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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분하게 느긋하게 (25)

댓글: 4 / 조회: 670 / 추천: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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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4-12, 2017 22:16에 작성됨.

 

---25

‘아이돌 대격전! 노려라 발렌타인 데이’ 우승이 결정되자 주최한 대기업으로부터 한 가지 제안이 왔다. 이번 오디션에 대한 반응이 워낙 뜨겁다 보니 ‘choco fondue’ 말고도 콜라보레이션으로 노래를 하나 더 만들었으면 한다는 내용이었다. 치하야는 흔쾌히 수락하는 대신 작사를 직접 맡겠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화려한 복귀를 한 치하야는 신곡 준비와 인터뷰로 다시 바쁜 나날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러다 콜라보레이션 기념 화보 및 광고 촬영을 하러 가던 날, 프로듀서는 치하야의 품이 비어 있음을 깨달았다.

 

“어? 치햐는요?”

 

“유우의 곰 인형 옆에 두고 왔습니다. 절 닮은 치햐가 있으니까 유우도 이제 외롭지 않을 거예요.”

 

치하야가 광고를 찍는 동안 프로듀서는 발렌타인 데이 라이브의 세트 리스트를 넘겨야 한다는 코토리의 연락을 받았다. 광고 촬영을 마치고 두 사람은 같이 거리를 걸으며 세트 리스트에 대해 논의하기로 했다. 그동안 혹사당한 차가 또다시 퍼져 버려 수리를 맡긴 상황이었다.

프로듀서에게서 세트 리스트를 넘겨받은 치하야는 세트 리스트가 비어 있음을 깨달았다.

 

“아직 안 정하셨습니까?”

 

“제가 정할 게 아닌 걸요. ‘푸른 가희’의 단독 무대이니 직접 부를 곡을 정하세요. 주최 측도 치하야 양이 정한 세트 리스트에 따르겠다고 했고요.”

 

“그런가요… 알겠습니다.”

 

치하야는 프로듀서와 상의하려는 듯 여러 의견을 내놓았지만, 프로듀서는 치하야의 의견을 존중하며 고개만 끄덕였다. 그렇게 세트 리스트가 완성되었다.

 

“신곡을 2개씩이나? 이때까지 완성할 수 있을까요?”

 

“예. 하나는 주최 측에서 좋은 작곡가분과 작사가분을 붙여주셔서 금방 나올 것 같습니다. 이 노래도 샘플은 이미 나와 있으니 작사만 마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무리하는 게 아닐까요?”

 

“아니요. 꼭 부르고 싶은 2곡이라서 넣은 겁니다. 그리고 이제 저도 명심하고 있어요. 차분하게, 느긋하게.”

 

치하야의 눈빛은 비장하면서도 맑았다. 그런 눈빛을 보니 프로듀서는 안심하면서도, 스케쥴을 여유 있게 조정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프로듀서, 앞으로 제게 말 편하게 하세요.”

 

“예?”

 

“어차피 저보다 나이도 많으니 말은 편하게 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업무상 파트너의 선을 지키자고 했던 건 치하야 양입니다만?”

 

“말투 바뀐다고 선을 안 지킬 분이 아니시잖아요? 절 데리러 온 날엔 잘도 반말하셨으면서.”

 

조용히 웃는 치하야에게 되려 한 방 먹은 듯한 기분이었다. 그래도 그런 치하야가 나쁘진 않았다.

겨울바람이 더욱 차가워질 즈음, 마침 자판기 하나가 보였다.

 

“따뜻한 거 뭐라도 마실...래?”

 

“제가 사겠습니다.”

 

치하야의 지갑을 무심코 보던 프로듀서에게 한 사진이 눈에 띄었다. 지금보다 앳된 치하야가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모습이었다. 프로듀서의 시선이 사진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 사진은 언제 찍은 거...야?”

 

“중학생 때 노래 경연 대회에 나간 걸 어머니가 찍어주신 사진이에요. 원래부터 노래 부르는 게 행복하단 사실을 잊지 말자고 넣어뒀습니다.”

 

치하야의 설명에도 프로듀서는 머리를 무언가에 맞은 것 같았다. 무대에 걸린 현수막에는 프로듀서가 자취했던 동네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사진이 찍힌 날은 이 장소 근처 자취방에서 프로듀서가 모든 걸 포기하려 했던 날이었다.

프로듀서는 떨리는 목소리로 치하야에게 물었다.

 

“혹시 이날 부른 노래가 뭐였는지 기억나?”

 

“아, ‘올리비아를 들으며’였어요.”

 

워낙 명곡인지라 프로듀서도 익히 잘 아는 노래였다. 하지만 프로듀서는 다른 이유로 이 노래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바로 그 날, 프로듀서가 다시 이 세상에 발을 딛게 한 그 노래였다.

 

「 만났을 무렵, 이런 날이 오리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었어.

Making good better

아니 지나 가버린 일 시간을 반복했을 뿐

힘들어 지친 당신, 나의 환상을 사랑했던 거야. 」

 

그 날 마음에 닿았던 ‘올리비아를 들으며’의 가사를 떠올리며 프로듀서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때 그 노래를 부른 사람이... 이것도 인연이라면 참 신기한 인연인데.’

 

“참 세상 좁단 말이야.”

 

“무슨 말씀이죠?”

 

갑자기 프로듀서는 치하야에게 정중히 몸을 숙였다. 갑작스러운 인사에 치하야는 당황했다.

 

“프로듀서?”

 

“치하야, 정말 고마워.”

 

“왜 그래요, 갑자기?”

 

“치하야는 원래부터 노래로 행복을 전하는 톱 아이돌이었단 걸 다시 느끼는걸.”

 

무슨 일인지 이해 되지 않는 치하야는 그저 어리둥절했다. 그런 치하야를 보며 프로듀서는 웃기만 했다.

근 한 달 동안 치하야는 정신없는 나날을 보냈다. 치하야는 미니 콘서트 준비는 물론, 새로 선보일 두 곡 작사에도 참여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노래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프로듀서는 노래 연습에 몰두하는 치하야가 불안했지만, 노래에서 거센 소용돌이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안심했다. 그래도 최대한 스케쥴을 배려해가며 조정하였다. 마지막으로 마음을 갈무리할 치하야를 위해서, 그리고 행복한 순간을 조금이라도 더 보장해주고 싶어서였다.

아름다운 발렌타인 데이 밤, 한 라이브 홀에 치하야의 단독 미니 콘서트가 개최되었다. 아직 추운 날씨였지만 많은 사람들이 ‘푸른 가희’의 복귀 무대를 보기 위해 모여들었다. 그리고 치하야의 신곡이 2곡이나 발표된다는 사실 또한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부풀게 하였다.

치하야가 무대에 올라오자 관객들의 환호성이 쏟아졌다. 정중히 인사를 한 치하야는 관객석을 둘러보았다. 765 프로 동료들과 많은 관객들이 파란 형광봉을 들고 치하야를 지켜보고 있었다.

 

‘나와 내 노래를 좋아해 준, 그리고 기다려준 사람들.’

 

그리고 치하야의 시선이 한 군데에 쏠렸다. 처음엔 놀랐지만, 이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누군가를 바라보며 치하야는 다시금 비장하면서도 편한 마음가짐을 가졌다.

 

“안녕하세요. 765 프로 소속 아이돌 키사라기 치하야압니다. 오늘 제 미니 콘서트에 와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짧은 인사와 함께 첫 곡으로 ‘푸른 가희’라는 별명을 안겨준 데뷔곡 ‘파랑새’를 부르기 시작했다. 다시 무대에 선 치하야는 한 마리의 파랑새보다도 아름다웠다.

 

“최고다 치짱!”

 

간주에 접어들자 관객석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푸른 기사단’의 회장은 다시 무대에 선 치하야를 보며 감격의 눈물을 쏟아냈다. 그의 손엔 파란 형광봉이 들려 있었다. 옆의 부회장도 감동의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큿… 살아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부회장, 이 좋은 날 왜 울어요.”

 

부회장을 다독이는 팬클럽 회원도 감격의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그다음으로 ‘눈이 마주친 순간’과 ‘잠자는 공주’의 무대가 이어졌다. 모두 아직 치하야가 불행만을 알았을 시절 불렀던 노래였다. 하지만 슬프고 애절한 가사에도 불구하고 듣는 사람 모두들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두 곡의 차례가 끝나자 다시 열렬한 환호성이 쏟아졌다. ‘푸른 기사단’ 옆에 선 마츠다 아리사도 양손 가득 파란 형광등을 들고 환호하고 있었다.

 

“’푸른 가희’ 치하야 짱! 최고의 아이돌 짱! 사랑해요!”

 

연달아 세 곡을 부르고 치하야가 무대에 내려가자, 한 영상이 나오기 시작했다. 치하야의 데뷔 무대부터 지금까지의 무대 영상들을 모아 만든 하이라이트 영상이었다.

영상이 끝나고 다시 무대로 올라온 치하야는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오늘 이렇게 행복한 날에 찾아와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지금까지 부른 노래들로 저는 아이돌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게는 늘 힘이 되는 동료들이 있었습니다. 모두 함께 오르지 못해 아쉽지만, you-i 멤버인 아마미 하루카 양과 타카츠키 야요이 양을 무대로 모시겠습니다.”

 

다시금 이어지는 환호성을 받으며 하루카와 야요이가 무대에 올라왔다. 바쁜 스케쥴 속에서도 오늘 치하야와 함께 서기 위해 같이 연습한 둘이었다.

 

“맨 뒤에 있는 사람까지 잘 보이니까! 지금부터 시작할게요!”

 

“웃우! 하이~.”

 

“터치!”

 

동료들과 함께 하는 행복을 느꼈던 you-i의 데뷔곡인 ‘fo(u)r’의 무대가 이어졌다. 치하야는 두 사람과 함께 하는 것에 감사하면서 아름다운 노래와 안무를 선보였다. 같이 무대에 선 하루카도, 야요이도 행복했다. 프로듀서는 세 사람이 빚어내는 세 가지 빛깔의 화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 화음은 이전보다 더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또 한 분의 게스트를 모셨습니다. 하기와라 유키호 양을 소개하겠습니다.”

 

다음 순서가 되자, 하루카와 야요이가 내려가고 유키호가 무대에 올라왔다. 야요이와 하이 터치를 한 유키호는 치하야와 함께 부르지 못했던 ‘inferno’를 부르기 시작했다.

다소 강한 멜로디와 가사였지만, 치하야는 유키호와 듀엣을 했을 때의 느꼈던 목소리 속 강함을 근거로 유키호와 듀엣을 추진했다. 아니나 다를까, 올스타 라이브에서 못다 한 아쉬움을 털어내려는 듯 둘은 멋진 무대를 선보였다. 치하야도, 유키호도 서로의 목소리에 모든 걸 맡긴 채 부르는 화음은 그야말로 아름다웠다.

사실 미키와도 ‘relations’를 부르고 싶었으나, 페어리 스케쥴이 많아져 같이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 많이 아쉬워하는 치하야를 미키가 응원해주었다.

 

“어차피 치하야 씨 앞으로도 아이돌을 하니까 같이 노래할 기회는 많이 있단 거야. 다른 것보다 치하야 씨가 다시 무대에 선다는 게 굉장히 기쁜 느낌!”

 

‘inferno’의 순서가 끝나고, 하루카와 야요이가 다시 무대에 올라왔다. 그리고 네 사람은 올스타 라이브에서 부르지 못했던 ‘약속’을 같이 부르기 시작했다.

올스타 라이브 날, 거센 소용돌이에 빠져 부르지 못했던 노래였기에 765 프로 모두와 함께 부르고 싶어 했다. 그러나 무대 상황이나 스케쥴 상 문제 등으로 인해 세 사람만이 함께 무대에 서기로 했다.

 

「 있지, 지금 바라보고 있어. 떨어져 있더라도

Love for you.

마음으론 줄곧 네 곁에 있어. 이제 눈물을 닦고 웃어줘.

혼자가 아니야. 언제라도.

꿈을 꾼다는 건 살아 있다는 것.

슬픔을 뛰어넘는 힘이야. 」

 

관객석에 있던 765 프로 아이돌 모두가 ‘약속’을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관객들도 하나둘씩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 걸어가자, 끝이 없는 길을.

노래하자, 하늘을 넘어서 이 마음이 닿을 수 있도록.

약속하자,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Thank you for smile. 」

 

치하야가 이 노래를 선택한 이유는 올스타 라이브에 대한 사과의 의미에서였다. 그리고 동료들도, 관객들도 같이 따라 부르며 치하야의 마음을 받아주었다. 그렇게 ‘약속’은 끝은 모두의 합창으로 끝났다.

 

“여러분... 정말... 감사합니다.”

 

치하야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셋은 한동안 그런 치하야를 안아주었다. 치하야가 어느 정도 진정되자, 하루카가 멘트를 대신해주었다.

 

“저희 셋은 이만 내려가겠습니다. 미니 콘서트는 아직 끝이 아니니 다들 이어질 치하야의 노래를 기대해주세요!”

 

“저도 잘 부탁드릴게요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웃우! 하이~.”

 

“터치!”

 

하루카와 야요이, 유키호는 치하야와 함께 다 같이 무대에서 내려갔다. 그리고 치하야의 화보 및 광고 촬영 현장을 담은 영상이 나왔다. 그리고 영상이 끝날 무렵, 갑자기 VCR 화면이 꺼지면서 라이브 홀의 모든 불빛이 꺼졌다.

어리둥절해 하는 관객들에게 웅장한 오케스트라 연주음의 파도가 덮쳐 왔다. 그리고 어두웠던 무대에 스포트라이트가 켜졌다. 거기엔 파란 드레스로 갈아입은 치하야가 눈을 감고 서 있었다. 눈부시도록 파랗게 아름다운 공주는 오랫동안 준비해온 신곡 ‘세빙(細氷)’을 노래하기 시작했다.

 

「 어둡고 어두운 마음에 비친 내 눈동자.

바다 밑바닥처럼 깊이 숨죽이고

애달픈 마음이 넘쳐 흐르네.

떠나가는 당신의 등 뒤에 ‘안녕히’.

갈 곳 없이 방황하는 마음, 고독에 안겨

나는 필사적으로 걸어가겠어

바람에 흔들리는 흑백의 거리도 사람도 꿈도 허망하게 사그라지고

발버둥 치며 쓰러지더라도 멈춰설 수 없는 나에게

슬픔도 애달픔도 없는 빛이 기다리고 있어.

마음을 불사르는 한숨은 빛으로 바뀌네

세게 더 세게 붙잡아줘.

마음속의 빛. 」

 

치하야는 과거의 자신을 돌이켜보며 유우를 떠올렸다. 자기의 행복을 위해서 노래를 불렀지만, 유우는 여전히 큰 이유였다. 그래서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말을 유우에게 전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걸 전할 방법 역시 노래라고 생각하여 ‘세빙’의 가사를 직접 지었다. 가사를 쓰다가 멍하니 유우를 떠올리기도, 한참을 울기도 했다. 그런 만큼 진심을 담아 유우를 위해,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자신을 위해 가사를 완성하였다.

‘세빙’이란 제목은 하루카가 저번에 말해줬던 감상에서 따왔다. 프로듀서도 틈틈이 ‘세빙’ 작사를 도와주었다. 그러면서 트라우마가 다시 나타나지 않을까, 공연까지 시간도 촉박한데 무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치하야의 행복을 위한 다른 방법이란 생각에 시간 나는 대로 가사를 봐주었다. 그리고 프로듀서는 단순한 슬픔만이 아닌,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다짐이 있는 것을 보고 안도했다. 치하야의 모든 것을 담은 ‘세빙’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야말로 ‘푸른 가희’ 다운 무대였다. 푸른 차가움은 음 하나, 가사 하나에 실리며 얼어붙어 다이아몬드 같은 빛을 발하는 ‘세빙’으로 퍼져갔다. 그 아련한 아름다움이 관객들의 마음에 전해졌다.

노래하는 동안 그 누구도 박수를 치지 않았고, 그 누구도 환호하지 않았다. 단순히 처음 듣는 신곡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라이브 홀의 모든 사람들이 노래 그 자체에 감동하고 몰입하고 있었다.

‘세빙’이 끝나자 모든 관객들이 기립 박수로 무대에 화답했다. 개중에는 눈물을 닦는 관객들도 많았다. 하지만 치하야는 슬퍼하지도, 울지도 않았다. 그저 홀가분한 표정으로, 지금 이 순간을 느끼고 있었다. 치하야는 노래의 여운을 만끽하며 한동안 무대 맨 뒤 한 곳을 다시 바라보았다.

 

‘유우, 내 노래가 들리니?’

 

그리고 공연은 멈추지 않았다.

잠시 쉰 치하야는 ‘choco fondue’를 부르기 시작했다. 치하야가 다시 행복을 되찾고 톱 아이돌로 일어설 수 있게 한 노래를 다 같이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공연 시작부터 관객 속에 한 여자아이가 있었다. 부잣집 아가씨처럼 단정하게 차려입은 아이는 노래를 줄곧 따라 부르면서 치하야를 동경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예전 우동 식당에서 볼 땐 몰랐지만, 치하야는 아이돌이 되고 싶어 하는 아이의 우상이 되어 있었다.

 

‘나도 저렇게 행복하게 노래하고 싶어.’

 

갑자기 주머니에 넣어둔 핸드폰이 울렸다. ‘아버지’란 글씨를 확인한 아이는 다급하게 공연장을 빠져나왔다.

 

- 시즈카, 지금 어디냐?

 

“아직 집에 가는 중이에요.”

 

- 노래가 들리는 걸 보니 너 또 아이돌 무대 보러 간 게냐?

 

“그냥 앞에 지나가던 중이에요. 사람 많으니까 끊을게요.”

 

다급히 아버지와의 통화를 끊은 아이, 모가미 시즈카는 멈춰서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공연장을 한 번 바라보고는 걸음을 재촉했다.

어느덧 마지막 곡 순서가 되었다. 치하야는 관객들을 쭉 둘러보았다. 치하야의 공연을 보러 온 765 프로 동료들이 먼저 눈에 띄었다. 늘 자기를 응원해주는 ‘푸른 기사단’과 그 외에도 자기 노래를 사랑해주는 많은 팬들도 보였다. 그리고 관객 맨 뒷줄에는 어머니 치구사가 있었다.

미니 콘서트를 앞두고 치하야는 용기 내 치구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제는 어머니를 용서하고 싶다고, 그리고 어엿한 톱 아이돌이 된 딸의 무대를 보러 와달라고 하였다.

하지만 치구사는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오열했다. 치구사는 기사로 올스타 라이브에서 무너지고만 치하야의 소식을 접했다. 그리고 자신의 실수로 소용돌이에 갇힌 딸을 보며 슬퍼했지만, 죄책감에 앞서 선뜻 먼저 다가가지 못했다.

 

“미안하구나. 먼저 연락을 해야 했는데, 차마 용기가 안 나더구나. 이 못난 어미를 용서해줄 수 있겠니?”

 

치하야도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나 모든 걸 털어버리기로 했다. 그리고 치구사는 약속을 지켰다. 아버지에게도 연락했으나 마침 해외 출장 중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하지 않았던 진심 담긴 말을 하였다.

 

‘정말 미안하다. 애비 된 도리를 다 못해 볼 면목이 없었단다. 하지만 아름답게 노래하는 네가 정말로 자랑스럽다. 앞으로 꼭 노래하면서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구나.’

 

치하야는 오랜 세월 듣지 못했던 아버지의 진심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공연 처음부터 치구사의 옆에 키가 큰 남자가 서 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이었지만, 치하야는 그 남자를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과거가 과거로 남지 않고 현재까지 이어졌다면 아마 저 남자와 같은 모습이었을 것이었다. 그래서 ‘세빙’을 끝마치고 마음이 전해지길 바라며 그 남자를 한동안 바라본 것이었다.

키 큰 남자는 콘서트 내내 치하야를 향해 활짝 웃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웃으며, 치하야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치하야에겐 익숙한 입 모양이었다.

 

‘노래해.’

 

남자는 다시 입을 열었다.

 

‘노래해 줘, 누나.’

 

치하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오늘의 마지막 곡을 시작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많은 것을 놓치고 살아왔습니다. 늘 쫓기듯 저 자신을 밀어붙였죠. 그래서 무너진 적도 있었습니다.”

 

치하야는 그 시절을 떠올리듯 잠시 뜸을 들였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 덕분에 저는 다시 무대에 설 수 있게 되었고, 다시 노래 부르는 것이 행복해졌습니다. 저는 지금 그 누구보다,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합니다.”

 

관객들을 살펴본 치하야는 무대 뒤에 있는 프로듀서를 한 번 바라봤다. 프로듀서도 환히 웃고 있었다. 프로듀서에게 고개를 끄덕인 치하야는 차분히 직접 작사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모든 분들이 옛날의 저처럼 무언가에 쫓겨 행복을 잊지 않고 살기를 바라며 직접 작사한 노래입니다. ‘차분하게 느긋하게’입니다.”

 

「 끝없이 높은 밤하늘에서 반짝이는 샛별

손을 뻗어 잡아보려고 했어

손이 닿지는 않겠지만,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마음까지는 이해하고 싶지 않았어...

지금 보이는 별의 빛은 몇 년을 넘어 닿는 거야

열심히 한 만큼 언젠가 행복은 오겠지

 

차분하게 느긋하게 자신의 걸음걸이로 걷자

한 걸음 또 한 걸음

차분하게 느긋하게 나한테 맞추며 가자

꿈이 언젠가 이루어질 때까지 저 샛별이 아침을 데려갈 거야. 」

 

‘세빙’과 다르게 노래를 듣는 사람들이 예전의 자신처럼 행복을 놓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써내려간 가사였다. 편안한 멜로디와 직접적인 가사는 포근한 눈이 되어 관객들의 마음에 내려 앉았다. 그렇게 치하야는 노래로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하고 있었다.

치하야의 진심을 받아들인 관객들은 우렁찬 박수와 환호성으로 완벽한 라이브를 마친, 톱 아이돌로 다시 무대에 선 ‘푸른 가희’를 축하해주었다. 박수 소리를 들으며 치하야는 가장 먼저 남자가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남자는 그때와 같은 질문을 되묻고 있었다.

 

‘누나, 행복해?’

 

그때 대답하지 못했던 치하야는 행복한 웃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더욱 활짝 웃어준 남자는 그대로 몸을 돌려 깊은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하지만 치하야는 남자를 불러 세우지 않았다. 그 남자가 치하야의 마음속에 평생 살아갈 것을 알아서였다.

 

‘고마워, 유우. 안녕히(さよなら).’

 

치하야는 유우가 사라진 어둠에서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 울고,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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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 보니 노래 가사만 절반인 느낌이...

그리고 프로듀서와 치하야 사이에 아주 소소한 반전도 있었군요.

이제 이야기도 얼마 안 남았습니다. 마지막까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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