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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카 「NEVER, END, ID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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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4-09, 2017 03:04에 작성됨.

영원은, 있을 수 없다.

 

 

 

「프로듀서 씨?」

 

프로듀서는 노트북으로부터 시선을 올려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았다. 익숙한 얼굴의 소녀가 몸을 굽혀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빨갛고 앙증맞은 리본으로 머리를 장식한 갈색 머리의 소녀는 765 프로덕션의 아이돌 아마미 하루카다.
웬만큼 연예계에 지식이 없는 것이 아니라면 누구라도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그럴 만한 위치의 아이돌이었다.

 

「왜, 하루카?」

「그게, 집에 돌아가지 않으시는 건가 해서요」
「처리할 업무가 남아있거든. 혹시 내가 안 가면 신경이 쓰여서 그러는 거야? 미안한데」
「그, 그런 건 아니지만요! 하지만 그것도 그렇네요. 역시 프로듀서 씨가 남아 계시는데 저만 돌아간다는 건, 조금 죄송한 기분이 들어요」
「다른 애들은 다 돌아갔지만. 약삭빠르구나, 하루카」
「에헤헤헤…」

 

멋쩍은 웃음과 함께 옆얼굴을 긁적이는 하루카를 향해 마주 웃어 준 프로듀서는 노트북을 덮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나도 이만 갈까. 남은 건 집에서 해결하지, 뭐」
「네! 같이 돌아가요, 프로듀서 씨!」

 

묘하게 기쁜 것처럼 보이는 하루카가 앞장서서 사무소를 나섰다. 짐을 챙겨든 프로듀서가 뒤를 따랐다. 문단속을 하고 계단을 내려가 건물 밖으로 나오자 차가운 공기가 얼굴을 스쳤다. 밤, 이라고 할 정도로 늦은 시간은 아니었지만, 이제 막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한 거리의 온도는 제법 싸늘했다. 봄이라기에는 아직 이른 시기다. 추운 것도 어쩔 수 없겠지. 프로듀서는 코트 앞섶을 여몄다.

 

「으으~, 제법 춥네요…」

 

하루카는 몇 걸음 앞에서 목도리를 꼭 쥔 채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아이돌다운 몸짓이다. 직업병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을 감상이라고 생각하며 프로듀서는 하루카에게 다가갔다. 직업병이라고 한다면, 어쩌면 저 소녀의 행동이야말로 몸에 배어 있는 직업병일지도 모르지만. 

 

아이돌이란 그런 것이다.
어느 때라도, 자기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에 매력을 깃들여야만 한다.

 

「하루카는 전철역으로 가는 거였지?」
「네, 프로듀서 씨도 마찬가지시죠?」
「잘 알고 있구나. 같이 가는 게 처음도 아니니까 당연하겠지만」
「저희들, 오랜 파트너니까요!」

 

난간이 줄지어 늘어선 도로변의 길을 하루카와 프로듀서는 나란히 걸었다. 주변 건물의 불빛도 있는데다 심심찮게 차가 지나가는 덕에 두 사람의 퇴근길은 어둡지도, 고요하지도 않았다.

 

「~~♪」

 

하루카가 콧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하루카의 데뷔곡이자 대표곡이라고 할 수 있는 노래의 멜로디다. 지금까지 몇 십 번이고, 몇 백 번이고 노래해 왔을 곡을 콧노래로 또다시 불러내는 하루카는 새삼스럽게도 꽤 즐거워 보였다.
수백 번. 그렇게 생각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큼, 먼 길을 걸어왔다.
불안하고 위태롭기만 했던 이 소녀는, 이제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완연한 아이돌이다.
자신이 자신으로 있기 위해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를 무척이나 잘 알게 되었을 정도로.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일지 모른다. 지금의 아마미 하루카는 오히려─

 

그런 생각을 하던 프로듀서는 발걸음을 멈췄다. 언제부터인지 하루카의 콧노래가 들리지 않고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루카?」

 

뒤를 돌아보자 하루카는 이름도 모를 가게의 유리창 앞에 멈추어 선 채 그 안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한 것 같았다. 뭔가 예쁜 악세서리 같은 것에 마음을 빼앗기기라도 한 걸까. 프로듀서는 몸을 돌려 하루카에게 다가갔다.

 

「하루카, 갑자기 뭘 그렇게 보는 거야?」
「… 네? 아아, 네… 죄송해요, 프로듀서 씨. 그게」

 

하루카는 끝까지 말하지 않았다. 무심결에 하루카의 시선을 따라 유리창 안에 눈길을 준 프로듀서는, 그 정체를 확인하고서 어떤 감상을 내놓으면 좋을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리고 말았다.

 

「… 이 애들이 신경쓰였던 거야?」
「으~응… 조금은, 그러려나요」

 

하루카는 엷은 미소를 띤 채로 고개를 저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몸짓이었다. 금새 해맑은 표정이 된 하루카가 언제 그랬냐는 듯 활기찬 걸음으로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한 눈 팔아서 죄송해요, 프로듀서 씨. 빨리 가요!」
「… 어, 그래」

 

하루카의 뒤를 따르기 전, 프로듀서는 한 번만 뒤를 돌아보았다.
신제품인 듯한 대형 TV 안에서는 최근 들어 활동이 잦아진 타사 아이돌들의 무대가 비춰지고 있었다.

 

 


「저기, 프로듀서 씨」

 

그대로 5분쯤 걸었을 무렵, 하루카가 말을 걸어왔다. 다분히 일상적으로 들리는 말투였다.

 

「저희가 아이돌 활동을 시작한 지 몇 년쯤 지났으려나요?」
「왜 갑자기 그런 게 궁금해진 거야?」
「에헤헤, 그냥요. 원래 이런 건 갑자기 궁금해지는 법이니까요」
「글쎄… 첫 공식 활동 날짜까지 기억하고 있지는 않은데. 아마 4년에서 5년 정도겠지」

 

하루카는 손가락을 하나하나 꼽더니 놀랐다는 듯 입을 벌렸다.

 

「와아, 5년이나 됐군요… 듣고 보니 굉장히 기네요」
「뭐, 꽤 충실한 시간이었지. 아이돌로서 누릴 수 있는 영예라면 대부분 누렸으니까. 너도, 다른 애들도」

 

스스로 말하고서도 프로듀서는 이유 모를 위화감을 느꼈다. 굳이 이런 대답을 할 필요가 있었을까. 흘깃 시선을 돌리자 하루카는 생글생글 웃어 보였다.

 

「그것도 다 프로듀서 씨 덕분이지만요」
「그건 고마운 말이네」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 전철역에 도착했다. 전철이 떠난 지 얼마 안 되었는지 역 안은 한산했다.

 

「타이밍이 안 좋았던 것 같네요. 꽤 기다려야 할 것 같아요」
「어쩔 수 없지. 벤치에라도 앉아 있자」

 

프로듀서를 따라 벤치에 주저앉은 하루카가 힘없이 눈을 감고 아-아, 하는 소리를 냈다. 한숨을 쉬었다고 하기보다는 다소 의식적인 어필에 가깝게 보였다.
이런 부분에서도, 아이돌이다. 프로듀서는 어김없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왜 그래? 지친 거야, 하루카?」
「아아뇨, 지치지는 않았어요. 애초에 지칠 만큼 일이 많지도 않았는걸요?」
「듣고 보니 그랬던가. 그래도 나날이 쌓이는 피로라는 게 있으니까」
「최근에는 꽤 오랫동안 한가했으니까, 그것도 아마 괜찮을 거라고 생각해요」
「… 뭐 그러려나. 그럼 왜 그러는데? 신경이 쓰이는 거라도 있어?」

 

짚이는 부분이라면 있었다. 그러나 프로듀서는 구태여 그것을 먼저 확인하려 들지 않았다.

 

「프로듀서 씨, 저희들, 상당히 오래 활동했네요」

 

하루카가 평소와 같은 명랑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텅 비어 있는 전철 선로를 바라보는 채였다.

 

「응. 아까도 얘기했던 거지만」
「충실한 시간, 이었다고 말씀하셨죠. 그 말을 듣고 되짚어 봤어요. 765 프로덕션의 모두와 함께 보낸, 지난 시간을」

 

하루카는 배시시 미소지었다. 부드러운 눈매가 조금 가늘어졌다. 즐거운 추억이라도 회상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재미있었죠~. 힘든 일도 많긴 했지만요. 레슨을 받고, 의상을 입고, 방송에 출연하고, 음반 차트에 오르고, 라이브를 하고… 아이돌이 되지 않았다면 할 수 없었을 경험이었어요」
「그래… 그랬지」
「모두 함께 커다란 돔에서 라이브를 하고, 많은 팬 분들이 사랑해 주셔서… 하루하루가 바쁘고, 모두와 예전처럼 놀 수 있는 시간도 줄었지만, 그래도 행복했었어요」
「응」
「그치만 말예요, 프로듀서 씨」

 

주저하는 것인지, 말을 고르는 것인지 알 수없는 침묵.

잠시 뜸을 들이던 하루카는 고개를 돌려 프로듀서를 똑바로 마주했다.

 

 

「이제, 그 때처럼은 될 수 없는 거겠죠?」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다.
그 사실에 프로듀서는 희미한 서글픔을 느꼈다.

 

 

「… 왜 그렇게 생각해?」
「낡았으니까요. 저희들」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하루카는 그런 말을 입에 담았다.

 

「질리고, 흥이 식고, 그러고 나면 새로운 것에 관심이 옮겨가는 건, 당연한 일인 거죠? 프로듀서 씨」
「… 하루카」
「예전에 비교하면 일도 많이 줄었고, TV에 나오는 횟수도 마찬가지고요」

「……」
「아까 TV에서 봤던 아이들 말이죠, 그런 아이들을 보면 어딘가 처음 시작할 때의 저희들을 닮았구나─ 하고 생각하게 돼요」
「하루카, 너는 아직─」
「이런 게, 바톤을 물려준다는 걸까요?」

 

무언가 말하려던 프로듀서는 말끝을 흐렸다. 무턱대고 부정한다고 해서 위로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탓이다.
프로듀서는 그저 선로를 말없이 응시했다. 전철이 도착할 기미는 아직 없다.
말하고 있는 것의 내용과는 관계없이, 하루카의 태도는 무덤덤했다.

 

「저는 욕심쟁이라서, 3년이고, 5년이고, 10년이고, 만약 가능하다면─ 영원히 계속됐으면 했어요」

 

그런 건 불가능하다.
깨달았다고 표현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누구나 알 수 있는 당연한 상식.
하지만 그것이 눈앞에 들이밀어졌을 때의 압박감은, 알고 있을 뿐이었던 때와는 규격이 다르다.

 

「앞으로 얼마나 남은 걸까요?」

 

언제부터인지 하루카의 목소리는 조금 가라앉아 있었다.
그것을 곧바로 알아채지 못했다는 사실이 프로듀서를 애달프게 했다

 

「저희들은 앞으로 얼마 동안 기억될 수 있는 걸까요? 프로듀서 씨」
「……」

 


「얼마나 더, 아이돌로 남아 있을 수 있나요?」

 


그런 것은 알 수 없다. 프로듀서는 눈을 감았다.
애초에 우리가 알 수 있는 것 따위는, 그렇지 못한 것에 비하면 처참하도록 적다.
아이돌은 결코 영원을 꿈꿀 수 없다. 언젠가 찾아올 순간이 비로소 찾아왔을 뿐이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어른스러운 태도일까.
적어도 프로듀서는, 하루카를 어른스럽지 못하다고 나무랄 마음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하루카」

 

프로듀서가 입을 열었다. 하루카는 프로듀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알지 못한다고 해서 입을 다물고 있을 수는 없었다.
아이돌의 물음을 외면하는 프로듀서만큼 무가치한 것이 또 있을까.

 

「너희들은─」

 

 


덜컹대는 굉음과 함께 전철이 역 안으로 들어왔다. 얼음물을 뒤집어쓴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프로듀서는 그것을 목도했다. 말하려던 내용이 떠오르지 않았다. 전철 때문에 잊고 만 것인지, 원래부터 알고 있지 않았던 것인지조차 흐릿해져 버렸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하루카에게 눈길을 돌리자, 그녀는 프로듀서를 바라보며 태연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무력감과 자기혐오를 억눌러 담아 프로듀서는 쓴웃음을 지었다.

 

하루카, 이런 우리들이 영원이니 하는 걸 입에 담는 건,
역시 주제를 모르는 짓일지도 모르겠다.

 

「왔네요, 프로듀서 씨. 그럼 저 먼저 가 볼게요」
「... 응. 그래」
「내일, 또 만날 수 있겠네요」
「그렇겠지」

 

자리에서 일어난 하루카는 프로듀서를 뒤로 하고 전철에 올랐다. 뒤를 돌아본 하루카가 고개를 숙이며 생긋 웃어 보였다. 프로듀서는 이윽고 전철이 떠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었다.
역은 다시 고요해졌다.

 

「앞으로 얼마나 더」

 

프로듀서는 소리 내어 말해 보았다. 생각해 본다고 해서 알게 될 리도 없지만, 그것은.
꺼지지 않는 동경과 정열을, 자신을 이루기 위한 증거를 노래하는 소녀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누구도 알지 못할, 모르는 편이 좋을 이야기다. 그 편이 차라리 구원일 것이다.
아마미 하루카는 아이돌이고 싶으니까.
가능하다면 영원히.
프로듀서는 중얼거렸다.

 

「하지만, 하루카」

 

 

영원은, 있을 수 없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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