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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 판타지] 제 10장 - 출항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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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4-16, 2017 17:42에 작성됨.

부서진 지면과 널부러진 도구들.

줄어들어 붙임머리의 형상으로 돌아온 검은 물질들은.. 일개 인간의 도구로는 한계가 명백함을 증명하듯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검은 줄이 뻗어나와 침식한 눈동자는 칠흑보다 더 검어서 빛을 모두 삼킬듯이 어둑컴컴하다.

 

" 으.....으으..... ! "

 

그녀는 부들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보려 하지만.. 하반신에 감각이 미미했다.

 

" 아이돌이 아닌가. 그렇다면 효용 가치는 떨어진다만.. "

 

괴물 사냥꾼의 흐려져가는 의식 속에서, 검은 눈과 검은 입을 가진 그것이 중얼인다.

이윽고, 검은 눈동자가 가까이 다가오는 여인에게 명령하길.

 

" 제물의 전당으로 보내라. 강한 생명력을 지녔으니 연료로 쓰기에는 적당할 것이다. "

" 별빛의 은혜에 따라... 전령의 명에 따라... ! "

 

' 제길.... 의식이.... '

 

이내에, 사냥꾼의... 와쿠이 루미의 시야는 어둠속으로 잠겨갔다.

.

.

.

.

.

.

.

.

.

 

 

 

 

 

주변이 어두워져온다. 머릿속도 까맣게 물들어가는 것 같다.

 

팔을 휘저어 본다. 아무것도 닿지 않는다. 아무것도 없는 무저갱의 바다 속에 잠긴 것 같은 정적과 막막함.

 

목소리를 낸다는 감각은 있지만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숨이 거칠어지지만 숨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참을 수 없는 비명이 터져나오지만, 아무것도 울리지 않는다. 공기가, 소리가, 빛이.. 어둠 속으로 먹혀들어간다.

 

' 아무나 도와줘.. 아무나.. ! '

 

그 순간, 어둠 속에서 무언가 솟구친다. 빛과 함께 솟구치기에 모습을 뚜렷이 볼 수 있었다.

새하얀 손길이 뻗어나와 붙들었다.

 

『 ───── . 』

 

붙들은 손의 주인이 솟구쳐 나온다. 어둠의 바다 속에서 솟아나온 그것은 석고처럼 창백한 모습에, 특징적인 붉은 눈동자를 번뜩이고 있었다.

그것과 함께 심연 속에서 나오는것은.. '공포' 였다. 어두운 것이 창백한 몸을 타고 올라와 붙들은 팔과 다리로 이어져 올라온다.

그것은 입이 있어야 할 위치의 빈 부분으로부터 피부를 찢고 뭔가 웅얼인다. 허나 들리지 않는다.

 

『 ───...──...── . 』

 

어느센가 끔찍한 그것의 눈동자는 코가 맞닿을 거리까지 가까워져 있었다.

온 몸에서 힘이 빠져나간다. 마음껏 몸을 가눌 수 없다는 억압됨이 두려워져간다.

아무나 도와달라고, 부르짖고 부르짖어도 입이 움직인다는 감각 뿐. 소리는 먹혀버린다.

 

눈앞까지 온 그것을 그녀는 밀쳐낸다. 힘껏 밀쳐냈다.

그러자 억세던 쥠은 풀리고 창백한 형상은 떨어져 도로 어두운 바다 속으로 잠겨간다. 그것은 무언가를 웅얼거리고 있었다.

그 순간에도. 머리 끝까지 도로 잠겨버릴 때 까지 무언가를 중얼였다.

 

하지만 예외없이 그것의 소리도 먹혀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이내에, 머리카락 끝부분 까지 완전히..

 

' 퐁. '

 

 

 

 

 

 

 

 

 

 

" ?! "

 

이불을 거세게 뒤척이며, 시마무라 우즈키는 불편한 잠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잔뜩 베어나온 식은땀에 머리카락과 잠옷이 들러붙어 흐트러져있었다. 항상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무방비하게 헝크러져 있는 그녀의 머리지만, 유독 땀으로 진득하게 눌러붙어 그 정도가 유독 심해보였다.

그것과 별개로, 일어나자 마자 꾸었던 악몽의 내용이 빠르게 잊혀져간다.

꿈이 내용을 되짚어볼 무렵에는 이미 '어두운 장소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라는 대략적인 수준밖에 기억하지 못했다. 악몽으로 불쾌했던 감각과 몸에서 분비된 식은땀의 향연으로 찝찝해진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해 입고있던 것을 벗어놓는다.

이어서 걸음이 욕탕으로 향하려는 찰나,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노크소리는... 그녀의 기분전환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우즈키는 잠겨있는 목을 가볍게 가다듬고 노크소리에 응한다.

 

" 누구세요 ? "

 

문 너머의 이는 그녀의 물음에 곧바로 응답하길.

 

" 대주교 히다카 입니다. "

 

.

.

.

.

 

제 10장 - 출항길

 

 

 

두캇령 군도해안에서 가장 큰 무역항구, 아크라 항.

 

무역항이라는 말 답게, 이곳은 본디 이률리아를 포함한 동대륙과 서대륙 간의 무역 중심지로서 커다란 영향력을 끼치는 국제항구이다. 그러나 이 항구에 지금 주둔하고 있는 배들은 짐 가득한 화물선이나 무역 사절단들이 타고다니는 예식 갤리선 같은 것들이 아닌.. 짗은 회색을 띈 흡사 쇠로 만들어진 것 같은 배들이었다.

타국의 관계자들이 머무는 별장에도 오늘만큼은 검은색 제복 일색의 인물들이 많았다.

 

검정으로 빠진 제복, 가슴언저리에 달린 훈장과 벳지들.

어깨장식에 세겨진 뮤즈를 상징하는 문양들은 한눈에 그들이 오토노키자카 제국의 군사 관계자들임을 알 수 있게 하였다.

그들에게 둘러싸여서 오히려 어색하게 보일 지경인 밍크 코트를 입은 남자가 손을 싹싹거리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고개숙인 남자의 건너편에는, 금발 벽안의 여성이 자기 키만한 철봉을 쥔 채로 독불장군처럼 서있었다.

 

" 부디, 부디 함대를 물러주십시오.. ! 벌써 반나절이나 무역선들이 들어오질 못하고 있습니다 ! 말씀하시는 바는 알겠으니 ── "

 

" 네가 진짜로 알아들었다면 진즉 우리가 지나가게 해줬겠지. "

 

" 하오나, 어떻게 함대 전체가 지나갈 수 있게 길을 열어달라니.. 웨이그리아 라던가 동서의 국가에서 보는 눈이.... "

" 너희가 우리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려고 저질렀던 음모들을 내가 모를 줄 알고있나봐 ? "

 

제국군 군부 총수. 아야세 에리의 날카로운 일침에 그는 순간 소스라친다.

 

" 그...그그그그것은.. ! "

" 그것 말고도 너희 수뇌부가 저질렀던 온갖 범국가적 비리와 음모들을 정리해놓은 파일을 여기 장교들 중 하나가 갖고있는데, 그걸 확 풀어버려도 되고. 아니면..... "

" 히이.... ?! "

 

" 이 괘씸한 음모를 빌미로 침공해버려도 다른 나라에선 뭐라 하지 않을 것 같은데. "

 

" !!! "

 

" 그러니까 의장님~ 우리 쉽게쉽게 풀자구요. 두캇은 세계무역의 중심지잖아 ? "

 

아야세 에리는 의장이라고 부른 남자에게 다가가 어깨동무한다. 주변에 둘러싸고 있는 아마도 장교로 추정되는 이들은 묵묵히 그걸 지켜보고 있을 따름이다. 남자는 땀을 뻘뻘 흘리며 게슴츠레 처다보는 에리의 얼굴을 흘끔거리다가, 뻐끔거린다. 대답이 나올 듯 말듯.

분명 그의 가슴속은 터질듯이 쿵쾅거리겠으나, 늙은 남자의 심려를 걱정할 정도로 그녀의 사정도 여유롭지 못했다.

이에, 그녀는 낭떠러지를 향해 등을 살짝 떠밀었다.

 

 

" 흐- 음. 정 함대의 위력을 보고싶다면야.... "

 

" 힉, 아, 아닙니다.. ! 지나가게 해드리겠습니다.. ! 부디, 부디 그것만은... "

 

10년은 더 늙은듯이 초췌해진 남자의 황급한 답에 에리가 빙그레 미소를 지어보인다.

이어서, 장교들의 무리중에서 유독 키가 작은 한 인물이 성큼걸이로 앞으로 나선다. 에리가 작은 이를 보고서 손짓한다.

 

" 들었지 제독 ? 출항 준비를 하도록 해. "

 

" 알겠습니다. 전원, 뮤즈의 명에 따라 움직인다. "

 

작은 키의 여자아이(?)가 뒤편에 늘어선 장교들을 아우러 부르자, 좌우로 갈라지며 길이 열리고 너머로 보이는 문을 향해 작은 발걸음이 나선 뒤에 그녀의 꽁무니를 따라 건장한 남성과 여성들이 줄지어 따라나간다. 순식간에 방 인원의 9할 가량이 출입문 너머로 사라지고 비교적 한산해진 별실 내에 에리는 의자 두개를 놓고 한 쪽에 두캇의 의장을 앉힌다.

잔뜩 긴장해서 한층 더 쭈그렁 할아버지가 되어버린 그는 맞은 편 의자에 앉아있는 뮤즈의 2인자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육감적으로 다리를 꼬아서 앉은 그 자태는 성욕을 자극하기에 충분했지만, 성욕보다 앞서는 미지에 대한 두려움이 그를 감싸고 있었기에 우물쭈물 할 따름이다.

 

" 질문같은거 있나요 ? 의장님. " 고압적인 자세로 내려다보며 입맛을 다신다.

 

" 예, 예에... 있습니다. 괜찮을.. 런지요 ? "

 

에리는 고갤 끄덕였다.

 

" 남해함대 전군을 이끌고, 이곳을 지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까요 ? "

 

남자는 조심스레, 살얼음을 밟듯이 조용하게 물음을 꺼냈다.

 

" 묘역[墓域] 에 볼일이 있어서. "

" 옛 ? 묘역이라 함은, 그 5대 사경(死景) 중 하나인 ? "

 

확실히 이 '묘역 이라고 불리우는 사경은 각각 동과 서에서 가장 강한 군사적 영향력을 행사 할 수 있는 오토노키자카 제국과 웨이그리아 군사연맹 에서 각각 동 묘역 서 묘역 이라고 구분지어 분할관리 하는 곳이며, 동시에 해상지역의 주요 거점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미시로 왕국이 꿰찬 중부 대륙을 거친 동방 진출에 실패한 제국에 있어서 이 묘역은 동쪽으로 진출할 수 있는 얼마 안되는 수단이기도 하다. 

 

때문에 필연적으로 이 묘역과 그 주변 해상의 지배권을 둘러싼 분쟁은 시시때때로 일어나 왔으며, 두 국가간의 군사적 충돌도 몇번인가 존재한다.

 

그러나, 규모와 위력만으로 리쿠루모크 공국 전체를 초토화 할 수 있다는것이 통설일 수준의 남해 함대의 병력 전부를 이끌고 묘역으로 향한다니.

 

 

" 선전 포고라도 하실 생각이신 겁니까 ? "

 

" 글쎄, 저쪽에서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다르겠지. "

 

" 웨이그리아를 말씀하시는 거라면, 누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 구실만 생기면 당장이라도 전쟁을 선포할 겁니다 ! "

 

사뭇 진중한 얼굴을 하고서 곧장 터질 것 같은 폭탄이야기를 하고있자니, 의장은 속이 답답해 미치겠다는 듯 가슴을 친다.

제국과 웨이그리아의 전쟁.

이것은 자칫 잘못하면 동대륙과 서대륙의 세계대전으로까지 이어질지도 모를 중대사이다.

왕국과 제국의 전쟁은 두캇이 전적으로 중립을 유지한 덕분에 - 사실 제국의 반 강제적인 협박때문에 붙은거지만 - 나라에 별다른 피해가 오지 않았지만, 스케일이 커지면 다르다. 만약 정말로 세계적으로 대전이 일어나면 동서에서 들어오는 물건들의 중계무역으로 먹고살아가는 두캇에게 있어서 치명적인 타격이 올 터.

 

" 만약 전쟁이 나면 네가 의회를 잘 구슬려서 두캇이 제국에 협력하게 해주겠지. 왜 내가 너를 의장 자리에 앉혀놓은 것 같아 ? "

 

에리는 발을 슬며시 뻗어 전투화 끄트머리의 뭉툭한 쇠 부분으로 그의 정강이를 톡톡 때렸다.

 

" 우.. 우웃... ! 그, 그 발언은 조금만 삼가해 주시는게.. "

 

" 왜 ? 누가 들을까봐 무서워 ? " 아야세 에리의 시선이 의장의 늙은 얼굴로부터 주변에 늘어서서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장교들에게로 돌아간다.

제독 휘하가 아닌 군부총수의 직속. 즉, 자기의 바로 아래에 속한 부하장교들이다.

장교들 하나하나와 눈을 마주치다가 손짓하니 별 다른 반응 없이 순순이 차례차례 문 밖으로 나선다.

 

이제 졸지에 둘 만 남게 되어버린 별실은 처음 보았을 때 보다 훨씬 쾌적하고 편안한 느낌으로 탈바꿈해 있었다.

 

" 뭐 이제... 출항 준비까지 대략 하루는 더 걸릴테니, 그동안.... "

 

" 아. 괘, 괜찮으시다면 간만에 식사라도 같이 어떠십니까 ? 요전번에 새끼 크라켄과 지즈의 고기를 버무려 만든 요리가 미식가들 평이 아주.... "

 

 

 

 

" 그. 것. 보. 다. "

 

아야세 에리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두르고 있던 망토를 의자에 훌렁 던져놓는다. 이어서 입고있는 제복 상의마저 벗어던지고서 쭈뼛쭈뼛 앉아있는 가련한 남자에게 다가간다. 의장의 눈썰미는 자연스레 부풀어있는 흉부로 향했다. 벽안의 눈동자가 사뭇 요염한 느낌을 띄며 겉으로 보기에 띠동갑 이상으로 보이는 남자를 내려다본다. 

그러다가, 한 손으로 의장의 미묘하게 튀어나온 고간을 힘껏 붙들었다.

 

" 후오오옷... ?! "

 

남자로서의 정체성이 붙들린 그의 비명과는 반대로 얼굴에 미묘한 홍조가 띈다.

 

" 난 이게 더 궁한데 ? "

 

" 우웃 ! 곤란합니다... 저는 아내와 아들이... "

 

" 걱정마. 힘든 부탁을 들어준 너를 위한 선. 물. 이니까. 자 -  . "

 

그녀가 남자의 아랫도리에서 손을 떼고 두 팔 벌리며, 품에 안기라는 듯 제스쳐를 취한다. 요염한 눈매와 맞물려 자애로운 성모라는 느낌마저 든다.

남자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 부들부들 떨다가 이내에 벌떡 일어선다.

 

 

" 누님....저, 저는... ! "

 

" 의장 일이 여간 힘든게 아니지 ? "

 

" 누니임 - ! "

 

 

밍크코트를 벗어던지고, 남자는 짐승이 되어 품에 뛰어든다.

이후 온갖 소리가 들려오며, 중간중간 에리의 장난기 짙은 웃음소리가 흘러나온다.

 

 

" 정말~ 20년이나 지났는데도 어린애같기는. 누가 안뺏어가니까 느긋해도 괜찮아~ "

 

 

.

.

.

.

 

 

 

" 선교, 말씀이신가요 ? "

 

" 네. 그렇습니다 태양이시여. "

 

아침부터 시마무라 우즈키의 침소에 찾아와 말하는 대주교 히다카 아이의 용건.

 

" 현재 왕국은 유래없는 암흑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퍼져오는 역병에 두려워하고 있고 나라를 유지하던 권위는 무너졌습니다. 허나, 지금과 같은 때에 더욱이 믿음을 전파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사람에게 태양께서 내려오셨음을 알림으로서, 은혜가 함께함을 경각시킴으로서 하나되어 지금같은 암울한 상황을 이겨낼 수 있게 되리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

 

히다카 아이는 고개를 숙인다. 그녀의 말이 무슨 뜻인이 우즈키는 대번에 알 수 있었다. 무척 희망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이야기지만 대주교의 말에는 자기가 누군가의 위에 서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이 서려있음이 느껴지기에 우즈키는 선뜻 '좋군요' 라고 밝게 대답할 수 없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베푸는 것은 옳으나, 그것이 과연 위에 서서 군림하며 해야하는 일이냐는.. 그녀의 오랜 고민이 다시한번 도진다.

허나 결국 우즈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히다카 아이는 여느 늙은 여성들처럼 자애롭고 상냥한 미소를 표하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그녀가 선교에 나서지 않아야 한다는 명분도 없다. 실제로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희망을 퍼트린다는 것 자체는 모두 맞는 말이니.

히다카 대주교가 자리를 뜨자마자, 우즈키는 침대에 도로 걸터앉아 한숨을 푹 내쉰다.

지난번 히노 아카네가 온 이후로 자기 방의 손님은 성기사단장이나 대주교가 전부였다. 창밖으로는 아카네의 침입 이후로 한층 더 증강된 베테랑 성기사들이 순찰을 돌고 있었다. 그들중엔 아이돌로서의 적성을 가진 이들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분명 아카네가 다음에 또 오겠다고 한 이후에 다시 오지 못하는것은 분명 이 때문일 것이리라. 우즈키는 추측해본다.

 

" 미오짱이... 살아있을지도 몰라. "

 

우즈키는 아카네로부터 전해들은 말을 홀로 중얼여본다. 미오가, 혼다 미오가 살아있을지도 모른다.

자기가 잃어버렸던 사람이 살아있을지도.

 

프로듀서, 쿄코, 미오.

 

소중한 사람들을 잃어갈 때 마다 마음 한구석에 구멍이 점점 커져갔다. 구멍은 이윽고, 구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다른 사람들을 아픔으로부터 구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구원해야만 한다고 하는 생각으로 들어차게 되었다. 그 정점은, 검은 불꽃과 함께 손을 내밀었던 형체가 보여준 얼마 남지않은 소중한 사람의 얼굴들을 보고서... 태양의 그릇으로서 각성했을 때.

 

' 콜록 콜록. '

 

우즈키는 가볍게 몇번의 기침을 하고서, 주변을 둘러본다. 역시나 아무것도 없고, 그저 바람 부는 소리만이 들려온다.

바람에는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실려 정적뿐인 방 안에 미세한 활기를 찾아준다.

허나 바깥의 소리를 들어봤자, 시마무라 우즈키는 밖으로 함부로 나가는 것 또한 엄중하게 통제되고있었기에 이루지 못할 욕구만 부추길 따름이었다.

 

 

" 외출.. 하고싶다... "

 

태양으로서, 구세주로서가 아닌 한명의 소녀로서, 사람으로서.

시장을 돌아다니며 여러가지를 살피고 맛보고, 즐겨보고 싶다.

 

구세주가 되기 전, 기사단장이 되기 전, 프로듀서에게 선발되어 교육받기 전.. 순박한 시절의 추억이 떠오른다.

 

 

 

" 좋은 기억이네. "

 

머릿속 회상의 목소리가 아닌 명백하게 타인의 육성이 귓속으로 파고들자 소스라치며 주변을 둘러봤다. 화장대, 욕실, 침대......

 

출입문.

 

" 아. " 우즈키는 열린 흔적도 없는 출입문에 누군가가 등지고 서있음을 본다.

그것은.. 그녀는 양 뿔과 같은 것이 달려있었지만 분명히 잘 알고있는 익숙한 모습이었다. 분명...

 

" 나오짱.. ! "

" 오랜만이네, 우즈키. "

" 에, 하지만 어떻게 여기에 ? "

 

 

 

" 그것에 관해서는 내가 설명해도 될까 ? "

 

 

카미야 나오가 아닌 또 다른 목소리. 이번에는 듣는것만으로도 불쾌감이 치솟는 목소리.

그 뻔뻔한 어투의 주인은, 카미야 나오의 등 뒤에서 솟아나오듯이 스르륵 흘러나와 변함없이 뻔뻔한 미소를 지어보인다.

 

 

" 타카가키 카에데...씨... ! "

" 후후, 오랜만이야. 구. 세. 주. 양. "

 

" 아, 우즈키 ! 이건 오해니깐, 절대로 이 여자랑 친구먹었다던가 그런건 아니니깐... ! "

" 이미 이런저런것도 함께 했는데~ 우리 기사님도 부끄러워하긴, 우후후... "

" 시끄럿 ! "

 

 

눈 앞의 상황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녀의 눈앞에 나타난 행방불명 됬다가 뿔이 생긴 나오와, 탈옥하고 행방이 묘연한 것으로 알려져있던 타카가키 카에데 가... 어떻게 이곳에 있는건지, 왜 있는건지에 대해 갈피를 잡을 수 가 없다. 이렇게 패닉에 빠질 것이란걸 나오 쪽은 이미 어느정도 예상한 것인지 그녀의 어깨를 붙들고 차분하게 마음을 가다듬도록 유도한다.

 

" 진정해 우즈키. 그리고 잘 들어야해. 놀라지 말고. "

 

 

 

나오의 말에 그녀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동의를 얻은걸로 간주하고, 그녀는 우즈키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숨을 한번 들이마셨다가 내쉰 뒤에, 담담하게 입을 연다.

 

 

 

 

" 당장 카와시마령 영지. 그러니까 이곳에서 벗어나. 무슨 수를 써서든. "

 

 

" . . . 에? "

 

 

" 이렇게 될 줄 알았지. 쿠후후후... "

" 시, 시끄러워 ! 조용히해 ! "

 

" 이곳을 벗어나라니 대체 무슨... "

 

우즈키가 어안이 벙벙하며 물어보자, 나오는 다시한번 포커스를 그녀에게로 집중하고 어깨를 세게 붙들었다.

 

" 시간이 없어.. 별의 전령들이 남부를 지나 올라오는 순간, 도피로가 막히고 말거야. 반드시 도망쳐서, 남쪽으로 큰 바다를 건너야해. "

" 이해를 못하겠어요.. ! 별의 전령은 뭐죠 ? 그리고 큰 바다를 건너라는 건.. "

" 미안해, 설명할 시간이 없어. 네 영향 때문인지 이곳에서 이 여자의 언령은 금방 풀려버려서. 그래도 제발, 내 말이 억지같더라도 들어줘야되.. ! "

 

 

 

" 시간 끝~ "

 

 

카에데가 산뜻한 표정으로 손뼉을 치자, 공간이 살짝 비틀린다. 동시에, 나오와 카에데의 형상 역시 우그러진다.

 

" 잠깐, 잠깐만.... ! 나는 이제부터.... 린을 찾으러 갈거야 ! 미오를 부탁할게 ! 우즈ㅋ ─── "

 

 

삽시간, 눈 깜빡할 찰나에 비틀리는 공간 속으로 나오와 카에데게 빨려들어가고 다시 방에는 그녀 혼자만이 남는다.

수 초 동안 멍하니 서있다가, 정신을 황급히 바로잡고서 나오에게 들었던 것을 책상 위 메모지에 휘갈겨 적는다.

' 미오 ' 나오는 분명 그렇게 말했다. 미오를 부탁한다고.

그리고나서 그 종이를 떼내어 접어 가방에 집어넣었다. 동시에, 성기사들이 문을 박차고 들이닥쳤다.

 

" 방금 수상한 기척이... 태양이시여, 무사하시나이까 ?! "

 

" 네? 아, 네... 무슨 일 있으셨나요 ? "

 

" 어.... 아니, 방금 전에 여기에서 태양이 아닌 수상한 기척이.. "

" 착각이 아닐까요 ? "

 

우즈키는 능청스럽게(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연기로) 받아친다.

성기사는 무기를 도로 허리춤에 걸치고, 곰곰히 생각하다가 고개를 깊게 숙인다.

 

" 죄송합니다. 저희의 무례를 부디... ! "

 

" 괜찮아요. 아 그런데 혹시, 이번 선교로 가는 곳이 어딘지 알고 계시나요 ? 혹여라도 가본적이 있는 곳이면 더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

" 아, 아아... 이 무슨 자비심 넘치는... ! 네. 이번에 가는곳은 이름없는 큰 숲에서 남쪽으로 있는 해안도시입니다. "

 

" 해안도시.. 알겠어요. 고맙습니다. "

 

" 예, 그러면 저희는 이만 물러나보도록 하겠습니다. "

 

앞쪽에 있던 성기사는 고갤 숙이며 뒤에 따라온 아마도 부하로 추정되는 기사를 인솔한 채로 조심스레 문을 닫고 나간다.

우즈키는 다시금 메모를 펼쳐본다. 별의 전령을 조심하라. 남쪽으로 큰 바다. 미오.

 

그녀, 시마무라 우즈키는 머릿속에서 번뜩이는 아이디어에 손가락을 튕긴다. 권력을 남용하는것은 분명 좋지 않은일이라 스스로 생각하지만, 이러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리라. 그녀가 문에 노크하자, 바깥쪽의 지키고있는 성기사가 육중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 말씀하십시오. "

 

" 히다카 대주교님께 제 말을 전해주시겠어요 ? "

 

" 네. 빠짐없이 전해드리겠습니다. "

 

" 이번 선교에 '히노 아카네' 와 '코히나타 미호' 가 동행했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말해주세요. "

 

 

 

그것은, 그녀 나름의 강수였다.

 

이 막무가내가 ── 부디 통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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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장 시작 ! 제국과 왕국이 움직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왕국 쪽에서는 개별단위로 움직이고 제국에선 국가차원으로 움직인다고 하는게 맞겠군요.

제국군 남해방면 전투함대, 줄여서 남해함대는 제국 해군의 주력이며 동시에 동대륙 국가들의 해상병력을 견제하고 압박하는 용도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화력과 규모가 상상초월입니다. 왕국을 침공할 당시에도 혹여라도 타국에서 제국의 뒤통수를 칠지도 모르기에 함대의 3할 가량만 출격했는데도 왕국 해군을 모조리 괴멸시켜버리고 왕국의 동남쪽 영토에 상륙해 도쿠가와 변경백령까지 치고 올라갔었지요.

 

아 그리고 두캇 공화국 의회 의장이라는 저 늙은 남자는, 에리의 비밀스런 지원 덕분에 출세가도를 달려 의장이 되었다는 뒷설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받은 도움의 종류가 다양해서(?) 헤아릴 수 없다는 건 덤.

 

그리고 나오도 다시 움직입니다 ! 작중 시점에선 유일하게 앞으로 일어날 일을 어느정도 알고있는 입장이기도 하지요.

루미는... 미안하다 !!!

 

그러면 이만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여기까지 봐주신 여러분 정말 고맙습니다 ! 앞으로도 저뿐만 아니라 모든 신데판에 많은 관심 부탁드리겠습니다.

 

다음 화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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