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제] '개와 늑대의 존재론'을 쓰며 : '신' 그리고 '사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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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4-28, 2017 03:06에 작성됨.

단편 링크 : http://idolmaster.co.kr/bbs/board.php?bo_table=create&wr_id=102923

 

글의 주요 키워드는 '신'이 되겠습니다. 주인공들은 마왕과 타천사이지만...

 

뭔가 굉장히 두서가 없는 글이라면 없는 글입니다. 그도 그럴게, 처음부터 '신'이라는 주제를 잡고 글을 쓴 것이 아니라, 어제 공명세계의 온톨로지가 업뎃된 것을 보고 지인분께서 그리신 그림(https://twitter.com/dlddu128/status/857583581048131585)을 모티프로 해서 얄팍한 전공지식을 붙여 불과 3시간 만에 써내려간 것이거든요. "천사였던 란코를 타락시킨 것은 마왕, 아스카."라는 그림의 코멘트에 맞춰서 쓴 내용입니다.

 

제 전공은 크리스트교 신학입니다. 때문에 성경에 있어서는 다양한 각도에서 다양하게 접근했던 편입니다. (학교 학풍 특성상 성서를 문학적으로 해석하는 성격이 강합니다.)

 

신학을 하다 보면, 반드시 부딪히게 되는 딜레마가 있습니다. "세상은 신께서 창조하셨는데, 그렇다면 악 또한 신께서 창조하신 것인가?"

매우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신학자들이 싸움을 벌였던 이야기이고, 지금도 그 신학적 분석은 현재진행형입니다. 여기서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이런 질문에 도달하죠.

 

'사탄 또한 신의 피조물 아닌가?"

 

결론부터 말하면 크리스트교 교리상 답은 "그렇다"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창조는 신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게 교리의 가르침이니까요.

(혹시나해서 밝혀두지만 전 진화론자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창조는 어디까지나 크리스트교 교리상의 창조입니다.) 

 

무엇보다, 구약성경에 대놓고 사탄이 등장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하루는 하느님의 아들들이 모여 와 주님 앞에 섰다. 사탄도 그들과 함께 왔다.

주님께서 사탄에게 물으셨다. “너는 어디에서 오는 길이냐?” 사탄이 주님께 “땅을 여기저기 두루 돌아다니다가 왔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주님께서 사탄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의 종 욥을 눈여겨보았느냐? 그와 같이 흠 없고 올곧으며 하느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는 사람은 땅 위에 다시 없다.”

이에 사탄이 주님께 대답하였다. “욥이 까닭 없이 하느님을 경외하겠습니까?

당신께서 몸소 그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를 사방으로 울타리 쳐 주지 않으셨습니까? 그의 손이 하는 일에 복을 내리셔서, 그의 재산이 땅 위에 넘쳐 나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당신께서 손을 펴시어 그의 모든 소유를 쳐 보십시오. 그는 틀림없이 당신을 눈앞에서 저주할 것입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사탄에게 이르셨다. “좋다, 그의 모든 소유를 네 손에 넘긴다. 다만 그에게는 손을 대지 마라.” 이에 사탄은 주님 앞에서 물러갔다.

(욥기 1장 6~12절)

 

즉, 천사 총회 하는데 사탄이 쫄래쫄래 와서 "신이시여, 욥 쟤 한번 쫄딱 망하게 해도 돼요?" "ㅇㅇ. 본인한테만 손대지 마라"라고 해서 욥기 전반에 이르는 욥의 개고생이 시작됩니다. 여기서 재산 다 날리고 자식들 다 죽였는데도 욥이 신을 경배하니 바로 다음 장에서 "좀 심하게 아프게 해도 돼요?" "ㅇㅇ 죽이지만 마"해서 병까지 걸려버립니다. 계속되는 시련에 욥은 절규하지만, 끝끝내 신앙을 저버리지 않고 더 큰 복을 얻는다는 결말이죠.  "선량한 사람이 왜 재난을 받는가?"에 대한 답으로 제시되는 부분 중 하나가 여기이기도 합니다.

 

욥기에 대한 신학적 분석은 차치해두고, 여기서 눈여겨볼만한 것이, 천사총회 출석해서 신과 쇼부치는 '사탄'의 존재입니다. 이게 사탄의 뿌리 문제가 엮여들어가는데, 욥기 썼을 때까지만 해도 '사탄'이 악마가 아니었습니다. 이쪽의 사탄은 '방해하는 자'라는 의미인데, '신을 방해하는 자'가 아니고, '(신의 명령으로) 인간을 방해하는 자'입니다. 즉, 욥기의 사탄은 신의 명령을 받들어 인간에게 시련을 주는 천사에 해당합니다. 뒷날 유대교에 선신과 악신 개념이 섞이며 '신의 적대자' 사탄 이미지가 생기게 됐죠.

 

이 글은 이런 전공 지식을 바탕으로 최대한 신의 성격을 비틀어 놓은 것입니다. "전지전능한 신이 있을 때, 그 신은 왜 인간이 고통 받도록 두는가?", "왜 전지전능하면서 적대자를 그대로 남겨두는가?"라는 의문을, "사실 그거까지 다 신이 시킨 거야." "사실 그거 은근히 즐기는 거야."라는 식으로 비틀어버린 거죠. 거기에 데레마스의 양대 중2병 캐릭터를 맡은 아스카와 란코의 이미지를 그 위에 덧씌워 나온 결과가 이것입니다. 1번으로 탈주한 옛 방해꾼 천사(사탄) 아스카, 그리고 그 아스카한테 낚여 타천사가 되는 란코.

 

물론 실제 신학적 분석은 이따위 신성모독으로 진행되지 않습니다. 이 글의 신은 '신'이라기보다, 기독교의 신을 모티프로 재구성한 '존재 X'에 가깝다고 할까요. 저런 게 진짜 신이라고 하면 저 교수님이나 신부님한테 맞아 죽을지도 모릅니다. 아니, 본당신부님 선에서는 고해성사 안 되는 레벨의 신성모독이 될 겁니다.

 

정리하면, "한번쯤 생각해볼만한 신학적 의문"을 최대한 이상한 방향으로 비틀어버리고, "마왕 아스카한테 타락하는 타천사 란코를 보고 싶어!"라는 사적 욕망이 더해져서 튀어나온 결과...라고 하겠습니다. 다만, 문제가 된 주제 자체는 여전히 신학계의 뜨거운 감자이니 궁금하신 분들은 신학서적을 찾아보셔도 나쁘지 않습니다.

 

뭐랄까, 졸업하고 세상 나와서 먹고 살기에는 도움이 안 되는 전공지식인데, 이렇게 생각할 거리가 생길 때는 참 끝없이 펼쳐진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네요. 이런 풀이를 시도해볼 기회를 주셨던 지인분,. 그리고 그 풀이를 창작톡으로 옮길 기회를 주신 주최자님께 감사를.

 

그러면 저는 이만 사라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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