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 만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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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1-20, 2017 02:23에 작성됨.

 

 

쓰다 보니 귀찮아져서 한 달째 방치해뒀던 글인데, 마냥 놔두기는 뭐해서 초안 검토를 부탁드리고자 염치 없이 이곳에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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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찮은 일은 언제나 느닷없이 찾아온다.

 

이른 아침. 텅 비어있어야 할 사무실, 사람들이 흔히 책상 위에 가져다놓는 장식용 물품이나 자그마한 인형 하나 없이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여러 종류의 필기도구와 서류로 추정되는 종이들이 마구잡이로 놓인 업무용 책상에 가만히 앉아 시간을 때우고 있는 누군가가 있었다.

그가 앉아있는 책상과 짝을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그의 차림새는 엉망이었다. 자고 일어나서 헝클어진 머리를 대충 빗어 넘긴 것으로 추정되는 머리카락, 반쯤 풀린 넥타이, 대충 묶은 구두끈의 매듭 한쪽이 비쭉 튀어나온 검은색 구두 한 쌍. 그리고 다른 모든 것들과 대조되는 의외로 깔끔한 정장이 정장과 어울리지 않는 너저분한 특징들을 강조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더 한가하게 지낼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그는 따로 시계를 차고 다니지 않았다. 그에게 매일 시계를 맸다 풀었다 하는 일은 사소하지만 귀찮은 일이었고 그래서 그는 주머니에 넣기만 하면 되는, 그리고 시계가 할 수 없는 일들도 할 수 있는 스마트폰을 시계대용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물론 스마트워치라는 대안도 존재했으나 그의 주머니사정에 그것은 모험을 감수해야만 구입할 수 있는, 일종의 사치품이었기에 그는 여전히 스마트폰을 시계로 쓰고 있었다.

어쨌든 지금은 꽤나 이른 시간이다. 다른 사람들이 오려면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아직은 이렇게 한가로이 지내고 있어도 되겠지. 그러니까 지금 머리를 정리할 필요는 없고 지금 구두끈을 제대로 묶을 필요가 없으며 지금 바로 넥타이를 제대로 매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그 귀찮은 일들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그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그 일들이 귀찮았다. 하지만 그는 프로듀서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고 자기관리는 그의 업무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기 때문에 언젠가는 구두끈의 매듭을 보기 좋게 하고, 넥타이를 제대로 매고 머리를 정리하는 귀찮은 일을 한 다음 다른 사람을 만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자신의 일에서 나름대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있다고 생각했고 또 그 자신이 그 일을 좋아했기 때문에 그에게 자신의 업무는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차림새에 신경 쓰는 것은 귀찮았다. 나는 나대로 있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닌가? 어째서 남이 보기 좋은 차림을 하고 남들을 만나기 위해 시간을 써야 하는 건가?

물론 그는 답을 알고 있었다. 그는 프로듀서로서 남들에게 좋은 인상을 줘야 했고, 그것은 자신이 담당하는 아이돌들의 일, 수익, 이미지와 연관된 아주 중요한 임무였다. 하지만 그에게 일과 몸단장은 별개였고, 몸단장은 그의 기준으로 귀찮은 일에 속해 있었기에 될 수 있는 한 미루려고 했던 것이다. 꼭 해야만 하는 일인데 하고 싶지 않다면 그 일을 미루는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사실, 그는 평소에도 깔끔한 차림을 유지하는 편이었다. 아무리 그가 차림새에 신경 쓰는 것이 싫다고 해도 편한 차림으로 있다가 업무를 위해 갈아입는 일은 귀찮은 일이었기 때문에, 그는 개인적 선호를 포기하고 더 귀찮은 일이 생기지 않도록 작은 귀찮음을 감수하는 쪽을 선택했다.

하지만 오늘은 사정이 조금 달랐다. 어젯밤에는 평소보다 일찍 잠을 자기 시작했고, 그는 평소와 다르게 알람이 울리기 전에 일어났다. 알람이 울리지 않았는데 깨어난 것에 의아해하면서도 여가시간이 늘어난 것에 내심 기뻐하며 일어난 그는 알람시계가 멈춰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고, 큰일났다싶어 시간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부랴부랴 준비한 다음 회사로 출근했다. 그리고 회사에 와서 사무실에 도착한 그는 아무도 없이 텅 빈 사무실을 보고 그제야 자신이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시간도 남아있으니 차림새를 말끔하게 고치는 귀찮은 일은 뒤로 미뤄놓고 사무실에서 쉬고 있기로 결정했다.

일찍 일어난 착한 사람이라면 이 정도의 휴식은 누릴 수 있지 않겠는가?

 

“하, 이게 뭐야? 일찍 일어났는데 그만큼 일찍 출근해버리다니.”

 

하루의 시작부터 귀찮은 일이 생기다니, 영 좋지 않았다.

 

“제발 오늘의 귀찮은 일은 이걸로 끝이었으면 좋겠는데.”

“어라? 프로듀서?”

 

그가 자신을 부른 사람이 누군지 알아보기 위해-익숙한 목소리를 감지한 그의 뇌는 반사적으로 그 사람이 누군지 떠올리고 있었지만-돌아보자, 그가 담당하고 있는 아이돌 중 한 명인 아베 나나가 서 있었다.

아베 나나. 나쁜 의미로든 좋은 의미로든 특이하다고 할 수 있는 그의 아이돌. 자기 입으로는 17세라고 주장하지만, 글쎄, 하는 행동은 영 아닌 컨셉돌. 물론 그는 그녀의 실제 나이를 알고 있었다. 애초에 다른 팬들과 동료들도 대충은 눈치 채고 있었지만, 정말로 순수하게 그녀가 17살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그녀를 배려해서 그녀가 나이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할 때 태클을 걸고는 할 뿐, 지나치게 따져 묻지는 않는 편이었다.

물론 그를 비롯해서 그녀와 술자리를 가지는 몇 명은 거리낌 없이 그녀의 ‘나이’를 가지고 놀리고는 했지만, 이것은 다른 이야기니 넘어가도록 하자.

 

“안녕, 나나.”

“오늘은 일찍 나오셨네요? …뭐예요, 그 꼴은?”

“급하게 준비하고 나왔거든.”

“네, 네, 그리고 사무실에 도착하신 다음 정리하기 귀찮아서 멍하니 있으셨겠죠. 안 그래요?”

 

나나는 그의 귀찮음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듯, 그를 조금 한심하다는 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하기야, 평소에도 자신의 프로듀서가 귀찮다면서 사소한 일들을 뒤로 미루고 농땡이를 피우는 모습을 오랫동안 봐온 그녀였으니 모를 수 없었을 것이다.

이윽고 그녀는 외투도 벗지 않고 소파에 주저앉아 다리가 아픈 듯 다리를 천천히 만지며 뭐라고 작게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이 보면 그저 다리가 아파 마사지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겠지만, 나나가 자신을 알고 있는 만큼이나 그녀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그의 눈에는 안쓰러운 현실만이 보일 뿐이었다. 저렇게 힘들어하면서도 굴하지 않고 심지어 나이를 속이면서까지 아이돌 활동을 하다니, 자신이라면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고 해도 절대로 그럴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나에 관해 생각하던 그는 아직 다른 사람들이 오기 이른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나나가 벌써 사무실에 온 이유가 약간 궁금해졌으나, 그 의문은 곧 몸단장을 해야 한다는 귀찮음의 파도에 휩쓸려 생각의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다.

 

“마침 잘 됐네요.”

 

그가 한창 마음속으로 투덜거리며 머리를 정리하고 있을 때, 나나가 말했다.

잘 됐어? 뭐가? 일찍 나온 게?

불길하다. 귀찮은 일이 생길 것 같다. 제발 아니었으면.

 

“프로듀서, 저 좀 도와주실래요?”

 

귀찮은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그의 바람이 무색하게도, 귀찮은 일은 결국 그를 찾아와 그의 완벽한 하루에 대한 기대를 산산이 부숴버렸다.

 

“뭘 도와주면 되는데?”

 

그는 별일 아닌, 정말 간단한 부탁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무슨 부탁인지 물어보았으나, 그가 받은 부탁은 간단한 부탁과는 거리가 먼 부탁이었다.

 

“집 정리를 조금만...”

 

나나의 말로는 집에 손님이 오게 되어 급하게 청소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평소의 집 상태라면 조금만 정리했으면 됐겠지만, 하필 어젯밤 그녀의 집에서 술자리를 가졌기에 집이 조금 많이 엉망이 되었기에 집 정리를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그가 거절할 수 없도록, 그도 그 술자리에 있었다는 것-물론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끌려간 것이었지만-을 강조해서.

그는 귀찮은 일이 생겨버렸다고, 이것은 거절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부탁을 거절할 줄 모르는 그의 심장은 이미 머리 대신 대답을 내놓은 상태였다.

 

“알았어. 일 끝나고 보자.”

 

 

 

다행히도 그 날의 일정이 모두 끝날 때까지 별다른 일은 생기지 않았다. 오히려 사소한 트러블 하나 없는 상쾌한 하루였고, 그 덕분에 그는 자신의 바람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 것에 즐거워하며 퇴근 준비를 할 수 있었다.

 

“프로듀서!”

 

하지만 그런 즐거움도 잠시, 잊고 있었던 귀찮은 일이 그를 찾아왔다.

 

“자, 갈까요?”

 

내가 미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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