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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분하게 느긋하게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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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4-05, 2017 22:49에 작성됨.

 

---18

765 프로의 첫 올스타 라이브는 그렇게 어수선한 분위기로 끝을 맺었다. 무대를 내려온 아이돌들도 표정이 밝지만은 않았다. 치하야 걱정 탓에 다들 올스타 라이브를 끝마쳤단 기쁨을 마음껏 누리지 못했다.

 

“정말 치하야도!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혼자 뭐하고 있는 거야!”

 

모든 공연이 끝나고 이오리는 씩씩 거리며 가장 먼저 대기실로 향했다. 화난 이오리를 마코토가 다급히 밀리려 했다.

 

“이오리, 그래도...”

 

“그래도는 무슨 그래도야! 오늘을 위해 다들 열심히 준비해왔잖아. 적어도 모두에게 사과해야하는 일이야. 그런데 아직도 혼자 뭐하는 거야!”

 

말리는 마코토를 밀쳐낸 이오리는 대기실 문을 거칠게 열었다. 하지만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싼 채 울고 있는 치하야에게 이오리도 말을 걸 수 없었다.

동료들의 도움으로 겨우 의상을 갈아입은 치하야를 바로 귀가시키기로 했다. 남은 공연 마무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고 프로듀서는 치하야를 차에 태웠다.

수많은 불빛들을 지나쳐가는 동안에도 치하야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리고 집에 도착했을 때도 치하야는 인사도 하지 않고 집으로 들어갔다. 그런 치하야를 보면서 프로듀서는 자기를 질책했다.

 

‘멍청한 놈! 행복하게 노래할 수 있게 도와주기 위해 프로듀서가 됐으면서! 젠장!’

 

올스타 라이브 도중 오열한 치하야는 모처럼 좋은 화제 거리가 되었다. 주저 앉아 우는 치하야의 사진과 함께 온갖 자극적인 기사 제목들이 붙여졌다. 인터넷 커뮤니티도 치하야가 주저 앉은 이유를 추측하는 내용을 다루는데 열심이었다.

765 프로는 다음 날 아침, 바로 요시자와 씨를 통해 ‘스케쥴 강행군으로 인한 피로와 노래 가사에 복받친 감정이 원인, 치하야는 현재 휴식 중’이라는 보도 자료를 내보냈다. 직접 보도 자료를 준비하던 프로듀서는 치하야 생각에 가슴이 쓰라렸다. 그리고 치하야는 점심 시간이 넘어서도 출근하지 않았다.

하지만 보도 자료가 나간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온 한 인터넷 기사가 모든 걸 터뜨리고 말았다.

마침 미팅으로 외출해있던 프로듀서에게 다급한 코토리의 전화가 왔다.

 

- 프로듀서 씨! 지금 인터넷 뉴스 연예 란을 보세요! 치하야가...

 

다급한 코토리의 목소리에 통화도 끊지 못하고 급히 인터넷을 킨 프로듀서의 눈에 한 기사 제목이 들어왔다.

 

‘푸른 가희의 감춰졌던 비극적인 가정사 대공개!’

 

기사는 올스타 라이브 직전 치하야의 부모가 이혼했다는 내용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어떻게 밝혀 냈는지 유우의 죽음으로 부부 사이가 틀어진 것이 이혼 사유이며, 올스타 라이브 무대에서 오열한 이유가 이혼의 여파와 그로 인해 다시 떠오른 동생의 죽음이라는 내용이었다.

기사를 읽은 프로듀서는 한달음에 사무실로 향했다. 사무실에 있던 아이돌들도, 리츠코도 막 기사를 확인한 것 같았다.

 

“프로듀서 씨, 이 기사 읽으셨나요?”

 

“막 확인한 참입니다.”

 

하루카는 가장 당혹한 표정으로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프로듀서 씨, 이제 어떻게 해야...”

 

“이거 사실이야? 프로듀서도 몰랐어?”

 

화난 표정인 마코토가 기사를 띄운 스마트폰을 가리키며 물었다. 프로듀서는 한숨을 내쉬었다.

 

“남동생에 관해선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부모님에 관해선...”

 

마코토가 프로듀서의 멱살을 잡아챘다. 하지만 프로듀서는 마코토의 손을 차마 뿌리치지 못했다.

 

“내가 부탁했잖아! 누구보다 치하야를 이해해달라고! 몰랐다는 게 말이 돼?”

 

“마코토, 진정해애. 지금 프로듀서 씨도 누구보다 힘들 거야아.”

 

“칫!”

 

“마, 마코토!”

 

유키호의 만류에도 여전히 화 난 마코토가 사무실에서 뛰쳐 나갔다. 하루카는 핸드폰으로 아직도 출근하지 않은 치하야에게 계속 전화를 걸었지만 여전히 안 받는 모양이었다.

 

“저기 프로듀서 씨, 치하야에게 전화하는데 계속 받지 않아요.”

 

“제가 걸어볼게요.”

 

프로듀서가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 연결음은 끝나지 않았고, 치하야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곧바로 사무실 전화로 기자들의 전화가 쏟아졌고, 직접 찾아오는 기자들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프로듀서와 코토리, 리츠코까지 진땀을 빼가며 해명하고 기자들을 돌려보냈다. 그러면서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사무실에 있는 아이돌들은 겁 먹은 표정으로 이 모든 광경을 지켜봤다.

 

“모처럼 터진 기삿거리라서 기자들의 이목이 쏠리나 보네요.”

 

집요하게 물어대는 기자의 전화를 겨우 끊은 리츠코가 한숨을 돌리며 쇼파에 주저 앉았다.

 

“잠깐, 혹시 치하야의 집에도 기자들이?”

 

코토리의 말을 듣자 마자 프로듀서는 사무실을 박차고 나갔다. 미처 그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 가녀린 아이를 향해 취재 열기가 쏟아질 게 분명했다.

차 시동을 걸 무렵, 누군가 차 문을 두드렸다. 급하게 따라왔는지 숨을 바삐 몰아 쉬는 하루카와 야요이였다.

 

“두 분?”

 

창문을 내리자, 혹여 차가 출발할 세라 하루카가 다급히 창문 안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프로듀서 씨, 저희도 데려가주세요!”

 

“하지만 기자들이 많을 지도 몰라요. 두 분까지...”

 

“상관 없어요. 저희는 치하야 씨와 you-i잖아요.”

 

진심 어린 야요이의 말에 프로듀서는 둘을 태웠다. 하루카와 야요이가 손잡이를 꽉 잡을 정도로 엑셀을 밟았다.

치하야가 사는 아파트 입구에는 이미 많은 기자들이 몰려 있었다. 아파트 경비원이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려는 기자들을 막고 있었다. 프로듀서는 단숨에 기자 사이를 헤치고 들어가 입구 앞을 가로막았다.

 

“기자 여러분! 저는 765 프로의 프로듀서입니다. 현재 치하야 양은 건강 문제로 휴식 중입니다. 보도 자료를 보내드릴테니 여기서 돌아가주시길 바랍니다.”

 

프로듀서는 끝까지 고집 피우는 기자들까지 돌려보내기 위해 고성이 오가는 다툼까지 불사했다. 그 광경에 놀란 하루카와 야요이를 진정시킨 후 치하야의 집으로 향했다. 하루카가 다급히 초인종을 눌렀지만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치하야! 나야, 하루카. 문 열어줄 수 있어?”

 

문 안에서 아무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치하야 씨, 저 야요이에요. 괜찮으세요?”

 

야요이도 문을 두드렸지만 대답이 없었다.

 

“치하야 양, 접니다. 안에 있습니까?”

 

프로듀서까지 노크해봤지만 여전히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하루카는 포기하지 않고 문을 쾅쾅 두드렸다.

 

“치하야, 괜찮은거지? 뭐라고 말이라도 해줘. 제발...”

 

- 다들 미안해요. 이만 가주세요.

 

“치하야!”

 

- 앞으로 오지 마세요. 하루카도, 타카츠키 양도, 프로듀서도...

 

“치하야 씨! 문 열어주세요. 제발요!”

 

- 타카츠키 양 미안해요... 전 모두를 볼 면목이 없어요. 전 이제 노래하기 싫어요.

 

문을 두드리는 야요이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럼 치하야 양,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프로듀서 씨?”

 

하루카가 프로듀서를 말리려는 듯 팔을 잡았다.

 

“여기서 치하야를 두고 가면 어떡해요?”

 

“다시 찾아올테니 일단 푹 쉬고 있어요.”

 

그리고 하루카와 야요이를 달래며 아파트에서 빠져 나왔다.

 

“아직 치하야 양에겐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혼자서...”

 

“기다려보죠. 당장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뿐이에요.”

 

사무실로 돌아오긴 했지만 세 사람은 아무 말도 없었다. 유키호가 힘내라고 녹차를 나눠주었지만 식을 때까지도 마시지 못했다. 유키호도 역시 녹차를 마시지 못하고 있었다. 인터넷에 계속 올라오는 기사들과 SNS를 살펴보는 코토리의 한숨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네 사람 중 누구 하나 말을 꺼내지 못했다. 프로듀서는 참담한 심정이었다. 눈 앞에서 목격한 동생의 죽음, 집안을 지배한 불행, 그걸 떨치고자 치하야는 노래를 했고 마침내 아이돌이 되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부모의 이혼은 마음속 소용돌이를 다시 불러 일으켰다.

 

‘젠장, 치하야 양의 부모 얘기를 미처 생각 못했어. 뭔가 놓쳤다 생각을 했건만, 제길…’

 

하지만 치하야는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올스타 라이브라는 큰 일을 앞둔 모두에게 쓸데없는 걱정을 지우는 것이라 생각했을 게 분명했다.

그렇게 올스타 라이브에 올랐지만, 소용돌이를 이겨내지 못한 치하야는 무너지고 말았다. 참고 참아온 상처가 결국엔 터진 것이었다.

물론 라이브 도중 갑작스런 오열로 공연이 중단되거나 하는 일은 경험 많은 프로들에게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완벽주의자인 치하야는 올스타 라이브를 망쳤단 죄책감까지 떠안고 있었다. 그런 치하야 생각에 모두 가슴이 미어졌다.

 

‘아마 동생의 환영이 보였다는 것은 부모의 이혼으로 동생의 죽음이 다시 떠올랐다는 것이 분명해.’

 

프로듀서라면서 미리 대처하지 못한 자신이 한없이 원망스러웠다.

저녁이 되어 셋은 다시 치하야 집에 찾아갔다. 그러나 이번에 치하야는 대꾸도 하지 않았다.

 

“오늘은 틀렸나... 내일 다시 오죠.”

 

“잠시만요. 저기 치하야 들려? 그동안 치하야가 힘들었던 거 몰라서 정말 미안해. 정작 치하야의 친구면서, 리더면서... 혼자 힘들게 둬서 정말로 미안해. 그래도 치하야가 꼭 돌아왔으면 좋겠어. 또 다시 치하야랑 같이 일하고 함께 무대에서 노래하고 싶어. 그러니 우리 다시 같이 아이돌 계속 하자. 그때 약속했잖아. 같이 톱 아이돌이 되기로. 알았지? 기다릴게.”

 

“저도 기다릴게요. 서로를 위한다는 거, 노래하는 게 행복하다는 거, 이젠 저도 알 것 같아요. 그걸 알려준 치하야 씨랑 앞으로도 같이 노래하고 싶어요. 치하야 씨가 저희 남매였으면 좋겠다는 말도 사실인걸요. 그러니 다시 함께하고 싶어요. 꼭 돌아오세요!”

 

하루카와 야요이의 애절한 호소에도 치하야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세 사람은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돌아서야 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다음 날 닥쳐왔다. 모처럼 터진 아이돌의 사생활에 구미가 당긴 기자들의 취재 열기가 다른 765 프로 아이돌들에게로 쏟아졌다. 어딜 가던 기자들은 아이돌들에게 달려 들어 질문을 마구 쏟아냈다. 그나마 프로듀서와 리츠코가 같이 있어준 아이돌들은 질문 공세를 피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홀로 떨어진 아이돌들은 기자들의 질문 공세를 온전히 받아야 했다..

그리고 기어이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여자 아이돌 대기실에 무단 침입? 당신이 그러고도 기자야!”

 

프로듀서는 핸드폰 건너편을 향해 격한 분노를 토해내고 있었다. 미처 같이 못 있어준 유키호의 대기실에 한 기자가 들이닥친 것이었다. 깜짝 놀란데다 남성 공포증이 도진 유키호는 펑펑 울고 말았다. 심지어 라이브 무대 오르기 직전 터진 일이라 유키호는 무대를 제대로 소화하지도 못했다. 이 소식을 듣자마자 프로듀서는 그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항의하던 참이었다. 욕지거리가 치솟아 올랐지만, 간신히 참았다.

 

- 이봐요, 말이 심하지 않소? 이게 다 대중의 알 권리를 위해서요.

 

“대중의 알 권리? 당신 통장을 위해서겠지! 아무튼 이 사건에 대해 책임을 물을 테니 단단히 각오하고 있어!”

 

- 퍽이나 단단히 각오하고 있겠습니다.

 

적반하장으로 나서는 기자의 무례함에 분을 삭히지 못한 듯 프로듀서는 사무실 안을 계속 돌아다녔다. 평소 보이지 않은 격노한 모습 보인 프로듀서를 보며 아이돌들도 얼어 붙었다. 그리고 타카기 사장의 부탁으로 기사의 출처를 밝혀낸 요시자와 씨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

“한 달 전에 한 연예인의 이혼을 취재하러 법원에 갔던 기자가 ‘키사라기’ 성을 보고 호기심에 취재했다가 물어챈 모양이야.”

 

“하필이면...”

 

여전히 프로듀서가 분을 삭히지 못한 가운데 누군가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프로듀서가 문을 여니 익숙한 얼굴의 남자 두 명이 있었다.

 

“당신들은?”

 

“어? 당신은 치짱의 프로듀서?”

 

치하야 팬클럽인 ‘푸른 기사단’의 회장과 부회장이었다. 회장과 부회장의 손에는 커다란 쇼핑백이 하나씩 들려 있었다.

 

“사무실까지 무슨 일이시죠?”

 

“혹시 치짱에게 이걸 전해줄 수 있을까 해서.”

 

“안이 좀 복잡하니 밖에서 얘기하시죠.”

 

세 사람은 사무실 근처 카페로 향했다. 커피를 사려는 프로듀서를 회장이 제지했다.

 

“계산은 내가 할게.”

 

“괜찮습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우리 치짱의 프로듀서님이신데 이 정도는 해드려야지.”

 

세 사람은 테이블에 앉았다. 두 사람도 기사를 보고 사무실로 찾아온 것이었다. 원래 올스타 라이브 이후 치하야를 응원할 편지를 모으던 중, 기사가 터져서 급히 왔다는 것이었다.

 

“그럼 사무실까지 이걸 전해주려고 온 겁니까?”

 

“우리 회원들도 다 기사를 봤거든. 우리 치짱에게 그런 아픈 사연이 있을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

 

“그래서 치짱 힘내라고 회원들의 편지를 준비했어. 우리가 직접 전해주고픈 마음이야 굴뚝 같지만 치짱이 지금 가장 힘들어하고 있을테니깐. 그러니 당신이 전해줄 수 있지?”

 

아무래도 치하야가 집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은 아직 비밀에 붙여둬야 할 것 같았다.

 

“물론입니다. 대신 감사드립니다.”

 

“감사하긴. 우리야 치짱의 노래를 들을 수 있는 게 항상 감사한 걸. 그럼 우리는 이만.”

 

두 사람은 일어났다. 회장은 프로듀서에게 마지막 말을 남겼다.

 

“혹시 된다면 치짱에게 전해줘.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푸른 기사단’ 모두 치짱을 누구보다 걱정하고, 응원하면서 다시 무대로 돌아오길 바란다고 말이야.”

 

“반드시 전할게요.”

 

프로듀서는 치하야를 응원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담긴 쇼핑백을 꽉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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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수로 이야기판에 올려서 급히 삭제하고 다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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