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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Серебряная звезда』 - Welcome to Liberty city!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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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4-05, 2017 18:25에 작성됨.

눈이 하염없이 내리는 어느 설원.

바람도 세차게 불어 어딘가로 움직이기에는 너무나 부적절한 그 설원을 헤치고, 은발의 소녀가 바람을 헤치며 한 발자국씩 설원을 가로지른다.

소녀가 걸치고 있는 옷은 남루하기 그지 없는 강제수용소의 노동자복.

소녀가 들고 있는 것은 검은색으로 반짝이는 볼트액션식의 소총 한 자루.

총알이 몇 발이나 들어있을지는 모르지만, 이 정도 추위라면 아마 총은 쓸모가 없어질 것만 같은데도 소녀는 그것이 마치 신이라도 되는 것인지 너무 말라서 곧 비틀어져 쓰러질 것만 같은 몸으로 총을 외부로부터 보호한 채 발걸음을 천천히 내딛는다.

갈 길은 있는 것일까, 설원을 가로지를 수는 있는 것일까. 필사적인 그녀의 발걸음 앞에는 그녀가 원하는 그 무엇인가가 있는 것일까.

소녀가 천천히 쓰러진다. 그야 이 설원에서 그렇게 무리하게 탈출한다면 십중팔구, 아니 백중구십구는 그렇게 되겠지.

소녀의 숨소리가 천천히 잦아든다. 그녀는 이 설원에서 하얀 눈과 함께 얼어가는 것일까. 신은 그녀에게 아무것도 내려주지 않는 것일까.

 

따스한 불의 기운이 온 몸으로 스며드는 것 같다.

몸 밖과 몸 안의 온도차도 없다. 즉, 이 곳은 난방이 되는 집이거나, 혹은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설비가 되어 있는 아늑한 공간.

은발의 소녀가 천천히 눈을 떠 천장을 쳐다본다.

너무나도 낮은 천장. 바로 눈 앞조차 깜깜하다. 아니, 이건 침낭이라서 그런가. 소녀는 땀 때문인지 자신의 온 몸에 달라붙어 있는 침낭이 기분 나쁘다.

소녀는 잘 돌아가지 않는 뇌로 잠시 현상을 파악하고는 조금 몸을 움직여본다. 다행히도 잘 움직인다.

 

"아냐 짱, 움직이면 안 돼."

 

소녀가 몸을 움직이려는 찰나, 소녀를 아냐 짱이라고 부르는, 마치 천사같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녀를 가엽게 여긴 신이 드디어 천사를 내려보낸 걸까. 아무 말이 없던 소녀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침낭 밖으로 얼굴만 빼꼼 내민다.

침낭 밖에는,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밝은 미소를 짓고 있는 갈색 생머리의 소녀가 눈 앞에 있었다.

소녀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쳐다보자 천사같은 미소를 짓고 있던 갈색 생머리의 소녀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자기소개를 한다.

 

"반가워, 아냐 짱. 내 이름은 닛타 미나미."

 

"닛타-?"

 

"응, 닛타 미나미. 성을 부르는 게 힘들면 미나미라고 불러도 돼."

 

"미나미-"

 

소녀가 자신을 미나미라고 밝힌 갈색 생머리의 소녀를 잠시 쳐다보고는 환하게 미소 지으며 그녀를 껴안는다.

소녀의 갑작스러운 허그에 미나미가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녀는 이내 밝은 미소를 지으며 소녀를 다시 껴안는다.

하지만 소녀에게 내려온 것은 신이 아니라는 듯이, 두 사람만이 있었던 방에 갑자기 검은 양복을 입은 건장한 남자들이 들어온다.

소녀가 위기라고 생각했는지 눈을 빛내며 주변을 살피는데, 꽤나 인상이 좋은 남자 하나가 마지막에 들어와서는 잠시 소녀의 얼굴을 살피다 미나미에게 묻는다.

 

"어때, 괜찮은 것같아 보이니?"

 

"네, 고생을 많이 해서 아직 힘들어보이긴 하지만요...."

 

"그렇구나. 고생했다. 가서 조금 쉬어라."

 

"네, 아버님."

 

그 인상 좋은 남자는 미나미의 아버지인 듯해, 남자의 부드러운 말에 미나미가 별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방을 나간다.

미나미가 방을 나가자 인상 좋은 남자는 잠시 소녀를 쳐다보더니 입을 연다.

 

"그래, 이름은 아나스타샤라고 하고... 성은?"

 

".....미나미도 그렇고, 어떻게 제 이름을 아시는거죠?'

 

분명히 남자가 말하는 언어는 소녀가 나고 자란 국가의 언어와는 판이하게 다른 언어일텐데도 소녀는 아무 무리 없이 그에게 맞춰 그의 언어를 입 밖으로 내보낸다.

남자는 역시나, 하고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입을 연다.

 

"그야 이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 중에 너를 모르는 사람이 있다는게 더 이상하지 않겠어?"

 

"....그런가요."

 

"뭐, 그렇지. 무슨 일이 있는지도 모르는 채 시베리아의 강제수용소에 갖혀버린 「은색 여우」의 이름은 유명하니까."

 

"그럼 저를 구해준 건 저를 써먹기 위해서?"

 

"아니, 그건 아니야. 애초에 얼어죽어가는 너를 이 곳으로 데려온 것은 내 딸인 미나미였으니까."

 

"...미나미-"

 

남자의 입에서 미나미란 말이 나오자 소녀가 마치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본어라는 듯이 작게 미나미를 부른다.

소녀의 중얼거림에 남자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더니 이내 양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 중 하나를 시켜 무언가를 그녀에게 건네준다.

소녀가 양복을 입은 사람이 가져다 준 작은 쪽지를 보고서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남자를 쳐다본다.

그리고, 소녀의 옆에 쇳덩이 하나가 털썩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소녀가 어리둥절해 하며 옆을 쳐다보다가 허겁지겁 쇳덩이를 품에 껴안고 작은 손으로 쓰다듬는다.

자신이 잃어버렸던 총. 마치 신과도 같은 광휘를 내뿜는 총.

소녀의 모습에 남자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짧게 한 마디만을 묻는다.

 

"그래서, 할 건가?"

 

"....да."

 

"나쁘지 않은 대답이군."

 

남자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잠시 웃고는 양복 입은 사람들과 함께 방을 나선다.

방에 소녀만 남기 바로 직전에, 남자가 잠시 서서 뭔가를 생각하다가 한 마디 빼먹은 것이 있다는 듯이 뒤로 돌고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Welcome to Liberty City!"

 

"...Спасибо, ублюдок."

 

남자의 말에 소녀가 마치 더러운 것을 보았다는 듯이 얼굴을 찌푸리며 대답하자 남자가 하핫하고 웃으며 손을 흔들고는 방을 나선다.

방에 혼자 남은 소녀는 잠시 총을 이리저리 조작하다가 스코프에 눈을 가져다대고 남자가 사라진 쪽을 겨누다가 이내 총을 내려놓고는 누워버린다.

소녀의 손에는, 잘 알아볼 수도 없는 글씨로 삐뚤빼뚤하게 쓰여진 지령이 들려 있었다.

허무하다는 듯이 방바닥에 누워 멍한 눈으로 천장을 쳐다보던 소녀가 길게 한숨을 내쉬며 작게 중얼거린다.

 

"Я свет миру: кто последует за Мною, тот не будет ходить во тьме, но будет иметь свет жизн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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