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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분하게 느긋하게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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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4-08, 2017 21:52에 작성됨.

 

---20

마침내 문을 연 치하야 덕분에 프로듀서는 경찰 동행하에 차로 가서 명함, 신분증을 보여주었고 마침 사무실에 있던 코토리와 타카기 사장의 확인 전화까지 거치고 나서야 경찰들의 의심을 풀 수 있었다.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워낙 세상이 흉흉해서요.”

 

“아닙니다. 제가 미숙했던 탓입니다.”

 

“그러고 보니 저분이 키사라기 치하야 양 맞죠? 예의 그 일 때문인가 보군요.”

 

프로듀서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웃 분들께 잘 말씀드렸지만, 선생님께서 이웃분들께 직접 사과드리셔야겠습니다. 그리고 부디 잘 해결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랑 이 친구도 키사라기 양의 노래를 좋아하거든요.”

 

“알겠습니다. 다시 한 번 죄송합니다.”

 

이웃집마다 잘 둘러대며 직접 사과하고 나서야 프로듀서는 치하야의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치하야는 초점 없는 눈빛으로 그런 프로듀서를 바라보기만 했다.

불 하나 켜지 않은 방은 어두움 그 자체였다. 프로듀서가 불을 켜자, 깨진 채 방치된 액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식탁 위에 놓인 유리병이 눈에 들어왔다. 유리병에 담긴 보라색 히아신스는 시들어 있었다.

 

“고마워요. 덕분에 오해를 피할 수 있었어요.”

 

“저 때문에 힘든 사람이 더 없길 바란 것뿐입니다.”

 

푸른 차가움이 가득한 방 안에 적막이 흘렀다.

 

“저기, 뭐라도 좀 먹었어요?”

 

치하야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한 눈에 보기에도 금방 쓰러질 것만 같았다.

 

“뭘 좀 먹어야 기운 차리죠. 뭐라도 좀 해줄까요?”

 

“괜찮습니다. 이제 경찰도 갔으니 그만 가주세요.”

 

“치하야 양, 무슨 일인 지라도 얘기해줘요. 저도 그렇고 사무실 사람들도 치하야 양을 걱정하고 있어요.”

 

“이미 다 알잖아요? 유우가 먼저 떠나고 부모님의 사이가 틀어진 그 날부터 전 행복하지 않았어요. 그래도 제겐 부모님이니까, 유일한 가족이니까 절 떠나지 않았으면 했어요.”

 

치하야의 꽉 쥐어진 손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두 분은 제가 아이돌이 되고 나서도 연락 한 번 없었어요. 그런데 오랜만에 만난 어머니는 이제 이혼하겠다는 얘기를 꺼냈어요.”

 

사납게 피어오르는 푸른 차가움을 느끼면서 프로듀서는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동안 어린 저 때문에 이혼도 못 해서 사는 게 지옥 같았대요. 이젠 제가 아이돌로 성공해서 한 사람의 몫을 할 수 있으니 이혼한다네요. 그리고 유우는... 유우는 제 앞에 나타나 행복하냐고 물었어요. 제가 행복에 겨워 유우를 잊어서 그런 거겠죠?”

 

“치하야 양…_”

 

“결국, 제 노래가 부모님마저 절 떠나게 했고, 제가 기억해야 할 유우를 잊게 했어요.”

 

프로듀서는 치하야에게서 다시 푸른 차가움을 느꼈다. 하지만 뼛속까지 시리도록 날카롭지 않은, 프로듀서의 심장마저 얼어 붙은 것만 같은 무거운 차가움이었다.

 

“하지만 프로듀서도 그렇고 다들 올스타 라이브를 열심히 준비하고 있는데, 제가 어떻게 얘기하겠어요? 저 혼자 어떻게 어리광을 부리겠냐고요!”

 

치하야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제 고집 때문에 올스타 라이브를 망쳤어요. 그걸로도 모자라서 저 때문에 프로듀서도, 하루카도, 타카츠키 양도, 하기와라 양도, 다른 동료들까지 기자들에게 시달렸어요.”

 

“그건...”

 

뭐라 말하려는 프로듀서는 격한 감정의 흐름을 막을 수 없었다.

 

“이제 동료들까지 절 미워하겠죠? 아니, 분명히 그럴 거예요. 모두에게 불행만 안기는 이런제가 어떻게 다시 노래할 수 있겠어요!”

 

“그렇지 않아요!”

 

치하야의 절규에 프로듀서는 가져온 쇼핑백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저마다 모양과 색깔이 다양한 편지 봉투들이었다.

 

“편지?”

 

“치하야 양이 집에서 나오지 않은 날부터 저랑 아마미 양, 타카츠키 양이 전해주려고 했던 편지에요. 765 프로 사람들 모두 치하야 양을 걱정하고 있어요. 코토리 씨도, 리츠코 씨도, 사장님도요.”

 

“다들...”

 

치하야는 편지 봉투에 손을 뻗었다. 익숙한 이름들이 편지 봉투에 쓰여 있었다.

 

“이 편지들은 모두 다들 치하야 양이 꼭 돌아와 주길 바라며 쓴 거예요.”

 

개중에는 ‘치하야 보고 싶어!’, ‘얼른 돌아와.’ 같은 글귀가 편지 봉투에 적혀 있었다.

 

“그리고 이건 치하야 양이 돌아오길 바라는 팬들의 편지에요.”

 

다른 쇼핑백에서 꺼낸 것은 전에 ‘푸른 기사단’ 회장과 부회장이 건넨 편지들과 다른 팬들이 사무실로 보낸 편지들이었다.

 

“이건 ’푸른 기사단’ 회장과 부회장이 와서 전해준 편지들이에요. 그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치하야 양에게 힘내라고 사무실로 보낸 것이고요.”

 

“왜 다들... 어째서 이런 나를...”

 

치하야는 눈물이 멎지 않는 눈으로 수많은 편지 봉투를 쳐다보았다.

 

“내가 뭐라고... 왜... 왜... 대체… 왜 나를…”

 

눈물을 주체 못 하는 치하야의 어깨에 프로듀서가 양 손을 살며시 올렸다.

 

“모두 치하야 양을 다시 보고 싶어 하는 건 톱 아이돌이기 때문이에요.”

 

“전 아직 톱 아이돌이 아니잖아요?”

 

의아해하는 치하야에게 프로듀서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노래가 많이 팔려야, 팬클럽이 많아야만 톱 아이돌인 게 아니에요. 톱 아이돌의 기준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느냐였어요.”

 

치하야의 눈엔 눈물이 멎어 있었다. 그리고 프로듀서와 눈을 마주했다.

 

“프로듀서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잖아요?”

 

“그건 제가 잘못 생각한 거였어요. 치하야 양을 프로듀스하면서 깨달은 사실이에요.”

 

“그럼 뭐 해요? 제가 노래해서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었는걸요...”

 

프로듀서는 여전히 소용돌이에 휩쓸린 치하야를 가까이 끌어당겼다.

 

“아니, 치하야 양의 노래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요. 떠올려봐요. 함께 무대에 선 동료들의 표정, 그리고 환호하던 사람들의 표정을요.”

 

“모두 웃고 있었어요. 제 이름과, 동료들의 이름을 부르면서요. 뜨거운 환호성과 함께…”

 

“그러면 무대에서 노래할 때 치하야 양의 기분은 어땠나요?”

 

치하야는 무대에서 노래할 때를 떠올렸다. 낯설었다가 익숙해졌던, 하지만 지금은 다시 낯설어진 단어를 꺼냈다.

 

“행복했어요.”

 

“그래요. 치하야 양은 노래하는 게 행복한 거예요. 그 마음이 노래로 모두에게 전해진 거고요. 그래서 지금도 치하야 양이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아시겠어요?”

 

아이돌이 되고 나서 모든 순간들이 흐린 흑백 영화로 하나씩 스쳐 지나갔다. 난생처음 겪는 일들이 많았다. 누군가와 함께 노래를 부르고, 노래를 들어주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느꼈고,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들도 만날 수 있었다. 그 사람들은 치하야에게 행복을 주었다. 그리고 지금도 치하야를 믿고, 응원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날 응원해주고… 돌아오길 바라는 사람들...”

 

“그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치하야 양은 아직 노래할 수 있어요.”

 

“노래... 행복... 그게 다 무슨 소용이에요.”

 

자기 삶의 이유가 된 단어와 잊고 살았던 단어를 치하야가 나지막이 말했지만, 소용돌이는 멎지 않았다.

 

“소용 있어요. 노래를 할 수 있는데 부르지 않는 것은 치하야 양 스스로 행복을 저버리는 거예요. 노래 못 하는 슬픔에 빠지지 말아요.”

 

“하지만 유우를...”

 

“그럼 떠올려봐요. 치하야 양의 노래를 듣던 동생의 표정을요!”

 

프로듀서의 말에 치하야는 하루카가 밤에 했던 말을 떠올렸다. 하루카의 말처럼 유우는 치하야의 노래를 들을 때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듯 활짝 웃었다.

 

“웃고 있었어요. 그래요. 하지만 유우는 그 날 절 원망하는 것처럼...”

 

“행복하냐고 물었댔죠? 왜냐면 유우 군은 치하야 양이 여전히 행복하게 노래를 부르길 원해서 그런 거예요. 치하야 양의 노래를 정말 좋아했다면서요. 그날 유우 군이 나타난 것은 치하야 양의 노래가 행복하지 않고, 너무 슬펐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웃지 않았던 것이고요.”

 

프로듀서는 건드려선 안 될 얘기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대로 두면 치하야는 거센 소용돌이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거짓말이라도 좋으니, 치하야를 소용돌이에서 꺼내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그토록 누구보다 누나를 사랑한 동생이었는데, 누나가 불행하길 바라겠어요?”

 

“유우... 내 동생... 유우...”

 

치하야는 유우의 이름을 되뇌며 펑펑 울기 시작했다.

 

“정말… 내가 정말 슬프게 노래해서, 옛날처럼 행복하지 않아서 나타났던 거니…”

 

늘 그리워하는 유우 생각에 치하야는 눈물을 계속 쏟아냈다.

 

“유우 군은 분명 누나가 계속 행복하길 바랄 거예요. 그래서 누나가 걱정돼서 나타난 거예요.”

 

“유우....”

 

“그리고 무엇보다 치하야 양은 아직 노래할 수 있잖아요.”

 

프로듀서는 두 손가락을 뻗어 치하야의 목에 대었다. 치하야의 맥박이 어렴풋이 느껴졌다.

 

“아직 노래할 수 있는데, 그리고 그 누구보다 노래를 사랑하는데도 노래하지 않겠다는 건 너무 슬프잖아요.”

 

“프로듀서…”

 

치하야는 마주한 프로듀서의 눈빛에서 가장 깊은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누구도 이만큼진심을 보여준 사람은 없었다. 그러면서 거센 소용돌이에 휩쓸린 자신에게 계속 손을 내밀고 있었다. 그 손을 잡는 것은 치하야의 선택이었다.

 

‘노래, 행복.’

 

“제발, 노래할 때 진정 행복한 톱 아이돌 키사라기 치하야로 돌아와 줘요.”

 

아직도 치하야의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눈물에는 한없는 슬픔만이 차 있지 않았다.

 

‘아직 노래하고 싶어. 내겐 아직 노래뿐이야.’

 

아직도 치하야에겐 오직 삶의 이유는 노래였다. 하지만 그 이유는 달라져 있었다.

 

‘나도 행복해지고 싶어.’

 

푸른 차가움으로 가득한 소용돌이가 점점 멎기 시작했다.

 

“치하야 양, 다시 물을게요. 지금도 노래가 하고 싶어요?”

 

치하야는 눈물 가득한 눈으로 프로듀서의 눈을 마주했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숨겨왔던 진심을 꺼냈다.

 

“전... 노래하는 게 좋아요. 노래 부르는 게 행복해요. 그래서... 계속 노래를 부르고 싶어요!”

 

마침내 진심을 드러낸 치하야는 슬픔을 모두 털어내려는 듯 프로듀서의 품에 안겨 오열했다. 프로듀서는 그런 치하야를 토닥여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아이도 결국 아직 여린 아이인걸.’

 

한참 뒤에야 치하야는 울음을 그쳤다. 치하야의 쌓인 슬픔을 모두 받아낸 셔츠는 잔뜩 젖어있었다. 그걸 본 치하야는 짐짓 당황했다.

 

“죄송해요. 프로듀서의 셔츠가…”

 

“괜찮아요. 내일 사무실로 돌아와요. 모두가 기다리고 있어요. 그리고 저와 동료들이 치하야 양을 도와줄게요.”

 

“알겠습니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치하야의 눈빛은 다시 빛나기 시작했다. 아직 흐리긴 해도 무대 오르기 전의 그때와 같아진 걸 본 프로듀서는 마음을 쓸어내렸다.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오늘은 푹 쉬고 내일 봐요.”

 

“저기, 프로듀서?”

 

막 나가려던 프로듀서가 멈췄다.

 

“제가 만일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면 어떻게 하실 생각이었죠?”

 

“그런 생각은 하지도 않았는걸요.”

 

“무슨 이유에서죠?”

 

프로듀서는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치하야 양이라면 문을 열어줄 거란 느낌이 왔습니다.”

 

“프로듀서라면 그렇게 대답할 줄 알았어요.”

 

‘느낌’이란 단어에도 치하야는 프로듀서를 질책하지 않았다. 도리어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그런 치하야에게 다시 만날 것을 고하며, 프로듀서는 집을 나섰다.

차로 향하며 프로듀서는 한결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물론 모든 것이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치하야의 닫힌 문을 열었다는 것이 중요했다.

차에 탄 프로듀서가 라디오를 틀자, 익숙한 오케스트라 선율이 차 안 가득 울려 퍼졌다. 예전에 치하야가 듣던 아리아인 ‘아무도 잠들지 못하리’였다.

 

‘뭐, 많이 다르긴 하지만 마치 투란도트 공주의 차가운 마음을 녹인 칼라프 왕자가 된 기분인데.’

 

프로듀서가 떠나고 나서 치하야는 765 프로 사람들의 편지를 먼저 읽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읽은 것은 유키호의 편지였다. 기자의 무단 침입 사건 때문에 가장 걱정되던 참이었다.

 

‘조금 무서웠지만 이젠 괜찮아. 프로듀서 씨가 바로 조치해주셨고 다들 많이 격려해줬는걸. 아직 남자가 안 무서운 건 아니지만... 무엇보다 치하야가 돌아왔으면 좋겠어. 치하야 오면 줄 차도 새로 사놨으니 얼른 돌아와.’

 

많이 걱정됐던 유키호의 따뜻한 글씨를 보고 편지를 가슴에 대었다.

 

‘잘못을 저질렀으면 적어도 얼굴을 보고 사과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만 틀어박혀 있고 당장 사무실로 나와서 모두에게 사과해. 우사짱이나 내가 치하야가 보고 싶다거나 그런 건 아니니깐 쓸데없이 오해하지 마.’

 

날카롭게 지적하면서도 한편으론 따뜻한 이오리의 편지였다.

 

‘실수란 것은 모든 사람들이 저지르는 것이옵니다. 하지만 자고로 사람이라면 실수에 좌절하지 않고, 반성하며 다시 일어나 노력하는 법이옵니다. 그렇기에 부디, 아름다운 당신의 노래를 포기하지 마시길.’

 

글씨에서도 기품이 느껴지는 타카네의 편지였다.

 

‘미키는 평소에 치하야 씨를 존경했단 거야. 노래하는 치하야 씨는 미키보다도 더 반짝반짝 빛났어. 하지만 지금의 모습은 치하야 씨답지 않아서 실망했단 거야. 그러니 다시 돌아와 노래로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길 바란단 거야.’

 

독특한 글씨체로 누가 봐도 한눈에 알 수 있는 미키의 편지였다.

 

‘매사에 완벽한 본인도 이누미와 햄죠들에게 실수를 할 때가 많아. 그럴 때마다 항상 다투지만 늘 화해하곤 해. 우리도 그럴 수 있어. 얼른 돌아와. 본인도 정말로 치하야가 보고 싶어. 아, 사타안다기 만들어놓을 테니 꼭 같이 먹자.’

 

늘 넘치는 자신감 한켠에 둔 따뜻한 마음씨를 담은 히비키의 편지였다.

 

‘치하야가 우리에게 미안한 건 당연한 일이야. 그러나 실수란 한순간뿐인 거잖아? 다시는 반복하지 않으면 돼. 모두에게 사과하면서 다 날려버리고 다시 함께 춤추고 노래하자. 많이 보고 싶다.’

 

글자마다 힘이 넘치는 마코토의 편지였다.

 

‘나도 길을 잃어서 스케쥴에 지각하는 등 실수를 많이 한단다. 그래도 내가 계속 아이돌을 하는 것은 ‘운명의 사람’을 찾기 위해서지만, 모두와 함께 하는 것이 즐겁기 때문이랄까? 물론 치하야와 함께 하는 것도 매우 즐겁단다. 그러니 마음 잘 추스르고 사무실로 돌아오렴.’

 

알게 모르게 의지하게 되는 아즈사의 편지였다.

 

‘아미도, 마미도 치하야 언니가 보고 싶어. 그리고 지금도 같이 놀고 싶은걸. 하지만 이대로 치하야 언니가 사라질까 봐 걱정돼. 앞으로는 짓궂게 장난 치지 않을 테니까 꼭 돌아와.’

 

늘 장난끼가 가득하지만, 누구보다 치하야를 걱정해주는 아미와 마미의 편지였다.

 

‘내가 예전에 아이돌 활동할 때 저질렀던 실수들에 비하면 약과야. 모두들 실수를 하면서 한발 더 성장하는 거야. 그러니 이렇게 사과도 없이 혼자 있는 것도 맞는 일은 아니지? 따끔하게 혼내야겠지만 말이야. 물론 치하야가 돌아왔으면 좋겠어. 나도, 모두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엄격하면서도 격려까지 하는 리츠코의 편지였다.

 

‘저는 치하야 씨와 함께 유닛 활동을 할 수 있어서 정말 기뻤어요. 치하야 씨와 함께 하면서무대에 서는 행복이 무엇인지 이제 알 것 같아요. 그리고 저를 보며 웃어줄 때마다 정말 언니가 생긴 것 같아서 좋았어요. 우리 유닛 이름처럼 다시 한번 우리 서로를 위해 함께 무대에 서요. 치하야 씨, 정말 정말 보고 싶어요’

 

늘 치하야를 웃게 해주고, 이끌어주기도 해서 항상 고마운 야요이의 편지였다.

 

‘그 날 밤 얘기했듯이 난 치하야랑 아이돌을 해서 행복해. 하지만 동료로, you-i의 리더로서 치하야의 슬픔을 안아주지 못해 지금도 미안해. 그동안 정말 많이 힘들었지? 내가 치하야의 슬픔을 다 헤아리지 못하겠지만, 지금이라도 나누고 싶어. 그러니 닫힌 문을 열고 나와 줘. 난 앞으로도 같이 아이돌을 하고 싶어.’

 

항상 자신에게 따뜻하게 대해준 하루카의 편지였다.

 

누군가는 따뜻한 위로를, 누군가는 섭섭함을 전했다. 하지만 모두들 치하야를 보고 싶어 하고 돌아오길 바라고 있었다. 그 의미로 편지뿐만 아니라 영양제, 차 등의 선물도 있었다. 그런 동료들에게 치하야는 한없이 미안했다. 용서받지 못한다 해도 적어도 사과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다음은 자신을 늘 응원해주는 ‘푸른 기사단’을 비롯한 많은 팬들의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지난 번 팬미팅에서 봤던 마츠다 아리사, 같은 학교이자 팬이라는 토코로 메구미의 편지도 있었다. 힘내고 다시 무대에서 노래해달라는 수많은 팬들의 편지를 다 읽었을 때, 치하야는 마지막 편지를 가슴에 대었다.

 

‘다들 정말 미안해요. 그리고 고마워요.’

 

수많은 편지를 차곡차곡 정리하여 쇼핑백에 도로 넣었다. 그리고 깨진 채로 방치된 액자와 유리를 치우기 시작했다. 액자를 한동안 바라보던 치하야는 다시 유우 사진 옆에 세워 두었다. 그리고는 한참 동안 사진 속의 유우를 쳐다보았다.

깨진 유리를 휴지통에 버리고 몸을 일으키자 식탁 위 꽃병이 보였다. 아름다웠던 보라색 히아신스는 말라 있었다. 치워야겠다는 생각에 유리병을 들었지만 이내 다시 내려놓았다. 꽃은 이미 시들었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프로듀서의 마음이 여전히 느껴졌다. 그 마음을 다시금 느끼려는 듯 한동안 그 앞에 서 있다가 물만 갈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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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화는 곧이어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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