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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분하게 느긋하게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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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4-12, 2017 21:32에 작성됨.

 

---24

치하야가 다시 노래했다는 소식은 모두의 기쁨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치하야는 다시 예전보다 더 뛰어난 노래 실력을 발휘하며 노래 연습에 몰두했다. 본래 뛰어난 재능이 빛나면서 오디션 곡을 금방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더불어 동료들과 어떻게 부르면 좋을지 논의하며 연습했다. 혹은 프로듀서에게도 의견을 구하기도 했다. 노래를 더 잘 부르기 위함이었지만, 그 밑엔 더는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렇게 치하야는 차분하게, 느긋하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항상 치하야는 치햐를 안고 다녔다. 연습, 레슨, 스케쥴 등 모두 치햐와 함께였다. 홀로 있을 때면 치하랑 대화하듯 얘기하곤 했다. 주로 일상적인 얘기를 하면서 가족 얘기까지 나누었다. 그 모습을 보며 프로듀서는 치하야도 여느 아이들과 다를 바 없다는 점을 새삼 깨달았다.

765 프로 아이돌 모두 치햐를 귀여워했지만, 우사짱을 안은 이오리는 우사짱의 친구가 생겼다며 특히 좋아했다.

 

“다 큰 어른이 인형이나 만들고 변태 같긴 했지만, 덕분에 우사짱에게도 친구가 생겼으니 기쁜걸? 니히힛.”

 

“마빡이 또 샤를에게 우사짱이라고 했단 거야.”

 

옆에 있던 미키의 심드렁한 지적에 이오리는 다시 발끈했다.

 

“키이잇! 미키 계속 마빡이라 그럴 거야!”

 

드디어 녹음 당일, 프로듀서와 치하야는 녹음 예정 시각보다 조금 일찍 출발했다.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유우의 무덤이었다. 작은 묘비 앞에 두 사람은 백합 한 송이씩을 올려놓았다. 그리고 치하야는 아무 말 없이 한동안 유우의 무덤을 바라보았다.

 

‘유우, 더는 슬퍼하지만은 않을게. 그래도 너를 잊지 않을 거야. 부디 저 하늘에서, 다시 행복하게 노래하는 나를 바라봐줘.’

 

녹음실에 도착한 치하야의 품엔 치햐가 꼭 안겨 있었다. 프로듀서는 그런 치하야를 볼 때마다 뿌듯함을 느꼈다.

 

“준비됐어요?”

 

치햐를 다시 꼭 끌어안은 치하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녹음실에 다다르자, 막 녹음실에서 나오는 두 사람을 볼 수 있었다. 두 사람 다 익숙한 얼굴이었다.

 

“어? 선배?”

 

프로듀서는 남자를 가장 먼저 알아봤다. 바로 프로듀서에게 765 프로 입사를 권했던 선배였다. 선배도 프로듀서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오, 오랜만이다. 765 프로에서 잘하고 있는 모양이네. 네가 키사라기 양 담당이었구나.”

 

“처음 뵙겠습니다. 346 프로 소속 타카가키 카에데입니다.”

 

‘이 아이가 346 프로에서 선택한 아이돌...’

 

최근 선배가 346 프로에 이적했다고 들었지만, 카에데의 프로듀서인 건 처음 알았다. 실물로는 처음 본 카에데는 고풍스러움이 느껴졌다. 카에데의 노래를 들었을 때도 다른 의미로 뛰어난 보컬이란 생각도 했었다. 과연 346 프로에서 아이돌 분야 개척의 선봉장으로 삼을 만하다고 느껴졌다.

 

“765 프로의 키사라기 치하야입니다.”

 

“치하야 씨의 노래는 잘 듣고 있어요. 역시나 ‘푸른 가희’라는 별명이 어울린다고 할까요. 오늘 녹음도 잘 마치시길 바랄게요.”

 

“감사합니다.”

 

치하야에게도 웃어주던 카에데의 눈에 치햐가 보였다. 카에데 역시 치햐를 귀여워해 줬다.

 

“인형이 치하야 씨랑 똑 닮았네요. 귀 없는 게 참 귀엽군요.”

 

“쿡, 쿡쿡...”

 

긴 머리에 가려져서 그렇지 치햐에겐 귀가 있었지만, 카에데의 개그 같지 않은 개그에 치하야는 소리 죽여 웃었다. 그런 치하야를 보고 카에데도 뿌듯한 웃음을 지었다.

 

‘역시 치하야 양은 이런 개그를 좋아하는 거였어.’

 

두 아이돌 사이로 기류가 형성되려는 찰나, 선배가 프로듀서에게 자신 있게 말했다.

 

“네 담당 아이돌이 많이 괜찮아진 모양이군. 하지만 바짝 긴장해둬. 여기 카에데는 지금 346 프로의 최고 기대주야.”

 

“치하야 양의 노래 실력이 누구보다 뛰어나단 걸 선배도 잘 아실 텐데요?”

 

“차가운 ‘푸른 가희’가 달콤한 노래를 잘 소화할 수 있을진 모르겠군.”

 

“그건 지켜볼 일이죠.”

 

“꽤 자신만만한데?”

 

“어머, 두 분 그렇게 날 세우다가 날 새웁니다.”

 

선후배 관계는 잊고 신경전을 벌이는 두 사람에게 카에데가 한마디를 던졌다. 두 사람 사이에 무딘 적막이 흘렀고, 치하야는 또다시 다급히 입을 막고 웃음을 참으려 애썼다.

 

“아무튼 저희는 녹음하러 가보겠습니다. 수고하십시오.”

 

“우리도 다음 스케쥴이 있어서. 행운을 빈다.”

 

“저도 그럼.”

 

카에데는 우아하게 인사를 했다. 치하야도 정중히 인사를 받았다.

 

“선배의 무례를 대신 사과드려요. 워낙 자신만만한 성격이라...”

 

“괜찮습니다. 프로듀서의 말대로 지켜볼 일이니깐요.”

 

복도를 걷고 있는 카에데는 선배의 질문을 받았다.

 

“카에데, 그래도 경쟁자인데 너무 다정하게 대한 거 아니야?”

 

“경쟁자는 맞죠. 하지만 이런 여유쯤은 괜찮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라이벌이라고, 라이벌.”

 

“설마 프로듀서 씨는 제가 질 거라고 질겁하신 건 아니죠?”

 

카에데의 자신만만한 태도에 선배 프로듀서는 걱정을 접기로 했다.

치하야가 앞장서서 녹음실로 들어가자, 녹음 준비를 하던 녹음 담당자가 치하야에게 다가왔다.

 

“녹음 연습은 이미 다 하셨을 테니까, 곡 느낌만 다시 짚어보죠. 발렌타인 데이가 소재니까 막 고백하려는 풋풋한 소녀의 마음을 담아서 노래하면 돼요.”

 

“어렵겠지만… 해보겠습니다.”

 

“치하야 양이라면 잘해낼 거라 저희도 생각합니다.

 

가사와 멜로디는 이미 충분히 숙지하고 있지만, 어떤 감정을 실어야 할지는 몰랐다. 노래 말곤 관심이 없던 지라 이성에게 하는 고백이 낯설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치하야는 하루카와 야요이를 비롯한 다른 아이돌들과 리츠코, 코토리에게까지 물어봤다. 대부분 연애 감정이라는 걸 치하야에게 설명하려 했지만, 치하야는 쉽사리 이해하지 못했다. 그 중 코토리는 발렌타인 데이를 골똘히 생각하다가 저번처럼 갑자기 울면서 사무실을 뛰쳐나갔다.

치하야에게 가장 참고가 될 만한 답변을 준 것은 아즈사였다.

 

“어머, 아마 내가 찾으려는 운명의 사람과 비슷한 것 같네.”

 

“운명의 사람이요?”

 

“나도 아직 못 만났지만... 아! 연인이라면 아무래도 서로를 믿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싶어. 그러니 운명의 사람은 곧 자신을 가장 믿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

 

“가장 믿어주는 사람...”

 

“그럼 치하야를 가장 믿어주는 남자라면 역시 프로듀서 씨일까나?”

 

아즈사가 미묘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걸 느낀 치하야는 저도 모르게 발끈했다.

 

“그럴 리가요! 업무상 파트너, 아니 동료일 뿐입니다.”

 

아즈사와의 대화를 떠올리며 마이크 앞에 선 치하야는 밖의 한 남자를 보았다. 지금까지 그 누구보다 자기를 믿어주었던 사람이었다. 막상 아즈사 앞에선 갑작스러운 부끄러움으로 부인했지만, 곰곰이 생각해봐도 프로듀서뿐이었다.

 

‘그래. 이것도 비즈니스야. 내가 노래를 잘 부르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결국, 치하야는 프로듀서를 떠올리며 노래 부르기로 했다. 물론 그 이유는 노래를 잘 부르기 위해서였지만, 그렇다고 프로듀서에게 아무 마음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그 동안 정말 고마웠어요. 프로듀서.’

 

그렇게 생각하니 가슴속에서 따뜻한 감정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하루카나 야요이, 다른 동료들에게서 느낀 따뜻함과는 달랐다. 오히려 진하면서 초콜릿처럼 달콤했다. 그러면서도 아름답기까지 했다.

 

‘이 느낌… 마치 프로듀서가 준 보라색 히아신스 같아.’

 

낯선 감정은 치하야에게 노래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 이정표를 세워주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봐온 프로듀서의 모습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노래를 시작했다.

 

「 저어… 오늘은 일 년에 딱 한 번 있는 발렌타인 데이야.

맞아, 여자가 남자한테 초콜릿을 주는 스폐셜 데이.

저기… 이렇게 두근두근하는 만남은 마치 초콜릿 같아.

그래, 달콤하고 녹을 것만 같은 로맨스.

노래하는 것보다도 좋아질 것 같아서 단 한 명한테 딱 한 개만.

 

choco fondue, choco fondue, choco fondue

당신을 좋아합니다.

말하고 싶은데 말할 수 없어. 그러니 present for you.

 

choco fondue, choco fondue, choco fondue

마음을 담아서 지금 너에게 주는 사랑의 큐피트.

이루어주세요, 부탁이야. 」

 

녹음이 끝나자 치하야는 달아오른 얼굴을 식히느라 진땀을 뺐다. 녹음 스태프들의 반응도 좋았다. 프로듀서는 연습 때는 느끼지 못했던 치하야의 마음을 느끼면서 놀랐다.

 

‘푸른색이긴 한데, 보라색 같기도 해. 그리고 뭐야 설렘? 무슨 생각을 하고 부른 거지.’

 

프로듀서는 그런 치하야를 보면서 자기도 얼굴이 달아오른 것이 느껴졌다. 당황하며 달아오른 얼굴을 손부채로 얼른 식혔다.

 

‘내가 미쳤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그러다 문득 녹음실 안의 치하야와 눈이 마주쳤다. 치하야는 부끄러워하며 시선을 홱 돌렸다. 유우가 아닌 누군가를 위한다고 생각하며 노래 부른 것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노래를 위해서라지만 이런 낯간지러운 노래에 업무상 파트너인 프로듀서를 떠올렸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이런 노래, 역시 아직은 부르기 어려워.’

 

그러면서도 내심 마음속 행복을 느끼는 치하야였다.

녹음이 무사히 끝나고, 드디어 출전자들의 곡이 동시에 공개되며 온라인 투표가 진행되었다. 카에데나 다른 아이돌 모두 발렌타인 데이에 맞는 노래를 선보였고, 반응도 폭발적이었다. 특히 카에데의 노래 실력은 프로듀서가 듣기에도 감탄할 정도였다. 하지만 치하야의 ‘choco fondue’ 역시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 맙소사! 예전 치하야 노래랑 완전 딴판이야. 심지어 노래 부르는 게 더 좋아진 느낌이 들어.

 

- 그 '푸른 가희’가 이런 달달한 노래를 불렀다고? 믿기지 않는데?

 

-      치짱… 많이 힘들었을 텐데 이렇게 성장하다니… 진정한 톱 아이돌이야.

 

- 돌아온 치하야에 떠오르는 카에데까지 엄청 치열해. 이번 오디션 결과가 기대된다.

 

‘푸른 가희’의 귀환에 온라인 여론도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런 반응들을 살펴보면서 프로듀서는 우승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투표 상황은 비공개였기 때문에 끝까지 안심할 순 없었다.

‘아이돌 대격전! 노려라 발렌타인 데이’의 우승자 발표는 인터넷 방송으로 공개되었다. 765 프로의 모든 사람들이 결과 발표를 기다리고 있었다.

 

- 국내 유명 아이돌들이 총집결한 ‘아이돌 대격전! 노려라 발렌타인 데이’! 치열한 투표 끝에 오늘 대망의 우승자를 드디어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우승자는 앞으로의 발렌타인 데이 제품과 콜라보레이션으로 모델이 되며, 당일 미니 콘서트 기회까지 주어집니다.

 

모두들 긴장된 표정으로 TV를 지켜보고 있었다. 치하야는 평소처럼 무표정이었지만 긴장한 탓에 손을 떨고 있었다. 옆에 앉아있던 하루카가 치하야의 손을 잡아주었다. 야요이도 치하야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 그럼 발표하겠습니다. 대망의 우승자는!

 

사무실의 모두 숨이 멈추었다.

 

- 765 프로의 ‘푸른 가희’, 키사라기 치하야 양입니다! 축하드립니다!

 

화면에 치하야의 사진이 떠오르며 ‘choco fondue’가 흘러나오자 사무실에 환호성이 가득했다. 아이돌들, 리츠코, 코토리까지 모두 치하야에게 달려들었다. 타카기 사장은 뒤에서 그 광경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 치하야는 활짝 웃고 있었다.

 

- 키사라기 치하야 양 정말 축하드립니다. 2위인 346 프로의 타카가키 카에데 양과 정확히7,272표 차이로 우승했습니다.

 

“큿...”

 

치하야는 순간적으로 분한 표정을 지었다.

 

“치하야, 정말로 축하해!”

 

“치하야 씨 만세!”

 

“미키도 정말로 감동했단 거야.”

 

“본인은 치하야가 우승할 줄 알았다고!”

 

“니히힛! 이 슈퍼 미소녀 아이돌도 기쁜데? 물론 우사짱도 기쁘대.”

 

“치하야, 추, 축하해애.”

 

“키사라기 치하야라면, ‘푸른 가희’라면 당연히 해낼 거라 믿었사옵니다.”

 

“어머, 치하야의 노래가 모두에게 감명을 준 모양이랄까.”

 

“크앗 치하야 언니! 축하해!”

 

수많은 축하 인사를 받는 가운데 아미와 마미가 동시에 품에 안기니 치하야는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치하야의 눈이 프로듀서의 눈과 마주쳤다. 프로듀서는 활짝 웃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치하야도 마주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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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급한 일로 공지도 못 드리고 휴재를 했네요... 죄송합니다. 25편도 곧 올리겠습니다.

참고로 이번 편은 카에데의 아재 개그를 어떻게 하느냐가 가장 어려웠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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