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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쿠보 노노는 운명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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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4-10, 2017 22:37에 작성됨.

도입부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그것은 처음 만나는 운명의 그 사람에게 무슨 말을 건네냐만큼이나 어려운 난제이다.

아마도 밀레니엄 문제에 사랑이 포함되었다면, 그것은 절대로 깨지지 않고 절대로 풀이되지 않는 최고난도의 것일테다.

두 문장이나 써 놓고 벌써부터 할 말이 떨어진 나는 무슨 말을 먼저 써야할지,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가 아무도 읽지 않을 이 경험담을 써내려가는 것 자체를 재고해야할지를 고민한다. 

...하지만 그러면 안 되지. 그렇다면 운명이 보이지 않는 나도, 역시나 마찬가지로 운명이 보이지 않았던 그녀도 슬퍼할테다.

그렇지, 그녀의 말을 한 김에 조금 그녀에 대해서 수박 겉핥기 식으로 설명을 해보도록 할까.

지금부터 소개할 그녀의 이름은 모리쿠보 노노.

반강제적으로 아이돌이 되고, 반강제적으로 사랑을 받아야만 했고, 반강제적으로 운명을 받아들여야 했던, 네거티브를 너무나 사랑하는 영원한 소녀이다.

 

 

처음 모리쿠보 노노를 만났을 때는 꽤나 오래 전의 면접 때.

어딜 봐도 껄렁해보이는 두 명의 아이돌 후보생 사이에 껴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듯이 잔뜩 겁먹은 표정을 지으며 빠져나갈 구멍만을 찾는 그녀의 모습에는 어떻게 해서라도 아이돌을 할 운명이 끼어있는 듯한 모습이 보인다.

모리쿠보 노노에게 아이돌이나 몇 가지 질문을 던져본다.

예상대로, 그녀는 전혀 관련 지식이 없이 그저 요행으로 서류 면접을 통과한 럭키 네거티브였다.

뭐, 그렇겠지. 저런 소녀가 자신이 직접 아이돌 회사에 서류를 넣지는 않았을테니.

다른 심사위원들이 이 그룹은 전혀 못 써먹겠다는 듯이 드문드문 한숨을 내쉬는 동안, 나는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강렬한 느낌에 모리쿠보 노노에게만 시선을 집중해 그녀를 쳐다본다.

잔뜩 겁먹은 목소리는 너무나 간드러진 목소리로 들렸고, 우물쭈물하며 빨리 빠져나가고 싶어하는 모습은 마치 다듬어지지 않은 자유로움처럼 보였다.

저것은 꼭 아이돌로 만들어야 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무리-를 입에 달고 사는 모리쿠보 노노는, 그 순간 무리-라고 중얼거리며 나를 쳐다본다. 

그것이 어쩌면, 그녀와 나의 운명이었을지도 모르지, 지금의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나의 적극적인 푸쉬로 아이돌이 된 모리쿠보 노노는, 역시나 생각대로 아이돌 일을 하지 않으려고 버티다 사무소의 책상 이곳저곳의 아래에 숨기 시작한다.

사무소의 책상이라는 것이 한두개만 있는 것도 아닌데다가, 안 그래도 바빠 죽을 것만 같은 프로듀서의 일에 그녀를 찾으러 돌아다니기란 너무나 피곤하고 짜증나는, 하지만 찾지 않을 수도 없는 치킨 게임이 지속되는 나날.

화를 내볼까, 그것도 아니라면 혼이라도 내볼까라고 생각했지만, 그만두기로 했다.

그런 짓을 하면, 아이돌을 해야만 하는 자신의 운명이 보이지 않는 모리쿠보 노노는 이것이 기회다라고 생각하고 전무에게 달려가 아이돌을 그만두겠다고 말하겠지.

어쩔 수 없다. 모리쿠보 노노를 이 세계로 끌어들인 것도, 모리쿠보 노노의 운명같은 미래가 보이는 것도 오직 나뿐이기에.

그렇다면 그 미래를 모리쿠보에게, 노노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내가 더욱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일단은 오늘도 사무소의 책상 아래에 숨어들어간 노노를 찾아야 한다. 오늘도 쳇바퀴같은 하루가 지나간다.

그래, 그것은 마치 운명같이 지나간다.

 

노노의 네거티브함이 마음에 들은 것인지, 아니면 그들도 나와 같은 운명이 보이는 자들인지는 모르겠지만 점점 노노의 인기가 올라간다.

좋은 일이다. 노노는 조금씩 아이돌로서, 그리고 소녀에서 숙녀로 성장함에 따라 말버릇처럼 하던 무리-라는 중얼거림의 빈도 수도 줄었고, 회전목마같이 끊임없이 돌아 밀려오는 아이돌의 일도 그다지 기분 나쁘지 않다는 표정으로-하지만 역시나 완벽히 좋아할 수는 없는지 환한 미소를 짓지는 않는다-받아들린다.

대신 그녀에겐 또다른 습관이 생겼는데, 바로 나를 노려보듯이 째려보는 시선.

미움받은 건가, 나는 그녀의 반응도 그다지 이상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는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예정된 스케줄대로 그녀를 인솔해 촬영장으로 들어간다.

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이 곳은 마법의 장소이다.

이 장소가 없다면 아이돌들은 모두 자신의 이미지에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자신만의 형태로 빛나는 소녀들이다. 

평범하게 동화책을 쓰고, 평범하게 시를 쓰고, 평범하게 책상 아래로 숨어 누군가가 찾아주기를 바라는 소녀.

이런, 이번에도 노노의 생각을.... 담당하는 아이돌이 꽤나 많은 프로듀서인 나는 이런 생각을 가지면 안된다고 자기 자신을 다그치며 노노를 쳐다본다.

분장실에서 한참 동안이나 틀어박혀있었던 노노는 아름다운 공주의 드레스를 입고 나타나 주변을 둘러보다 나를 오묘한 시선으로 쳐다본다.

저 시선은 무슨 의미일까. 운명을 보는 눈은 가지고 있음에도 시선에 담긴 의미를 알아채는 재주는 없는 내가 노노의 시선을 보며 의문스런 표정을 짓자 노노가 조금 풀이 죽은 듯한 표정으로, 하지만 아이돌의 프로성을 유감없이 발휘해 영업용 미소를 얼굴에 떠올리며 플래시 세례를 받아낸다.

나는 정말로 괜찮은걸까, 나는.....정말로 운명이 보이는 걸까.

 

촬영이 끝나고 사무소로 돌아가는 차 안.

잠시 동안 아무런 말도 없던 노노가 여태까지는 들리지 않았던 목소리로, 하지만 이제는 분명히 들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듯이 말한다.

 

"프로듀서 씨는 노노가 무리-인 건가요..."

 

운전석에서 운전을 하고 있던 나는 뒷자리에서 중얼거린 듯한 노노의 말을 얼마 알아듣지 못하고 귀머거리가 되었다는 듯이 뭐라고? 라고 다시 물을 수밖에 없다.

내 질문에 백머리로 투영된 내 얼굴을 쳐다보던 노노는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짓다 다시 입을 열어 말한다.

 

"프로듀서 씨는, 노노를, 좋아하는 건 무리-가 된 건가요...?"

 

한 마디 한 마디 온 힘을 들여 말하는 노노의 말에 나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으며 운전대를 놓아버린다.

빨간 불이었던 신호등이 어느새 초록색으로 켜져 점멸한다. 뒤에 늘어서 있던 차들이 우리를 향해 빵빵대다 이내 포기했다는 듯이 옆 차선으로 넘어간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신호등이던 차던 어떻게 되든지 상관 없다는 듯이 빤히 노노만을 쳐다본다.

어느새 이렇게 자란거지? 분명히 몇 달 전만 하더라도 그저 네거티브한 소녀였는데....

 

"프로듀서, 일단 운전하지 않으면 무리-인데요...."

 

아 그렇지. 나는 노노에게 정신이 팔려 내가 해야 할 일을 내팽개쳐 버렸었다.

노노의 말에 내가 뒤늦게 액셀을 밟아 차의 속도를 낸다. 다행히도 파란 불이 빨갛게 물들기 전에 사거리를 횡단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왠지 그냥 넘어가선 안 되는 것을 들어버린 것같은 기분을 느끼며 백미러로 노노의 얼굴을 투영한다.

노노는 일생일대의 고백이 무산이 된 듯한, 그야말로 처참한 표정을 지으며 드문드문 백미러로 시선을 주며 나를 쳐다본다.

노노가 저렇게까지 보는데 대답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잠시 말을 고르다가 노노에게 그녀를 면접실에서 보던 그 날부터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나의 이야기에 노노는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온다. 아무래도 이런 애기를 들어본 적이 없겠지.

이야기가 끝날 때쯤, 노노는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있다는 듯이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질문한다.

 

"저, 그런데... 운명이 보인다는 건 뭔가요?"

 

운명을 느낀다는게 아닐까, 나는 노노의 질문에 간단하고도 그것보다 더 잘 설명할 수는 없는 대답을 내놓는다. 

 

 

나는 운명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다.

만약에 내가, 노노를 그 눈으로 보지 못했다면 그녀는 그저 평범한 네거티브 소녀였겠지.

운명이란 잔혹하다. 노노는 나의 대답을 듣고는 그렇게 말했었다.

그 말은 맞는 말이다.

어쩌면 잔혹한 것만이 운명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보이는 운명만이 모든 것은 아니다라고, 나는 내 옆에서 조용히 잠들어있는 노노를 잠시 쳐다보고는 옅은 미소를 짓는다.

노노는 운명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는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감히 훌륭하다고 말할 수 있는 마법사의 손에 이끌려 신데렐라가 되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그 드레스는 마법사가 선물한 것. 신데렐라는 그렇게 될 운명이다, 운명이 보이는 마법사는 그렇게 말할 수 있다.

그래, 이것은 모두 노노가 운명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천천히 노노의 머리에 기대어 잠에 든다.

 

「모리쿠보 노노는 운명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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