 취해?”
“응? 뭐……. 그렇지.”
“정말?”
“응, 하고 있어.”
“그런 것 치곤 얼굴 꼴이 말이 아닌데? 프로듀서. 거울 좀 봐봐. 다 죽어가는 사람 같다고…….”
“어라? 그런가?”
프로듀서는 자기 얼굴을 어루만졌다.

“으음……. 피로가 쌓였나. 잠깐 세수하고 올게.”
안즈가 보기엔 세수로 끝날 문제로는 안 보이지만…….

안즈는 프로듀서가 사무실을 나서길 기다렸다. 오히려 사무실을 나가길 바랐다. 프로듀서가 사무실을 나서자 안즈는 소파에서 일어나 프로듀서의 컴퓨터 책상으로 재빨리 자리를 옮겼다. 안즈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마우스와 키보드를 두드렸다.

PC에 비밀번호가 걸렸지만, 평소에 프로듀서가 작업하는 걸 보면서 비밀번호가 무엇인지 눈으로 익혀두었기에 PC 잠금을 푸는 건 안즈에게 식은 죽 먹기였다.

프로듀서가 작성하던 문서 화면이 안즈를 반긴다.

-신데렐라 프로젝트의 홍보 방식을 좀 더 대담하고 공격적으로 바꾸어 미디어에 드러나는 횟수를 늘려…….

-다른 요인이 아닌 아이돌의 매력만을 최우선으로 드러내도록…….

안즈는 창을 줄이고 탐색기를 띄워 프로듀서가 자주 사용하는 폴더를 찾아 파일을 날짜순으로 정렬했다. 그리고 파일의 작성, 수정 일자를 확인했다.

정확히는 시간대를 확인했다. 오후 3시 27분, 평범하다. 오후 8시 17분, 있을 법하다. 오후 11시 59분, 말도 안 되는 시간은 아니다. 오전 2시 42분, 여기부터가 문제. 오전 4시 17분, 오전 4시 57분, 오전 5시 35분, 오전 6시 5분, 오전 8시 22분, 오전 10시 32분, 그리고 이날 프로듀서가 출장 업무를 본 걸 계산해서 시간을 다시 잡아 보면…….

다음은 오후 5시쯤……. 마침 수정 시간이 오후 5시 17분이다.

안즈는 눈을 굴려 파일 리스트를 훑어보면서 파일에 적힌 시간과 프로듀서의 업무 시간을 머릿속에서 전부 대조했다.

결과가 나왔다.

안즈는 탐색기 창을 닫고 PC를 다시 잠금 모드로 돌렸다. 안즈는 터덜터덜 걸어 소파로 돌아왔다. 그리곤 심각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무리 계산해도…….
프로듀서의 수면 시간이 나오지 않는다. 비는 시간은 기껏해야 세면, 목욕 시간 정도. 이것들을 제외하면 프로듀서가 잠들 만한 시간이 나오질 않는다. 게다가 식사도 제대로 하는지 의문이다.

안즈는 근래 프로듀서의 안색을 하나씩 뜯어 떠올려보았다.
건조해 보이는 눈, 푸석해 보이는 피부, 조금 마른 입가. 시든 식물같이 윤기가 빠진 머리카락……. 모두 피로의 증상이 분명했다.

결국 나오는 결론은 하나. 프로듀서는 근래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지 않았다. 안즈는 손톱을 물어뜯었다. 프로듀서는 지금 심적으로 몰려있을 게 분명하다. 매스컴에서 프로듀서가 어떤 인물인지 다 안다는 양 멋대로 평가해서 그렇다. 칭찬으로 포장한 과거를 들먹이면서.

프로듀서의 과거…….
안즈가 생각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그 사실이 대대적으로 퍼졌다. 안즈는 프로듀서가 전기 끊긴 기계처럼 멈췄던 게 지금도 눈에 선하다. 프로듀서에게 감돌던 당혹감과 절망감까지.

유이 사건 때도, 미시로 상무가 일본에 돌아왔을 때도 프로듀서의 반응이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저 굳었을 뿐인데, 그것만으로 프로듀서가 빠진 절망의 농도가 얼마나 짙은지 옆에서 봐도 알 수 있었다.

“휴우, 기분이 좀 나아졌어.”
프로듀서가 사무실로 돌아왔다. 프로듀서의 앞머리에 조금 남아있는 물기가 프로듀서가 세수를 한 걸 증명한다. 프로듀서는 상쾌하다는 듯이 말했지만, 목소리는 가라앉았고, 안색은 여전했다.

“저기, 프로듀서 있잖아. 언제 쉴 거야?”
“응? 글쎄, 다듬어야 할 부분이 많아서.”
“안즈는 심심한데…….”
“비타나 폰 게임 하는 건 어때?”
“지금은 좀 질렸어.”
프로듀서가 머리를 긁적인다. 안즈는 발을 허공에 구르고 말했다.
“안즈랑 같이 쉬자.”
프로듀서는 팔짱을 끼곤 과장된 투로 고민했다.

“좋아, 그럼 10분 정도만.”
“1시간은 안 돼?”
“그건 좀…….”
“그럼 밥이라도 같이 먹을까? 밥 먹었어?”
“응? 아니, 아직.”
“그럼 밥 먹으러 가자! 안즈는 배고파.”
“으음, 자리를 아예 비우고 싶진 않아서…….”
“그럼 탕비실로 가면 되잖아?”
“탕비실……. 그럼, 간단하게 볶음밥이라도 만들까? 빨리 만들 수 있고.”
둘은 그렇게 탕비실로 향했다.

안즈는 머리를 좀 더 굴렸다. 옆에서 터덜터덜 걷는 프로듀서가 위태로워 보였다. 다른 이가 보면 걸음걸이가 조금 힘이 없는 것 가지고 무슨 걱정이냐고 핀잔을 주겠지만, 약 9달 동안 아이돌 활동을 하며 프로듀서의 평소 걸음걸이를 눈에 새긴 안즈가 보기엔 무척이나 위태로워 보였다.

탕비실 냉장고엔 볶음밥 재료가 부족함 없이 갖춰져 있었다. 파, 양파, 고기, 계란 등등……. 밥솥엔 딱 2인분 분량 밥이 남아 있었고.

“자, 그럼 안즈는 여기 앉아 있어. 금방 만들어줄게.”
프로듀서가 칼질한다. 안즈는 칼이 도마를 치는 소리를 집중해서 들었다. 프로듀서가 요리하는 모습을 몇 번이고 보고, 요리하는 소리를 몇 번이고 들었다. 아까 걸음걸이도 그랬지만 지금도 평소와 미묘하게 달랐다. 평소엔 소리가 규칙적이었는데 지금은 강약이 묘하게 틀어져 불규칙하게 들린다.

눈으로 봐도 마찬가지. 평소 같았으면 프로듀서가 손을 벨 것 같단 생각이 전혀 들지 않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지금은 칼이 프로듀서의 손을 언제 덮칠지 조마조마하다. 피로 때문에 집중력이 떨어졌나?

더 봐줄 수 없다. 안즈는 개입하길 결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프로듀서, 내가 도와줄게.”
칼질이 멈췄다. 프로듀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먹는 걸 도와주겠다는 말이지?”
“그건 항상 하는 거. 오늘은 특별히. 뭐, 크로캉부슈도 도와줬잖아. 쌓기만 했지만.”
안즈는 발 디딤대를 들고 부엌으로 향했다. 안즈가 진심으로 움직이자 프로듀서는 별말을 안 했다. 그저 별난 것을 보는 양 피식 웃기만 했다. 프로듀서가 그러는 동안 안즈는 간단히 손을 씻고 칼을 쥐었다.

“으음, 파는 대강 이렇게 썰면 되나?”
안즈가 파를 썰었다. 파가 삐뚤빼뚤 엉망으로 잘린다.

“요리 잘하는 사람들은 빠르고 일정하게 썰던데. 원리가 뭐야?”
“칼을 다루는 방법이 있거든. 안즈, 그렇게 하면 왼손이 베일 거야.”
안즈는 왼손으로 파를 똑바로 누르고 있었다.

“아아, 고양이 손이었던가?”
안즈가 왼손을 주먹 쥐자
“아니, 정확히는 이렇게 세워서 손가락 중간 마디와 끝 마디를 구부려서 가드를 만드는 거야.”
프로듀서는 안즈에게 자기 손을 보여줬다.

“칼은 날 부분으로 베니까. 기본적으로 날에만 안 닿으면 안 베이거든. 그래서 베이기 쉬운 끝 마디가 날에 닿지 않게 막는 거지.”
안즈는 프로듀서가 알려준 대로 손을 쥐었다. 그러자 제법 모양이 살았다.
“으음, 이렇게? 이렇게? 썰면 되나?”
그러나 써는 건 아직도 어설프다.

“프로듀서, 좀 더 자세히 알려주면 안 돼? 아, 그래. 손을 직접 잡아서 알려주면 되잖아. 그러는 편이 몸에 더 잘 익을 거야.”
“음……. 이렇게?”
프로듀서가 안즈 뒤에 서서 안즈의 손을 잡았다.

“응, 그렇게.”
안즈는 프로듀서의 손을 빤히 보았다. 프로듀서의 손은 여전히 따뜻했다. 안즈는 프로듀서의 손이 이끄는 대로 파를 썰었다. 조금 전 프로듀서가 혼자 썰었을 때와 달리 지금은 조마조마한 느낌이 전혀 없다. 프로듀서가 안즈가 다치지 않게 조심하고 있다는 증거다. 프로듀서의 손을 통해 프로듀서의 마음이 전해진다.

안즈는 그게 기뻐서……. 정말 기분이 좋아서 파를 썰면서 실실 웃고 말았다.

안즈는 프로듀서가 알려준 걸 빠르게 습득했다. 그리하여 볶음밥도 어렵지 않게 완성했다. 둘은 테이블에 마주 앉아 수저를 들었다.

안즈는 프로듀서에게 요즘 학교에서 겪은 일을 이야기했다. 특별한 구석 없는 쓸데없고 시시한 사연이지만, 안즈의 이야기를 듣고 프로듀서가 웃는다. 안즈는 평소보다 이야기를 더 많이 했다. 안즈가 길게 말하면 말할수록 프로듀서의 휴식 시간이 길어지니까.

안즈는 그러면서 프로듀서가 밥 먹는 모습을 관찰했다. 프로듀서가 그릇을 착실하게 비우자 안즈도 안심하며 밥을 씹었다.

설거지까지 모두 마치고, 식후의 차까지 깨끗하게 비웠다. 이제 슬슬 사무실로 돌아가야 할 시간.

“저기, 프로듀서. 좀 더 느긋하게 쉬자.”
안즈는 프로듀서를 조금만 더 붙잡고 싶었다.

“이제 일해야 해.”
“밥 먹은 다음에 누우면 소가 된다고 그러잖아? 어디서 시험해 볼래?”
“하하, 이미 옛날에 많이 시험해 봤어.”
프로듀서는 손사래를 치면서 탕비실을 나가려 했다.
“프로듀서!”
안즈는 다급하게 프로듀서를 불렀다. 프로듀서가 멈춰 서자
“휴식……. 하자. 응?”
안즈는 프로듀서의 손을 잡았다.
“안즈랑 같이 뒹굴자.”
프로듀서는 안즈의 손을 얌전히 풀었다.

“미안, 가야 해.”
프로듀서가 씁쓸하게 웃었다. 프로듀서가 다시 나가려 한다. 그런 프로듀서의 모습이 너무나 아득하게 느껴져서, 지금 나가면 다시는 못 볼 것처럼, 프로듀서가 먼 곳으로 떠나는 것처럼 느껴져서, 안즈는 다급하게 말했다.

“마지막으로 제대로 잔 게 언제야?”
프로듀서가 우뚝 멈춰 섰다. 프로듀서의 얼굴에 조금 놀란 기색이 떠올랐다.

“언제?”
안즈가 재촉하듯이 다시 물었다. 프로듀서는 말문이 막혔다. 그러다 안즈가 보내는 눈빛을 쐬고 나서야 겨우겨우 막힌 문을 허물었다. 안즈의 눈빛이 프로듀서의 정서를 자극했다.

“역시 티가 났나 보네.”
안즈는 마른 침을 삼켰다. 내심 다른 대답을 기대했기에. 안즈는 차라리 자기가 헛다리를 짚었으면 했다.

“요즘, 제대로 잔 적은 없어. 왜냐면……. 잠을 잘 수 없었으니까.”
“혹시 전에도 겪었다고 했던 그거?”
안즈는 전에 프로듀서와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프로듀서가 C5 기획 준비로 피곤함에 절여있을 때 나눈 대화를.

-이 정도는 아직 괜찮아. 수면욕이 있는 건 몸이 멀쩡한 증거야. 진짜 최악의 상태는 잠을 잘 수 없는 상태지…….
-어째 겪어본 투로 말하네…….
-있어. 일 때문에 겪은 건 아니지만. 정말……. 최악이지……. 자고 싶은데 잠이 안 와. 그렇다고 머리가 맑아지지도 않아. 머리가 점점 둔해져……. 그런데도 잘 수 없지…….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아…….

“그래, 이번이 두 번째야. 전에 이 증상이 나타났을 때는…….”
프로듀서는 안즈에게 비밀을 전했다. 안즈에게 전하겠노라 약속했던 비밀이다. 그러나 약속의 의미는 이미 색이 바랬다. 프로듀서의 이력이 언론에 파헤쳐진 이상, 언제 밝혀져도 이상하지 않으므로, 더는 숨길 이유가 없어 털어놓은 것이었다.

안즈에게 약속한 날에 프로듀서는 결의를 품었다. 그러나 프로듀서는 지금 결의 대신 체념을 품고 말했다.

“내가 두 번이나 버림받은 아이인 걸 알게 된 날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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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길게 쓰고 싶었지만 업로드를 더 늦출 수 없어서 그냥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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