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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분하게 느긋하게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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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4-13, 2017 21:32에 작성됨.

 

---26

미니 콘서트가 끝나고 치하야는 대기실에서 765 프로 모두의 축하를 받고 있었다. 주저하며 들어온 치구사는 프로듀서를 포함한 모두에게 연신 죄송하다며 사과했다. 그리고 행복해진 딸 앞에 섰고, 치하야는 그런 어머니를 거부하지 않고 꼭 안아주었다. 모두들 박수로 화해한 모녀를 축하해주었다.

좁은 대기실이 워낙 붐벼 프로듀서는 공연장을 빠져나왔다. 잠시 밖으로 나와 눈이 내리는 밤하늘을 쳐다보았다.

 

‘이제야 치하야 양이 다시 행복해졌어. 다행이야.’

 

감상에 젖어 있는 프로듀서에게 한 푸근한 인상의 노인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잠깐 이 늙은이에게 시간을 좀 낼 수 있겠나?”

 

“무슨 일이신가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자네를 346 프로 아이돌 부서로 스카우트하고 싶네.”

 

프로듀서는 노인이 건넨 명함을 살펴보았다. 밖이 워낙 어두워 346 프로덕션의 로고와 ‘이마나시’라는 성, ‘부장’이란 직함만 알아볼 수 있었다.

 

“저를 스카우트하겠다고요?”

 

“업계 소문을 들어서 알겠지만, 우리도 이제 아이돌 분야로 본격적으로 진출하려 해서 말이지. 이번 오디션에서 타카가키 군이 우승하여 인지도를 단숨에 높이고, 뒤이어 데뷔할 우리 아이돌까지 탄력받는 게 우리의 계획이었네. 그래서 몸값 비싼 작곡가와 작사가까지 섭외했지만, 자네가 프로듀스한 키사라기 군이 한 수 위였다네.”

 

“유감이군요.”

 

“유감이랄 것까지야. 덕분에 아이돌은 재력으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지. 타카기 사장님의 안목이 여전히 살아 있단 걸 새삼 다시 느꼈네.”

 

이마나시 부장의 표정은 한층 여유로워 보였다.

 

“지금 우리는 타카가키 군과 죠가사키 군 말고도 재능 있는 아이들을 모으고 있지. 하지만 그만큼 유능한 프로듀서가 아직 부족해서 말이야.”

 

“346 프로 정도면 굳이 작은 회사의 프로듀서를 데려갈 필요는 없을 텐데요. 제 선배도 있고요.”

 

선배 얘기에 이마나시 부장은 고개를 저었다.

 

“자네 선배는 분명 우수한 인재야. 하지만 아이돌에게 중요한 것이 아직 무엇인지 모르는 친구기도 하지.”

 

“그럼 왜 하필 저입니까?”

 

“가장 강력한 경쟁자는 가장 강력한 아군이 될 수 있는 법일세. 첫해에 ‘푸른 가희’와 함께 you-i라는 유닛까지 프로듀스하지 않았나? 특히 한없는 슬픔에 빠져 그 누구도 재기하지 못할 거로 생각한 ‘푸른 가희’를 다시 무대에 세우고 톱 아이돌 위치로 올려놨어. 이 모든 게 자네 능력이지 않은가?”

 

“아니, 그건.”

 

뭐라 말하려는 프로듀서의 말을 이마나시 부장이 차분히 끊었다.

 

“고민은 되겠지. 하지만 말이야, 우리 프로덕션은 봉급도 더 줄 수 있는 데다 해외 지사도 많아. 자네가 원한다면 해외 지사 발령 겸 헐리우드 연수까지 보내줄 수 있네.”

 

‘헐리우드 연수!’

 

프로듀서 업계에서 헐리우드 연수는 그야말로 천금 같은 기회였다. IA에 you-i가 노미네이트됐다면 헐리우드 연수 기회를 얻었겠지만, 그러하지 못했다.

그리고 분명 346 프로덕션은 아이돌 분야는 처음이지만 분명 빠르게 세력을 불릴 것이었다. 프로듀서는 765 프로에 입사하면서 경력만 쌓고 더 큰 프로로 이직하려 했던 다짐을 떠올렸다.

 

‘그래. 원래부터 이직하기로 마음먹었잖아. 게다가 대기업인 346 프로라니, 이건 절호의 기회야.’

 

하지만 346 프로로 간다면 프로듀서는 765 프로의 모든 사람들과 헤어져야 했다.

처음엔 야속했으나 지금은 존경하는 타카기 사장, 늘 조언을 아끼지 않은 리츠코, 묵묵히 모두를 도와주는 코토리. 장난을 좋아하는 후타미 자매, 깐깐해도 마음씨는 따뜻한 이오리, 우아함 그 자체인 타카네, 강하지만 알고 보면 여린 마코토, 수줍음이 많아도 강한 유키호, 재능과 열정을 모두 겸비한 히비키가 떠올랐다. 마지막에 떠오른 것은 누구에게나 따뜻하고 다정한 하루카, 늘 활기 넘치는 야요이, 그리고 자신이 첫 프로듀스한 아이돌인 ‘푸른 가희’ 치하야였다. 765 프로의 ‘동료’들 덕분에 프로듀서는 아이돌이 무엇인지 깨달았고, 그리고 행복을 새로 깨달았다.

모두를 떠올리고 나니 프로듀서는 대답이 정해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거절하겠습니다.”

 

“뜻밖의 대답이군. 다른 프로듀서들은 어떻게든 우리 프로덕션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데 말이야. 왜 765 프로에 남으려고 하는지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나?”

 

프로듀서는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대답했다.

 

“765 프로에 남아야겠다는 느낌이 왔습니다.”

 

“느낌이라? 역시 타카기 사장님이 뽑은 사람다워.”

 

“원하신다면 자세히 말씀드리죠. 저는 지금 치하야 양을 비롯하여 많은 아이돌들과 울고 웃으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아이돌은 행복을 대중에 전하는 직업이죠. 그러니 동료인 프로듀서도 행복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지금 이 행복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을 뿐입니다. 보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아이돌 스스로부터 행복해야 한다, 저는 그걸 돕는 것이 프로듀스라고 생각하거든요.”

 

“이상적이면서도 현실적이야. 그래서 자네가 스카우트를 거절해서 더욱 아쉬울 따름이군.”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프로듀서가 어딘가엔 있을 겁니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공손히 인사하고 가려던 프로듀서는 다시 이마나시 부장을 바라봤다.

 

“오해하실까 봐 한 가지 말씀드리자면, 저는 치하야 양이 다시 행복하게 만든 것이 아닙니다. 치하야 양은 원래 노래하는 게 행복한 아이돌이니깐요.”

 

“호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뭔가?”

 

프로듀서는 웃었다.

 

“왜냐하면 행복은 누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닌, 본래 모두가 마음속에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 얘기를 들으니 더욱 자네를 놓치고 싶지 않아.”

 

“다시 말씀드리자면 거절하겠습니다. 346 프로의 앞날에 무운을 빌어드리겠습니다.”

 

“자네도.”

 

이마나시 부장은 멀어지는 프로듀서를 웃으며 바라보았다. 이마나시 부장도 걸음을 옮기며 핸드폰을 꺼냈다.

 

“날세. 슬슬 ‘프로젝트 신데렐라’를 시작하도록 하지. 스카우트는 실패했네. 그러니 프로젝트 담당은 ‘그’에게 맡기도록.”

 

그렇게 치하야의 발렌타인 데이 라이브는 성황리에 끝났다. 잠깐 열린 간이 팬 미팅에서도 치하야는 한 명씩 돌아가며 감사 인사를 표했다. ‘푸른 기사단’ 회원들을 비롯한 팬들은 눈물과 박수, 격려로 답해주었다.

모든 일정이 끝나고 퇴근할 수 있었지만, 차가 또 퍼져버려 프로듀서와 you-i 멤버들은 눈 오는 밤거리를 함께 걷고 있었다.

 

“프로듀서 씨! 눈이에요, 눈!”

 

“웃우! 예뻐요!”

 

눈이 와서 가장 신난 것은 하루카와 야요이였다. 프로듀서와 치하야는 그 모습을 즐겁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두 분, 차 시간에 늦지 않겠습니까?”

 

“예?”

 

프로듀서의 말에 하루카가 급히 시간을 확인하였다.

 

“으아아! 저희 먼저 가볼게요. 치하야도 잘 들어가.”

 

“웃우! 오늘 치하야 씨 덕분에 정말 즐거웠어요!”

 

둘은 바삐 인사를 하고 달려갔다. 하지만 하루카는 달려가다 길에 넘어지고 말았다.

 

“아이, 참. 난 여기서도 넘어지네.”

 

“하루카, 자.”

 

넘어진 하루카를 치하야가 먼저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고마워.”

 

“차분하게, 느긋하게. 잊지 마.”

 

치하야가 내민 손을 붙잡으며 일어나는 하루카가 말했다.

 

“있잖아 치하야, 난 네가 다시 아이돌을 해서 기뻐. 앞으로도 잘 부탁해.”

 

“나도. 모두와 함께 노래할 수 있는, 행복한 아이돌이 되어서 기뻐..”

 

치하야와 하루카는 서로를 향해 활짝 웃었다.

 

“아 맞다. 프로듀서 씨에게 드릴 게 있어요.”

 

하루카는 가방에서 작은 빨간색 상자를 하나 꺼내어 프로듀서에게 내밀었다.

 

“이건?”

 

“오늘은 발렌타인 데이잖아요. 제가 직접 만든 거예요.”

 

“웃우, 여기 제 것도요! 다 함께 모여서 같이 만들었어요.”

 

야요이도 주황색 상자를 내밀었다. 갑작스러운 초콜릿 선물에 프로듀서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전 이런 거 받을 자격이...”

 

“충분히 있죠. 프로듀서 씨도 저희 동료잖아요. 그리고 앞으로 저랑 야요이한테도 말 편하게 해요. 아시겠죠? 동료님.”

 

“웃우! 아셨죠? 동료!”

 

프로듀서는 둘이 내민 초콜릿 상자를 조심히 받았다.

 

“하루카, 야요이. 둘 다 정말 고마워. 잘 먹을게. 그리고 앞으로도 잘 부탁할게.”

 

“저희도요, 프로듀서 씨!”

 

“앗, 시간이? 하루카 씨! 얼른 가야 돼요.”

 

“알았어. 그럼 프로듀서 씨도, 치하야도 내일 봐!”

 

“웃우! 내일 봐요!”

 

야요이를 따라 달려가던 하루카는 치하야에게 힘내라는 손짓을 보였다.

밤거리엔 프로듀서와 치하야 둘만 남았다. 여전히 밤하늘엔 사근사근한 눈이 내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별다른 대화 없이 걸었고, 어느덧 치하야의 아파트에 도착했다.

 

“오늘 미니 콘서트 정말 수고했어. 들어가서 푹 쉬어.”

 

“감사합니다. 프로듀서.”

 

하지만 여느 때와 달리 치하야는 바로 들어가지 않았다. 무언가를 주저하는 느낌이 들었다.

 

“무슨 할 말이라도?”

 

“정말로 고맙습니다.”

 

몸을 굽혀 인사하는 치하야를 보고 프로듀서는 놀랐다.

 

“갑자기 왜 그래?”

 

“전 다시 노래를 못 할 거로 생각했어요. 그리고 다시 행복이란 걸 모르고 살아갈 뻔했어요. 그러나 프로듀서 씨는 절 끝까지 믿어주었고 제가 다시 무대에 설 수 있도록, 그리고 다시 행복해질 수 있게 도와줬어요. 정말 감사해요.”

 

프로듀서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치하야 스스로가 다시 행복을 잡지 않았다면 무의미한 일인걸. 다른 사림이 무얼 해도 선택은 치하야가 직접 하는 거니깐.”

 

“그래도 프로듀서가 아니었으면 그 기회조차 없었을 거예요.”

 

“그렇게 생각해주면 나야 고맙지. 다른 사람이 노래를 못하는 슬픔을 다시 겪게 않게 하자, 그리고 행복하게 노래 부르게 도와주자. 그렇게 하려고 프로듀서가 됐는걸.”

 

“그럼 성공이네요. 두 가지를 같이 해내셨으니깐요.”

 

“난 치하야가 다시 아이돌로서 노래하는 게 정말 고마운걸. 그럼 내일 봐.”

 

“아 프로듀서. 잠깐만요.”

 

작별을 고하고 떠나려는 프로듀서를 치하야가 불렀다. 그리고 다급하게 가방을 뒤지더니 작은 파란색 상자 하나를 꺼내 수줍게 내밀었다. 상자를 든 치하야의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이건 뭐야?”

 

“별거 아닙니다…”

 

하지만 치하야의 얼굴을 ‘choco fondue’ 녹음하던 날처럼 새빨개져 있었다. 상자를 받아든 프로듀서는 천천히 상자 뚜껑을 열었다.

 

“여기서 열지 마요!”

 

“초콜릿?”

 

치하야의 다급한 만류에도 상자를 열자 초콜릿들이 들어 있었다. 모양이 고르지 못한 걸 보니 직접 만든 게 분명했다. 아무래도 하루카, 야요이와 함께 만든 것이 분명해 보였다.

 

“길 가다 산 거예요! 그 날 정말 감사해서, 그리고 동료로서도 고마워서 드리는 거니까 오해하진 마요.”

 

“내가 보기엔 직접 만든 거 같은데… 하루카와 야요이랑 같이?”

 

“아니라니까요!”

 

그 말만 남기고 치하야는 도망치듯 아파트로 뛰어들어갔다. 한참이나 치하야가 사라져간 곳을 쳐다보던 프로듀서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이럴 땐 영락 없는 아이라니까.’

 

프로듀서는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검은 밤에서 새하얀 눈이 아직도 내리고 있었다. 그 아름다운 광경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수많은(千) 나날이 지나고 드디어 아침(早)이 왔구나.”

 

살면서 이처럼 밤하늘을 오래 바라본 적이 있을까 싶었다. 그만큼 오랜만에 맞이한 아침보다도 훨씬 아름다운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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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럼 타는 치하야 커엽...

이번 화가 마지막 화 아닙니다! 내일 마지막 화가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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